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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거리두기-10화 (10/119)
  • 10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데뷔 이후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었던 불화설이었다. 어제 오늘 숙소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거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했다. 개선을 약속할 수 없는 부분이자 공적으로 비춰지는 부분 외에는 멤버들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자신이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꽉 쥔 오른손이 그도 모르는 사이에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

    “…….”

    좀처럼 답을 내어놓지 못하는 대현을 향하는 눈빛이 점차 참을성을 잃고 있었다. 서류에 두던 시선을 들어 비스듬히 꺾은 고개로 대현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대현의 마음이 급해졌다. 남자가 계획을 물어보았다. 이건 청신호에 가까운 거였다.

    사무실로 들어오던 대현을 보던 남자의 눈에 담긴 게 무관심이었다면, 지금 제게 쏟아지는 시선은 그래도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 많은 기회는 호기심에서 시작되고는 한다. 대현은 그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경험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네가 정말 플러그의 끝을 보고 싶지 않다면, 이번 대답을 잘 해야 할 거라고.

    “계획도 없이 그런 말 뱉은 건 아닐 거고. 이제 와서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 봐?”

    아까 회의실에서도 느꼈지만 정말 인내심이 없는 남자였다. 그가 오른손에서 굴리던 펜을 내려놓으며 턱을 괬다. 이제는 정말 대답해야 할 때였다. 대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가 저에 대해 가지게 된 호기심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뭐든 해야 했다. 대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성이 만류했지만, 그가 방금 느낀 동물적인 감각이 그를 손쉽게 제압해 버렸다.

    “불, 불화설부터 잠재우겠습니다.”

    “…….”

    “팬들도 느낄 수 있게, 관심이 없던 대중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

    “저희 사이부터 회복하겠습니다.”

    뱉고 보니 아주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현은 제가 처음 플러그와 관련해 접했던 게시물을 떠올렸다. ‘안 친해 보여서 화제 된 신인 남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티 나는 영업질을 경계한다.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기 위해서는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어야 했고, ‘아이돌’도 그 취향에 포함됐다. 그렇기에 어떤 커뮤니티든 신인 아이돌 그룹이나 배우의 글이 단독으로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는 운영자들이 따로 규정이 둘 정도로 모두 주의하려 한다. 그러나 저 글은 경고는커녕, 여러 번 스크랩되어 그때마다 뜨거운 반응을 자아냈다. 그리고 결국 기사화까지 되었다. 그렇기에 기사를 보는 것 빼고는 인터넷을 활발히 이용하지 않는 편인 대현도 볼 수 있었던 거겠지.

    멤버들에게 전화해야 하는 게임에서 서로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고, 같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대화를 나누지 않아 오디오가 비는 등의 플러그의 첫 리얼리티는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아이돌 그룹의 팬질은 멤버들 간의 관계성이 반은 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미디어를 통해, 다른 후기들을 통해 공유되는 멤버들 간의 관계는 늘 주목의 대상이었다. 특히 한창 그룹의 정체성인 콘셉트를 잡아갈 신인 시기에는 더 그랬다. 그렇기에 신인 아이돌들이 데뷔를 하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리얼리티를 찍는 거고.

    그 관습 아닌 관습에 탑승해 편한 길을 택하려던 플러그가 역효과를 낳은 건 의외였지만 말이다. 멤버들 간의 관계성을 파기 위해 플러그의 리얼리티를 접했던 많은 팬들은 당황했고, 그런 반응에 다른 그룹의 팬들 나아가 속히 ‘머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나중에는 콘셉트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거기다 외주를 맡겼던 첫 리얼리티의 감독이 그동안 줄곧 다큐멘터리 길만 파왔던, 리얼리티는 처음 해본 초짜 감독이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리얼리티 촬영 과정에서 예능감은커녕 일체 도움이 되지 않는 플러그의 어색한 분위기에 고초를 겪은 작가가 개인 SNS 계정을 통해 고충을 토한 캡처까지 퍼지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소속사는 당장 리얼리티 방송 회차부터 줄였고, 당분간 멤버들의 짝지어 외출시키거나 일부러 예능에도 멤버들을 짝지어 보내는 등의 수습을 시도했지만 한 번 굳혀진 대중들의 인식이 바뀔 리 없었다. 오히려 눈 가리고 아웅 한다며 비웃음을 얻으면 얻었지.

    그래도 그게 예상 밖의 노이즈 효과를 낳아 플러그의 첫 정규 앨범이 당시 비슷하게 데뷔한 신인 남자 아이돌 사이에서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반짝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고, 플러그는 ‘안 친한 남돌’ 말고는 다른 타이틀로 기억되지 못했다.

    은호가 음악 예능에 나가 얼굴을 알리고, 식이 연기를 시작하며 멤버 개개인에 대한 인기는 증가했지만, 그룹으로서의 인기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활동 때마다 팬들이 한 뭉텅이씩 없어지는 건 팬인 대현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으니 회사와 멤버들이라고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해체 이야기가 나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게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낳아 리더인 지후가 아닌 제가 여기 서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거고.

    과거부터 짚어온 대현이 자신의 처지를 새삼 깨닫는 동안에도 앞의 남자는 말이 없었다. 대현이 초조해질 정도로 말이다. 책상 위를 툭툭 두드리는 행위만이 그가 지금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대현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이제야?”

    “…….”

    “삼 년 동안 못 했던, 아니. 안 했던 일을 이제 와서 하려는 이유는?”

    “…….”

    “그리고 그걸 내가 믿어줘야 할 이유는 또 뭐고.”

    핵심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질문이었다. 당연하게도 대현의 입이 딱 다물리고 말았다. 그런 대현을 지켜보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몸을 뒤로 기댔다. 허공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그가 다시 대현을 보았을 때, 대현은 어쩌면 이곳에 올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숙이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무릎…… 꿇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라도 해서 믿어주신다면…… 전…….”

    무릎을 꿇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던 남자의 구두가 가까워지는 게 아래를 향한 시야로도 보였다. 무릎은 꿇었지만 그 상태로 남자를 올려다볼 자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대현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남자의 얼굴 표정이 어떤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 플러그가 뭐라고. 마음속에서 나온 목소리에 대현은 망설이다가 대답을 내놓았다. 잊지 마. 걔네가 널 살게 했잖아.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를 보탰다. 괜찮아.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굽히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알량한 자존심을 챙긴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거지.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대현은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말할 수 있었다.

    “믿어주세요.”

    “…….”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남자가 대답 없이 대현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현이 굳었다. 남자는 여전히 대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어와.”

    나직한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동시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현이 멍하니 시선을 남자의 발치에 뒀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광경을 목격할 다른 사람들로 인해 벌어질 미래를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낸 대현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떨굴 때였다.

    “…….”

    “…….”

    대현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 건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서였다. 대표의 얼굴부터 확인한 대현이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 선 이를 확인한 대현의 입가가 굳었다.

    쾅.

    그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문을 닫은 이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이 익숙했다. 회의실에서 한 실장과 진 팀장으로 불린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대현을 본 듯했다. 경악하듯 커지는 눈을 보자마자 바로 문이 닫혀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현의 시선은 문가에 선 사람에게 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방금 문을 닫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눈은 대현이 아닌 다른 이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와 눈싸움을 하고 있는 대표는 어느새 입가에 미소까지 단 채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오늘 재밌는 꼴 많이 보네.”

    대답 대신 남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식의 시선이 대현에게로 내려간 순간, 그가 걸음을 옮겼다. 세 걸음 만에 가까이 다가선 그가 대현의 팔을 잡았다. 약한 신음을 뱉은 대현이 급히 위를 쳐다봤음에도, 거칠게 저를 일으키는 얼굴은 무표정했다.

    “잠깐……!”

    “일어나요.”

    “야, 너…….”

    자포자기한 상태로 몸에 힘을 풀고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그의 힘이 생각보다 셌기 때문일까. 그의 손길을 거부하려 했음에도 몸은 어느새 반쯤 일으켜져 있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식의 응시하던 대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대표의 눈치부터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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