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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거리두기-9화 (9/119)

9화

“뭐?”

굳었던 매니저가 처음 뱉은 말은 그거였다. 보태지는 않았지만 벽에 기대어 섰던 자세를 바꾸며 대현을 빤히 바라보는 식의 표정이 말하는 바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지금 대현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지후의 입을 통해 이런 끝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받았을 때부터 대현의 머릿속에는 이 해체에 대해 결정권을 쥔 대표를 당장 만나야 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특히나 아까 충격에 빠져 그가 선심 쓰듯 건넨 동의하냐는 말에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게 계속 대현의 신경을 긁어댔다. 다시 대표를 만나야 한다. 그러고는 말해야 한다. 해체에 동의한 적 없었고, 동의하지도 않을 거라고.

“기억이 안 나서 그래요, 형. 몇 층인지만 알려주시면…….”

“왜 그래, 지후야. 너…… 아니, 이거 몇 달 전부터 이야기 해왔던 거잖아. 이제 와서 대표님한테 무슨 말을 하겠다고 이러는 거야 대체.”

“아까 회의에서 못한 말이 있어서 그래요.”

“무슨 말을 못 했는데. 막말로 네가 거기서 무슨 발언권이 있다고…… 미치겠네, 진짜.”

충격 단계를 벗어난 매니저의 다음 단계는 대현을 만류하는 거였다.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은 그가 대현의 두 팔을 꽉 잡고 뱉어내는 말들은 안타깝게도 대현의 귀로 흘러가기가 바쁘게 빠져 나오고 있었다. 사실 대현은 이러고 있는 시간마저도 아까웠다. 가장 꼭대기 층에 대표실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던 그가 자신을 잡은 손을 풀어내기 위해 팔에 힘을 줄 때였다.

“놔둬요, 형.”

“식아, 넌 또 갑자기 왜…… 아, 나 진짜 돌겠네. 왜 이래, 너네 진짜.”

팔이 자유로워졌다. 풀린 팔을 내려다보던 대현이 시선을 올렸다 어느새 제 앞에 다가선 식이 묵묵하게 매니저의 팔을 잡고 있었다. 의외였다. 이틀 봤지만 벌써 익숙해진 그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신경도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대현이 매니저에게서 옮겨온 시선을 말없이 마주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저렇게 쇼를 하고 싶어 하면, 장단은 못 맞춰도 방해는 말아야죠.”

어제도 느꼈지만 말 속에 가시를 심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쇼, 라는 어구에서 느낀 명백한 비웃음에 대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잠깐이나마 기대를 한 내가 병신이지. 그래도 그런 식의 만류가 생각보다 먹혀든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 쉰 매니저가 머리를 긁으며 욕을 뱉었지만, 아까만 해도 대현을 적극적으로 만류하려는 그의 기세가 한 풀 꺾여 있었다. 그리고 대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주쳐오는 짙은 눈에 섞인 저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경멸을 애써 무시한 대현이 다시 질문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쇼를 좀 제대로 마쳐 보려고 하는데.”

“…….”

“그래서 몇 층이라고.”

칠흑같이 검은 눈이 오묘한 빛을 띠고 대현을 응시해 왔다. 대현은 이번에도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다른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며 뛰쳐나간 성호와 저를 가늠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선 식을 뒤로 하고 올라온 대표의 사무실이었다. 대현은 새삼 둘 다 저를 따라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호기롭게 할 말이 있다며 나선 건 언제고 문 앞에서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걸 알면 모르긴 몰라도 비웃음 말고는 더 들을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망설이고만 있는다 해서 무엇이 바뀔까. 이러는 동안에도 플러그의 해체는 진행되고 있을 터였다. 아까 전 회의는 마지막 확인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 전부터 암암리에 정리되어 온 것들이 이제는 정말 직원들 손에서 끝을 향해 굴려지고 있을 거였다. 그래서 대현은 자꾸 마음이 급해졌다.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거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 했다. 플러그의 해체를 막기 위해서는, 일단 그 해체를 지휘한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대현이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와.”

기다렸다는 듯 들어오라 허하는 목소리와 아까 동의하냐고 묻는 목소리가 겹쳐졌다. 문고리에 힘을 줘 돌리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남자는 혼자였다. 책상 위 서류에 눈을 고정한 그는 누가 들어왔는지 신경조차 쓰는 것 같지 않았는데, 어쩔 줄 모르고 선 대현이 문가에 서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대현을 확인했다. 무심한 표정이 묘한 표정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관찰이라도 하는 것처럼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는 시선을 느끼며 대현이 무거운 걸음을 뗐다. 손을 뒤로 뻗어 문을 닫는 것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얼굴은 아까도 그랬듯 읽기가 힘들었다.

“내가 생각한 손님은 아닌데?”

먼저 입을 연 건 그였다. 대현이 움찔했다. 뱉은 말과 달리 그를 마주하는 나른한 얼굴에는 놀란 기색조차 엿볼 수 없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회의실에서의 외면이 거짓이기라도 하듯 집요하게 쏟아지는 시선에 대현이 눈을 내리깔았다. 같이 내려간 시선이 그의 손에서 우아하게 돌아가고 있는 펜으로 향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의 손에 잡힌 저 펜과 플러그는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저렇게 그의 의지대로 굴려지다가.

탁.

“말해봐.”

원할 때면 저렇게 아무렇게나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존재.

펜을 내려놓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한 말과 다르게 대현에게서 뒤돌아 서 와인병 안의 와인을 유리잔에 따르는 모습은 대현이 무슨 말을 하든지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말라오는 입안에 대현이 꿀꺽 침을 삼켰다. 자꾸 남자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휘말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앞에서 말도 못 하고 움찔대기 위해서 지후에게 확답을 받아내고,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니었다. 마음을 굳힌 대현이 결심한 듯 주먹을 쥐었다. 오늘만 해도 여러 개의 손톱자국이 패인 손바닥에 또 그렇게 하나의 자국을 낸 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희 해체…… 재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대현의 등장에도 동요하는 낌새 없던 남자가 처음으로 멈칫했다. 좋은 신호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대현은 그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처음 말을 떼기 어려웠던 것과 반대로 말은 버벅임 없이 흘러나왔다.

“아까 동의하냐고 물으셨죠? 늦었지만 대답 드리겠습니다.”

“…….”

“동의 못 합니다. 아니, 안 합니다.”

“…….”

“음원 순위 낮은 거, 굿즈 판매량 떨어진 거, 부정 검색어 많은 거. 부정하겠다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이렇게 해체될 그룹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 보완하고, 재정비하면 분명히……!”

말을 이어감에 따라 감정이 고조됐다. 저절로 높아지는 목소리는 부자연스러운 끝을 마주했다.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었는데, 바로 대표가 방금 하늘을 향해 든 왼손 때문이었다. 그만하라는 사인이었다.

“이 바닥에서 몇 년 있다 보면 말이야.”

오른손에 든 유리잔을 두어 번 흔드는 움직임을 눈으로 좇던 대현이 저를 향해 뒤도는 남자를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보기 싫어도 보이는 게 있거든.”

“…….”

“예를 들면 얘는 적어도 몇 년은 버티겠다, 라든가. 얘는 못 버티겠다. 이런 거 있잖아.”

“…….”

“일종의 직업병이지, 따지고 보면.”

갑자기 이런 얘기는 왜 하는 걸까. 단단한 얼굴 속 눈빛을 읽어내려 애쓰며 미간을 모으던 대현이 움찔했다.

“최근 몇 년간 틀린 적은 없다고 믿었는데.”

“…….”

“아닌가 봐?”

대현과 눈을 마주한 그가 눈을 휘었다.

“재밌다, 너.”

웃음도 감추지 못한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눈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호기심이었다.

대현은 새삼 잡아먹힐 것 같다는 표현을 이해했다. 무섭지만 피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마음 편히 마주볼 수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마주하고는 있지만 침조차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말랐고, 등 뒤로는 식은땀마저 흐르는 듯했다.

“그래서.”

팽팽히 이어지던 시선을 먼저 끊은 사람은 그였다. 아까 대현이 들어왔을 때처럼 책상에 앉아 문서를 들춰보는 얼굴은 어느새 완연한 무표정이 되어 있었고, 대현은 티 안 나게 고개를 틀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완과 재정비는 어떻게 할 예정이야?”

물론 그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제자리로 돌린 대현이 버릇처럼 손을 쥐었다 폈다. 그의 손에서 다시 돌려지기 시작한 펜에 시선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세를 고쳐 똑바로 섰다.

일단 해체부터 막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내뱉은 말이지만, 전문 기획사에서도 나오지 못한 회생 아이디어가 비전문가인 저에게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일단 전문적인 부분은 젖혀놓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플러그가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해 내자, 정대현. 보완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점을 파악하는 거다. 그래, 그럼 플러그가 지속적으로 비판받아 왔던 부분을 생각해 보자. 대중은 물론 후에는 팬들에게까지 외면받게 되었던 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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