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그 말에는 대현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돌아오는 밴 안에서 여러 생각을 했다. 물론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멤버들의 반응이었다. 어제 매니저의 반응을 통해 윤성과 우람이 해체에 반대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저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봤을 때 그들은 이지후가 해체에 가담하는 편이라고 믿어 등을 지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이번 저의 단독행동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일 게 분명했다. 물론 속을 알 수 없는 식이나 숙소에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은호도 마찬가지였다. 저의 이번 행동은 멤버들에게 상당히 의외, 그리고 알 수 없는 행위로 비춰질 게 뻔했다.
그랬기에 대현은 이렇게 된 이상,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을 저질러 놓고 맹탕처럼 군다면 멤버들이 저를 이해하기는커녕 더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뭔가를 바꿔보기로 결심한 이상 어떻게든 해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우람의 이런 눈빛까지 계산하지 못했다. 충혈되어 저를 노려보는 눈은 어제 지후의 눈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억눌린 감정이 뚝뚝 흘러내리는 듯한 눈을 얼마간 마주하던 대현이 결국 눈을 피했다. 그렇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건 아는데.”
“…….”
“해체 문제 가지고 장난할 사람은 아냐.”
인정이자, 항변이었다. 물론 믿음직스럽지 못한 면은 대현이 들어오기 전 지후가 한 일 때문이겠지만, 이 몸에 들어온 이상 어떻게든 안고 가야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대현이 마음을 다잡고 거실을 둘러봤다. 화들짝 놀라 눈을 피하는 윤성과도, 들어온 이래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은호도, 그리고 복잡한 얼굴로 쳐다보는 매니저와, 마지막으로 문가에 기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식까지 둘러본 대현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긴장할 때마다 쥐어지는 손은 어김없이 그의 다리 옆에 붙어 손 마디마디가 하얗게 될 때까지 쥐어지고 또 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들었겠지만…… 부탁드렸어 대표님께.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
“대화를 나눴고…… 결국 기회를 주신다고 하셨어. 따지자면 보류야.”
“…….”
“삼 개월인 데다가 지원도 없다고 하셨지만. 솔직히 난 만족해. 물론 상의도 없이 한 행동인 거 알아.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해.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우람의 눈빛 때문이다. 이렇게 속마음을 줄줄 내놓게 된 건. 말을 내뱉을수록 가라앉는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몸이 바뀐 부분, 무릎을 꿇으며 부탁한 부분을 빼놓고 솔직하게 전하는 대현의 마음이 모두의 앞에서 공개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게 왜 너냐고.”
거실에 있는 모두를 무겁게 모두를 짓누르던 침묵을 깬 건 우람이었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그가 대현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네가 이제 와서 왜 이런, 씨발. 헷갈리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다 너 때문이잖아.”
“…….”
“그룹이 병신같이 되어가는 거 알면서도 방치하던 것도 너고, 대표님이랑 이 문제에 대해 제일 먼저 상의한 것도 너야. 우리한테 제일 먼저 말한 것도 너라고!”
“…….”
“그때마다 네가 뭘 했는데.”
“…….”
“근데 이제 와서 뭐? 부탁을 해? 이야기를 해?”
“…….”
“그걸 믿으라고 지껄이는 거냐고, 지금.”
흔들리는 눈을 읽어낸 대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보다 감정의 골이 깊었다. 우람이 방금 단편적으로 짚어낸 사실들부터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지후가 떠올랐다. 발갛게 물든 눈으로 제가 빈 소원이 해체만은 아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하던 그를.
결국 우람이 바라는 것과 지후가 바라는 것은 같았는데. 그 과정에 무엇이 빠졌길래 이들이 이토록 엇나가게 되었을까.
“미안해. 할 말이 없어. 그치만…… 진심이야.”
“…….”
“해체는 막고 싶었어.”
지후가 이런 이야기를 이들에게 꺼내지 않아서였을까.
“……씨발.”
아니면 이들이 애초부터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대현의 어깨가 툭 밀쳐졌다. 일부러 몸을 스쳐 치고 지나간 우람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거칠게 닫힌 문소리가 들렸고 몇 번째일지 모를 침묵이 쏟아졌다.
“지후야.”
“……네.”
“난 아직도 이게 도통 뭔 일인지 모르겠다. 대표님께 말씀 드릴 생각이었으면, 우리한테 미리 말은 해줄 수 있었잖아.”
“……죄송합니다.”
“……하. 나 일단 사무실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성호는 밑에 있지?”
“네. 담배 피우신다고…….”
“그래. 일단…… 그래.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진수마저 대현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약간의 책망까지 담긴 눈을 끝까지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대현의 어깨를 성의 없이 두드린 그가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뗀 대현이 가장 먼저 눈을 맞출 수 있었던 건 윤성이었다. 대현이 들어온 이후 줄곧 불안해 보이던 그가 얼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서려던 대현이 멈칫했다.
“……잘 모르겠어요, 저도.”
“…….”
“죄송해요, 형.”
다가서기도 전에 한 걸음 물러서 버린 그가 대현을 지나쳐 갔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듯 대현의 뒤에 서 있던 식도 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연달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다른 건 다 익숙해져도 저 소리는 익숙해지기가 힘들 것 같다. 대현의 시선이 어쩌면 당연하게도 거실에 남은 유일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거기다 그는 대현이 이 그룹을 좋아하게 만든, 어쩌면 이 모든 일을 하게 된 시초에 있던 멤버이기도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들어온 후 얼굴을 제대로 관찰하지도 못했지만, 팬싸인회가 아니면 가까이서 볼 수도 없던 얼굴을 앞에 두니 기분이 이상했다.
“형.”
“……어, 어?”
대현이 숙소에 들어온 이후 아무 말도 내어놓지 않던 그가 처음 입을 열었다. 늘 음향기기를 통해 들었던 소리가 바로 귀로 들어온다는 게 얼떨떨했다.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은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들 백 명을 섞어놔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자동반사적으로 뛰는 심정을 모른 척, 어느새 제 앞으로 다가온 은호를 보던 대현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은호와 눈높이가 비슷한 것마저 기분이 이상했다.
“항상 느끼지만 형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은호가 허공을 향해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대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멍하니 그 얼굴을 감상하던 대현이 뒤늦게 표정을 관리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제야 은호의 표정을 제대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운 거리 덕에 대현은 그 누구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촉촉이 젖은 듯한 눈부터, 적당히 솟은 코, 그리고 웃을 때면 크게 벌어지는 입까지. 하지만 때로는 선명하게 보일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은호의 눈빛이라던지.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
“똑똑한 건 아닌 것 같고, 멍청한 건가?”
눈을 일부러 내려뜨는 얼굴을 보며 대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런 와중에도 대현의 어깨로 올라온 은호의 손은 그의 외투를 정리해 주듯 툭툭 털어주고 있었다. 다소 힘이 들어간 그 행위 덕에 대현의 어깨가 조금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며 씩 웃던 은호가 손을 뗐다. 대현의 귀에 속삭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얼굴에서 빠르게 미소가 사라졌다.
“인정할게요. 이번 건 좀 짜증났어요, 형.”
귓가에 남아 웅웅대는 소리에도 대현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 마주한 은호의 눈빛만이 그득했다. 그러니까, 저를 귀찮고 성가시다는 듯 보던 눈빛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