70화
거실로 나간 지후는 TV 앞 탁자 위에 놓인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조심성 없는 손길로 탁자 위의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구기고 뭉개는 얼굴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의 손에서 찌그러진 맥주 캔에서 깡 하는 소리가 났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으로도 꾸준히 손을 움직이는 그는 마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인 양 굴고 있었다. 대현이 다가서는데도 한 손에 든 봉지 안으로 물건들을 쑤셔 넣는 등은 단호했다. 머뭇거리던 대현은 그럼에도 그의 어깨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이지후.”
잠시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던 등은 대현에게 잡힌 어깨를 가만히 둔 채로도 하던 행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현이 결국 그의 어깨를 잡아 돌려 세웠다.
“이지후. 나 봐. 보라고.”
반강제적이었지만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지후의 행동은 멈췄다. 마주 본 몸과 달리 대현을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 의지가 돋보이는 그의 고개는 비스듬히 돌려진 상태였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그의 시선은 대현의 윗옷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그를 본 대현의 입에서 결국 한숨이 터져 나왔다.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이거 그냥 넘어갈 만한 문제 아니야.”
말을 이으면서도 대현은 그의 옆모습을 살폈다. 잔뜩 긴장한 듯한 턱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문 입술을. 그걸 보자니 아직 정확한 정황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이 일이 그가 행세하려고 하는 것만큼 가벼운 일이 아님을. 오히려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가 느껴졌다.
“유은호가 가져간 거 알았던 거지, 너.”
“…….”
“언제부터 알았어?”
“…….”
“걔가 그거 프로듀서한테도 보여준 것까지도 알고 있었어?”
마지막 질문을 듣고서야 대현을 올려다보는 얼굴은 그새 더 창백해져 있었다. 충격받은 게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그도 잠시, 빠르게 다시 돌려진 지후의 고개는 대현의 시선을 익숙하게 외면했다. 뭐라 더 말하려던 대현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병신 새끼.”
지후의 입에서 튀어나온 자조적인 음성이 거실의 정적을 갈랐다. 은호를 말하는 것 같기도, 혹은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대현이 지후의 양 어깨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대현의 손에서 벗어났음에도 미동 없이 선 지후는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진짜…… 병신 새끼.”
중얼거린 지후가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대현은 제 어깨가 그렇게 작아 보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둘은 어느새 거실의 러그 위에 누워 있었다.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다 비우다 못해, 결국 집 앞의 편의점까지 다녀온 대현 덕분에 둘의 앞에는 맥주 캔이 여러 개 굴러다녔다. 지후와 대현 모두 아까의 일은 없었던 일인 양 딴 이야기만 했다. 정적이 생길 것 같으면 일부러 텔레비전을 보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야.”
“왜.”
“너 폰 울려.”
옆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들어 잠시 들여다보던 지후가 곧 대현에게 핸드폰을 던졌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도 핸드폰을 성공적으로 받아낸 대현이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전화받으라며 핸드폰이 징징 진동하고 있는데도 받을 생각은 않고 눈만 깜빡이던 대현이 곧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언가를 찾는 듯한 그를 힐끔 본 지후가 물었다.
“뭐 찾는데.”
“지금 몇 시야?”
“……핸드폰은 폼이냐?”
한심하다는 어투로 나온 지후의 말에 대현이 아 맞다, 하는 얼빠진 반응을 내놓았다. 나 취했나…… 중얼거리는 대현을 본 지후가 픽 웃었다. 안 취하면 이상한 일이다. 둘 앞에 놓인 수많은 맥주 캔 중에 지후가 마신 건 겨우 두 캔이었으니까. 물이라도 먹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들이켜던 얼굴은 한 잔만 먹어도 빨갛게 달아오르던 제 얼굴이면서도 묘하게 아닌 것 같아서 신기했다. 몸은 바뀌었는데, 주량은 어떻게 안 바뀌지.
잠시 진동이 잦아들었던 핸드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받지 않고 그것만 들여다보던 대현이 곧 손가락을 들었다. 전화를 받는 대신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한 번 더 울렸다. 빠르게 답장을 읽은 대현은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다시 답장을 하는 것 대신 핸드폰을 소파 위로 던졌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지후는 대현이 자신을 보기 전에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현이 바닥에 벌러덩 누울 때만 해도 왜 저러나 싶었는데, 캔을 비우며 점점 자세가 허물어져서 결국에는 그처럼 바닥에 눕게 된 자신이 웃겼다. 입가에 머물던 미소가 이내 사라졌다.
“정대현.”
졸린 눈을 하고 맥주 캔을 발로 밀어 한쪽으로 몰던 대현이 돌아보는 게 느껴졌음에도 지후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니, 돌릴 수 없었다. 앞으로 제가 할 이야기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하고는 털어놓을 자신이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내가 유은호…… 처음 본 게 걔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거든.”
“…….”
“물론 그때도 싸가지는 없었지. 맨날 싸웠어, 걔. 지보다 나이 많으면 나잇값 못한다고 싸우고, 동갑은 지랑 똑같은 게 뭘 아냐고 싸우고, 나이가 어리면 어린 게 왜 까부냐고 싸우고.”
술기운 탓인지 느릿느릿 이어지는 목소리는 그럼에도 끊기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마치 눈앞에 열여덟 살, 젖살이 덜 빠진 은호가 있는 것만 같았다. 제게 덤벼드는 사람에게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눈빛의 소년이 그의 기억 속 어딘가를 긁어댔다.
“연습생 텃세 심하다고는 하지만 원래 한 달 이상 괴롭히는 일은 잘 없어. 회전율이 워낙 빠른 곳이니까. 한 주만 지나도 새로 오는 애들이 생기는데, 굳이 한 달이나 지난 애를 건드려서 뭐 하냐. 근데 유은호는…… 안 그랬거든. 아마 유독 지랄 맞아서였을 거야. 지 딴에는 얕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건데, 다른 연습생들이 보기에는 ‘이것 봐라’ 싶었던 거지.”
잠깐 고개를 돌려 확인한 대현은 저처럼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소 불규칙한 숨소리가 그가 잠을 자지 않고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특이한 놈이라고만 생각했거든. 근데 자꾸 보니까…….”
“…….”
“이상하게 걔한테서 자꾸 내가 보이는 거야.”
말을 잇다 말고 잠시 망설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도 납득이 가지 않았던 부분이니까. 심지어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떤 면이 그랬던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어.”
“…….”
“그냥 난 걔가…… 외로워 보였어.”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본다고. 그건 마치 동족에게 나는 냄새를 알아채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버석하게 갈라지는 것 같은 쓸쓸함의 냄새. 눈빛이건, 행동이건, 심지어 툭툭 내뱉는 말에서조차 알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나답지 않은 행동을 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기는 거지. 걔도 웃겼을걸. 그게 오만한 행동 아니면 뭐야.”
“…….”
“자기 외로움도 감당 못 하는 새끼가 누굴 위로하겠다고.”
기억이라는 걸 할 수 있었던 시점부터 외로움은 지후와 늘 함께하는 거였다. 그의 삶의 어느 부분이건 불쑥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은 나중에는 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은호의 외로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자신이.
“근데 그러는 이유를 스스로도 모르겠으니까 나중에는 그냥 합리화했거든. 그냥 도와주는 거라고.”
“…….”
“그러느라 몰랐나 봐. 걔가 내 그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대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대로 아무 말 하지 않고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확실한 건 말을 이어갈수록 제 마음이 생각보다 편해지고 있다는 거였다. 혼자 짊어지고 있던 짐을 어딘가에 잠깐 기대놓기라도 한 것 같았다.
“사람이 참 웃기지. 처음에는 그냥 어이가 없었거든. 내 노트가 왜 얘한테 있나 싶고. 근데 노트를 열었는데. 마지막 장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
“…….”
“무서웠어.”
아직도 생생했다. 은호의 물건을 찾으러 온 진수의 부탁으로 가방을 열었을 때,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잊고 있던 자신의 노트를 발견했던 그 찰나의 순간이. 당황한 머리로도 일단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진수가 찾던 물건을 꺼내 건넸다. 문이 닫힌 밴 안, 노트에 적힌 것들은 역시나 제가 볼 거라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왜냐면 난 걔랑 같은 마음이 아니었거든.”
마지막 장. 어지러이 놓인 음표들 사이에 빼곡히 들어찬 자신의 이름. 그리고 그 옆에 적힌 글귀. 흔들리는 눈으로 읽어가던 지후는 끝내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연습생 모두, 심지어 같은 멤버들에게도 날을 세우는 그가 유독 제게 순순히 구는 건 자신이 그를 도왔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을 접어 웃고, 아프면 약을 챙겨주고, 사근사근 구는 행동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에 적힌 날려 쓴 글은 그가 알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내가…… 망친 거야. 주제 넘는 동정을 해서.”
-동정이었더라도 상관없다. 난 당신이 필요했고, 당신도 어느 방식으로든 내가 필요했던 거라면. 그 사실만으로도 난 당신을 계속 좋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