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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마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려야 한다
데미안은 그가 제 가슴팍에 폭 기댈 수 있도록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미카엘이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란 몸을 잔뜩 구긴 채 데미안의 옆구리에 착 달라붙었다.
그 순간 배 속에서 뜨거우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이 올라왔다. 미카엘이 또 기도를 올리고 있다.
미카엘이 사도가 된 뒤로 데미안은 종종 이런 식으로 신력이 차오르는 걸 느끼곤 했다. 정식으로 신의 위상을 얻은 것도 아닌데 이 광신도 안에서 데미안은 이미 신이었다.
믿음이란 ‘이렇게 생각해야지.’ 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조차 제어하지 못해 자주 곤란을 겪지 않던가.
믿음은 마음을 아주 단단하게 제련해야만 얻을 수 있는 산물이었다. 하지만 얻기는 어려우나 망가지기는 쉬워서 아주 실낱같은 의심조차 그 굳건한 믿음을 산산조각낼 수 있었고, 아예 불신이란 이름으로 뒤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미완성된 신을 이미 맹신하고 있었다.
데미안은 아직 신이 아니기에 예비 사도인 미카엘이 다치면 치유해 줄 수도, 죽으면 부활해 줄 수도 없는데, 미카엘은 그의 신이 개자식처럼 굴 때조차, 침대 위에서 자기 몸 아래에 깔려 있을 때조차 그를 광신하고 숭배했다.
정말 당혹스러운 건 미카엘이 섹스하는 와중에도 종종 기도를 올릴 때가 있다는 거다. 그는 전립선을 자극당한 데미안이 경련을 일으키듯 구멍을 조일 때마다 그의 신에게 기도했다. 그럴 때마다 데미안은 배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가 흡사 신력이 아닌 사정액처럼 느껴지곤 했다.
이러다 신력이 차오르는 느낌을 성적인 쾌감으로 인식하게 될까 봐 진지하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지금이야 사도가 미카엘뿐이니 상관없지만, 사도가 늘어난다면 배덕감 같은 게 느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미카엘은 섹스할 때 기도 좀 하지 말라는 데미안의 말에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제가 언제요?” 하고 따질 따름이었다. 정말 억울하게도 그는 오히려 데미안이 신성 모독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간 해 온 짓이 있으니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기도한다는 인식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무의식중에 그러나 본데, 미카엘은 “응? 지금이라고?” 하고 의아할 정도로 뜬금없는 상황에서도 기도를 올리곤 했다. 예를 들어 데미안이 자기가 해 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나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단추를 채울 때, 심지어 함께 길을 걷다가도 뜬금없이 기도를 올리곤 했다.
미카엘을 구원하기 위해 데미안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기도하긴 했지만, 시시때때로 해대는 미카엘의 기도는 좀 더 일상적인 것에 가까웠기에 더욱 광적으로 느껴졌다.
“……종교쟁이.”
데미안이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뾰족한 눈으로 노려보던 미카엘이 그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그저 조용히 웃기만 했다.
미카엘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 주는 작은 통증마저 데미안에겐 너무 기꺼웠다.
“손님, 이곳이 맞나요?”
마차를 멈춘 마부가 문을 열어주며 묻자, 미카엘이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에게 팁을 두둑하게 쥐여 주었다.
미카엘은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서 그런지, h8이 무얼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마부에게 바로 북동쪽에 있는 로다나교 사원으로 가자고 말했다.
이 도시에만 펠름 신전이 8곳, 로다나 사원이 5곳이 있으니 나히덴이 남긴 힌트는 그가 끌려갈 사원의 방향이었고, 굳이 그걸 체스 용어로 말한 건 사형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구둣방에서 나히덴과 합류한 뒤 같이 사원으로 가실 생각이었던 거죠?”
“그래. 그런데 굳이 사형들이 와서 데려갔다는 건 다른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지. 어찌 되었든 선계의 문은 열렸겠군.”
데미안이 미간에 잡힌 주름을 엄지로 문지르다가 흘깃 미카엘을 돌아보며 물었다.
“신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
“네. 왜요? 제가 짐이에요? 하지만 선생님이 절 지키면서 싸우시면 되잖아요.”
혼자서 난투를 벌이는 것과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것은 천지 차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절 맹신하는 미카엘이 사랑스러웠다. 이 힘을 얻기까지 정말 많은 고통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지만, 꼭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미카엘의 금빛 속눈썹을 안으로 접은 검지로 살며시 건드리며 데미안은 말했다.
“가면서 설명하지.”
천계는 신과 그의 사도들이 머무는 다른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지상처럼 하나로 연결된 게 아니라 펠름교의 천국, 로다나교의 선계, 프렘교의 낙원처럼 각기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천계는 언제나 닫혀 있지만, 지상에 신전이 있다면 신의 사도가 천계와 지상을 오갈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은 동시다발적으로 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오직 한 번에 한 곳만을 열 수 있었다.
“나히덴이 이 사원과 연결된 문을 통해 선계로 끌려갔다는 이야기군요. 선생님은 거기까지 따라갈 생각이신 거구요.”
“그래.”
“그런데 한 종교의 사도가 다른 교도의 천계에 드나드는 게 흔한 일인가요?”
우뚝 걸음을 멈춘 데미안이 두 손으로 미카엘의 어깨를 쥔 채 진지하게 당부했다.
“아니. 절대로, 절대, 내 말 듣고 있지, 미카엘? 절대로 다른 신의 천계에 가서는 안 돼. 절대로. 그건 상대 종교를 박살 내서 없애 버리겠다는 선전포고와 마찬가지야.”
“하지만 선생님은 가신 적이 있는 것 아닌가요?”
“난 개망나니였으니까. 넌 내 팔다리를 뜯어 놓은 블람이 너무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분께서 그 정도로 봐주신 게 오히려 대단한 거야.”
미카엘의 팔뚝을 한 번 내려다본 데미안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창약을 뭐로 만드는 줄 아나?”
“아뇨.”
“그건 신의 살덩이로 만드는 거야. 신의 피는 물에 몇 방울만 섞여도 영체조차 기분 좋게 취하게 해 주고, 신의 살은 심각한 상처조차 빠르게 치유해 주지. 그렇다면 왜 신이 사도들에게 피와 살을 가득 나눠 주시지 않는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미카엘이 추측이 아닌 단언을 했다.
“자기 자신을 치유하진 못해서.”
“맞아.”
신의 사도는 상처 입거나 죽으면 신이 신력을 사용하여 치유하거나 부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신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치유할 수가 없는데 심지어 회복 속도마저 느렸다. 그나마 신체(神體)가 단단하여 쉽게 상처입힐 수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블람께서 워낙 호방하신 데다 강한 자와 싸우는 걸 즐기시기에 망정이지, 원래는 유리시아께 정식으로 항의해서 내 영혼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려도 할 말이 없을 만한 사안이야.”
인간을 두고 사도끼리 다투거나 협력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그 어떤 사도도 신의 허락 없이 다른 신을 직접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런 규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게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영 살의 데미안은 그딴 건 좆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전투광이 모여 있다는 선계가 열린 걸 보고 바로 눈이 돌아서 그곳으로 쳐들어갔다.
「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데미안이 스물여덟 위의 장군과 두 위의 대장군을 작살 낸 뒤에야 마침내 블람이 강림했다.
데미안은 그가 바로 절 응징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블람은 어떻게 내 사도란 것들이 저런 어린 영체한테 무참히 박살 날 수 있는 거냐며 그들에게 호통쳤다.
물론 그 뒤엔 장군들을 망신 준 데미안의 팔다리를 모조리 뽑아 놓았다.
「스승님으로 모셔도 됩니까?」
블람은 몸뚱이만 남은 처참한 꼴을 하고서 절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 데미안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유리시아의 사도가 어찌 내 제자가 돼?」
「그럼 또 덤벼들러 오는 건요? 그것도 안 됩니까?」
블람은 혀를 차면서 데미안을 천국으로 돌려보냈다.
「이놈은 원래 신이 되기 위해 천계에 오른 놈인데 사랑에 미쳐서 유리시아 밑으로 들어갔을 정도로 머리가 돈 놈이야. 그러니 이놈이 다시 나타나면 실력에 자신 없는 놈들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고 날 불러라. 알겠느냐?」
그 전에 데미안의 내력을 읊어준 후 장군들에게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야박한 축객령과 달리 그 뒤로 블람은 지상에 강림할 때마다 은근슬쩍 데미안을 찾아와 “개망나니 놈아! 그간 수련은 좀 했느냐!” 고 그에게 싸움을 걸어 주었다. 그 덕분에 빠르게 싸움 실력이 늘 수 있었으니 데미안에겐 무척이나 고마운 분이었다. 유리시아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매번 돌아갈 때마다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그래서, 대체 언제 대장군이 될 거야!” 하고 호통을 치시긴 했지만, 데미안은 블람이 자신을 무척 예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요새 영체들은 호전적이지 못하다는 둥, 영체 자체가 워낙 튼실하니 단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둥 투덜거리면서 데미안의 몸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곤 했으니.
물론 미카엘과는 다른 의미로, 아주 건전하게 말이다.
「블람, 또 빈손으로 오셨습니까? 팥이 든 과자는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이 망나니 놈이 왜 내게서 과자를 찾는 게야!」
비록 솔직하지 못한 영감탱이라 데미안이 느물느물하게 웃으며 살갑게 굴 때마다 너와 나는 안 맞는다며 질색하긴 했지만, 데미안이 한 번이라도 언급했던 건 잘도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번에 만났을 때 그의 품에 적선하듯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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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 진정한 개망나니는...
[단해] 펠름교가 잘 안 외워지네. 속으로 펠라교라고 외워야지. 펠름펠름 넬름넬름... 히히!
[유리시아] ... ...
[유렐] ... ...
[데미안] ... ...
[제브] ?
네. 접니다. 초창기 때만 그랬고 지금은 제대로 외우고 있어요.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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