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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마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려야 한다
“욕실로 가지.”
데미안은 고양이 소리에 어울리면서 제 품위를 깎아 먹는 대신 아예 무시하기로 했다.
애초에 사랑하는 이에게 100% 맞춰 주는 건 신이라도 불가능했다. 데미안을 애지중지하는 유리시아조차 그만 보면 잔소리해 대지 않던가.
“침실로 가야죠.”
“이미 많이 했잖아.”
“선생님, 저 아직 발기도 안 풀렸어요.”
애초에 네 건 실컷 싸도 안 풀리잖아.
데미안은 그의 기이한 성기를 탓하는 대신 다른 말을 끄집어냈다.
“난 잠이 와서 씻고 자야겠는데.”
“선생님, 왜 저하고 섹스만 하면 졸려 하시는 거예요? 저랑 하는 게 그렇게 지루하세요?”
지루는 아니지. 발기한 게 죽지 않을 뿐. 안 되겠다. 너무 졸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어.
데미안은 흐리멍덩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가로젓고는 두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하지만 뜨뜻하고 끈적거리는 설탕물이 피로한 영혼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수마가 그를 안온한 잠으로 이끌었다.
좋지 않아.
이런 식으로 의식을 잃는 건 정말 좋지 않았다.
“나도 자고 싶지 않아.”
“그럼 자지 마요.”
“나도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나만 두고 자지 말라구요.”
데미안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카엘의 정액이 묻은 탓에 손바닥에선 고소한 우유 냄새가 났다. 잠이 솔솔 오게 하는 데운 우유 냄새가.
“안 되겠군.”
데미안은 성력을 모조리 끌어내 아파트 주위에 그 누구도 뚫지 못할 강력한 결계를 펼치고는 두 손으로 미카엘의 어깨를 짚었다.
“미카엘.”
미카엘은 이미 토라진 얼굴이었으나 데미안이 부르니 그를 쳐다보긴 했다.
“왜요?”
“난 잘 테니 너 혼자 해라.”
데미안이 휘청거리면서 침실로 향하자, 미카엘이 경악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네? 잠, 선생님! 진짜로 주무시겠다고요? 아니, 씻지도 않으시고요?”
“그래, 그래. 내 몸을 유용하게 써라. 뭐든 허락해 줄 테니.”
우뚝 걸음을 멈춘 데미안이 갑자기 흉흉한 눈빛으로 절 노려보자, 미카엘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절대로 겁먹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절대로 아파트 밖으로 나가지 마라.”
“알았어요.”
“누가 불러도 절대로 나가지 말고.”
“전에도 이야기하셨잖아요. 알았다구요.”
기어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 데미안이 두 눈을 굳게 감자, 그의 허리 위에 올라탄 미카엘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두툼한 이불을 손바닥으로 괜히 투덕투덕 두드려댔다. 하지만 데미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너무해요, 선생님. 자지를 세운 채로 방치당하는 제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정말로 잠이 들었는지 데미안이 색색거리는 낮은 숨소리를 내자, 아래쪽 이불을 조금 걷어 올린 미카엘이 그의 다리 사이에 바짝 하체를 들이밀었다.
정말로 삽입 중인 모양이었다.
졸린다고 몸만 내주고 자 버리는 스승이나 하란다고 진짜로 자는 사람에게 박는 제자나 정말 같은 깃털을 지닌 새들이 아닐 수 없었다.
* * *
거의 2시간이 지나서야 데미안을, 아니, 데미안의 몸을 놓아준 미카엘은 깨끗하게 몸을 씻고 나와서 가운을 걸쳐 입었다. 새 옷을 꺼내 입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데미안이 일어난 뒤 몇 번 더 정사를 치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두 눈을 감은 채로 신음하는 데미안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미카엘은 역시 잠들지 않은 그와 하는 게 가장 좋았다.
‘같이 살게 되면 집에서 내내 가운만 입히는 게 좋겠네.’
옷은 하나하나 벗기는 게 너무 귀찮았다.
누군가는 옷을 벗기는 작업 또한 하나의 묘미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데미안처럼 멋지고 근사한 몸은 옷 따위로 감춰 두는 게 죄악이었다. 가운은 허리끈만 풀면 바로 알몸으로 만들 수 있으니 데미안에게 딱 맞는 옷이었다.
데미안이 일어나면 먹일 토마토 비프 스튜와 매콤한 폭찹 스테이크 요리를 하면서 미카엘은 짬짬이 바닥 청소를 했다.
생전에 왕자였던 몸이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걸레질하는 모습이 무척 안되어 보였으나 자업자득이었다. 미카엘은 다른 사람이 자기 공간을 침해하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가정부조차 들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의 공간을 침해하고, 어지르고, 침대를 독차지해도 되는 사람은 데미안뿐이었다.
그 데미안은 현재 더러워진 몸을 한 채 미카엘의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어차피 그는 추위를 타지 않을 테니 미카엘은 그에게서 이불조차 빼앗아 버렸다. 그래서 데미안은 지금 나신이었다.
‘저대로 조각상으로 만들어서 영원히 남겨 두고 싶네.’
요리하면서 그리고 청소하면서 간간이 고개를 돌려 보기 위함이었다.
미카엘은 강인하고 위압감 넘치면서도 자애로운 데미안을 진심으로 숭배했지만, 그의 신이 남창처럼 정액으로 더러워진 걸 볼 때마다 기이한 희열을 느꼈다. 아무도 더럽힐 수 없는 고결한 성지를 흙발로 짓밟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갈망하는 이에게서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는 건 비단 미카엘뿐만이 아니었다.
데미안은 언제나 미카엘에게 다정하고 관대했지만, 이따금 그를 목 졸라 죽여 버리고 싶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미카엘은 겁도 많은 데다 눈치도 빨랐기에 그 찰나의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데미안은 고작 그 하나 때문에 천년 넘게 고통받았고 몇 번은 미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미카엘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면서도 끔찍하고 증오스러울 거다.
미카엘이 없었을 땐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했던 그가 고작 몇 시간 잠드는 걸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미카엘이 정말 소중하면서도 그가 거슬려 미칠 지경일 거다. 차라리 꿀꺽 삼켜서 자기 몸속에 숨기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가스 불을 줄인 미카엘은 데미안이 신전에 갈 때 입을 새 셔츠와 바지를 가져와 침대 바로 아래에서 다리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다림질은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이것만은 한 살 미카엘이 익힌 기술이었다.
“선생님은 정말 다정하시죠…….”
결국 데미안의 몸에 상처 내고 정액을 뿌려서 영역 표시를 하고 마는 자신과 달리 살의와 분노를 끝끝내 삼키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절 바라보는 데미안이, 미카엘로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데미안이 그저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면 미카엘은 오히려 그를 의심하거나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무뢰한 주제에 말이에요.”
하지만 데미안은 싫증도 느끼고 짜증도 내는 보통 사람이었다. 미카엘이 일부러 못된 짓을 할 때마다 일순 넌더리가 난다는 얼굴을 하고 마는, 끝내주게 잘생긴, 그저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데미안의 한결같은 순애는 타고난 성정에 따른 것도, 축복처럼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의 헌신과 인내, 그리고 희생으로 빚어진 산물이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고통받고 자란 것을 압착기로 잔혹하게 꽉 짜냈으니 당연히 달고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신들조차 불순물이 들어가 오히려 오묘한 풍미를 지니게 된 순애를 탐낼 정도였다.
“하지만 제 것이죠. 오직 제 것.”
셔츠와 바지를 깔끔하게 다려 놓은 뒤 미카엘은 무릎으로 기어가 데미안의 얼굴에 쪼는 듯한 입맞춤을 퍼부어 댔다. 데미안은 그 성가신 애무에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으음. 강아지…….”
왜 자꾸 강아지를 찾아. 당신의 고양이인데.
심통이 난 미카엘은 일부러 데미안의 귓가에 대고 야옹 하는 소리를 냈다. 데미안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지만, 그 소리를 듣고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미카엘은 한순간 넋을 놓고 말았다. 꼭 승천하는 남신 앞에서 배례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이기적이었기에 고결한 이가 홀로 저 하늘에 올라가게 두지 않았다. 두 손으로 데미안을 꽉 부여잡은 채 그의 신성한 입술을 핥고 혀를 빨면서 음란한 행위를 해댔다.
“……성가신 새끼.”
그 끈덕진 애무가 성가셨는지 마침내 데미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대편으로 홱 돌아누웠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본심이었다.
입가가 침 범벅이 된 채 멍하니 데미안을 바라보던 미카엘은 부지불식간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사이 영혼이 단련된 덕분인지 미카엘은 이 냉담한 데미안이 너무 좋았다!
“응?”
조금 더 치근덕거리기 위해 아예 데미안의 몸을 침대 삼아 그 위로 기어 올라간 미카엘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는 이불을 끌어 그의 몸을 덮어 주었다.
데미안이 의식을 잃는 걸 경계하는 건 주변에 그를 노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강한 영혼을 감지하는 법을 배운 후 미카엘은 이토록 많은 영체가 주변에 널려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데미안은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을 보러 온 이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먼저 다가올 수도 없는 이들이니 주위를 맴도는 영체들을 크게 의식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으로 강한 영체는 눈여겨보고 경계해야만 했다. 이 건물 옥상에 있는 영체 두 위(位)가 그에 해당했다.
아무래도 그들은 목적이 있어 찾아온 손님인 모양이다. 다른 영체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데 두 영체만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
“그 위에 누구십니까?”
데미안은 아파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을 뿐, 밖에 있는 사람을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하진 않았기에 미카엘이 창밖으로 살짝 고개만 내민 채 크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옥상 쪽에서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한 살!”
역시나. 미카엘이 예상한 대로 영체 둘은 나히덴과 그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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