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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거리두기-66화 (66/119)

66화

어느 여름, 데뷔가 확실하게 정해진 이들 사이에 앉은 은호의 시선은 한 곳만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이지후였다. 제 시선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들뜬 그의 얼굴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데뷔 소식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한 팀에 묶여 저 얼굴을 매일같이 지켜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제 예상을 뒤엎은 이지후는 가까워지기 어려운 상대였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그에 안 그래도 조바심이 나던 중이었는데, 이런 기회까지 생길 줄이야. 그를 볼 때마다 습관처럼 짓게 되는 미소를 달고 그를 훔쳐보던 은호가 멈칫했다.

“…….”

“…….”

제 옆, 그러니까 지후의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눈에 걸린 탓이었다. 방금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지후의 옆얼굴을 훔쳐보는 얼굴을 노려보던 은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못 봤던 얼굴인데 누구지. 낯선 얼굴인 걸 보니 다른 연습실을 쓰던 사람인 듯했다.

더 거슬리는 일은 다음 순간에 일어났다. 제 시선은 눈치채지 못하던 지후가 그 남자의 시선은 느낀 것처럼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곧 들어온 팀장들에게로 금방 돌려지긴 했다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그 시선이 건너편에 앉은 남자에게 닿은 건 사실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번개 같은 깨달음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멍한 얼굴로 지후를 훑던 은호는 그제야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지후의 시선을 받는 건 자신뿐이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싫었다.

성난 등이 방을 박차고 나가는 걸 보면서도 은호는 미소 짓는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저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지후의 방일 테다. 곧 들리는 우당탕 소리는 그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거슬리랬냐고. 지네 집만 사정 있나. 자리에 없는 우람을 향해 비죽거린 그가 제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팔을 모아 머리 뒤로 받친 그가 나른한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숙소에 들어오던 날 제가 방 천장에 붙여둔 야광별 하나가 흐리게 빛나고 있었다. 불을 끄면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임을 알지만 지금도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어둠은 찾아올 거고, 자신은 계속 이 자리에 있을 테니까.

“형. 어차피 제가 있잖아요.”

중얼거린 그가 눈을 감았다.

은호는 제 몸을 잠식하는 분노에 정신을 놓기 일보직전이었다.

“은호야. 한 번만 기회를 줘.”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내가 잘할게. 응?”

“어떻게 들어왔냐고 묻잖아!”

모든 게 어긋나고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지후가 있었다. 주위의 멤버들을 떼어놓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제게만 시선을 주게 될 거라고 자신했다. 그의 옆에서 그가 바라는 건 뭐든 해줄 자신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후는…….

은호의 차가운 눈빛이 눈앞에 선 남자를 향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메이크업과 의상까지 다 갖춘 은호와 달리 맨 얼굴로 섰던 남자는 그의 시선을 받은 것만으로도 기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을 못 알아챘을 리 없을 텐데, 전 애인의 음악방송 날 대기실까지 찾아온 남자는 이미 모든 것을 놔버린 듯했다. 인간이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가지는 부끄러움까지도 내려놓은 듯한 그의 모습이 우스웠다.

이 감정이 지후여서인지, 아니면 제 취향이 남자인 건지를 파악하기 위해 만났던 남자였다. 확인했고 이제 더는 필요 없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며 토씨 하나 안 빼고 털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매달리는 걸 보니, 여간해서는 떨어질 것 같지가 않다. 짧게 혀를 찬 은호가 머리를 짚었다. 리허설까지 앞으로 한 시간이 남았다.

“뭘 원해.”

“……어?”

“뭘 원하냐고. 여기까지 찾아왔을 때는 뭐라도 얻으려고 온 걸 거 아냐. 빨리 말해. 나 시간 없어.”

“……유은호.”

“어.”

“아니. 널 원한다고. 내가 원하는 건…… 너뿐이야, 은호야. 우리 다시 잘해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은호야. 나 정말 잘할 자신 있어.”

하하.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목 안에서부터 터져나온 웃음을 뱉어낸 은호가 남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영화 찍냐? 혼자 쌩쑈를 해요, 아주.”

건들거리듯 뱉을수록 앞에 선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좀 더 하면 울기라도 할 기세였다.

“헛소리하지 말고, 들어줄 수 있는 거로 말해.”

윽박지르던 은호의 입이 막혔다. 남자가 달려들어서였다. 거칠게 돌진한 입술에 잠시 주춤하던 것도 잠시, 은호는 한 손을 들어 남자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찌푸려진 미간과 다르게 제 입에 들어온 혀를 빨아들이는 혀만은 다정했다. 춥. 다소 민망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 연인 부럽지 않을 정도로 진득한 키스에 기대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을 내려다본 은호가 무심하게 지껄였다.

“됐지, 이제.”

입술 다 지워졌잖아. 손등으로 입술을 거칠게 쓸며 뒤돌아서던 그가 멈칫했다.

“…….”

복도 끝에 선 이의 얼굴이 익숙했다. 뒤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도 흔들림 없던 그의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

“…….”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는 사이 그는 복도를 돌아 사라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아냐. 무엇을 부정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줄지어 나온 부정어들은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스러졌다. 은호가 뛰기 시작했다. 복도를 구석구석 뛰어다녔지만 방금 전 마주한 얼굴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자포자기한 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대기실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발견한 뒷모습은 제가 찾던 사람의 것이었다. 늘 보아왔던 것이긴 했다. 질릴 만큼, 그러나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던 뒷모습. 그렇기에 더더욱 제가 가져야 할 뒷모습이기도 했다.

안심해서인지 아니면 불안해서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연스럽게 주위를 살핀 은호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다행히 대기실에는 지후 외에 아무도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돌아보는 얼굴은 제가 알던 이지후의 얼굴 그대로였다. 태연한 그의 얼굴은 마치 방금 전의 일은 모두 끔찍한 꿈이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혼란스러운 얼굴로 지후를 마주하던 은호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형.”

무슨 말을 꺼낼지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을 보자마자 튀어나간 말이었다. 은호의 머릿속이 여러 가지 시나리오로 뒤엉켰다. 일단은 아까 상황에 대해 변명을 해야 한다. 뭐라고 하지? 스토커라고 할까? 키스도 그냥 당한 거였다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까?

어느 것도 마음에 차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결심한 은호가 입을 달싹일 때였다.

“무슨 행동을 하든지 네 자유지만.”

“…….”

“복도에서는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

지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비록 시선을 마주하고 있지 않았지만 은호에게 하는 말이었다. 둘 사이에 꽤 벌어진 거리가 우습게끔 지후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귀에 와 박히는 말들은 그가 무시할 수 없는 음량으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멍하니 선 은호는 생각했다.

“그거 말고는 바라는 거 없으니까. 부탁할게.”

귀를 막고 싶다고.

* * *

우람과의 오해를 풀며 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은호와의 괴리감이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그를 제 환상 속의 인물과 분리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삼 년간 유독 더 마음을 주어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우람, 식, 윤성과 지내며 그의 존재를 잊고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한참 전에 예매해 두었던 은호의 뮤지컬 날짜를 하루를 남기고 알게 된 날에는 어딘가 후련함이 들기까지 했다.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순간 제가 느끼는 감정은 여태까지의 그 모든 것들은 잘 봐줘야 전조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 깨달음이 대현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어떻게…….”

한참을 창백한 얼굴로 대현과 노트를 번갈아 보던 입에서 나온 소리란 건 고작 그런 거였다.

“궁금해?”

“…….”

“그럼 좀 제대로 숨기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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