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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난 원래 죄인을, 아니, 인간을 혐오했어. 어머니께서 날 그릇된 길로 이끄신 게 아니라 원래 내게 문제가 있었는데 그나마 교화되어서 이 정도가 된 거라고.”
솔직히 말하면 데미안은 그들의 동정이 그리 기껍지 않았다.
내 입에 잘 맞아서 잘만 먹고 있는데 “세상에, 당신 어머니는 정말 나쁜 분이네요. 어떻게 당신에게 고기만 먹이실 수가 있죠? 건강에 좋은 채소도 먹여야죠.” 하고 탓하는 걸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거기에 대고 “나 고기 좋아해. 삼시 세끼 고기만 먹어도 괜찮아.” 하고 대꾸해 봤자, 두 미카엘은 그저 그를 눈물겨운 효자로 볼 뿐이다.
“선생님, 그런 식으로 자학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분이에요.”
“아니, 난 개자식이야. 어머니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난 그냥……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데미안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자, 미카엘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선생님이 정말로 유리시아를 은애하신다면 왜 그런 다짐을 한 거죠?”
“첫 번째 이유는, 그래. 지옥에 떨어진 그를 완전히 되찾기 위해서지. 하지만 두 번째 이유가 복수심인 건 아니야.”
유리시아가 말한 적 있다.
때로 블람처럼 신의 자질을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고.
그들은 선지자의 희생으로 꽃을 피운 후 유혹적인 향기로 많은 추종자를 이끌어 순교라는 이름의 죽음으로 등 떠민다.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지는 이들은 머리가 깨지는 순간에조차 행복하게 웃으며 그들의 신을 위해 기도한다.
신의 찬란한 광영을 위해.
그의 영원불멸한 위광을 위해.
「신이 많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면…… 그렇다면 어머니. 신과 악마는 대체 무슨 차이입니까?」
「사람은 휘청이는 존재이기에 단단한 기둥에 자연히 몸을 의지하려 하지.」
어쩐지 유리시아는 어리석은 어린아이를 바라보듯이 데미안을 응시하며 답했다.
「그러니 신은 그저 존재할 뿐 먼저 다가가지 않는 존재이다. 하지만 악마는 자신을 추종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그러니 그는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존재이다.」
「어머니의 말씀대로라면 악마보다 신이 더 위험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만.」
비틀린 웃음을 입가에 건 유리시아는 부채로 우아하게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그래.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이지. 웃지 않아도 향기를 풍기는 존재이며, 살갑게 굴지 않아도 사랑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난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데미안은 생전에 그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을 입안에서 읊조리며 굳은 얼굴을 했다.
사창가의 선생님들, 용병단의 동료들, 의붓동생들, 미카엘, 성기사단 단장, 은빛 개…….
순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데미안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건만 그에게 목을 매다 실제로 밧줄을 목에 건 이들도 떠올랐다.
「난 네 형제를 그만둘 거야.」
「형제를 그만두겠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미카엘.」
그가 만난 두 번째 미카엘 또한 떠올랐다.
「난 이제 어머니의 명령을 받지도 않을 거야.」
「너 감히 유리시아를, 네 창조주를 배신하겠다는 거야?」
미카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넌 왜 어머니를 감싸는 거야?」
「감싸는 게 아니야.」
「넌 어머니 때문에 망가졌어. 그래서 제대로 사고할 수 없게 된 거야.」
「망가진 건 내가 아니라…… 씨발, 미카엘! 뭐 하는 짓이야!」
데미안은 황금빛 날개를 자기 손으로 찢어 내려는 미카엘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의 손목을 거세게 부여잡았다.
「넌, 너는 날 사랑하게 된 거야. 그래서 날 중심에 놓고 생각하게 된 거라고! 하지만 난 네 중심에 설 자격이 없어. 난 그 정도로 대단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 당시만 해도 미카엘은 그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 거친 몸싸움 끝에 데미안을 두 팔로 제압했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왜냐하면 넌 징그러운걸.」
「그래,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치지. 그래도 네 중심에 유리시아가 아니라 내가 놓이게 된 건 사실이잖아.」
데미안은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대천사를 노려보았다.
「여태껏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를 의심해 본 적 있었나? 아니잖아. 날 만났기 때문에 그분을 의심하게 된 거잖아.」
혼란스러운 눈으로 데미안을 내려다보던 미카엘은 고집스럽게 입매를 굳히며 아니야! 하고 소리쳤다.
「제발 어머니를 저버리지 마라. 난 이미 너 같은 이들을 많이 봤어. 고작 나 하나 때문에 가족을, 연인을, 나라를, 신념을, 그 모든 걸 내던진 이들을 많이 봤다고. 난 신이 되고 싶지 않아, 미카엘. 그러니 제발 날 추종하지 마.」
데미안은 그를 말리기 위해 온몸을 뒤틀어 댔지만, 미카엘은 그의 양어깨를 무릎으로 짓누른 채 기어이 자기 날개를 찢어 냈다.
「난 널 추종하지 않아. 하지만 어머니가 널 박해해서 화가 나.」
「씨발, 미카엘! 난 어머니께 박해받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우린 그저 계약대로……,」
미카엘의 날개에서 뚝뚝 떨어진 붉은 피가 얼굴을 적시자, 데미안은 공포까지 느꼈다.
눈앞에 있는 이가 아닌 그 자신을 향한 공포였다.
대체 난 뭐야.
내가 대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지?
「미카엘! 돌아와!」
「하리엘이야! 날 이제 하리엘이라고 불러!」
마치 공물을 바치듯 피에 물든 금빛 날개를 찢어 데미안의 발밑에 내던진 미카엘은 피범벅이 된 손으로 금빛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난 이제 너를 아프게 하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거야.」
두 눈을 꼭 감은 미카엘은 악마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도하고는 데미안을 떠나가 버렸다.
「그 아이의 마지막 기도는 데미안이 행복해지기를, 이었단다.」
멍한 얼굴로 유리시아 앞에 무릎을 꿇은 데미안은 꼭 죄인처럼 고개를 떨궜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난…….
난 그 누구도 부추긴 적이 없다고.
「정말 대단하구나, 데미안. 기어코 1세대 천사마저 타락시키다니. 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거니?」
입안에 맴도는 항변과 달리 데미안은 검은 눈동자를 일그러뜨리며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제가 모두 잘못했습니다.」
유리시아의 비난은 합당했다.
설령 데미안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도 그는 언제나 파란을 일으키고 분쟁을 조장했으니까.
「언젠가 내가 널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된다면.」
두 눈을 굳게 내리감은 데미안은 고상한 목소리에 담긴 비난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땐 날 이 자리에서 끌어 내려 주렴. 적어도 내가 신으로서 사라질 수 있도록 말이야.」
유리시아는 인간이 휘청이는 존재라고 했지만, 데미안은 심지어 어린 연인을 잃었을 때조차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자신을 채찍으로 후려치며 자학할지언정 누군가에게 구원을, 그리고 자비를 바라지 않았다.
「그럼 전 어머니께서 절 사랑하실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패륜아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데미안에겐 신앙심이 없었지만, 유리시아를 만난 후 어째서 인간이 신에게 매달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시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데미안은 자신에게 휘둘리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초연한 그녀를 신으로서 은애했다.
「내 언젠가 너를 호수천신으로 삼아 그 광증을 통제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렴.」
그렇기에 자신만만하게 미소 짓는 그녀를 설령 신으로서 신봉하진 못했을지언정 우러러본 것이었다.
「아들아.」
그렇기에 데미안은 제게 다정히 입 맞춰 주는 유리시아를 바라보면서 이상야릇한 외로움을 느꼈다.
「널 정말 사랑한단다.」
붉은 피로 물든 유리시아의 입술을 바라보면서 데미안은 기괴한 쓸쓸함을 느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선 이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올려다보지 않는 이라곤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날 동정하지 마라, 미카엘.”
데미안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금색 고양이만이 그나마 그를 깨물고 할퀴어 줄 따름이었다.
오직 그만이 꼬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잔소리를 삑삑 해 줄 따름이었다.
“그분은 내게 채찍질을 가할 때조차 날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데 넌 긍지를 갖고 일하는 나를 그저 비참하게 만드는군.”
믿었던 한 사람마저 절 올려다보려 하니 자연스럽게 데미안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저는…….”
미카엘은 반사적으로 사과하려다가 입술을 꾹 깨물어 남은 말을 목 안으로 삼켰다.
“저는 당신에게 순애를 바친 사람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런 제가 당신 편을 들어준 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두 눈을 부릅뜬 미카엘이 매서운 어조로 반박하자, 데미안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언젠 패륜아라더니. 왜 갑자기 효자 노릇을 하려 드는 건데? 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냐고!”
아, 이 미카엘은 ‘그’ 미카엘과는 다르지.
이 미카엘은 말로만 데미안을 추종할 뿐 속으로는 그에게 욕정이나 품는 변태 같은 애새끼였다.
말로만 데미안을 신으로 추앙할 뿐 속으로는 그를 온갖 방법으로 능욕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되바라진 연인이었다.
“나한테 사과해.”
손가락으로 툭 튕기기만 해도 죽어 버릴 정도로 약한 주제에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게 퍽 우습고 깜찍해서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어머니보다 날 우선하겠다고 약속한 뒤에 나한테 사과하라고!”
해야지, 그럼.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줘야지.
빠르게 웃음기를 감춘 데미안이 바로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너야.”
“세상 그 무엇보다 날 가장 우선하겠다고 약속해.”
“세상 그 무엇보다 널 가장 우선할 거야.”
미카엘은 남은 화풀이를 하듯이 데미안의 유두를 꼬집어 댔지만, 댓 발 나온 입술은 다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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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은날빛 님과 briliance 님, 그리고 오렌지청 님께 로맨스 노블레스 재미있게 보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라고 딱지 15개씩 보내드렸습니다.
절 지켜보시는 것만큼 저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흐흐흐... [?!]
농담이고요. 항상 힘이 되는 댓글 남겨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