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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74화 (7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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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그 썰매 개의 어린 주인은 미카엘이란 이름의 소년이었어.”

데미안이 툭 던지듯이 말을 꺼냈다. 미카엘은 그게 술집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연장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어렸지만, 아버지가 노쇠한 개를 몰래 버리고 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지. 만일 그가 매일 제브가 아무런 고통 없이 살다가 천국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난 그 개를 구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 소년의 이름은 미카엘이었고, 심지어 유리시아의 신자였다.

단지 그 이유로 데미안은 죽어 가는 개를 데리고 와서 죽을 때까지 그의 수발을 들어 주었다.

“설마 세상의 모든 미카엘에게 친절하신 건 아니죠?”

고작 자기 이름 따위에 목을 맨 데미안에게 자책감을 느낀 미카엘이 일부러 얄궂은 어조로 물었다.

“유리시아 신도인 미카엘에게 약한 건 사실이지.”

“만약 그가 아주 개새끼면 어쩌시려구요?”

“네 얘기인가?”

“선생님! 전 아주 개새끼까진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약간 개새끼니까.

데미안은 고개를 주억거린 후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몇 대 두들겨 팬 후에 개명하라고 해야지.”

데미안이라면 정말로 그렇게 할 것 같아서 미카엘은 그의 집요한 애착을 걱정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 개는 이미 늙고 노쇠해서 오래 버티지도 못했어. 그러니 내가 그의 수발을 들어 준 건 고작 2년 정도야.”

“그런데도 제브가 선생님의 사도를 자처할 정도면 함께한 2년이 정말 뜻깊었나 보네요.”

“내가 마약을 줬거든.”

“네?”

뭘 줬다고?

데미안은 담담한 얼굴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께서 그러지 말라고 하시더군. 왜 말 못 하는 미물에게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약물을 사용하는 거냐고. 그건 펠름교의, 그러니까 유리시아의 계명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이야.”

“그래서요?”

데미안은 그 특유의 느물느물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쩌라고, 하고 계속 무시하고 마약을 먹이다가 어머니께 뺨을 맞았지.”

뺨을 때렸다고! 어떻게 저 얼굴을 때릴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미카엘은 그의 얼굴을 봐서 용서 못 할 죄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 자신의 자식을 강간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막말로 데미안이 자신의 남편이나 부인을 강간하더라도 그의 얼굴을 봐서 용서해 줄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런데 데미안이 곧 자신의 남편이자, 부인이지 않은가!

‘데미안이 데미안을 범한다고?’

좋은데? 그 광경을 꼭 눈앞에서 보고 싶다!

진한 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데미안이 이제 지쳤다며 미간에 주름을 세우는 데미안을 살살 달래서 녹여 먹는 걸 보고 싶다! 아니면 힘으로 억누른 뒤에 하는 것도 좋고!

미카엘은 자신의 우상에게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아주 기괴한 성벽의 문마저 열고 말았다.

“아무리 저물어 가는 신이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명망이 높은 분이시라 그런지 손바닥으로 맞아도 엄청나게 아프더군.”

나비 데미안이 굳은살이 박인 커다란 손으로 꽃 데미안의 두툼한 가슴팍을 쥐어짜듯이 아프게 애무하는 걸 상상하느라 미카엘은 뒤늦게 반응했다.

“유리시아가 강한가요?”

미카엘의 취향은 아주 비범했기에 나비 데미안은 사제복을, 꽃 데미안은 기사 제복을 입고 있었다.

데미안을 위해 산 노란 고양이가 그려진 앞치마는 그 옆에서 두 사람을 구경하는 미카엘이 어쩔 수 없이 대신 착용했다.

그가 데미안보다 질투가 덜하다는 말은 정말로 거짓이 아니었다.

데미안이었다면 똑같이 생긴 모습이고 뭐고 누군가가 미카엘에게 손을 대자마자 피부를 모조리 벗긴 후에 머리통을 부숴 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럼. 어머니께 손바닥으로 맞는 게 블람의 창에 찔리는 것보다 더 아플 정도이지.”

미카엘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데미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썹을 확 찌푸렸다. 데미안은 잔소리 폭격에 대비해 조개껍데기 속으로 슬쩍 몸을 숨겼다.

“여덟 번밖에 안 먹였어. 어차피 그 이후엔 개가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기도 하고.”

데미안은 그가 제게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미카엘의 총구―물총이 아니다―는 데미안이 아닌 다른 이를 향해 있었다.

“유리시아께서 진짜 뭘 모르시네요. 법이 바뀐 지가 언제인데요. 이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은 본인 의사에 따라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의료진을 통해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을 수 있어요. 선생님은 의사가 아니시지만…… 어쨌든 불쌍한 제브가 죽기 전까지 덜 고통받길 원해서 그런 선행을 하셨던 거잖아요.”

제브가 불쌍해서라기보다 어린 미카엘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 그런 건데.

“물론이지.”

데미안은 말의 힘이 약해지는 쪽보다 미카엘의 지랄탄을 피하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말로 찍어 누르기 전에 주먹으로 패 버리면 되기도 하고.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셨다고 생각해서 제브가 은인처럼 생각하는 거였군요. 선생님이 자기 임종을 지켜 준 사람이기도 하고요. 저라도 정말 고마웠을 거예요. 개는 특히나 은혜에 민감한 동물이니 더 그랬을 테고요.”

미카엘의 말을 건성으로 듣던 데미안이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글쎄. 역시 마약을 줘서 그런 게 아닐까?”

선생님은 가끔 참…….

미카엘은 자신의 우상을 매몰찬 눈초리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애써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닐 거예요.”

“날 편리한 무료 마약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선생님.”

그래. 앞으로 제브는 질투하지 말자.

미카엘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데미안의 단단한 허벅지를 꼬집었다.

“못되게 굴지 좀 마세요.”

데미안은 가벼이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내가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넌 진작 위장에 구멍이 났을걸.”

그야 그렇지. 저렇게 냉혈한처럼 굴어도 졸졸 따라다니는 이가 한가득한데 데미안이 성격마저 좋았다면…… 아! 정말 끔찍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난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어머니께선 그런 내게 합당한 벌만을 주셨다는 거야. 게다가 옛 계명을 고집하는 여타 신들과 달리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명을 바꿔 주시기도 했고.”

데미안은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미카엘의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말했다.

“당시 시대상 때문에 인식이 좀 안 좋았던 것뿐이야. 인간들이 아편을 널리 보급하면서 중독자가 급격하게 늘던 시기였거든.”

더는 동성애가 죄가 아닌 것처럼, 더는 자살을 업보가 아닌 고통과 절망의 발로로 인식하는 것처럼, 이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 또한 죄가 아니라고.

데미안은 마치 그녀를 두둔하듯이 말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거지. 딱히 유리시아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러니 그분을 원망하지 말라고요?”

미카엘이 날 선 목소리로 묻자, 데미안은 피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다들 날 중심으로 생각해서 탈이지. 너도, 개도, 늙은 고양이도…….”

“늙은 고양이라면 원조 미카엘 말이죠?”

미카엘이 또 뾰족하게 굴자, 데미안이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음. 아까 했던 말을 취소해도 될까? 최선을 다해 착하게 굴어라, 미카엘.”

“아뇨. 저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숨만 쉬려구요.”

데미안은 새초롬하게 대꾸하는 미카엘을 보고 부지불식간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 저 사람…….”

미카엘이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 눈을 크게 뜨자, 덩달아 시선을 길 위로 옮긴 데미안이 이내 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했지?”

섀넌이었다. 그녀는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도 자그마한 과도를 품에 꼭 안은 채 건물 옆면에 어설프게 몸을 숨겼다. 데미안의 말을 듣고도 영 안심이 되지 않아서 결국 제니스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강한 이가 약한 이를 지키는 덴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지만, 약한 이가 약한 이를 지키는 덴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지. 자신의 안위를 포기한 채 싸움판에 끼어들어야만 하니 말이야.”

섀넌은 추운지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한 번씩 아파트 입구를 힐끔거렸다. 그 범죄자 새끼가 나타나 제니의 집으로 향하면 그 뒤를 따라갈 생각인 듯했다.

“정말 용감하네요. 무모하기도 하고요.”

“그래. 체격 차가 있으니 칼 대신 총을 들고 왔다면 좋았을걸. 나중에 슬쩍 총을 한 자루 찔러 줘야겠어.”

왜 선한 사람에게 살인을 권유하시는 건가요.

미카엘은 말없이 데미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미안이라면 악으로부터 무고한 피해자를 구제하는 행위를 한 거니 적극적인 선행이자, 정당 살인이라고 변론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미카엘 또한 그 항변에 동의하기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드디어 나타났네요.”

초라한 외투를 걸친 삐쩍 마른 남자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자, 데미안이 말없이 천칭을 내려다보았다.

“이 천칭이라는 건 정말 불합리한 물건이지.”

천칭은 여전히 애매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지만, 접시가 밑바닥에 닿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건 죄인이 인정한 자신의 죗값과 신이 매긴 죗값, 그리고 피해자가 생각한 그의 죗값, 그 총량을 측정해서 기울거든.”

미카엘의 흰 손목을 끌어당긴 데미안은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천칭 위에 올렸다.

“그 말은 결벽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지옥에 떨어지기 쉽다는 뜻이지. 만일 그가 작은 죄를 짓고도 죽을 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그의 죄는 무겁게 측정될 테니까.”

채앵!

천칭이 빠르게 한쪽으로 기울자, 금속으로 된 접시가 바닥을 내리찍으며 섬뜩한 금속음을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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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많이 늦었습니다, 단해입니다.

혹시 연재를 오래 쉬게 되면 꼭 챕터를 마무리한 뒤에 쉬다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서 챕터 연재 도중에 길게 쉬게 되었습니다.

기다리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고, 또 기다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ㅠㅠ

저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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