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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거리두기-39화 (39/119)

39화(Ch 3_2.)

“어디 가?”

“알아서 뭐 하게.”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우람에도 불구하고 대현은 소파에서 일어섰다. 대현의 옆에 딱 달라붙어 텔레비전을 보던 윤성도 순식간에 비어버린 옆자리에 우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몰린 시선에 우람이 인상을 썼다.

“뭐 하긴. 찍어야 되니까 그렇지.”

“……예스랑 찍지 왜.”

또 저 이야기네. 대현이 질린 표정을 했다. 어제 밤 제가 예스의 숙소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대화마다 어떻게든 저 이야기를 꺼내는 우람이었다. 윤성이 섭섭한 얼굴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것까지는 귀여웠지만, 집요할 정도로 그 이야기를 꺼내는 우람에 대현도 반쯤 지친 상태였다.

사실 우람이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툴툴거리는 것도 그의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히 삐진 듯한 그를 달래기 위해 일부러 아침에 밥도 두 그릇 줬건만, 그건 곧이곧대로 먹어놓고 또 이러는 그를 보니 이제는 대현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덩치는 산만 해가지고는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만 하네. 차마 내뱉지 못하는 말을 삼키며 대현이 우람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지 말고~ 말해주라.”

웃으며 살살 달래는 말투로 말하자 우람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대현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 통한다, 통해. 선우와 영민을 회유할 일이 있을 때 정 안 되면 쓰는 방법이었지만 우람에게도 통하는 걸 보니 역시 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을 수 없다는 조상님의 말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듯했다.

기분이 좋아진 대현이 밝게 웃었다. 입을 살짝 벌린 우람이 대현과 시선을 맞추다 말고 별안간 뒤로 물러섰다. 우람의 어깨에 얹었던 대현의 손이 툭 떨어졌다.

“연…… 연습실 갈 거야. 됐냐?”

“연습하러?”

“그 이유 말고 그럼…….”

“같이 가.”

“뭐?”

“연습하는 거 팬들도 보면 좋아할 거야. 기다려. 나 금방 준비하고 올게!”

그렇지. 플러그의 일상을 담아내는 거라면 당연히 연습하는 모습도 있어야지. 그리고 생각해 보면 대현도 플러그의 X투브 공식 채널에 올라오는 연습 영상들을 유독 더 좋아했었다. 무대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팅된 모습이 아니라, 편한 운동복이나 사복을 입고는 민낯으로 서서 춤을 추는 그들을 보면 더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음악소리 말고는 그들의 숨소리만 울리는 연습실에서 운동화 밑창과 바닥이 부딪쳐 내는 삐걱삐걱 소리도 어딘가 풋풋한 느낌이 들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우람을 앞에 두고서도 이미 대현의 머릿속에는 어떤 장면을 뽑아내야 할지가 순서대로 정리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기대감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대현이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번에 집에 가서 가져왔던 카메라를 챙긴 대현이 옷장을 열고 대충 집히는 외투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다행히 우람은 아직 신발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신발을 신으려던 대현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윤성이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윤성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대현은 오래지 않아 소파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윤성을 발견했다.

어느새 코트와 머플러까지 하고서 불러만 달라는 얼굴로 얌전히 앉아 있는 윤성을 본 대현의 입에서 결국 바람 빠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가 준비하는 사이 제 방으로 달려가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을 윤성을 생각하니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이 귀여움도 영상에 담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는 꼭 담으리라. 그 틈새 다짐까지 마친 대현이 윤성을 불렀다.

“윤성아, 너도 가자.”

손짓을 하자마자 쪼르르 달려온 윤성을 보던 대현이 신발을 신느라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를 헝클었다. 제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주는 윤성이 귀엽고 때로는 찡할 정도로 고마웠지만, 슬쩍 걱정이 되기도 했다. 포슬포슬 손에 감기는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걱정 어린 한 마디를 덧붙인 것도 그래서였다.

“윤성아, 밖에서는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 알지?”

뜬금없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윤성이 대현과 눈을 맞추고는 대답했다. 동시에 눈을 접어 웃어 보이는 얼굴이 해맑았다.

“걱정 마세요. 전 형만 따라가는 거예요.”

어쩜 말을 저렇게 예쁘게 하지. 갈수록 윤성맘이 되는 것 같은 저를 느끼며 대현도 윤성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그러다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지랄을 해요, 지랄을.”

우람이었다. 저렇게 툴툴거리면서도 따라 나오기 편하라고 문까지 잡아주고 있다. 항상 행동과 말이 따로 노는 그였지만, 한껏 찌푸려진 인상과 너무 안 어울리는 자상한 행동에 또 웃음이 터졌다. 우람의 어깨를 주먹쥔 손으로 툭 친 대현이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하게 앞장서는 우람을 따라가던 대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의 어깨에 얼굴을 박았다. 부딪친 이마를 문지르던 대현이 그제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뗐다. 우람의 어깨 너머를 보던 대현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플러그 정도의 연차면 아예 따로 연습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우람이 지금 앞장서는 곳도 그곳일 거라 추측했다. 그렇지만 지금 그들 앞의 연습실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 중 플러그 멤버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익숙한 얼굴을 흘낏거리던 대현이 가운데에 선 사람 한 명의 얼굴을 기억해내고 아, 하는 탄성을 냈다.

플러그의 후배 그룹이다. 이름이 슈어…… 였나.

우람이 연습실을 헷갈렸거나, 이들이 연습실을 헷갈렸나 보다. 대수롭잖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던 대현이 우람과 윤성의 굳은 얼굴을 확인하고는 멈칫했다. 연습실에 흐르기 시작한 이상한 기류를 느낀 대현의 얼굴도 덩달아 굳었다.

“뭐 하냐, 너네.”

우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굵은 목소리가 연습실에 들리자마자 그들이 선 쪽으로 여러 명의 고개가 돌려졌다. 아까 대현이 알아본 사람이기도 한, 가운데에 있던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달려왔다.

“형, 여긴 어쩐 일로…….”

“연습실에 뭐 하러 왔겠냐.”

“아…….”

“대답이나 해. 너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데.”

“형, 그게요…….”

그러는 사이 누군가 음악을 끈 모양이었다. 연습실을 일정한 울림으로 울려대던 음악이 뚝 끊기고 어색한 정적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이쪽 셋, 저쪽 여섯 명. 총 아홉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말을 쉽게 열지 못했다. 그제야 대현은 이 어색한 분위기는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어서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처럼.

“윤제형. 내가 말할게.”

“…….”

“한우람. 여기 이제 너네 전용 연습실 아니야.”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계약 기간 끝났잖아, 너네. 연습실이라고 다를 거 같아?”

쩔쩔매던 남자를 대신해 뒤에서 걸어온 남자가 우람에게 말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모두가 말을 잇는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현이 우람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짓는 우람을 보다 윤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윤성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대현이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렸다. 녹화 버튼을 끈 그가 우람의 옆으로 다가섰다. 움직이는 대현에게로 모두의 이목이 모였다. 신랄한 말투로 우람에게 쏘아대던 남자의 시선도. 그 눈에 명백히 보이는 적의를 묵묵히 받아 넘긴 대현이 남자에게 말했다.

“알았어. 연습하는 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우리 갈 테니까 하던 거 마저 해.”

대표와 이야기할 때 그가 지원이 없다고 못 박기는 했지만, 이런 지원까지 얘기하는 건 줄은 몰랐다. 비겁하고 치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가 제시했고 그 조건에도 기뻐하며 받아들였던 건 대현 자신이었으므로.

“우람아, 가자.”

일부러 다정하게 우람을 불렀다. 자존심이 상한 게 명백히 보이는 낯으로 남자를 노려보던 우람의 시선이 대현에게로 향했다. 잔뜩 들어가 있던 눈의 힘이 슬쩍 풀리는 걸 보며 대현은 손을 뻗어 우람의 어깨를 쥐었다 놓았다. 눈치를 살피는 윤성에게 나가자며 턱짓을 하던 대현이 먼저 걸음을 뗄 때였다.

“정 억울하면 무릎이라도 꿇어볼래?”

대현이 멈칫했다. 대현뿐만이 아니었다. 대현의 뒤를 따르던 윤성도, 입술을 짓씹으며 걸음을 옮기려던 우람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혹시 모르잖아. 보고 나면 나도 연습실 돌려주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뒤돌자마자 보인 얼굴에 떠오른 비소는 우람이 아닌 대현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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