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멍한 대현의 머리 위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맞닥뜨린 정신없는 일들에 과부하가 걸린 머리는 생각하길 거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끈댔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무슨 말이든지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심장은 불안하게 쿵쿵 뛰었다. 그의 마주한 풍경들은, 그가 들은 것들은 제가 알아도 되나 싶은 것들 뿐이었고, 또 하나같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아까 보았던 멤버들의 태도까지 겹쳐져서 배로 증폭되는 듯한 불안함에 대현은 주머니로 손을 넣어 지후의 핸드폰만 꽉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그게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핸드폰을 쥔 손이 움찔거렸다. 손 안으로 전해져 오는 떨림에 마치 긴 잠에서 깬 것처럼 대현이 정신을 차렸다.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부르르 떨리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는 대현을 본 매니저가 한숨을 쉬며 책상에서 몸을 떼 똑바로 섰다.
“받아, 인마.”
“…….”
“사실 이 이야기하려 했던 건 아니고, 내일 대표님이랑 미팅 건 다시 한 번 더 말해주려고 부른 거야. 아침에 성호 보낼 테니까 차 타고 오고, 내일 보자.”
“……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 겨우 내뱉은 대답에 대현을 잠깐 내려다보던 매니저가 아까처럼 그의 등을 두어 번 두들기고는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은 아까와는 또 다른 정적으로 내려앉았다. 혼자 남은 대현이 진동에 반응할 수 있었던 건 그 이후로도 두 번의 진동이 울렸다 끊긴 후였다.
“여보세요.”
[야 왜 답장이 없어? 번호 보낸 거 봤냐니까.]
“…….”
[설마 아직까지 밖에서 서 있는 건 아니지? 야. 왜 대답이 없어. 불안하게.]
“……들어왔어.”
[숙소에? 아님 뭐 현관을 통과했다는 거야? 말 제대로 해. 헷갈리잖아.]
“이지후.”
대답이 없는 대현을 재촉하던 지후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나직하게 가라앉은 대현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나직하고도.
“너네…….”
분노가 느껴지는.
“정리한다는 게…… 해체 말하는 거 맞아?”
[…….]
“너네 해체…… 하는 거냐고.”
그리고 어딘가 울음이 섞인 목소리.
지난 세 달간 대현의 뇌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단어였지만 술에 잔뜩 취했던 오늘 새벽 외에는 한 번도 입 밖으로는 내뱉어본 적 없었다. 일개 팬인 제가 입 밖으로 뱉는다 해서 사실 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러고 있었다. 뱉는 순간 그 단어가 현실로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겁을 내면서.
그랬다. 그랬었다. 그래서 대현은 속에서 그 단어를 삭여왔다. 이렇게 저가 병신 같이 느껴질 순간이 올지도 모르고.
“……씨발. 진짜…….”
대현이 핸드폰을 쥐지 않은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손을 적셨다. 그 와중에도 눈을 다 가리지 못한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풍경들은 대현에게 너무도 잔인했다.
옷이 한 벌도 걸려 있지 않은 옷장. 책이 없는 책장. 그리고 침대 밑에, 지금 대현이 앉아 있는 곳 바로 옆에 덩그러니 놓인 짐 가방. 주인이 떠날 준비를 끝낸 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허전하고 쓸쓸해 보이는 거였다. 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멤버들의 방도 비슷할 것이었다. 그제야 다섯 사람이 사는 집치고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텅 비어 있던 집이 이해가 갔다.
그 모든 것들이 말하는 것이 너무나 명확했다. 쐐기를 박는 듯한 매니저의 말까지.
“아니지?”
[…….]
“아니잖아. 아니라고 해.”
[…….]
“아니라고 하라고!”
때로 침묵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곤 한다. 지금처럼. 숨소리만 전해져 오는 건너편이 그가 부정해 왔던 사실을 너무나 손쉽게 긍정해 버린 것처럼.
“아니잖아…….”
[……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대현의 세계가 조각나고 있었다. 작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작았던 때도 있었으나, 끝내는 그러지 못해 세계 곳곳에 스며든 그것들이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대현은 울 수밖에 없었다. 조각난 세계를 주워 담지 못하리란 걸 알아서.
갈게. 한참을 말없이 대현의 울음을 듣던 지후가 꺼낸 말이었다. 그 말만을 남기고 끊긴 전화에도 핸드폰을 제 귀에서 떼지 못한 채로 대현은 한참을 더 울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눈물을 나게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 흔한 포스터 하나 붙어 있지 않는 방을 바라볼 때마다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결국 지쳐서 침대에 누운 대현이 축축함을 느끼지 않고도 눈을 깜빡일 수 있게 된 때에는 어느덧 창문 너머가 깜깜해진 뒤였다.
한참 동안이나 밖을 응시하던 대현이 결국 몸을 일으켰다. 아까 어딘가로 던져 놓았던 핸드폰이 무릎 위로 툭 떨어져 내렸다. 멈칫한 대현이 핸드폰을 다시 손에 쥐었다. 화면을 건드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문자에 인상을 구겼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난히도 밝은 빛을 내는 화면이 문자 내용을 띄웠다.
<앞에 카페에 있을 테니까 나와>
발신자는 이제 익숙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번호였다. 즉, 이지후에게 온 문자란 거였다.
그나저나 앞에 카페라니? 대현의 집 앞에는 카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을 말하는 것일 터다. 택시를 타고 내리자마자 마주했던 숙소 근처 카페를 떠올린 대현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럼 아까 간다는 말이 여기로 온다는 말이었던 건가.
생각을 이어가던 대현이 문자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섰다. 두 시간 전에 도착한 문자 이후로 지후에게서 더 온 문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까지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진작 내팽개쳤던 모자를 찾아 머리 위로 대충 눌러쓰며 방문을 연 대현이 곧 휘청할 뻔한 몸을 애써 세웠다.
“어…….”
부딪칠 뻔했다. 대현이 방금 한 충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붙어 있던 몸을 어색하게 주춤 뒤로 물렸다. 둘 사이가 벌어지고 그 사이를 침묵이 채웠다. 침묵을 깬 건 식이었다.
“나가나 봐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듯한 말투였다. 푹 눌러쓴 모자와 외투를 훑던 식이 건넨 말에 대현이 얼떨결에 말을 흐렸다. 어? 어……. 엉성한 대답에도 식은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바쁘시네요. 아침에도 그렇고.”
“……바쁘다기보다는.”
“바쁜 게 낫죠. 먹고살 길도 찾으셔야 할 거고.”
부드러운 어조였으나 내용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그를 느낀 대현이 멈칫한 걸 봤음에도 식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가시 돋친 말에 얼빠진 대현과 표정 없는 식의 의미 없는 눈 맞춤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저를 지나쳐 대현이 방금 나온 방의 옆방으로 들어가는 식에게서는 그 흔한 인사 한 번이 없었다. 아까 한 번 겪어 놀랍지는 않았지만 유쾌한 일도 아니었다.
그가 남기고 간 말을 되씹기도 잠시, 모자를 한 번 더 눌러쓴 대현이 걸음을 옮겼다. 이곳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지후를 만나기 위해서든 뭐든, 지금으로선 이곳에 남아 있는다 해서 그를 반길 사람은 없어 보였으니까.
대현의 예감은 적중했다. 두 시간이 지났음에도 재촉 문자 한 번 없던 지후는 카페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발견한 얼굴에 대현의 걸음 속도가 자연스레 느려졌다. 지후가 고개를 들어 유리창 밖의 대현과 눈을 맞춘 것도 그쯤이었다.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렸음에도 그를 재촉하기는커녕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얼굴에 결국 대현이 한숨을 쉬며 카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다정하게 인사하는 알바생 쪽으로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인 대현이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
“…….”
한 명은 선 채로. 한 명은 앉은 채로. 그렇게 말없이 응시한 게 얼마나 되었을까. 결국 방금 카페 문을 열었을 때처럼 포기하고 자리에 앉은 건 대현이었다. 한 차례 격한 감정이 지나고 나니 남은 건 허망함뿐이었다. 그리고 현실. 이제는 그냥 타이밍이 원망스러웠다. 하필이면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도 해체를 앞둔 그룹 리더 몸에 들어가다니. 몸은 또 어떻게 바꿔. 아프리카 가서 빌어야 되는 건가. 그러면 나무를 찾아서…… 근데 아프리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찾아.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나무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진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혀를 차던 대현이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앞을 응시했다. 기껏 여기까지 와서 자신을 기다린 지후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더군다나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을 윽박지르며 숙소까지 가게 한 건 지후였다. 그 덕에 좋아하는 그룹의 해체 과정을 본의 아니게 지켜보기까지 했고.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도착한 숙소에서 마주했던 얼굴들을 떠올리자 명치가 답답했다. 펑펑 운 자신과 달리 조금 가라앉기는 해도 멀쩡한 얼굴로 앉아 있는 지후가 원망스러웠다. 심장으로부터 올라오는 열에 대현의 가슴팍이 오르내리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대현이 한 마디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지후가 빨랐다.
“……너.”
“몇 달 됐어.”
“뭐?”
열을 식히지 못해 다소 삐딱하게 나간 대현의 대꾸에도 반응 없이 제가 쥔 음료 잔 가장자리를 매만지는 손길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해체 이야기 나온 거.”
하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대현은 뭐라고 반박하려던 것도 잊고 입도 다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