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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선생님, 제브가 무척이나 잘 따르는 것 같던데 대체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 건가요?”
미카엘이 예쁘게 웃으며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데미안은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나머지 속내를 감추기 위해 활짝 웃는 미카엘을 보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내 기분이 좆같으니 알아서 기분을 맞춰 달라는 뜻인가.’
데미안은 두 손으로 연신 미카엘의 머리칼과 하얀 뺨을 쓰다듬으면서 당연히 1순위는 너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강한 인연은 아니야.”
현재 응징의 천사장인 제브는 생전에 추운 지방에서 썰매를 끌던 개였다. 하얀 털에 검은 털이 섞인 중형견은 새파란 눈동자만큼이나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주인에게 복종하고 우두머리 개에게 충성하는 온순한 개였다.
하지만 늑대나 곰 따위가 민가로 내려오면 저희 무리와 함께 공격적으로 덤벼들어 내쫓을 정도로 담대한 면이 있기도 했다.
제브는 인간을 위해 무거운 짐을 옮기기도 하고, 낙오된 인간을 나르기도 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인간을 위해 의사를 나르기도 했다.
그렇게 평생 인간에게 봉사하며 살았지만, 그의 선행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열일곱 살이 되어 더는 거동하지 못하게 되자, 그의 주인은 누가 먹여 주거나 배변 유도를 해 주지 않으면 먹지도, 싸지도 못하는 그를 어린 아들 몰래 하얀 눈밭에 버렸으니 말이다.
평생 충성을 다 바친 주인에게 두들겨 맞은 후 저녁상 국거리로 오르지 않았던 건 제브가 병든 몸이라 그런 거지, 딱히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브가 당시의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별히 불쌍한 최후를 맞은 것도 아니었다.
개나 고양이, 말 같은 동물은 인간의 오랜 동반자이지만, 그들이 가족 비슷한 대우를 받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전까지 가축은 친구라고 부르며 이용하다가도 더는 쓸모가 없어지면 그 몸까지 먹어 치울 수 있는, 참으로 활용도가 높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제브는 그저 그런 시대에 태어난 것뿐이었다.
잘 닦인 도로와 튼튼한 건물 숲 안에서 안전하게 사는 현대 사람들은 과거 인간들의 작태가 정말 끔찍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미안은 과거 인간들이 특별히 현대 인간들보다 더 잔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늘 잔혹했다.
칼을 다루는 방식이, 그리고 칼을 겨눈 방향이 이리저리 바뀌기만 했을 뿐, 인간은 늘 누군가를 쑤셔서 피를 흘리게 하고 자기 발밑에 깔아뭉갰다.
어쩌면 미래 인간들은 과거 인간들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과거를 비난한다는 건 적어도 현재에는 그러지 않는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선생님은 유독 여성에게 약하신 것 같네요.”
“난 약자에겐 약하거든.”
“여성이 약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하지만 자지 달린 것들이 사회적인 약자로 만들었지.”
그 말에 담긴 의도를 파악한 미카엘이 잠시 말을 고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요? 경제권도 생겼으니 말이에요.”
“경제권이 있다는 말이 곧 경제적으로 독립했다는 뜻은 아니지. 남녀 임금 격차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크지 않나.”
데미안의 낮은 목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공격성을 띠자, 미카엘은 그를 자극하지 않도록 말을 아꼈다.
“게다가 여전히 정치엔 손도 댈 수도 없지. 그 말은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여성은 여전히 자지 달린 것들이 휩쓰는 대로 살 수밖에 없단 뜻이야.”
미카엘이 부모란 말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데미안은 남성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
혹시 그의 아버지가 좋지 않은 사람이었던 걸까? 그래서 어머니가 그에게 학대당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봐야 했던 걸까?
미카엘이 짐작하는 바를 알겠다는 듯 데미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자들 손에서 컸거든.”
미카엘은 정갈한 모습으로 식사하고, 품위 있는 손동작으로 차를 마시는 데미안을 보고 분명 그가 귀족 출신일 거라 생각했기에 조금 놀랐다.
“아, 열일곱 살쯤에 공작 가문의 양자가 되긴 했어. 아버지가 공작이셨거든.”
데미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지만, 아마 사생아란 꼬리표 탓에 무척이나 험난한 인생을 살았을 거다. 중세 시대엔 종교의 입김이 가장 강했던 데다 그가 살던 나라는 주로 유리시아를 섬겼으니 말이다.
죄를 지은 건 아버지와 어머니일진대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저 태어났을 뿐인 어린것에게 애먼 손가락질을 했으리라.
“난 용병단에도 몸을 담아 보았고, 공작 각하가 붙여 준 가정 교사에게 교육도 받아 보았고, 성기사단에 입단해 기사의 가르침도 받아 보았지.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값진 가르침을 주었던 건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자들이었어.”
너보다 어린 사람이든, 또래든, 어른이든 함부로 네 몸을 만지게 하지 마라.
네가 얕보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착하게 살아도 된다. 하지만 그 정도로 강하지 않다면 차라리 개자식처럼 굴어라.
사람을 날카롭게 공격하지 마라. 언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방어는 날카롭게 해라. 그래야 네 주머니를 털어갈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선생님들은 가진 것도 없는 손으로 날 정성껏 길러 주었지.”
그들은 살면서 얻은 경험을 데미안에게 나누어 주면서 그를 번듯한 꼬마 신사로 키워냈다.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뒷골목에서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이목구비가 진하고 잘생긴 데미안은 점차 성장해 가면서 탐욕스러운 어른의 손을 피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러니 차라리 사람들이 그의 태생을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예의 바르고 기품 있게 행동하도록 훈육했다.
동네 아이들이 흙바닥에 낙서하며 쓰레기장을 놀이터 삼아 뛰놀 때 데미안은 비록 저가 기성품이지만, 선생님들이 깨끗하게 세탁해 준 정장을 입고 책을 읽었다.
어느 날은 얼굴에 멍을 달고, 어느 날은 손목이나 다리에 붕대를 감는 선생님들이었지만, 그들은 데미안만큼은 손가락에 잉크조차 묻히지 않도록 그가 읽는 신문을 항상 다리미로 다려 주었다.
유리시아가 말한 적 있다.
때로 블람처럼 신의 자질을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고.
그들은 성장하면서 점차 많은 추종자를 이끌게 되지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에 어릴 땐 유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선지자가 그를 알아보고 보호해 주거나 미래로 이끌어 줘야만 했다.
만일 데미안 또한 그런 존재라면 그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봐 준 그 선생님들이 선지자였으리라.
“혹여 손님이 어린 나에게 눈독이라도 들일라치면 선생님들은 몸을 미끼로 해 가며 날 지켜 줬어.”
그러고 보니 데미안은 단 한 번도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성을 창녀라고 부른 적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길에서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보고 성직자들이 굳은 얼굴을 하거나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리는 것과 달리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도.
일반 남자들은 그들을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생각했고, 성직이나 교직처럼 엄격한 윤리 의식을 요구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들을 터부시되는 존재로 생각했다.
하지만 데미안에겐 그들이 인격체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린 데미안에겐 그 선생님들이 양육자이자, 보호자, 그리고 선지자였을 테니 말이다.
“어머님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원활하게 소통하며 지냈나요?”
슬며시 무릎 위에서 내려간 미카엘이 살짝 거리를 두고 앉으며 묻자, 데미안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왠지 상담받는 느낌인걸.”
“상담료는 받지 않을게요.”
미카엘은 혹여 데미안이 거부감을 느끼고 입을 다물까 친근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탓에 상담받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관총에 맞아도 끄떡없는 데미안이라지만, 최근 하도 지랄탄(彈)을 심하게 맞은 탓이었다.
이 정중하면서도 예의 바른 미카엘은 요즘 보기 드문 미카엘이니 만끽할 수 있을 때 듬뿍 즐겨 놔야지.
“어머니와는 별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데.”
“육아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나요?”
“그렇다기보다 그냥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어.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데미안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데다 여러 기예를 갖춘 사람이라서 인기가 많았다. 굳이 몸을 팔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녀와 차라도 한잔 같이 마시기 위해 기꺼이 거금을 내놓곤 했다.
하지만 자신을 황홀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공허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는 매사에 무기력해 보였다.
한때는 수수께끼를 푸는 데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그녀가 뛰어난 추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출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자, 크게 좌절감을 느꼈던 같다.
“추리력이요?”
“플루트를 가르치던 제자와 함께 몇 가지 큰 사건을 해결했던 모양인데, 그때 굉장히 생기가 넘쳤다고 하더군.”
“제자라면…….”
“내 친아버지인 공작 각하 말이야.”
“아아.”
그게 그렇게 된 거군.
미카엘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머님께선 아버님과 계속 연락하며 지내셨나요?”
“아니.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던 모양이야.”
그런데도 공작은 몇 번이나 그녀를 찾아왔지만, 애초에 그는 귀족 영애와 결혼한 몸이었기에 어머니를 거둬 줄 수도 없었다.
당시 왕국은 후궁이나 측실 같은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을뿐더러 반려자에게 순애를 바치지 아니한 이를 심하게 비난했으니까.
오죽하면 이혼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암살자를 보내는 일이 잦았을 정도였다. 그를 죽이지 않는 한은 헤어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어머님께선 왜 갑자기 아버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셨던 걸까요?”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길, 아마 질투 때문인 것 같다고 하더군.”
“질투라면…… 아버지의 부인을요?”
데미안은 희미하게 웃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우리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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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원고표 쿠폰 선물해 주신 아레온 님과 poiumnbv님께 재차 감사드립니다!
두 분이 노블레스 작품을 즐겨 보시는 것 같아서 작게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딱지를 24개씩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노블레스란에서 좋은 작품들 많이 보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힘내라고 응원해 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PS
아앗! 아레온 님껜 보내드렸는데 poiumnbv 님은 아이디가 남은 흔적이 없어서 선물을 보낼 수가 없어요!
제가 아이디를 쿡 찍을 수 있도록 댓글 하나만 부탁드립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