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우람이 자신도 잊고 있던 그 생각을 떠올리게 된 건 어느 여름이었다. 사무실 안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낯선 아이들뿐이었다. 지나가다 본 얼굴도, 아예 보지 못했던 얼굴도 있었다. 우람을 포함한 다섯 명은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채로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얼굴에 묻은 것은 같았다. 기대감이었다. 심지어 표정이 없는 걸로 유명한 지후의 얼굴에서조차 숨길 수 없는 그것을 훔쳐보던 우람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좋아서 뛰는 건지, 불안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두 팀장에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러 명이 앉아 저 둘을 한꺼번에 보게 된다면 그 즉시 데뷔하게 될 거라는 소문까지 있는 총괄팀장과 기획팀장이었다. 사무실에 앉은 다섯 명이 곧 데뷔하게 됨을 알려주는 사인이나 다름없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우람은 저도 모르게 다시 힐끔, 지후를 확인했다.
허공에서 시선이 맞부딪쳤다. 우람의 입에서 어, 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둘이 시선을 마주한 건. 그리고 이렇게나 오래 시선을 돌리지 않았던 건.
어딘가가 간지러운데 그게 어딘지는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아마 어색함 때문이었을 거다. 낯설게 찾아온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먼저 돌린 건 우람이었다. 상석에 앉아 아이들을 둘러보는 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가 지후 쪽을 다시 쳐다봤을 때는, 앞을 보며 집중한 옆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부탁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제가 듣기에도 떨리는 목소리를 지후라고 못 알아챘을 리 없었다. 화장실을 나온 우람이 비상구 쪽으로 걸어갔다. 복도에 서 있던 몇몇의 연습생들이 그를 힐끔 보고 쑥덕거렸지만 그를 신경 쓸 힘조차 없었다. 문이 닫히고 비상계단에 있는 게 혼자인 걸 확인하고 나서야 우람이 무너져 내렸다. 벽을 타고 주르륵 주저앉은 그가 두 팔 안에 얼굴을 가뒀다.
왜 하필 이지후일까. 들켜도 하필. 이지후. 왜…….
차마 내뱉지 못한 말들이 그의 속에서 얼룩졌다. 내보일 수 없는 열등감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걱정해서 한 게 분명한 지후의 말들을 온전히 그 자체로 들을 수 없는 제가 병신 같았다.
매니저 형한테 말을 해보는 건……
매니저 형한테……
쾅. 결국 옆의 문을 주먹으로 친 우람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게 끔찍했다. 정직하게 살라는 말을 해놓고는 한순간의 그른 선택으로 가족들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아버지라는 사람도, 자신만 바라보는 가족들을 앎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제 모습도, 그걸 들킨 게 가장 들키기 싫은 멤버였다는 것도. 다. 너무나 끔찍했다.
“……고맙다.”
그 말 대신 우람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넌 좋겠다.
“알아서 할 거야.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화낼지도 몰라.”
“…….”
“이번에만 그냥 고맙게 들을게.”
그렇게 멋있게 말할 수 있어서. 친하지도 않은 멤버가 돈이 없어 죽는 꼴을 보는 게 신경이 쓰인다는 이유로. 그래서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게.
좋겠다, 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목까지 오른 그 말을 뱉는 대신에 우람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당겨 웃음을 흉내 냈다. 그리고 거절했다. 지후가 이쯤에서 알아들어 주길 바라며 말이다. 악의가 없어 보이지 않았다면 우람은 진작 그를 때려눕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다. 열등감을 삼키며 겨우 내뱉은 말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은 제가 이지후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진지했고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으니까.
뒤돌자마자 주먹부터 꽉 쥔 우람은 애써 어깨를 펴며 걸었다. 돌아서는 제 모습이 조금이라도 덜 비참해 보이길 바랐다.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수와의 면담은 고통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할 수가 없는데, 요새 왜 그러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도 면담에서 얻은 게 있다면 휴가 아닌 휴가가 생겼다는 거다. 주말 동안에 집에 다녀와도 되겠냐는 제 말에 한숨을 쉬며 그러라던 얼굴을 애써 지워내며 우람이 짐을 쌌다. 짐이랄 것도 없었다. 갈아입을 옷 몇 가지만 챙겨 일어나던 우람이 행동을 멈추고 문가를 응시했다.
은호였다. 우람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같은 방을 씀에도 별 교류가 없었던 그가 빤히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그에 호기심이 생길 만도 했건만, 자신을 돌보기에도 여유가 없는 우람에게는 그마저도 사치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짐을 싸던 그가 다시 고개를 든 건 은호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세요?”
“……어, 집에.”
안 하던 짓을 한다 싶더니, 막상 건너온 질문은 별게 아니었다. 건성으로 답하며 가방을 정리하던 우람이 멈칫했다.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선 은호 때문이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던 우람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은호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러니까, 꼭.
“아…… 안 그래도 들었어요.”
위로라도 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를 깨닫자마자 우람의 어깨 위로 은호의 손이 올라왔다. 멈칫 굳은 우람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는 손길은 내려앉았을 때처럼 가볍게 팔랑대며 떨어져 나갔다.
“정 안 되면 저라도 도와드릴게요, 형.”
“……무슨…….”
“같은 멤버인데요 뭐. 부담 가지지 말고.”
“무슨 소리하냐고 묻잖아!”
도와준다란 말이 가리키는 사실이 혹시 제가 생각한 것일까. 우람이 결국 침대에서 일어서 은호를 마주봤다. 우람의 고함에도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바라보는 얼굴은 제가 방금 한 말이 우람을 얼마나 옥죄었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지후 형은 되고 전 안 되나요?”
“……뭐?”
“저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은호의 입에서 나온 지후의 이름에 우람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오는 은호의 얼굴은 이미 우람의 머릿속에서 밀려난 채였다.
지후 형은 되고…… 지후 형은…… 지후……. 이지후.
미칠 듯이 피곤했던 며칠간,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던 이성의 끈이 끊겼다. 우람이 들고 있던 가방을 던지며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아, 한우람 병신 새끼.”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방 안에 핸드폰을 놓고 와서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야 그걸 깨달은 우람이 욕을 뱉으며 뒤돌아섰다. 성큼성큼 걸어 문 앞에 선 그가 멈칫했다. 분명 아까 나갈 때 제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문이 조금의 틈을 남기고 열려 있었다.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구부리자 문 틈 사이에 끼어 있는 제 운동화가 보였다. 빨리 집에서 나오기 위해 아무 신발이나 주워 신었던 제가 해놓은 일인 듯했다. 몸을 구부려 문 사이에 낀 신발을 주우려던 우람이 멈칫했다.
문틈으로 보인 둘 때문이었다. 둘이 거실에 서 있었던 건 봤지만, 아직까지 저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쪽 눈썹을 찡그린 우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광경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삼 년 전에. 넌 어떻게 알았던 거야? 우람이네 가족 일 말야. 한우람은 나한테밖에 말 안 했었거든. 나도 아무한테도 말 안 했고.”
“…….”
“근데 진수 형한테 귀띔한 건 너라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서.”
갑자기 나온 제 이름에 우람의 한쪽 눈썹이 위로 들렸다. 굳어버린 머리와 다르게 몸은 무의식적으로 현관문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삼 년 전이요? 기억이 안 나는데…….”
“…….”
“제가 말한 거 확실하대요? 진수 형이 착각하신 건 아니구요?”
“……착각이라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 치는 지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우람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의 귀에 한 마디만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아무한테도 말 안 했고.
우람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왔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계속 이랬어?”
“…….”
“편했겠다.”
“…….”
“네가 뭔 일을 하든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도,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심지어 비웃었다고 이렇게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을 테니까.”
차분한 지후의 목소리와, 아무 말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은호는 제가 방금 들은 게 사실이라고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을 붙잡고 있던 우람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팅. 닫힌 문이 결국 우람이 줍지 못했던 신발에 막혀 약한 소리를 냈지만 우람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알아온 세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지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