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와 거리두기-37화 (37/119)
  • 37화

    “와.”

    “와.”

    “와.”

    “와.”

    어느덧 부엌으로 다가온 넷 때문이었다. 부엌에서 거실로 이어진 공간을 막고 선 그들이 입을 모아 내뱉는 배신감 어린 음성에 식탁 의자에 앉아 있던 대현이 움찔했다.

    “샌드위치 트레이로 옮긴 거 봐. 와.”

    “방에 가서 혼자 먹으려고 했나 봐.”

    “아니지, 병신아, 지후 형이랑 둘이 먹으려고 그런 거지.”

    “아, 맞네. 와, 둘이만 먹으려고.”

    “우리도 배고픈데.”

    사이좋게 내뱉는 말에 대현이 당황한 표정을 하고는 지웅을 쳐다봤다. 이미 손에 든 트레이를 뺏긴 지웅은 망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아서 아까 그런 눈짓을 한 거였구나. 그 비밀스러운 눈짓을 빨리 알아채 주지 못해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진 느낌에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샌드위치 꽤 많이 했는데, 나눠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몇 분 후, 대현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네 멤버들…… 되게 잘 먹는다.”

    둘이 먹기에는 꽤 많아 보였던 샌드위치가 순식간에 달려든 넷으로 인해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현이 읊조렸다. 그 틈에서 겨우 사수해 낸 샌드위치 두 쪽을 대현에게 밀어주던 지웅이 말도 말라는 표정을 했다.

    “저번 달에 식비만 삼백 나왔어…….”

    “……대단하다.”

    이쯤 되니 여태껏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우람의 식사량도 다시 보게 된다. 앞의 네 사람과 비교하니 그냥 조금 더 잘 먹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 시간 날 때 대결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웃던 대현이 제게 돌아온 네 쌍의 눈에 깜짝 놀라 의자 뒤로 엉덩이를 물렸다. 그런 대현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큼성큼 걸어 대현의 앞으로 다가온 둘은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형.”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나 이미 불렀는데.”

    “그건 네가 예의 없는 새끼라 그런 거고.”

    “그래. 님 예의 존나 대박이셔서 아까 영화관에서 콧물 삼키는 소리 킁킁~”

    “……미친아, 너랑 또 영화를 보러 가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투닥거리던 둘이었다. 그중 한 명은 아까 윤성과 친하다며 인사를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먼저 말을 걸어놓고서도 싸우느라 그를 잊은 것처럼 보이는 둘을 보던 대현이 늦은 대답을 했다.

    “……그 ……편하신 대로 불러도 돼요.”

    둘이 그제야 대현의 존재를 떠올린 듯 아! 짧은 탄성을 내놓았다. 갑자기 턱 잡힌 손에 대현이 눈을 크게 떴다.

    “형, 자주 놀러와 주세요.”

    “제발.”

    “플리즈.”

    이건 갑자기 무슨 소리지. 당황한 표정을 한 대현을 본 그들이 설명이라도 하듯 덧붙였다.

    “집 나간 미각이 돌아온 느낌입니다.”

    “진짜예요. 저희가 여태껏 먹은 건 쓰레기였다는 걸 방금 알았습니다.”

    “아니, 이런 어이없는 새끼들을 보았나. 어제 소고기 50만원치 처먹은 놈들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

    개수대 옆에 기대어 있던 다른 멤버 하나가 어이없다는 듯 뱉은 말을 가볍게 무시한 둘은 대현에게 간절한 눈빛까지 쏘고 있었다. 대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의외로 힘이 셌다. 거기다 한 명이 한 손씩 잡고 있어서 더더욱.

    하하……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대현이 멈칫했다. 눈이 마주친 남자 때문이었다. 얼굴을 마주하는 게 오늘만 벌써 세 번째인데 옷을 다 갖춰 입은 건 처음인 그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이렇게 보니까 얼굴도 잘생긴 것 같고. 하긴 아까 몸도…… 미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지금.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살색 가득한 풍경을 쫓으려 대현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앞의 둘과 전혀 관계가 없는 행동이었으나 어떻게 해석한 건지 눈앞의 두 명은 이제 반쯤 대현에게 찡찡대기 시작했다.

    “흐흑…… 안 된다는 말씀만은 말아주세요.”

    “제발…… 그것만은…….”

    “형이 바쁘시면 저희가 형네 숙소에 놀러가도…….”

    “초대만 해주신다면…… 저희가 음식 재료는 다 들고…….”

    “야야. 떨어져. 당황하는 거 안 보이냐.”

    그제야 지웅이 중재에 나섰다. 떨어지라며 휘휘 손짓을 하는 얼굴은 그럼에도 약간의 웃음이 묻어 있었다. 대현이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반쯤 즐기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슬쩍 지웅을 흘긴 대현이 모두의 관심이 그에게 쏠린 틈을 타 슬쩍 손을 빼냈다. 당황해서였는지 땀까지 묻어난 손을 옷에 문지르던 대현이 고개를 들었다.

    “책임져요, 형…….”

    “맞아…… 책임져 주세요……. 저희가 밥은 잘 못해도…… 잘 먹어요…….”

    “진짜에요 저 새끼는 진짜 잘 먹어요, 형…….”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니 분명 장난 같기는 한데, 계속 저러는 집요함을 보니 좀 무서워지고 있었다. 대현이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언제쯤 집에 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였다.

    “책임질 거면 날 책임져야지.”

    충격적이었던 첫 인상과 달리 샌드위치를 먹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꺼내놓지 않던 그였다. 거실과 부엌의 경계에 서서 대현을 보던 그가 하품을 쩍 하며 말을 이었다. 나른한 눈이 대현을 담고는 깜빡거렸다.

    “고추 보여준 건 난데.”

    대현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방금 들은 말이 뇌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대현이 그 말을 겨우 이해하고 펄쩍 뛰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저 새끼 진짜 또라이 아냐?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별로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친, 형 또 벗고 있었어요?”

    “극혐이다, 진짜.”

    “여기 니 고추 안 본 사람이 어딨냐.”

    “그게 자랑이라고. 넌 진짜 언제 그 버릇 고칠래. 내가 아까 얼마나 민망했는지 알아?”

    경멸 어린 눈으로 남자를 힐끔거리는 2인조와 들어오면서부터 줄곧 2인조를 타박하던 남자까지도 예준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웅도 한 소리를 했다. 옆에서 듣던 대현은 자신만 예준의 알몸을 본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했다.

    예준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멤버들의 타박에도 잠깐의 흔들림도 없이 대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무표정일 땐 보이지 않던 오른쪽 볼의 보조개가 쓱 들어가는 걸 본 대현이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적 있던 또라이질량보존의법칙을 떠올렸다. 연예계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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