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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91화 (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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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마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려야 한다

“나오셨어요? 제가 선생님 옷 다려 놨으니까 이따 갈아입으세요.”

공손한 말과 달리 미카엘의 두 눈은 가운 앞섶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데미안은 흉근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워낙 가슴통이 큰 체형이라 자신이 입었던 것과 같은 크기의 가운을 입혀 놓으니 앞섶이 크게 벌어지면서 언뜻 유두까지 보일 정도였다.

‘저렇게 크고 잘생긴 남자가 연분홍색 유두를 지니고 있다니. 이건 사기야.’

호기심이 많은 미카엘은 당연히 그 신비로운 틈 사이로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다.

“내 배에 아주 지랄을 해 놨던데.”

미카엘이 연신 마른침을 삼키느라 목울대를 바쁘게 움직거리자, 데미안이 가운 앞섶을 단정하게 여미며 말했다. 그제야 미카엘은 아쉬움이 남은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집 안에서 고양이를 기르려면 고양이가 손톱을 갈 수 있도록 통나무 토막 같은 걸 놔줘야 한대요.”

데미안은 정성스레 개소리, 아니, 고양이 소리를 하는 미카엘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저한테 그런 걸 안 사주셨잖아요. 그러니 제 손이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안 그래요? 그러면 누가 잘못한 거예요?”

“내가.”

“저는 선생님 탓을 하고 싶지 않은데요. 제가 자꾸 선생님 몸에 낙서하는 건.”

“내 잘못이지.”

그래. 999살이나 어린 애새끼를 데리고 연애하는 데미안 잘못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데도 순순히 져주는 데미안이 너무 좋아서 미카엘은 수줍게 웃었다.

“제가 사정한 만큼 하트를 그렸어요.”

데미안은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물총이 아니라 수도꼭지와 연결된 호스였다니.

“어쩐지 복근이 흐려질 정도로 배가 부풀었더군. 손으로 누르니 뒤에서 정액이 나오던데. 인간 튜브가 된 느낌이었어.”

미카엘은 담담하게 말하며 부엌으로 향하는 데미안을 끈적거리는 눈빛으로 좇았다.

인간 튜브라니. 누르면 나온다니!

머릿속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치겠군.’

족히 10인분은 담은 것 같은 거대한 냄비와 돼지 한 마리를 그대로 요리한 것만 같은 엄청난 양의 폭찹 스테이크를 바라보며 데미안은 머릿속이 아니라 속이 터졌다.

도대체 그의 안에서 자신은 어떤 인상인 걸까? 음식의 양만 보면 미카엘은 꼭 “아이고, 내 새끼! 왜 이렇게 삐쩍 마른 거야!” 하고 안타까워하는 할머니 같았다.

“손은 다치지 않았나?”

데미안은 요리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항상 음식을 듬뿍듬뿍하냐고 묻는 대신 미카엘의 손을 살폈다.

“선생님, 제가 아이인 줄 아세요?”

아이가 아니라 아기지. 한 살이니까.

기껏 깨끗하게 정화한 몸 위에 또 잇자국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기에 데미안은 입술을 간질이는 말을 삼키고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다행히 그의 고운 손가락엔 생채기 하나 없어 보였다.

“앉으세요. 제가 머리를 말려드릴게요.”

평생 남의 수발을 받고 살아온 왕자라 그런지 미카엘은 꼭 소꿉놀이하듯 데미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고 싶어 했다. 만약 그가 생전에 시종이었다면 절대로 그 짓을 또 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리라.

아이들이 장사 놀이를 좋아하는 것도 그게 생업이 아니라서 그런 거다.

“맛있으세요?”

미카엘이 부드러운 흑발을 수건으로 꼭꼭 눌러 말리며 묻자, 데미안이 입안에 든 음식을 모두 삼키고 나서 응, 하고 대답했다.

데미안이 제아무리 미친놈이니 개차반이니 하고 자칭해도 그가 진짜 광란자처럼 보이지 않는 건 품위 있는 몸가짐이 이미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데미안은 반항적인 귀족으로 보일지언정 뒷골목에서 구르는 시정잡배처럼 보이진 않았다.

“선생님, 왜 나히덴은 친구라고 인정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그분은 당신에게 성적인 호감이 없어 보였는데.”

“나히덴이 그리 말하던가?”

“네. 자신이 무영체가 아니라서 친구로 삼아 주지 않는 거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친구로 삼아 준 사람들은 1세대 천사뿐이었다고 하시면서요.”

1세대 천사라는 말에 데미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차가운 낯빛으로 돌아왔다.

“나히덴, 그 씨발 새끼는 나와 같이 술을 마시다가도 뜬금없이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내 양해도 구하지 않고 합석하는 새끼야.”

씨발 새끼라는 걸 보면 친구가 맞나 보네.

미카엘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날 보러 왔다면서 내가 아닌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기어코 그들까지 아는 사람으로 만들고 돌아가는 새끼지.”

“외향적인 사람 같다곤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하고 어울리는 걸 정말 좋아하나 봐요.”

“그래. 만 명은 되는 친구 속에 날 집어넣지 못한 게 아쉬운지 저렇게 한 번씩 와서 기웃거리는데 아주 꼴 보기 싫어 죽겠어.”

음. 친구한테 친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운하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게 맞는 건가?

물기를 흠뻑 머금은 수건 두 장을 옆에 내려놓은 미카엘이 슬그머니 데미안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으며 어여쁘게 웃었다.

“제 친구는 선생님 하나뿐인데.”

좁고 깊은 관계를 좋아하는 데미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쁜 듯이 웃으며 미카엘의 콧등에 자신의 코끝을 비볐다.

“하리엘이 죽으면, 나도 그렇게 될 거야.”

순간 “미치셨어요?”라는 말이 튀어 나가려고 했지만, 미카엘은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다.

“저기요? 그걸 감동하라고 하신 말씀이세요?”

데미안은 가끔 참 미카엘이 보기에도 광란자 같은 발언을 하곤 하는데, 지금은 그 정도가 심해서 하리엘이라는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데미안의 마지막 친구이자, 그를 위해 이름까지 바꾼 하리엘이라기에 둘이 굉장히 끈끈하고 애타는 관계인 줄 알고 슬그머니 질투까지 했는데.

이제 보니 가짜 우정이었다!

‘선생님은 정말로 나밖에 없나 봐.’

하지만 그 가짜 우정 덕분에 미카엘은 행복해졌다. 겉으로는 그러지 말라며 내숭을 떨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히덴은 왜 사형들에게 쫓기는 건가요? 아, 사형이라는 게 의형제 같은 거 맞죠?”

“그렇다기보다 동문 선배를 일컫는 말이지. 사제는 동문 후배를 일컫는 말이고.”

“그럼 제브가 제 사형이 되는 건가요? 우리 둘 다 선생님의 제자잖아요.”

데미안은 사납게 웃으며 대꾸했다.

“개는 논외지.”

속으로는 좋으면서 미카엘은 괜히 데미안의 도톰한 입술을 꼬집으며 잔소리했다.

“개라고 좀 하지 마세요. 이제 같은 천사잖아요.”

“참 다정하기도 하지.”

“비꼬시는 거죠?”

“응.”

미카엘은 그의 날렵한 콧날을 깨물었지만, 그 몸짓은 이내 간지러운 입맞춤으로 변했다.

“사실은, 선생님이 개자식이라서 좋아요.”

“알아.”

미카엘이 응석을 부리듯이 입술 표면을 핥아 대자, 데미안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면서 커다란 손으로 그의 납작한 가슴팍을 쓰다듬었다. 얼마 없는 매끈한 살을 엄지와 검지로 그러모아 쥐면서 유두와 함께 문질렀다.

몸이 민감한 미카엘은 어딜 만져도 좋아했지만, 특히 두피와 유두를 손끝으로 짓이겨 주면 절정에 달해 경련하는 것처럼 허리를 움찔거렸다.

“입 맞추면서 가슴을 어루만지다니. 선생님은 걸레예요.”

데미안은 고개를 뒤로 젖히느라 훤히 드러난 미카엘의 목덜미를 입술로 지분거리면서 물었다.

“너는?”

“저야 당연히 새것이죠.”

미카엘을 아예 제 무릎 위에 앉힌 데미안이 그의 양 허벅지를 제 허리에 감으며 말했다.

“그럼 어디 걸레로 새것 좀 문질러서 더럽혀 볼까.”

살면서 온갖 걸 다 봐서 그런지 데미안은 시시덕거릴 때 빼는 법이 없었다.

미카엘이 작게 웃으면서 데미안의 뒷덜미에 팔을 꼭 감자, 쪼는 듯한 가벼운 입맞춤은 좀 더 깊고 농밀해졌다.

“이번엔 선생님이 저한테 별을 그려 주세요.”

도화지를 고르듯 미카엘의 몸을 손바닥으로 길게 훑은 데미안이 마음을 정한 듯 그의 동그란 엉덩이를 주무르며 답했다.

“그러지.”

* * *

“로다나 교는 로다나 문파 사람들이 창립한 종교란 걸 알고 있나?”

기껏 씻고 나온 몸이 다시 땀과 체액으로 젖어 번들번들해지자, 데미안이 몸을 정화하고는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음식은 이미 차게 식은 뒤였다.

데미안이 머쓱한 얼굴로 앉아 있자, 미카엘이 식은 음식을 도로 냄비에 넣고 데웠다.

“문파란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이죠?”

물에 적신 수건으로 아래를 닦아낸 미카엘이 바지를 올려 입으며 물었다. 데미안은 희고 예쁜 엉덩이 위에 그린 별 낙서가 옷 속으로 숨는 게 좀 아쉬운지 그 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무예에 소양이 있는 자가 문하생을 받아서 만든 유파를 말하는 거다. 보통 한 문파의 수장이 될만한 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무술을 구사할 줄 알아서 그걸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블람은 4천여 년 전 나하무트에서 가장 유명한 도사였다. 그는 로다나 문파를 창설한 뒤 아홉 제자와 함께 백성들을 괴롭히는 요괴와 마귀를 무찌르는 데 힘썼다.

블람과 제자들은 하나같이 용기 있고 공정하며 문파 규율을 준수하여 세간에 평이 좋았다. 또한 많은 존경을 받았다

오죽하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관청보다 로다나 파를 찾을 정도였다.

로다나 파가 세력을 불리며 너무 많은 위업을 남기게 되자, 왕권의 위협을 느낀 왕이 대요괴 하나와 손을 잡고 그들에게 역모를 꾸몄다는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왕이 로다나 파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라고 명하자, 블람은 고작 열여덟 살이었던 막내 제자 나히덴을 기절시켜 은신처에 숨긴 뒤 여덟 제자와 함께 관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후에 의식을 되찾은 나히덴이 스승과 사형들의 시신을 모욕하는 관군과 맞서 싸운 뒤 그 몸을 되찾아 정중히 제사 지냈다. 그러고 나서 문파를 후원해 주었던 부유한 가문을 돌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블람을 신으로 모시지 않으면 그분이 역귀가 되어 돌아올 거라 예언했다.

그렇게 나히덴은 블람의 첫 번째 추종자가 되었다.

실제로 블람은 죽어서 승천하였기에 천계에 오른 뒤 그의 여덟 제자를 거두어 사도로 삼았다.

하지만 블람이 신의 위상에 올라 처음으로 신력을 행사하기도 전에 나히덴은 죽고 말았다. 왕이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내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나히덴에게 지명 수배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나히덴은 무려 5년 동안 비참한 도피 생활을 하다가 블람에게 맑은 물 한 잔을 바치고 처참한 방식으로 자결했다. 사후엔 블람의 부름을 받아 정식으로 그의 아홉 번째 사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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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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