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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광기가 때론 신앙을 만든다
담장 안은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다.
한 손을 미카엘의 어깨에 위에 얹은 데미안이 나머지 손을 그의 가슴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미카엘이 그 손바닥 위에 손을 얹자, 자연스럽게 데미안이 그를 안개 속으로 인도했다.
“선계에 들어서면 숨 쉬기 힘들지도 몰라. 원래 다른 신의 영역에선 영체가 약해지거든. 너는…… 일단 아직 죄인인 데다 이교의 사도이기도 하니 배는 힘들 거다. 잘 견뎌야만 해.”
애지중지하는 이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게 영 꺼림칙한지 데미안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일단’에 ‘아직’이라는 말까지 그사이에 두툼하게 집어넣었다.
눈치가 빠른 미카엘은 이미 조용히 웃고 있었다.
“네. 잘 견딜게요.”
여기저기에서 개자식이라고 불리지만, 미카엘에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데미안은 감히 그를 강아지풀로 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게 좋아서 평생 연약한 채로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미카엘이 동경과 선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데미안이 맞잡은 손을 통해 따뜻한 신력을 흘려보내면서 미소 지어 보였다.
‘왜 또 마약 한 것 같은 눈을 할까.’
감성도 메마르고 신앙심도 부족한 데미안은 어린 신도의 열렬한 눈빛에 부담스럽다는 듯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걸 신성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애로운 미소라고 과대 포장해서 품에 꼭 간직했다.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온몸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거대한 손이 내려와 몸뚱이를 손아귀에 넣고 꽉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유리시아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절로 몸이 위축되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이번엔 겁먹지 않았다.
신께서 함께하고 계시니 두려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천천히 숨을 쉬어.”
미카엘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린 데미안이 지그시 심장을 누르며 말했다.
“넌 영체라서 숨을 쉴 필요가 없어. 그저 몸이 버릇처럼 공기를 마시려고 하는 것뿐이지.”
아, 그러고 보니 난 이제 살아 있는 몸도 아니지.
미카엘은 바로 숨을 멈췄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뱉어냈다. 데미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면서 두 사람을 다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날개를 펼쳐서 미카엘을 폭 감쌌다.
“숨 쉬어. 그래야 냄새도 맡고 맛도 알지. 그저 숨을 쉰다는 행위에 너무 악착같이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짝거리는 금빛 날개에 뺨을 얹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깃털에선 데미안의 몸에서 나는 것 같은 서늘한 나무 향기가 났다.
“날개를 펼친 상태라면 더 강해지나요?”
“그래. 대장군이 장군복을 입은 것과 매한가지야. 그 대신 성력을 계속 소모하지.”
미카엘이 그 말을 듣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자, 데미안이 바로 말했다.
“내 광신도 하나가 시도 때도 없이 기도를 올리는 탓에 신력이 흘러넘쳐서 굳이 성력을 사용할 일도 없으니 괜찮아.”
“벌써 신도가 생기신 거예요?”
데미안이 말없이 절 바라보며 미소 짓자, 미카엘이 그 침묵에 담긴 의미를 재깍 알아차리고 기쁜 듯한 얼굴을 했다.
“제가 선생님께 도움이 되고 있나요?”
“그럼.”
사탕은 핥으면 닳지만, 미카엘은 아무리 쓰다듬어도 닳지 않기에 데미안은 틈만 나면 그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착하지, 하고 세뇌하는 말을 담아서.
“넌 존재 자체만으로 도움이 되지.”
“하지만 제대로 된 기도는 몇 번 올리지도 못했는데…….”
“전에 말했다시피 형식은 그저 부수적인 거야. 진심을 담아 신께 말씀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신과 교류가 되지. 그게 곧 기도이고.”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배 속이 뜨거워지면서 진한 신력이 차올랐다. 또 뭔가가 감사하고 좋은 모양이었다. 데미안은 그걸 다시 미카엘의 몸 안에 불어넣었다.
“하하. 무한 동력이군.”
“네?”
“아무것도 아니야.”
안개가 걷히자, 드디어 선계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꽃나무가 가득하고 하늘에선 따스한 눈송이가 떨어지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낙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가장 큰 섬이 블람의 침전이야.”
선계는 열 개의 섬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었는데 중앙에 있는 섬이 가장 컸다. 하지만 호화롭게 꾸민 몇몇 섬들과 달리 가장 꾸밈이 적고 수수해 보였다. 블람께서 어떤 성격이실지 가히 알 만했다.
“천국도 이런 느낌인가요?”
“아니. 천국은 장엄하면서도 웅장한 인상이야. 여러 개의 섬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고 구름 위에 떠 있지.”
천국에선 풀이나 나무, 꽃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유리시아께서 인간의 창작물을 좋아하시는 탓에 조각상, 회화, 책 같은 온갖 예술품은 잔뜩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성이 부족한 데미안은 정교한 예술품 박물관 같은 천국을 단 한 번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뭘 봐도 시큰둥했다.
사지가 찢어진 죄인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광경을 보면 좀 흡족할지도 모르지만, 거기까지 가면 천국이라기보다 지옥의 광경이다.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드나?”
“선생님은요? 어느 곳이 더 마음에 드세요?”
“난 장소는 상관없어.”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뻔히 알면서 미카엘이 괜히 수줍게 물었다.
“저만 옆에 있으면요?”
“그래.”
“그렇게 제가 좋으세요?”
좋아 죽는 건 너인 것 같은데.
데미안은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해 쉴새없이 입술을 오물거리는 미카엘을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네가 이런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내가 신이 된 뒤에 싹 바꾸도록 하지.”
데미안은 미카엘을 품에 안은 채 블람의 거처를 향해 날아가면서 말했다.
“천국을요?”
“응.”
“오직 저 하나를 위해서 천국을 바꾸시겠다고요?”
미카엘이 되물었다.
“너 하나를 위해 신이 되려는 건데 그것 하나 못 바꿀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연인에게 자기 딴에는 가장 멋진 프러포즈를 하겠지만, 미카엘은 자신이 가장 스케일이 큰 프러포즈를 받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널 위해서 천국을 바꿔 주겠다니. 그것도 신이 되어서.
데미안은 제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얹는 미카엘을 흘깃 바라보며 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만한 말을 했다.
“미카엘.”
“네?”
“기도 좀 그만해라.”
“…….”
갑자기 배 속이 연이어 뜨끈하게 달아올라서 데미안은 속으로 씨발, 하고 욕했다.
말도 더럽게 안 듣는 애새끼 같으니.
‘아! 이래서 생전의 내가 욕한 거였지.’
어린 연인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 자신도 아끼는 데미안은 빠르게 자기 합리화란 갑옷을 걸쳐 입었다.
“나도 아무 잘못 안 했어.”
“네?”
억지로 입혀 줘야만 꾸역꾸역 갑옷을 입는 미카엘과 달리 데미안은 혼자서도 잘만 챙겨 입었다. 하도 자주, 오래 입어 온 갑옷은 꼭 가운만큼이나 편안했다.
“나만큼 훌륭하고 충실한 연인을 또 찾아보기도 쉽지 않지.”
“어…… 네에. 그렇죠.”
그 뜬금없는 말에 미카엘이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데미안은 아무 말 없이 웃을 따름이었다.
‘저 도복, 그때 데미안이 입었던 거잖아? 로다나교 장군들이 입는 옷이었어?’
블람의 섬 앞마당엔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대련하고 있었다. 그들은 금빛 날개를 펄럭거리며 지상에 내려앉는 유리시아 사제를 신기하단 얼굴로 바라보았다.
“뭐지? 저 복장은 신부님 아냐?”
“와, 진짜 잘생겼네…… 잠깐. 잘생겼다고?”
데미안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사적으로 말을 뱉은 남자가 돌연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악마다! 아니, 악마보다 더한 대천사가 나타났다!”
“뭐? 저게 그 데미안이야?”
넋을 놓고 데미안을 바라보던 남자가 갑자기 안색을 바꾸면서 훌쩍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각자 한 명씩 스승님께 돌아가서 알려! 데미안이 돌아왔다고!”
그 곁에 서 있던 여자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덩달아 소리쳤다.
“다들 등선한 지 얼마 안 된 장군들을 대피시켜!”
“우리 루테는 승천한지 이제 1개월밖에 안 됐는데 우리 애는 봐 줘!”
“데미안은 갓난아기도 목 졸라 죽이는 미친놈이야! 1개월이고 나발이고 얼굴을 감춰! 얼굴을!”
“아니, 저 망할 건달놈은 왜 허구헌날 우리 문파에 깽판 놓으러 오는 거야!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개미굴에 물을 부으면 이런 장면이 펼쳐지지 않을까.
미카엘은 우왕좌왕하는 장군들을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선생님, 대체 무슨 짓을 하셨던 거예요?”
“그냥 선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어.”
“드나들기만 했는데 저런 반응이라고요?”
“내가 상대할 만한 장군이 새로 등선하지 않았나 찾아보기도 했고. 블람은 전쟁과 전투의 신이라서 그분의 휘하엔 온갖 강자들이 몰려들거든.”
“찾다니. 어떻게요?”
데미안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못 보던 얼굴은 일단 때리고 봤지.”
선생님, 양아치세요?
자신의 신에게 차마 그리 말할 수 없었던 미카엘은 그저 말없이 눈꼬리를 파르르 떨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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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헝!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