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와 거리두기-13화 (13/119)

13화

“좋아 보인다?”

“너…… 지금 몇 시인지는 아냐.”

“비켜.”

잠이 묻은 얼굴을 하고 선 지후를 흘겨보던 대현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제가 집에 없던 사이에 뭐 바뀐 건 없나, 부엌부터 거실까지 샅샅이 훑어봤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았다. 그 사실에 이렇게 안도가 될 건 또 뭐란 말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대현이 거실 소파에 앉고서야 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지후와 눈을 맞췄다.

“안 물어봐?”

“뭘.”

“어제 뭐했냐고 안 물어보냐고. 전화 엄청 했던데.”

“……안 받은 사람이 누군데.”

“대신 새벽부터 찾아왔잖아.”

새벽부터 찾아왔다기보다는, 숙소 앞에 있는 팬들을 피하려면 이 시간밖에 없긴 했지만. 개미 한 마리 없는 아파트 앞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걸 떠올리던 대현이 고개를 저었다. 뒤늦게야 몰려오는 하품을 늘어지게 한 그가 머리에 썼던 모자를 벗다 멈칫했다.

“너 이거 뭐야.”

급하게 저한테 달려와 턱을 잡는 얼굴을 보고서야 제 얼굴 꼴이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 냈기 때문이었다. 세수를 하며 대충 봤다지만 턱에 제법 크게 진 멍이나 입술 끝이 슬쩍 터진 꼴은 한눈에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예상대로 눈앞의 지후는 잠이 다 깬 얼굴을 하고 있었다. 턱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는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말하자면 길어.”

“…….”

“앉아봐. 사실 그 이야기하러 들른 거기도 하니까.”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아침이라 그런지 머리가 안 돌아간다. 머리를 짚은 대현이 지후에게 잡혔던 턱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야, 앉으라니까.”

대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지후가 향한 곳은 텔레비전 밑 서랍장이었다. 둘의 첫 만남 때 대현이 두통약을 꺼내 먹은 곳이기도 했다. 서랍장을 열어 구급키트를 들고 와 제 앞에 앉는 얼굴에 대현은 어딘가 멋쩍어졌다.

“……뭐. 치료해 주게?”

“그럼 치료도 안 하려 했냐.”

“아니, 뭐…….”

“지 얼굴 아니라고 막 쓰네 아주.”

그게 왜 말이 그렇게 되냐.

발끈하려던 대현이 한숨을 쉬며 키트를 여는 얼굴을 보고 간신히 꿍얼거림을 삼켰다. 따지고 보면 제 잘못이 맞긴 하다. 우람이 저를 때린 것도 제가 돌발행동을 한 것 때문이니까.

비록 반성에 가까웠던 침묵은 후시딘을 조심성 없이 푹푹 바르는 손짓에 오래가지 못했다. 야! 결국 눈물을 글썽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대현을 보던 지후가 말없이 키트를 뒤적거렸다. 길쭉한 손에 걸려 나온 건 밴드. 알맞은 크기를 찾아 한참을 밴드가 든 통을 뒤적거리던 지후가 툭 질문을 던졌다.

“누가 때렸는데.”

“……어?”

“한우람이냐.”

찍신이냐, 겁나 잘 맞추네. 소름이 돋았지만 곧이곧대로 맞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대답이나 다름없는 그 모습에 지후가 한숨을 쉬는 게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제 맞아놓고 이런 말 하면 호구 같은 거 알지만, 그래도…… 뭐 어제 하는 이야기 들어보니까 왜 때렸는지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힘만 무식하게 세 가지고. 밴드를 붙이던 지후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에 대현이 헛기침을 했다.

“……다 된 거 같은데.”

밴드를 붙인 걸 보니 치료는 끝난 것 같은데 상처로 향하는 지후의 시선은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멋쩍었던 대현이 말을 하고서야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키트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생각인지 구급키트를 들고 일어나는 옆모습을 바라보던 대현이 지후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대표님 만났어 어제. 너랑 전화 끊고 바로 만나러 갔거든.”

잠시 주춤하던 지후가 다시 움직인다. 몸을 숙여 키트를 서랍장 안에 넣고 닫는 등을 바라보던 대현이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밤새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말이 술술 나왔다.

“재고해 주면 안 되냐고 했는데 대표 아니랄까 봐 겁나 깐깐하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뭐…… 무릎 꿇었지.”

지후가 그제야 몸을 돌려 대현을 바라봤다. 놀란 게 보이는 표정에 괜히 민망해진 대현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대표의 변덕인 건지는 모르겠는데.”

“…….”

“삼 개월 보류해 준대.”

사실 대현은 좀 겁을 먹었다. 지후가 네가 그렇게 맘대로 할 자격이 있냐고 할 거 같아서였다. 나름의 확인 전화까지 한 후에 저지른 행동이라지만, 멤버들이나 매니저의 반응을 보았을 때 원래의 지후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란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생각보다는 잘 풀렸지만 멤버들 반응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어쨌든 저지른 자신마저도 고하기가 무서운 행위였기에 이렇다 할 만한 반응을 내놓지 않는 지후가 더 신경 쓰였다.

“왜 말이 없어. 무섭게.”

결국 침묵을 견디다 못해 대답을 재촉한 대현이 지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무슨 말을 하냐.”

한참 뒤에야 건너온 지후의 대답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거기다 그렇게 말한 그의 얼굴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마음을 졸인 대현이 우스워 보일 정도로 말이다. 뜻밖의 전개에 대현이 눈을 굴렸다.

“아니, 뭐…… 그걸 왜 네 맘대로 하냐고 화낼 수도 있고…….”

“……무슨 자격으로.”

“어?”

“내가 못 하던 걸 네가 했는데. 고마워하면 고마워했지.”

뭔데 갑자기 저렇게 쿨해. 방금 자기 얼굴 아니라고 막 쓰는 거냐며 짜증내던 애랑 동일인물이 맞긴 한가. 대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는 표정으로 소파로 다가와 앉는 얼굴은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켜는 옆얼굴을 미심쩍게 바라보던 대현은 참지 못하고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어.”

“뭐가 괜찮은지는 알고 괜찮다고 하는 거야?”

“……야.”

지후의 고개가 다시 대현에게 돌아왔다.

“내가 너한테 내 역할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부터 너한테 뭘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

“특히나 그게 얼마나 사람 미치게 하는지 알 때는.”

씁쓸하게 느껴지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지후는 다시 텔레비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옆얼굴을 바라보던 대현은 한숨을 삼켰다. 지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생각보다 감정의 골이 깊어 보이던 멤버들과의 사이도 그렇고.

“…….”

그렇지만 아까 대표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말했을 때 지후의 얼굴에 떠오른 것들을 떠올린 대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그것들을 물어볼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그 또한 대현의 직감이 말하고 있는 거였다. 이미 직감 덕에 해체 보류라는 작은 성과를 얻었지 않나. 괜히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내 얼굴 보지 말고 티비나 봐라. 아님 가든지.”

“……근데 네가 잊고 있나 본데, 여기 내 집이거든.”

“네가 다쳐 온 건 내 얼굴이고.”

“뒤끝 쩐다, 너.”

“아, 시끄러워. 안 들리잖아.”

툴툴거리는 얼굴은 그래도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을 짓던 아까보다는 나았다. 한층 풀린 지후의 얼굴을 훔쳐보던 대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일단은 혼자 부딪쳐 보는 수밖에. 어차피 지후의 몸에 들어와서 지후의 삶을 살고 있는 건 대현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책임을 질 사람도 당장은 대현 자신뿐이었다. 원래 몸의 주인인 지후도 빙 둘러 확인해 주지 않았나.

그러니 해보자. 물릴 수도 없는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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