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단독] ‘바람 잘 날 없는’ 플러그, 이번에는 해체설?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고 나온 기사는 SNS며 커뮤니티를 가리지 않고 퍼져 갔다. 당연히 팬들은 악을 쓰며 기사를 비난했다. 하지만 대현이 집중했던 건 기사 하단에 자리한 관계자의 말이었다.
‘멤버들끼리 사이 안 좋은 건 다들 알 거고. 데뷔 전에 계약 기간을 짧게 잡았던 게 신의 한 수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까요.’
활자로 느껴지는 비웃음과 심드렁함에 대현의 가슴에 불이 붙었다. 자신만 그런 것은 아닌 듯 팬들이 모인 사이트마다 분노한 팬들이 넘쳐났다.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그것들을 읽어 내려가던 대현이 멈칫했다. 유니버스는 도대체 뭘 하는 거냐며 하소연하는 팬의 댓글 위에서 커서가 깜빡거렸다.
기사가 나온 지 만 12시간이 지났다. 연예기획사에서 [단독]까지 달고 나온 타이틀의 기사를 접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는 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기자의 도발이라고 생각했던 대현의 섣부른 생각은 즉시 힘을 잃었다.
<오빠>
<기사 봤어요?>
<이번에는 구씹 아닌 것 같아요>
<윤성이랑 우람오빠 홈마랑>
<암튼 홈마들도 홈 닫고 있대요>
<어떡해요ㅠㅠ>
덕질 메이트인 소연의 절망 어린 문자는 그에 확인 도장을 찍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들이부었다. 대학가도 아닌 곳에서 새파랗게 젊은 놈이 술을 혼자 기울이고 있으니 다들 힐끔거렸다. 그 시선들은 느끼지도 못하고 허공에 시선을 던진 대현은 멍하니 플러그 덕질의 역사를 되짚었다.
운명처럼 느껴졌던 입덕의 순간, 팬싸인회에 가 처음으로 실물을 봤던 순간 등등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회오리쳤다. 누르려 해도 눌러지지 않는 추억들의 묵직함에 대현이 결국 두 손 안에 얼굴을 포갰다. 남자치고는 하얗고 가는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대현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설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술값을 치른 후 비틀비틀 걸어가던 대현이 멈춰 선 건 의외의 장소였다. 어렸을 적부터 살았던 동네지만 한 번도 걸음을 멈추고 살핀 적은 없었던 그런 장소.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히 들어선 이 동네와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한 그루의 나무. 오백년이 넘은 나무라는 설명을 시작으로 빼곡히 적힌 안내문을 읽어 내려가던 대현이 그 앞 벤치 위로 주저앉았다.
머리를 뒤로 젖히자마자 끝을 알 수 없이 쭉쭉 뻗은 나무줄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눈두덩을 힘겹게 들어 올린 대현이 방금 본 글귀를 생각하며 눈을 껌뻑거렸다.
-한때 소원을 이뤄준다는 전설이 있던 이 나무는 멀리서부터 찾아온 관광객들로 인해 크게 몸살을 앓기도 했다.(이하생략)
소원을 이뤄준다라…… 무슨 소원이든 간에 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피식대던 대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씻을 때조차도 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팔찌가 눈에 들어와서였다. 더불어 그와 얽힌 은호와의 기억도 함께 그의 몽롱한 의식 속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예쁘다.’
‘……네?’
‘팔찌요.’;
처음으로 가보는 팬싸인회. 잔뜩 긴장한 자신을 향해 먼저 말을 건네며 웃던 은호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누가 그리라면 바로 펜을 건네받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웃으면 생기는 콧잔등 위 주름의 모양, 입 동굴의 각도까지 계산해서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웃게 하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던 그 모든 찬란한 순간들.
하지만 이젠 빛을 잃어갈 순간들이기도 했다. 지금 도는 팬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플러그의 해체가 은호가 활동하지 못하는 걸 뜻하는 건 아니었다. 솔로로 나온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오히려 활동이 더 활발해질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은호가 최애 멤버인 대현에게는 그다지 나쁜 소식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플러그라는 그룹을 통해 은호를 알았고 좋아하게 됐다. 처음엔 은호가 좋았지만 나중에는 멤버들 하나하나에 다 정이 갔다. 어색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먹해 보이는 멤버들이 무대 안에서는 하나가 된 양 행동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들이 빚어내는 화음이 좋았고, 함께 찍는 사진과 영상 모두가 소중했다. 그렇게 지켜온 삼 년이었다.
그렇게 울어놓고도 남은 눈물이 있었나 보다. 어느덧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급하게 닦아낸 대현이 다시 나무를 올려다봤다.
“몸살은 다 나았죠?”
안내 비석에 적혀 있던 글귀를 떠올리며 말을 꺼낸 대현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푸- 들이마신 숨을 한 번에 뱉어내는 얼굴이 씁쓸했다.
“안 나았어도…… 제 소원까지만 어떻게 좀 안 될까요.”
그때였다. 빈속에 술을 먹을 수 없어 억지로 쑤셔 넣었던 계란말이가 역류하려는 듯한 느낌이 든 건. 결국 몸을 숙여 돌 위로 한 번 헛구역질을 한 대현이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눈을 깜빡였다. 여태껏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더 앉아 있다가는 오백년도 넘은 나무에 실례를 저지르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취한 상태라 해도 그런 민폐 행위에 질색을 하는 성정까지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숨을 고르던 대현이 결국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취기를 빌려 쏟아내던 소원들은 다 끝나지도 않았지만 이미 입을 틀어막고 걸음을 옮기는 그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조금만…… 우욱…….”
조금만 참자, 정대현. 고지가 앞이야. 자신에게 주문 아닌 주문을 걸며 걸음에 속도를 내던 뒷모습이 나무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
“…….”
“……그게 이, 거라고.”
사이좋게 쓰레빠를 짝짝이로 신고 뛰쳐나온 보람이 없는 짓이었다. 허망한 표정의 대현을 흘깃 본 지후가 욕을 뱉으며 쭈그려 앉았다. 그의 앉은키와 비슷한 높이의 비석 위로 붙은 하얀색 종이가 바람에 나풀거렸다.
-주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소원나무가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기부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 아름다운 마음도 함께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나무 재단 드림
까악 까악.
어디선가 까마귀가 울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참으로 전통적인 방식의 알림이었다. 너네 새됐다는.
냉정하고도 잔인한 현실을 알려주는 안내판 앞에 멍하니 서 있기를 삼십분. 욕을 하던 지후가 계속 이렇게 서 있을 거냐는 말을 한 걸 시작으로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둘 다 대현의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너 유은호 팬이냐?”
함께한 사람 때문인지,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익숙한 신발장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어색하게 신발을 벗던 대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후다닥. 발에 걸린 신발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거실로 달려온 대현이 거실 탁자 위에 놓여 있었던 잡지를 조심성 없게 넘기고 있는 지후의 손에서 그것을 빠르게 낚아챘다.
“왜 남의 걸 함부로……!”
새된 목소리를 내놓는 대현의 행동 자체가 그렇다는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눈썹 한쪽을 찡그린 지후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파에 앉았다. ……가지가지하네 진짜. 혼잣말이라기에는 큰 소리를 내며 소파에 몸을 기댄 지후를 보던 대현이 자신의 방으로 가 잡지를 던져 놓고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까 나무 이야기를 하며 플러그의 팬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자신이 팬이라는 걸 드러내는 건 생각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새 뜨거워진 귀를 만지며 지후의 눈치를 보던 대현이 뻘쭘하게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편하게 앉기 위해 양반다리를 하려는데 평소와 달리 접히는 다리가 꽤 품이 큼에 작게 감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도 작은 키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이 몸에 들어오니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신기한 눈으로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던 대현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분위기를 깨닫고 흠칫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소파 팔걸이에 팔을 올린 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지후와 눈이 마주쳤다.
“너…….”
먼저 말을 꺼낸 그는 말을 다 마치지도 않고 입을 다물었다. 대현으로서는 읽어낼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그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어…….”
바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멈칫한 대현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무의식적으로 제 폰인 양 화면을 확인한 대현이 지후의 눈치를 봤다.
“이거…….”
-진수형
화면을 본 지후가 머리를 짚었다. 정신없는 상황에 잊고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면 저놈이 제 얼굴을 하고서는 허옇게 질린 채 집에 온 지도 몇 시간이 지났는데, 매니저 형이 이 시간까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거실에 있는 시계는 어느덧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숨을 쉰 지후가 홀드 버튼을 누르고는 옆으로 핸드폰을 던졌다.
“야, 너.”
“어?”
“나올 때 누구 마주쳤어?”
“……아닐걸?”
거울을 보고 놀라서 바로 모자와 마스크만 찾아 뛰쳐나왔던 아침을 회상하던 대현이 고개를 젓자 지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일어섰다. 그리고는 대현을 일으켰다. 방금 옆으로 던졌던 핸드폰을 집어 손에 들려줌과 동시에 현관 쪽으로 등을 미는 행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얼떨결에 밀려가던 대현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발을 구르며 자리에 멈춰 선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 왜 그래,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