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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마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려야 한다
나히덴은 손끝이 야무진 데다 일머리를 금방 파악해서 손으로 하는 일은 거의 다 잘했다. 요리, 재봉, 그림, 악기 연주 등등. 그중에서도 그는 요리와 신발 수선을 잘했다.
생전에도 그는 관군에 쫓기는 동안 음식점에서 짧게 일하거나 남의 신발을 수선하여 도피 자금을 충당했다.
“선생님. 저랑 나히덴 중에 누가 더 요리를…….”
“나히덴.”
“…….”
“나히덴이 훨씬 더 잘하지.”
돌연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던 미카엘이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았지만, 데미안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 죄가 아니라고 해도 두 사람을 비교하라니. 정도가 너무 심했다. 거의 손수레와 육두마차를 비교하는 꼴이었다.
“저, 요리 학원에 다닐게요.”
“안 그래도 돼. 꼭 식사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배울 거라고.”
“……그래.”
앞으로 미카엘이 요리 학원에서 배웠다며 가져올 음식들은 모두 실험체, 아니, 데미안의 몫이 될 예정이다. 그래도 영체라 소화 불량에 걸릴 일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 나히덴이 당신 앞으로 등을 달아달라고 하셨는데 블람 사원에 가서 등 좀 달아도 될까요?”
그러고 보니 이교의 사도에게 봉헌하겠다는 뜻인지라 혹여 자신의 신이 싫어할까 봐 미카엘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싫으세요?”
“상관은 없는데, 그전에 블람께 먼저 등을 올려라. 혹시 여러 개를 달 거라면 꼭 블람께 올리는 등을 하나라도 더 달고.”
“왜요?”
“내가 신이 되었는데 우리 신도가 나보다 천사 미카엘이 더 좋다며 너에게만 기도를 올린다고 생각해 봐.”
“아니, 어떻게, 씨발,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요? 당연히 선생님한테 기도해야죠! 뭐 그런 경우 없는 신도가 다 있어요?”
데미안이 광신도 맞춤 비유를 들어주자, 미카엘은 바로 이해하고 격분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블람께 더 많은 등을 달아 드릴 거라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악인이 벌을 받는 꼴을 좋아하여 응징의 천사나 호법 장군 같은 사도는 늘 인기가 많다. 하지만 나히덴 신상은 체구가 자그마한 데다 좀 귀엽게 생겨서인지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나마 여성 신도들이 아기 천사를 귀여워하듯 그에게도 등을 달아 주긴 했지만, 정말로 도움이 필요할 땐 다른 사형들의 부적을 구입하거나 다른 호법 장군의 등을 달았다.
인지도가 없는 호법 장군이라서 덕을 잘 쌓지 못하니 활동 자금도 얼마 나오지 않는데 나히덴은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늘 돈이 부족했다. 그는 특이한 물건을 보면 꼭 구입해서 만지작거려야 했고, 처음 본 음식은 꼭 입에 넣어 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 와중에 꼬박꼬박 밥을 먹어야 하는 새끼까지 딸리게 되었으니 다시 신발 수선하는 일에 매달렸으리라.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도 사람이 신발을 신고 다니는 이상 그걸 수선하는 작업은 늘 수요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나히덴은 낯선 곳에 가면 꼭 그곳에 있는 구둣방을 기웃거리곤 했어. 그사이 새로운 기술이 나오진 않았나 하고.”
그게 바로 두 사람이 아파트 근방에 있는 구둣방을 방문하는 이유였다.
“여기에 귀염둥이가 왔었나?”
데미안이 좁다란 가게 안으로 커다란 몸을 구겨 넣으며 물었다. 미카엘은 당신의 귀염둥이는 여기에 있는데 왜 그걸 남에게 묻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데미안은 다정한 손길로 미카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웃으며 재차 물었다.
“여기에 있는 청년보다는 덜 예쁘게 생긴 귀염둥이인데.”
“아! 그 붙임성 좋은 아제트인요?”
그제야 구두에서 시선을 떼어낸 구둣방 주인이 데미안의 얼굴을 보고 뒤늦게 놀란 얼굴을 했다.
“그냥 미남이 아닌 절, 어, 절세 미남이 오면 말을 전해 달라고 했는데…….”
당시 구둣방 주인은 “그냥 미남하고 절세 미남의 차이를 내가 어찌 알아.” 하고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런데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냥 미남이 아니라 절세 미남이었다!
“응? 그게 내가 아닌 것 같은가?”
절세 미남이 근사하게 웃으면서 묻자, 올해 58세가 된 구둣방 주인은 짓궂은 첫사랑 앞에 놓인 열두 살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수줍어했다.
“아, 아니요! 손님 이야기입니다. 아이고, 그게 어떻게 다른 사람 이야기겠어요…….”
미카엘이 얼굴을 붉히는 중년 남자를 불쾌하다는 듯 노려보자, 데미안이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
“그가 뭐라고 했지?”
“h8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슬며시 미간을 찌푸린 데미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를 찾아온 다른 이들이 있었나?”
“아, 네. 로다나교 사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네 명 왔었습니다. 아,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고요. 오히려 친해 보였어요. 소년하고 같이 있던 청년은 낯빛이 별로 안 좋아 보였지만요.”
“그렇군. 고맙네.”
“아, 저기, 펠름교 신부님이시죠? 혹시 어디에서…….”
미카엘이 두 손으로 데미안의 등을 떠밀어 가게 밖으로 내보내면서 인사를 마무리했다.
“고마워요. 정말 친절하시네요. 저희는 이만 실례할게요.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장사 잘 되시길 바랄게요.”
미카엘은 가게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데미안을 냅다 꼬집었다.
“왜 아저씨를 꼬시고 그러세요?”
“내가 언제.”
“웃으셨잖아요. 앞으로 선생님은 다른 사람 앞에서 웃음 금지예요. 웃음 압수라구요!”
“뭐가 압수라고?”
데미안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가 미카엘의 금발을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그래. 이제야 내 마음을 알겠나 보군. 앞으론 너도 다른 사람 앞에선 무뚝뚝하게 구는 거다.”
“아니, 전 직업이 상담가인데…….”
“난 성직자인데?”
이제 궁지에 몰린 건 미카엘 쪽이었다. 그는 두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항변했다.
“선생님, 전 그냥 평범하게 이웃하고 사교 활동을 한 거잖아요. 제가 웃으면서 인사했다고 저에게 반하는 사람은 없어요.”
데미안이 사납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 눈앞에 있는 등신 빼고 말이지?”
말로 먹고 사는 미카엘이지만, 이젠 진짜로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주눅 든 얼굴로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남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근하게 굴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인사도 그냥 건조하게 해도 될 거 같구요.”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그거야, 미카엘. 내 사랑스러운 고양이.”
두 팔로 번쩍 미카엘을 들어 안은 데미안은 그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댄 채 미소 지었다.
“네가 개자식이라고 불릴수록 난 행복해질 거야.”
그때 제브가 나타나 묵직해진 돈 가방을 내밀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여전히 미카엘을 품에 안은 채 건성으로 한쪽 손만 내밀어 보일 뿐이었다.
제브가 묵묵히 돈 가방 안에서 지폐 다발 하나를 꺼내 그 위에 내려놓자, 데미안이 그만 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시키신 일을 했으니 머리를 쓰다듬어 줄 거라 기대했던 제브는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익숙한 일인 듯 군말 없이 돌아갔다.
“선생님, 저는…… 당신에게 순애를 바치기엔 너무 좋은 사람인가 봐요.”
불쌍하다는 눈으로 제브를 바라보던 미카엘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하자, 데미안이 그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그걸 이제 알았다니. 가엾기도 하지.”
난 이미 천 년 전에 알았는데.
하지만 이미 영혼을 한데 묶어 버려 미카엘은 영원히 데미안에게서 도망칠 수 없으니 그가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제가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밝은 길로 이끌어 볼게요.”
데미안은 제 어깨 위에 살포시 뺨을 얹는 미카엘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네가 밝은 길로 걷기만 하면 돼. 그러면 난 자연스레 네 뒤를 따라 걷게 될 테니.”
* * *
그저 계절이 바뀐 것뿐인데 거리의 정경이 다른 색채로 물드는 건 언제 보아도 참 오묘하다.
미카엘과 재회한 것도 이맘때였기에 데미안은 짙은 회색으로 물든 거리를 바라볼 때면 자연스레 불안에 젖은 얼굴로 거리를 배회하던 그를 먼저 떠올렸다.
열두 살의 미카엘은 영악한 데다 경계심이 강해 웃을 때조차 데미안을 날카로운 눈으로 뜯어보았지만, 영 살의 미카엘은 낯선 이를 보듯 데미안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경계심 없이 그의 뒤를 따라걸었다. 그 새파란 눈동자가 꼭 한눈에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데미안을 향한 호감을 잘 감추지 못했다.
톡톡톡.
무릎을 건드리는 손길에 데미안이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언제 봐도 어여쁜 미카엘이 신비로운 파란 눈동자로 가만히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기다려 보았지만, 미카엘이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도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톡톡톡톡.
미카엘이 재차 무릎을 건드리자, 데미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냥 관심을 달라는 거였군.’
자리 중앙을 차지하고 앉았던 데미안이 한쪽으로 바짝 붙어 앉자, 미카엘이 너무 서두르는 기색 없이 그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 모습이 꼭 사랑을 갈구할 때조차 도도하게 구는 고양이 같아 보여서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절 무시했어요.”
아니, 내가 언제?
갑자기 누명을 쓴 데미안은 황당하단 얼굴을 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미카엘의 과거를 회상했는데 말이다.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미카엘이 그리 느꼈다면 그의 말이 옳았다.
보통 개인 마차를 잡으려면 마부와 가격 협상을 해야 하는데 미카엘은 데미안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늘 마부에게 평균가의 다섯 배 이상을 내곤 했다. 그런 작은 일에서마저 제게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 같은 애정을 돌려주지 못했다면 미안해하고 반성하는 게 옳았다.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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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댓글을 달아 주신 샵샵샵 님께도 감사드려요. 블람 쪽 이야기는 본편에서도 충분히 들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