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놀라운 일도 아니지. 음원 성적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는 팬들도 떠나가는 마당에.”
“…….”
“거기다 너도 오늘 봤을 거 아냐. 우리 사이가 어떤지.”
묵묵히 말을 이어나가던 지후의 입에서 힘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던 대현의 인상이 찡그려질 만큼 힘없는 미소였다.
“원래는 미니 앨범까지 내고 아름다운 이별로 정리하자고들 얘기했었는데. 회사에서 마음이 바뀐 모양이야. 키우는 애들도 데뷔가 코앞이고 돈 들어갈 데는 천지인데 뻔히 해체할 그룹에 돈 쓰는 게 아까운 거지.”
“…….”
“이해해. 회사가 그렇지 뭐.”
“…….”
“이해가 안 가는 건 내가 왜 그런 소원을 빌었는가지.”
소원……?
지후의 말을 듣고서야 마을 어귀의 소원나무를 떠올린 대현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제가 어제 술김에 빈 소원은 ‘플러그가 해체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지 플러그의 멤버가 되는 게 아니었다. 정신없는 상황에 잊고 있었다지만, 지후가 그 나무를 알고 있는 것도 수상했다. 그렇다면, 혹시…….
상황을 맞추어가다 보니 나온 결론에 대현의 얼굴이 멈칫 굳었다. 그가 하려던 말을 알아챈 것처럼 지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어렸을 때 그 동네 살았어.”
“…….”
“그 나무도 알고 있었고.”
“……그럼.”
“어. 소원 빌었어, 너처럼.”
무슨 소원?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뱉은 대현의 물음에 지후가 입을 열다 말고 다시 한 번 꾹 다물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대현이 도착한 이후 줄곧 탁자 위나 커피 잔 부근에만 머물던 시선이 처음으로 대현의 눈을 올곧게 마주해 왔다. 빠르게 맞물리는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눈이 오늘 마주친 이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감정을 담고 깜빡이고 있었다.
“뭐가 됐든 상관없으니까.”
“…….”
“해체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왜?”
대현이 입을 열 수 있게 된 건 한참 뒤였다. 나름대로 답을 유추하려 해봤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되돌아 봐도,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린 지후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봐도 힌트조차 얻을 수 없었다.
숙소에서 본 멤버들은 누가 봐도 지후를 배척하고 있었다. 그를 밀치지도, 때리지도, 고함치지도 않았지만 대현은 그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의 존재를 껄끄러워하는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에게 느껴지는 적대심은 대현을 당황스럽게 했다. 특히 방금 지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이런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게 아니라 못해도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었으리란 것을 예측할 수 있게끔 했다.
거기다 ‘정리’를 위한 과정을 대현에게 자연스럽게 의논하는 매니저까지. 마치 지후가 그 과정을 다 알고 해체를 함께 주도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은 태도였다. 자연스럽게 결론은 하나로 향했다. 대현이 전화로 지후에게 악을 질러댄 이유도 그래서였다.
“해체하고 싶어 했잖아, 너도.”
네가 동조한 거잖아. 그 결론을 이끌었는지까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찌됐든 넌 그 모든 과정에 있었잖아.
막연히 해체의 배경에 회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현의 분노는 지후가 그 과정에 있었음을 눈치챈 즉시 그에게 방향을 돌렸다. 막연했던 대상이 제가 알던 멤버로 구체화된 후부터 분노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그리고 선연해진다. 그리고 이전보다 큰 중량으로, 빠른 속도로 그 대상에게 다가서곤 한다. 그리고는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그래서…… 그래서 멤버들이 너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
“그래서 매니저가 너한테 누구는 반대하는데 어떻게 하냐,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거 아니냐고.”
마주한 채 흔들리는 눈을 읽어낸 대현의 머릿속에서 적색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정말 이지후가 제가 생각한 대로 해체를 지지한 이였다면, 그 과정에 있던 사람이었으면.
“……야.”
“…….”
“이지후.”
저렇게 상처 입은 눈을 해서는 안 되는데. 어렵게 읽어낸 눈빛을 확인한 순간 대현의 목이 콱 막혔다. 그랬기에 말을 더 이어나가지도 못하고 지후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제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는 뒤통수는 숙소에서 대현이 그린 시나리오와는 한참을 벗어난 전개로 흘러간 상황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날카로운 진실이 대현의 머리를 강타했다. 해체설이 돌던 지난 몇 달간의 지옥 같았던 시간들은 팬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지후라 해서 예외였을 리 없었다.
“너…… 아니야?”
목적어 없이 뱉어진 말은 대답 없이도 완성될 수 있었다.
“아니구나…….”
고개를 숙인 지후의 고개가 숙여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던 대현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었어…….
지후가 감정을 추스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화장실에 다녀와 자리에 앉는 얼굴에 묻은 물기를 바라보던 대현은 자꾸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흘긋거리는 자신을 막을 수가 없었다.
“생각을 해봤는데.”
“……어?”
방금 전까지 쏟아낸 감정의 흔적이 남은 얼굴 덕에 바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연 지후는 다른 생각인 듯했다. 대현이 괴고 있던 팔을 풀며 몸을 곧추세웠다.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긴 해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
“아…….”
“네가 우리…… 팬인 것도 그렇고.”
“…….”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거야, 내 말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지후를 보던 대현의 얼굴빛이 묘해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겠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은 계속 살아보자, 이렇게.”
“뭐?”
그렇지만 이런 방향으로 대화가 튈 줄은 몰랐다. 당황한 대현의 얼굴을 마주한 지후의 얼굴은 아까와 다르게 단호함까지 띠고 있었다. 그게 더 대현을 황당케 했다. 뭐라는 거야, 얘가 지금. 더는 참지 못한 대현이 정제되지 못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렇게 살자고? 그니까 너네 해체하는 걸…… 지켜보라는 거야 지금?”
“…….”
“진심이야?”
“…….”
“야, 네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나 너네 팬이야. 너네 멤버가 아니라, 너네 팬. 일반인이라고.”
“…….”
“아니, 슬프고 이런 걸 떠나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너인 척을 해. 해체하는 거 안 지 이제 두 시간 됐어. 아까 숙소에서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하…….”
방금 전까지도 그에게 느껴지던 안쓰러움이 온데간데없어질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목소리를 높이던 대현이 멈칫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그 틈을 타 건너온 질문은 마치 멈칫한 이유를 아는 것 같았다. 대현이 대답 대신 미간만 찡그렸다. 지후의 무책임한 말에 욱해 뱉은 말이었다지만 자신도 그 대안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대안이 그냥 견디는 거 말고 뭐가 있겠는가. 결국에는 어제 술에 취했던 자신을 탓하는 비생산적인 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 지속된 침묵은 대현의 흔들리는 눈을 붙든 지후가 입을 열며 깨졌다. 그런 그조차도 눈이 떨리고 있었지만, 시선을 맞춘 둘은 그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는 것처럼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살자는 말 아니야.”
“…….”
“나 나름대로도 알아보고 있을게. 아프리카든 뭐든…… 그때까지 네가 내 역할 좀 해줘.”
“……네 역할이 뭔데.”
“일단은. 진수 형이 얘기했을지 모르겠는데, 내일 미팅이 있어.”
진수 형? 자연스레 아까 매니저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럼 내일 아침에 데리러온다 어쩐다 했던 게 그 미팅 얘기하는 건가. 그렇게 말한 매니저 이름이 진수였던 모양이다.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린 대현은 결국 지후의 말을 따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누가 이런 장난을 쳐 놨든 쉽사리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일단은 따르는 수밖에. 대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앞의 얼굴이 잠시나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잠깐이었고, 설명을 이어 나가는 그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따지자면 대책 회의인데. 결론이 정해져 있어서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결론이면 해체…… 말하는 거지.”
“……어.”
“어차피 정해진 거면 네가 굳이 갈 필요가 있어?”
“대표님 지시사항이라서.”
“…….”
“내일 네가 직접 느끼겠지만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다 논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절차로 이뤄지는 건 아냐.”
“…….”
“알아두고 가는 게 네 정신건강에 나을 거야.”
감정을 억누르는 게 보이면서도 눈을 맞추던 아까와 달리 시선을 돌리며 한숨처럼 말을 뱉는 지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현이 시선을 떨궜다. 잠시 망설이던 대현이 질문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보내는 걸 보니 애초부터 제가 활동할 여지가 별로 없는 일임은 확실했으나, 혹시 모르니 확인이 필요했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거지.”
“…….”
“내일 말야.”
대답 대신 지후가 대현을 조용히 응시했다. 또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대화의 흐름에 잊고 있었던 저릿함이 다시 찾아오는 듯한 기분에 대현이 눈을 피했다.
“……그래.”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뒤에 나온 대답은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마치 방금 마주했던 지후의 눈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