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지후야. 이지후…….
아 누가 아침부터 이렇게 없는 사람을 찾아. 작게 짜증을 낸 대현이 옆으로 돌아누웠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원래 이렇게 못 일어나는 애가 아닌데.”
거슬리는 소음이라고 치부하던 소리가 선명해진 순간, 귀찮다는 듯 바르작대던 대현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수면 상태에 빠져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이 잠이 덜 깬 대현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멈칫한 대현을 눈치챘는지 이제는 대현의 몸을 살살 흔드는 누군가의 행동은 찬 물을 뒤집어쓰는 것보다도 더한 효과가 있었다.
“……아…….”
결국 멍청한 신음으로 기상 보고를 마친 대현이 뻑뻑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선에 들어온 동글동글한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어제 본 남자와 비슷한 풍채를 가진 덕에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안심한 표정을 하는 사람은 오늘 아침 데리러 온다고 했던 또 다른 매니저가 분명했다.
“너…….”
“아…… 죄송해요……. 그니까, ……어제 ……늦게 자서.”
비몽사몽한 상태로도 변명을 줄줄 늘어놓으며 몸을 일으키던 대현의 눈에 다소 놀란 표정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대현이 부담스러움을 느낄 정도로 대현에게 바짝 붙어 있었는데, 특히 그의 얼굴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집요한 눈길을 느낀 순간 대현은 그럴 리가 없음에도 혹시 저가 진짜 이지후가 아닌 게 들켰나 싶었다.
“너 눈이 왜 그래?”
다음 말을 듣고서야 조금 안심을 한 대현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올려 제 눈을 더듬더듬 만졌다. 부어오른 눈덩이가 느껴지고서야 어제의 두 시간 넘게 눈물을 쏟아냈던 게 생각났다. 혀로 입술을 쓴 그가 급하게 손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매니저는 그의 팔까지 잡고는 그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두 시간을 엉엉 울고 바로 간 어제는 더 난리였을 텐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던 지후를 떠올린 대현의 표정이 묘해졌다. 울었을 게 너무 뻔해서 안 물어본 건가. 머리를 긁던 대현이 괜히 기지개를 켰다.
“늦었어요?”
“어? 아니…… 내가 좀 빨리 온 거라 시간은 있어. 근데 지후야. 너.”
“아, 그럼 저 빨리 씻고 올게요. 그래도 되죠?”
“어. 야, 지후야 근데 너 혹시 울…….”
매니저의 계속되는 질문을 모른 척,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 방을 나선 대현이 어제 봐두었던 욕실을 떠올리며 방향을 틀었다. 욕실은 식의 방 옆이었다. 시선 끝에 걸린 식의 닫힌 방문이 어쩌면 그의 마음과도 같이 느껴져 대현은 괜히 조금 우울해졌다. 안 그래도 막막해죽겠는데 이런 우울함까지 사서 더할 필요는 없다. 자조하며 욕실에 들어서던 대현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늦게 들어와서 씻는 걸 건너뛰어서 별 생각을 해보지 못했지만…….
이거 다른 놈 몸이잖아?
뭐가 문제야. 달려야 할 곳에 달려 있고, 있어야 할 곳에 있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괜히 민망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대현이 거울을 외면하며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졌다. 샴푸로 보이는 것에 손을 뻗어 쭉쭉 짜낸 대현이 머리 위에 마구 문질러 대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프리카를 가든 어쩌든 이거 진짜 빨리 끝내긴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불편하다. 그것도 몹시. 그래도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4대 기획사답게 밴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따로 있어 어제와 같이 팬들에게 둘러싸일 필요가 없었던 건 좋았다. 리얼리티에서나 보곤 했던 밴의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나름 신기하고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못해도 벽돌 하나는 보탰을 회사를 구경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것까지도 나쁘지 않았다.
그치만, 이건.
“…….”
“…….”
“…….”
앞에 앉아 있는 사람도 눈과 귀가 달린 사람이라는 걸 잊기라도 한 듯 뚫어져라 바라보며 쑥덕대는 사람들 앞에서 할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건 끔찍했다. 대현을 데려다준 매니저는 볼 일이 있다며 그가 회의실에 들어가는 걸 보자마자 사라져 버렸고.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건 제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는 여러 개의 눈알들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묘한 분위기까지도.
다소 노골적인 눈빛들은 일제히 동정 혹은 경멸을 담고 있었는데, 회의실로 들어오자마자 마주한 여자의 눈빛에서 그것을 느낀 이후부터는 일부러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어제 나름 이야기를 들어서 초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푹신한 의자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 같은 느낌에 자꾸 대현은 앉은 자세를 바꾸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미팅이란 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일이었다.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만 해도 다섯 명이었는데, 누가 봐도 일부러 비워놓은 듯한 상석 두 개가 대현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니 그 두 명이 도착해야 회의를 시작할 모양이다. 10시에 시작될 거라던 매니저의 말과 달리 30분이 지난 시간까지도 두 명 모두 나타나지 않았다. 한숨을 삼킨 대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회의로 아이돌 다섯 명, 그리고 몇 만 명의 팬들은 뿔뿔이 흩어질 텐데 그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리도 무심하다. 플러그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마지막까지 이럴 수는 없을 텐데.
자신이 그 애정과 관심을 주는 사람이었기에 이 모든 게 더 견디기 힘든 걸지도 몰랐다. 울컥 올라오는 목 너머의 서러움을 삼킨 대현이 시선을 떨어뜨렸다.
“오셨어요. 대표님.”
웅성웅성 회의실을 채우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진 걸 느낀 대현이 회의실을 살폈다. 딱 봐도 이 자리에서 가장 높아 보이던, 티 나게 대현을 흘끔거리는 회의실 내 다른 이들과 다르게 오히려 기를 쓰고 대현과 눈을 마주하길 피하던 여자였다. 그녀가 일어나며 짧게 고개를 숙이는 걸 시작으로 사방에서 의자들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눈치를 보며 같이 일어선 대현이 회의실로 들어오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저 사람이 대표야? 저렇게 젊다고?
이름 말고는 알려진 게 없는 대표기에 보는 게 처음이었다. 이 소속사 사람이 아니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큰 소속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이렇게 베일에 싸이기도 힘든데, 그 힘든 일을 이상하리만큼 집요하고도 꾸준하게 해온 소속사 덕에 팬들에게조차 늘 상상의 대상이었던 그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흥미로운 눈으로 남자를 관찰하던 대현이 그의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앉아.”
큰 목소리가 아니었음에도 남자가 말한 순간, 모두가 소리 없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별 반응 없이 회의실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대현에게 닿았다. 서늘한 긴 눈이 대현을 짧게 훑고는 이내 떨어졌다. 빈 상석을 향해 걸어오는 걸음걸이에 망설임이 없었다. 어느덧 거리를 짧게 좁힌 그가 의자 앞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착석했다. 앉자마자 우아하게 발을 꼬며 앞을 바라보는 얼굴이 무표정했다.
그를 보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따라가던 남자도 대현을 슬쩍 넘겨보고는 대표의 옆에 앉는 걸 끝으로 회의실에는 공석이 사라지고 대신 숨 막힐 정도의 침묵이 가득 찼다. 자리를 왜 이렇게 배치해 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대현의 자리는 방금 채워진 가장 높은 상석의 왼쪽 자리였다. 그를 보필하던 남자는 상석의 바로 옆 오른쪽, 즉 대현의 반대편이었다.
애초에 한 그룹의 해체를 기획하는 이 자리가 유쾌할 리 없으나, 자리 배치부터 목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가 제 옆에 앉은 후부터 일부러 탁자에 시선을 고정한 대현의 옆모습으로 쏟아지는 시선도 그랬다. 결국 견디지 못한 대현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한 얼굴은 지독하리만치 무표정했다. 방금 던지던 시선은 착각이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대현과 눈을 마주하자마자 가볍게 고개를 돌린 그가 짧게 뱉었다.
“시작해.”
회의실이 어두워지고, 회의실 안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앉아 빈 화면을 응시할 때까지만 해도 대현은 이런 식의 전개를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이번 분기 굿즈 판매량은 후배 그룹 슈어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옳겠다.
“2집 앨범 수익은 1집과 비교해 초동 음반 판매량부터 세 배 차이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감소한 거구요.”
이들이 이토록 잔인할 줄은, 그리고 이렇게 더러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다음으론 화제성을 수치화 해봤는데요. 언급 횟수나 검색어 순위는 같은 시기 데뷔한 남그룹들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검색어들이 주로 부정 이슈들로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끔찍했다. 그래프로 정리된 수치를 읊는 여자의 말에는 감정이 없었으나, 대현의 마음은 그녀가 말을 뱉을 때마다 여러 갈래로 찢기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 중반부 후로는 아예 화면을 쳐다보는 것도 포기한 대현은 따끔거리는 심장을 무시하며 탁자 위 물병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가 보고 있어 귀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아무리 듣지 않으려 해도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여자의 말들은 무시할 수가 없는 음량으로 회의실 안을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