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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광기가 때론 신앙을 만든다
“제7 성기사단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왕자의 곁에 서 있던 바틴이 허리를 굽히면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드디어 소문의 미남을 만나 보네요. 대체 얼마나 잘생겼을까요?”
왕자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왜 남자는 부채를 들고 다니면 안 되는 거야.’
왕자는 부채 뒤에 숨어서 바틴을 노려볼 수 없다는 게 무척이나 불만인 듯했다.
“제7 성기사단 입장!”
성기사들은 경장이었지만, 하얀 제복 아래에 얇은 갑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일렬로 줄을 맞춰 걸을 때마다 철컥, 철컥 하고 쇳소리가 났다.
‘왜 검은 옷을 입고 있지?’
미카엘은 성기사단 맨 앞을 걷는 두 사람 중 하나를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 성기사 제복은 흰색인데 그는 온통 시커먼 옷을 입고 있었다.
‘아니. 검은 옷이 아니야…….’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할 걸 알기에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왕자는 어렸을 적부터 아주 먼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다. 또한 선한 것과 악한 것, 비틀린 것과 앞으로 비틀릴 것을 색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무해한 자일수록 맑은 금빛에 가까웠고 불길한 자일수록 진득거리는 흑빛에 가까웠다.
‘악이다. 저자는…… 악의 화신이야.’
새카만 죄와 같은 머리칼, 짙은 눈썹 아래에 자리한 심연을 담은 눈동자. 왕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있건만, 사람들이 경탄하며 우러러보는 이는 가장 낮은 곳을 걷는 검은 밤의 지배자였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시커먼 그림자가 대지를 뒤덮고, 묵직한 존재감이 지배자의 행차를 침묵으로 알렸다.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머리를 강하게 찍어 누르니 인간의 왕조차 두려워하며 두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화사한 보석을 잔뜩 박아 넣은 왕관이 비참하게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그의 그림자 군대가 피와 살덩이가 잔뜩 엉겨 붙은 더러운 군홧발로 그것을 짓밟아 버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잔인한 행태에 더욱 열광하며 그더러 자신의 영혼을 받아 달라고 손을 내밀어 댔다. 그러자 사람들의 얼굴에 하얗게 서린 영혼을 올올이 뽑아낸 그가 새카만 낫으로 그것을 썩둑 베어 마치 별것 아닌 전리품을 취하는 것처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머니, 저를 지켜 주세요…….’
남자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왕자는 아랫입술을 깨문 앞니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많은 자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저자의 손에. 혹은 저자를 위해.
왕자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케이크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라면 달콤한 향기에 이끌리기 마련이건만 아무리 주변에서 부추겨도 그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지나친 쾌락은 죄악이에요, 어머니.」
왕비는 금욕적인 아들을 두려워했다. 이 어린아이의 안에 대체 무엇이 들어있을지 걱정했다.
그 낌새를 알아차린 왕자가 일부러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굴기 시작하자, 왕비는 그걸 이용해 기어코 그의 입안에 케이크 한 조각을 밀어 넣었다.
맛있다며 귀엽게 웃는 왕자의 얼굴을 본 뒤에야 왕비는 안심했다.
「우욱…… 웩!」
하지만 왕자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결벽한 왕자는 속을 비운 뒤 바로 신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자신을 부추긴 어머니를,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미약한 인간을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케이크…….’
남자를 본 순간 왕자는 케이크를 입안에 넣었을 때처럼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기도하기 위해 양손을 맞잡자, 차갑게 식은 손가락이 손등 위로 느껴졌다.
‘저자는 케이크야…….’
남자는 영혼을 더럽히고 이성을 어지러이 무너뜨릴 분란의 불씨이자, 향기로운 피 냄새를 풍기는 불화의 씨앗이었다.
애초에 그를 왕성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왕자는 두 눈을 깊이 감았다. 그러자 검은 그림자가 이번엔 서늘한 뱀처럼 귓속으로 기어들었다.
“왕국에 영광을, 주군께 영예를.”
솜털을 간질이는 듯한 깊고 그윽한 저음이 사람들의 귓속을 검게 물들이자, 사방에서 달뜬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파닥거리는 부채 소리가 빨라졌다.
하지만 왕자는 진저리를 치면서 신경질적인 손길로 제 귀를 긁어 댈 뿐이었다.
“자네, 흠, 자네가 페르페오 공작의 아들인 데미안인가 보군.”
왕 또한 동요한 듯 그의 옆에 있는 성기사 단장 대신 부단장인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눈만 위로 들었다.
“예, 폐하.”
긴 속눈썹을 들어 올린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왕자는 머리칼이 삐쭉 서는듯한 공포를 느꼈다. 마치 그가 보이지 않는 갈고리로 자신의 영혼을 긁어 내, 이미 무고한 영혼이 수두룩하게 담긴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곁에 두어선 안 돼. 저자는 해로운 자다. 순결한 성전을 흙발로 짓밟고 유리시아를 신좌에서, 아버지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자다.
왕자는 그의 검은 칼날로 가슴팍을 난도질당하는 유리시아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유리시아는 피를 흘리면서도 다정하게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네가 행복하길.」
신은 특정한 한 명의 행복을 기원해선 안 된다. 신은 모두의 것이되 누구 한 사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유리시아는 신이 아닌 한 사람의 부모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금빛 광채를 두르지 아니한 그녀는 꼭 일개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 제발…… 무사하세요…….’
왕자에겐 정말로 부채가 필요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감출 부채가.
“그저 미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안할 정도로 살벌한 외모네요. 꼭 얼굴로 공격당한 기분이에요. 게다가 관록이 무슨…… 와, 어떻게 저게 스물두 살이지?”
웬일로 말이 없던 바틴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남자는 그저 간결한 성기사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화려한 장식이 달린 의복을 갖춰 입은 왕보다 더 권위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그는 심지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데도 위엄이 넘쳐 보였고, 왕은 호화로운 옥좌에 앉아 있는데도 평범한 중년 사내로 보였다.
“왕자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
“난…… 난 괜찮아.”
왕자는 저 남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숨 쉬고 말할 수 있는 바틴이 그저 놀라웠다. 설마 그가 깜빡하고 바틴의 영혼만 낚아채지 않은 걸까?
“뭐, 왕자님 말씀대로 돈벌이는 되겠어요.”
돈…… 아아, 돈이 필요하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남자를 바로 궁성 밖으로 내쫓으려던 왕자는 머리를 떨구고 침음했다.
올해는 기근이 들어서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드는 기금이 정말 절실했다. 성 밖에선 하도 먹을 게 없어서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일까지 허다하다고 했다.
왕과 왕비가 준 보석을 그냥 팔아치웠던 게 너무 아쉬웠다. 그걸로 투자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는데.
궁전 안엔 값비싼 물건이 가득한데 그걸 마음대로 팔아 쓸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것을 훔쳐서 팔 순 없었다. 부모라 한들 절도죄는 절도죄이니까.
얼마 전에 왕비가 선물해 준 사파이어 목걸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건 이미 질려서 버렸다고 했으니 새로운 걸 사다 주지 않을까?
너무 적극적으로 조르면 왕과 왕비가 필요한 곳에 써야 할 국고를 끌어다가 탕진한 뒤 세율을 더 올릴 거다. 그러니 사치를 좋아하는 인상을 주되 적당히 소극적으로 굴어야 했다.
머리가 굳은 부모를 계도하기에 왕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특권 의식과 자존심이 강한 그들이 쉽게 바뀔 리도 없겠지만.
‘그래. 돈이 필요해.’
도로 고개를 들어 올린 왕자는 꼭 사랑에 빠진 수줍은 소년처럼 말갛게 웃고 있었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왕비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교 있게 말했다.
“어마마마, 보세요.”
저 불온한.
“저 아름다운 눈을요.”
저 불길한.
“저 멋진 목소리를요.”
알 수 없는 거부감과 공포를 꼭꼭 감춘 채 왕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지한 어린애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저분이라면 훌륭한 검술 선생님이 되어 주시지 않겠어요?”
“검술?”
“네! 꼭 이분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어요!”
이 피비린내 나는 남자라면 싸우는 방법 하나는 잘 알고 있겠지.
왕자는 냉소적으로 입술을 비틀고 싶은 걸 꾹 참고 애교 있게 남자의 강건한 어깨를 쓰다듬었다.
짜악!
그 순간 남자가 왕자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 왕자와 사람들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그저 태연한 낯빛이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순애를 바친 이에게만 몸을 허락하기로 해서.”
진심은 아니겠지?
고작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그것도 동성의 어린아이가 만지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 번에 수십 명은 상대할 것만 같은 문란한 얼굴을 하고서?
가식이 너무 심했다.
“세상에, 정말요? 저도 그래요! 우린 둘 다 열렬한 유리시아 신자인가 봐요!”
내가 당신 실체를 아는데 어디에서 거짓말을 해? 당신은 죽어서 지옥에 갈 거다, 이 성병 덩어리야!
미카엘이 일부러 그의 어깨를 퍽퍽 후려치면서 반갑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남자는 그에게 얻어맞은 제 왼쪽 어깨를 싸늘한 눈초리로 한 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시원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간 심장이 차갑게 얼어서 바닥에 떨어지는 듯했다.
“씨발. 아주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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