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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소리 없이 발사된 총알처럼 가볍게 건물 꼭대기에 오른 두 사람은 빠르게 건물 사이를 뛰어넘어서 섀넌이 알려 준 곳으로 향했다.
눈 밑에 점이 있는 여성, 제니스는 돈을 아끼고 아껴 간신히 가게의 쪽방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치안이 좋지 않은 뒷골목에 자리한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눈으로 층수를 따져본 뒤 목적지의 창문 위치를 먼저 파악해 둔 데미안이 맞은편 건물 옥상에 선 채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
데미안 곁에 선 미카엘이 그를 따라 길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죄인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요?”
“그래.”
“아직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시간이라 바로 오진 않을 것 같은데…….”
데미안의 팔짱 안으로 억지로 머리를 집어넣은 미카엘이 기어코 그의 양팔 사이에 안기면서 빙긋 웃었다.
“절 안고 입맞춤해 줄 시간은 충분한 것 같지 않나요?”
데미안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발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섬세한 눈썹을 움찔한 미카엘이 시무룩한 얼굴로 거리를 벌리고 서자, 데미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금방 처리할 테니까. 착하지?”
꼭 가게에 들러 찻잎을 사고 돌아가자는 것만큼이나 가벼운 어조였다. 애초에 데미안은 죄인에게 찻잎만큼의 가치도 매기지 않겠지만.
“그래. 이참에 인간의 육신을 다루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두는 게 좋겠어.”
데미안은 꼭 고양이가 물고 뜯을 만한 장난감을 고르는 것처럼 얕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가 지은 죄를 보여 줄 테니 네가 그자에게 합당한 벌을 주도록 해.”
“그래도 되나요?”
“이제 네가 나의 사도가 되었으니 신의 율법을 따르기 위해 한 행동은 더는 인과율을 따르지 않아.”
데미안은 근사한 웃음을 입가에 건 채 서늘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런데 쉽지 않을걸. 그자는 아직 죽을죄는 짓지 않았거든.”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한다는 점에서 데미안은 강간죄와 살인죄를 같은 선상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신 대부분은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씨발 새끼가 제니스를 죽도록 두들겨 패고 강간하더라도 그를 죽여도 좋다는 신의 허락은 떨어지지 않는 거지.
뭐, 오히려 좋다.
데미안은 사람을 죽이는 것도 잘했지만, 그가 스스로 죽고 싶게 만드는 건 더 잘했으니까.
이제 그 잔혹한 고문 방법을 순결한 제자와 논의할 시간이었다.
“인간을 죽이는 건 쉬워. 하지만 고통을 주는 건 어렵지.”
“망치로 진딧물의 팔만 부러뜨리는 것처럼요?”
“그래. 잘 아는군.”
몸이 급속도로 강해지면서 미카엘은 주변 사물을 건드리는 것도 조심하게 되었다. 특히 사람과는 되도록 얽히지 않으려 애썼다.
바위도 쉬이 부술 수 있는 손이라면 볼펜은, 책상은, 유리컵은, 사람의 손가락은 더 쉽게 부서뜨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 적어도 2년 안에는 승천하게 될 거야. 지상에 머물기엔 내가 지닌 힘과 존재감이 너무 강력해졌거든.」
비로소 미카엘은 신에 필적할 정도로 강한 데미안이 평소에 힘 조절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가 어째서 자신의 몸에 잇자국 내는 것조차 조심했는지도 말이다.
“우선 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든 뒤에 벌을 내리도록 하지. 사람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거든.”
“입을 막는 거랑 어떤 거요?”
어쩐지 데미안은 잠시 머뭇거리고는 슬그머니 말을 고쳤다.
“……세 가지가 있는데.”
왜 순간 주춤했던 거지, 하고 의아해하던 미카엘은 이어진 말에 슬며시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하나는 성대를 부수는 거고, 다른 하나는 폐에 구멍을 내는 거지.”
아, 애초에 입을 막는 방법 따윈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으셨구나.
‘선생님은 왜 그렇게 폭력적이신 건가요. 그 머릿속엔 피와 살점이 튀지 않는 평화적인 방법 따위는 없는 건가요?’
미카엘은 새파란 눈동자에 속마음을 가득 담아 데미안에게 보냈다.
“손바닥에 입술이 닿으면 기분 나쁘니까.”
데미안의 조악한 변명은 오히려 미카엘에게서 큰 호응을 얻었다.
“네. 그건 저도 기분이 나쁘네요. 그냥 앞으로도 성대를 부수거나 폐에 구멍을 내시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내 제자지.
데미안은 흐뭇한 눈빛으로 미카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그가 여태껏 저질러 온 짓들과 그가 앞으로 행할 죄를 보도록.”
금빛 천칭을 옥상 난간 위에 내려놓은 데미안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미카엘의 두 눈을 덮었다. 그와 동시에 어떤 이의 모습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릴 땐 남동생을 심각하게 구타하고, 소년이 되어선 좋아하는 여자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성년이 되어선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붓고 돈을 뜯어 가고.
그러다 점점 멀쩡한 사람들이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자, 사창가를 전전하며 최하층 계급의 여자들을 푼돈으로 사서 때리고, 강압적으로 관계를 맺고.
가장 만만한 창녀였던 제니가 가게를 통해 더는 그와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달하자, 그녀에게조차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그는 기어코 부엌에서 칼을 챙겨 들었다.
“아니, 저게 왜…….”
발간 입술을 세게 깨물던 미카엘이 허탈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말로 저게 죽어 마땅한 죄가 아니라고요?”
“그래.”
데미안이 금빛 천칭을 손에 들자, 좌우 균형을 맞추던 접시가 바닥에는 닿지 않을 정도로 애매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제니스가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신벌이 내려질 거야. 하지만 그는 그저 다치기만 하고 말겠지. 신이 보았을 때 제니스는 아주 선한 이는 아니기에 따로 보상을 받지도 못할 테고.”
그나마 섀넌을 도와준 적이 있어서 위험에서 한 번 벗어나게 해 주는 거라고, 데미안은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야.”
데미안은 검지로 보기 좋은 입매를 쓸면서 유의미한 어조로 물었다.
“어차피 그가 벌을 받을 거라면 미리 받아도 되지 않나? 그러니까 제니스가 안 좋은 일을 겪기 전에 말이야.”
딱.
한쪽 접시 위에 검지를 올린 데미안이 그것을 강제로 바닥에 내리찍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도 늘 나더러 성질이 너무 급하다고 하셨지. 하지만 어쩌겠나. 난 천칭이 기울기만을 기다리는 천사가 아닌데.”
“알아요. 멋져요. 아, 그런데 죽이면 안 된다고 하셨죠?”
“그래.”
미카엘을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술 앞에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음. 이런 건 어떨까요? 성대를 부순 후에 안구를 제거하고 팔다리 근육을 잘라서 제대로 일할 수도 없는 몸으로 만드는 거예요. 보아하니 가족이 부유한 것 같지도 않았으니 자연히 빈곤층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다 그가 복지 혜택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하지? 요새 이 나라에서 빈민층을 구제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던데.”
미카엘은 다시 고민하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혹시 그를 다른 나라로 빼돌리는 것도 가능하나요?”
“그럼.”
“그렇다면 신원을 알아볼 수 없게 지문을 지지고 얼굴에 화상을 입힌 후 치아를 모조리 박살 내고 나서 아주 먼 나라에 홑몸으로 떨어뜨려 놓죠. 그럼 밀입국자로 취급당해서 아무런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치이다가 그 와중에 죽게 될 거예요.”
“기발한 생각이군.”
데미안은 참으로 기특하다는 듯 어린 제자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추운 극지방에 알몸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한 방법일 테고…… 아! 식인 풍습이 있는 원시 부족에 식량으로 제공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죽기 전에 좋은 일 하나는 하고 가겠군.”
참으로 불건전한 대화가 근면하고 성실한 태도로 오갔다.
“그런데 선생님, 평생 그런 광경을 보고 살아오신 건가요?”
때때로 데미안은 걸음까지 멈추고 누군가에게 몇 마디 경고하곤 했다. 작게는 어머니께서 이미 알고 계시니 더는 사탕을 훔치지 마라. 크게는 그녀에게 한 번 더 그런 짓을 했다가는 지옥에 떨어질 거다…….
데미안이 죄인의 머릿속을 볼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여태껏 봐 왔던 광경을 한 번 공유하고 나자,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죄인들이 저런 더럽고 추악한 죄를 저지르는 걸 보면서요?”
미카엘의 분노는 죄인에게서 곧 신에게로 옮겨 갔다. 하지만 데미안은 담담하게 대꾸할 따름이었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신께선 어떻게 그리 잔혹하실 수 있는 거죠? 선생님은 죄인도 아닌데!”
미카엘은 하얀 이를 악문 채 하늘을 노려보다가 슬픈 눈으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너무 가여워요…….”
데미안은 제 머리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카엘, 난 괜찮아.”
“괜찮지 않아요. 매일 그런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사는 게 괜찮을 리 없잖아요.”
미카엘은 자신의 미약한 손길에도 바로 머리를 수그려 주는 데미안을 부드러이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괜찮지 않으니까 죄인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신 거잖아요…….”
데미안은 단 한 번도 동정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다. 천사들은 그를 공경했고, 악마들은 그를 두려워했으니까.
「난 오늘부터 하리엘이라는 이름으로 살 거야.」
「그건 네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아, 그러고 보니 또 다른 미카엘이 있었지. 유일하게 데미안을 동정해서 최초의 악마가 된 대천사가.
「왜? 할 수 있어. 난 이제부터 하리엘이야. 그러니까 날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미카엘?」
「그래! 왜냐하면 네가, 넌, 너는 그 이름으로 날 부를 때마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징그러운 얼굴을 하잖아!」
「징그러운 얼굴이라니.」
사랑이 뭔지도, 미추(美醜)가 뭔지도 모르는 그는 그저 데미안과 그의 어린 연인을 동정해서 신을 저버렸다. 그를 생각할 때면 데미안은 잊은 것만 같았던 희미한 죄악감을 떠올렸다.
그래, 항상 미카엘이 문제지. 미카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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