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엄마, 저 형 이상해.”
“쉿. 엄마가 뭐라 그랬어. 그렇게 말하면 다 들린다고 그랬지?”
“근데 진짜 이상하잖아…… 봐봐…….”
엄마의 꾸지람에도 아이는 납득한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엘리베이터 코너 쪽으로 통통한 손을 뻗어 가리키자 엄마가 아이의 손을 세게 쥐어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엄마의 바지에 얼떨결에 코를 박게 된 아이가 볼을 부풀렸다.
진짜 이상한데에…….
포기하지 못한 아이가 다시 뒤를 흘끔거렸다. 코너에 바짝 붙어 선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벽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다리를 떨고 있었다. 얼굴의 반을 가린 마스크와 푹 눌러쓴 후드 모자 덕에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더 고개를 푹 숙이는 남자는 확실히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코난 보면 저런 사람들이 다 범인이던데…… 어제 본 추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리던 아이가 그런 생각까지 했을 때에는, 띵 하는 도착음과 함께 엄마가 제 손을 세게 끌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난 후였다. 아이를 말렸던 게 무색하게끔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한 번 돌아보는 엄마를 보던 아이가 툴툴거렸다.
범인이면 엄마 탓이야!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체! 얼른 가서 손이나 씻어! 안 그러면 간식이고 뭐고 없어! 으아아아앙!
드디어 혼자다. 저를 경계라도 하듯 후다닥 내린 모자를 뒤로한 채 올라가기 시작한 엘리베이터 안 대현이 다리에 힘을 풀었다. 머리를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며 한숨을 쉬는 그는 이미 잔뜩 지쳐 있었다. 길에서도, 이곳까지 오기 위해 탔던 택시에서도 주위를 살피며 잔뜩 긴장했던 탓에 목이 뻐근했다. 거기다 포대기처럼 저를 꽁꽁 감춘 후드티나 마스크는 평소에도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그가 이 상황을 견디기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왜…….
왜 이렇게 새파랗게 질려 엘리베이터에 탔는지를 떠올린 대현이 좌측 벽에 붙은 거울을 응시했다. 마스크 덕에 절반이 가려진 얼굴이었지만 결을 살려 잘 정돈된 눈썹이나 연한 갈색 눈동자는 제가 22년 동안 보아온 얼굴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다. 얼빠진 얼굴로 거울 속에서 눈을 깜빡대는 사람은 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낯선 곳에서 눈을 뜨자마자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일화아파트 1103호. 제가 사는 곳이자, 이 몸으로 깨어나기 전까지 의식에 남은 마지막 장소였다.
띠-띠-띠-띠-
다이얼을 누르는 행위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렸다.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뒤죽박죽 섞여 굳었던 얼굴이 잠금이 풀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약간 풀어졌다. 그래, 비밀번호도 그대로고, 그니까, 지금 이 몸뚱이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 집도 내 집이 맞고. 그러니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문고리를 돌린 대현은 다음 순간 눈을 의심하며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
“…….”
쾅!
손에 힘이 풀렸기에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문이 닫혔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전과 다를 바 없이 굳게 닫힌 문을 앞에 둔 대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방금, 분명히…….
똑똑히 제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넋이 나간 그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쾅!
“너…….”
“…….”
갑자기 열린 문에 대현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지만 늦었다. 자연스럽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대현이 꼬리뼈에 느껴지는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제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누군가의 얼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했다.
“설명해, 이거.”
그도 그럴 만한 게 눈앞의 남자는, 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핏발이 선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리는 걸 보며 대현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
“너도 아는 게 없다는 거네.”
상황이 정리되고 마주앉아 끝낸 대화의 결론은 황당했다. 그러니까 제가 눈을 떠 거울을 보자마자 기겁한 그 얼굴은 플러그의 리더 이지후의 얼굴이 맞았고, 저 사람이 눈을 뜨자마자 기겁했을 얼굴은 저, 정대현의 얼굴이 맞다는 거다.
영화에서나 봤지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있을까. 몸이 바뀌다니. 그것도 팬인 자신과 아이돌인 이지후가.
헛웃음 치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대현이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꿈이면 깨어나라, 꿈이면 깨어나라. 두 번이나 중얼거리고 나서 눈을 떠 보아도 바로 앞에서 자신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이의 겉모습은 자신이 맞다. 그러니까…… 대현이다.
근데 언제부터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선명하고도 3D로 볼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자신에 대해 객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지?
“야.”
“……?”
“내 얼굴로 그렇게 멍청한 표정 짓지 마. 빡치니까.”
그리고 난 왜 이런 고나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상황에 얼어버렸던 입이 움찔거렸다. 아냐, 정대현. 참자.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도 아직 파악 못 했고, 무엇보다 앞에 있는 건 네가 좋아하는 그룹의 리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든 뭐든 할 말은 다 해야지.
확실히 몸이 바뀌었다고 평생 몸에 배어온 신조까지 바뀌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대현은 할 말을 참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니, 되레 그 반대였다. 할 말에 모두가 망설이는 말까지도 쿨하게 얹어버리는 스타일 말이다. 그건 대현이 팬질을 할 때도,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와 진로상담을 할 때도, 심지어 몸이 바뀐 지금에서도 적용되는 거였고 그 덕에 눈앞의 자신의 얼굴을 한 이지후가 미간을 모으는 것만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
“…….”
다행히 눈앞의 남자도 지금 제가 들어가 있는 몸에서 얼굴 부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반박 대신 입을 꾹 다문 얼굴을 보던 대현이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머리를 짚은 대현이 몸을 일으켜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섰다. 텔레비전 밑 서랍을 열어 구급상자키트를 꺼내 드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였다. 이곳은 그가 평생 살아왔던 곳이니까.
“야.”
“…….”
“너 어제 뭐 했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약을 입에 털어 넣던 대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돌아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뒤에서 그를 감시하듯 선 남자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대현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그는 어느덧 초조한 얼굴로 거실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혹시…….”
“…….”
“아니다. 설마.”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오는 표정이 무언가 짚이는 데가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뭔지 제대로 말도 안 해주는데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산만하게 거실을 휘젓는 지후를 바라보던 대현은 결국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지 말고 말을 하지 그래.”
아까의 여파가 남아 삐딱함이 묻은 말투였지만 다행히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듯 보이는 지후는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죄 없는 입술을 물었다 놨다 하며 정신없게 굴던 그가 홱 고개를 돌렸다.
“……너 혹시 이 동네 어귀에 있는 나무…… 아니다, 씨발. 알 리가 없지.”
“……잠시만.”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파에 다시 파묻힌 지후를 보던 대현이 멈칫했다. 방금 그가 중얼거린 단어 중 귀에 유난히 푹 박힌 것이 있었다.
나무. 이 동네의 나무. 순간 대현의 머릿속에서 번뜩 불이 일었다.
“혹시…….”
대현의 머릿속에서 어제의 일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해체는 아니잖아, 씹새끼들아…….’
속히 ‘팬질’이라고 일컫는 것을 시작하면서 대현은 맞다는 말보다 아니라는 말에 더 익숙해지게 되었다. 처음에야 힘들었지 나중에는 익숙하게 아닐 거라고 부정했다. 꾸준히 언급되는 불화설도 원래 적당한 비즈니스로 대해야 그룹이 오래간다는 말을 되새기며 잊으려 애썼고, 열애설은 애초부터 대현이 별 기대를 가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해체설은…… 해체는 어떤 말을 해야 괜찮아질 수가 있나. 더 이상 완전체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심장의 한 부분을 떼어놓은 것처럼 아픈데.
작년 활동 때 약속한 컴백 날이 다가오도록 흔한 티저 하나가 없었다. 불안했다. 하지만 기획사 앞을 지키는 팬들이 올리는 후기에서 본 아이들의 출근 후기를 보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늦춰지는 거겠지. 지랄버스 일 못하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 스스로를 기껏 다독였으나 그 이후로 전해진 소식들은 그 철저한 몸부림에 하등 도움이 안 됐다.
의미심장한 글이 올라오는 윤성의 SNS부터 시작해 당장 두 달 후가 첫 방송이라고 알려진 식의 드라마 캐스팅 소식까지. 컴백과는 거리가 한참 먼 멤버들의 동태와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은호의 녹음실 출입은 솔로로 나올 것 같다는 일부 팬들의 궁예에 부채질을 했다. 문제는 회사였다. 팬들 사이에서 점점 확신이 실리는 해체설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태도는 마치 부정보다는 긍정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다.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연예부 기자들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