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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미카엘은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꼭 마주 쥐었지만, 오히려 손이 덜덜 떨고 있다는 것만 새삼스레 깨닫고 절망했다.
“그래서…… 그러시려는 거군요.”
미카엘은 배신이란 말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실제로 배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건 그저 응당한 저항일 뿐이다.
“그래.”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 눈을 파르르 떠는 미카엘과 달리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쥔 데미안은 차분한 낯빛이었다.
“겁먹지 마라.”
그는 두려워하는 미카엘을 달래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너 하나 지키지 못할까.”
「내가 너 하나 지키지 못할까.」
어디선가에서 들어 본 적 있는 듯한 말에 절로 미카엘의 눈동자에서 툭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이유 모를 눈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연유가 궁금하진 않았다.
“네, 선생님.”
데미안은 지기 전에 활짝 피는 꽃처럼 아름답게 웃는 미카엘을 보고 멍한 얼굴을 했다가 이내 눈가를 일그러뜨리며 미소 지었다.
“그렇지만, 음, 내가 자리를 비울 때를 대비해 도움이 될 만한 전력을 생각해 봤는데.”
검지로 미카엘의 눈가를 닦아 준 데미안은 자꾸 잠기려는 목을 가다듬고는 애써 태연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개가 네 형제가 될 것 같거든. 어쩌면 나중에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더 들어올 수도 있고.”
“……네?”
“네 생활 반경에 집어넣어도 참을 수 있지, 미카엘?”
“무, 아니, 잠시만요.”
개, 라면 아무래도 제브를 말하는 것 같은데.
미카엘은 순종적인 눈으로 가만히 데미안을 올려다보던 은발의 소년을 떠올리고는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하면 미카엘은 자기보다 어리고 작은 남자를 데미안 곁에 두는 게 영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 알고 지냈으면서 데미안이 그의 이름 한번 불러 준 적 없다는 점 때문에 느릿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제브가 저 다음으로 선생님의 사도가 된다는 말이군요.”
“아…… 그래. 그렇지.”
사실대로 말하면 데미안의 첫 번째 사도는 미카엘이 아닌 제브다.
유리시아가 호수천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냈을 때부터 데미안은 제게 충성하는 개를 사도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물론 제브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양 무릎을 꿇으며 데미안에게 모든 걸 바치겠노라 맹세했다.
‘나중에 말을 맞춰 둬야겠군.’
어차피 그는 데미안이 시키는 건 뭐든지 하니까 미카엘이 첫 번째 사도라고 거짓말하라고 해도 바로 고개를 끄덕일 거다.
당연히 데미안은 그 행위에서 아무런 죄악감도 느끼지 못했다.
인간이 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뭐 미안한 짓이란 말인가. 이제 데미안은 인간도, 제브는 개도 아니지만 말이다.
애초에 데미안이 지닌 죄악감은 희박하기 그지없어서 그의 금색 고양이가 긁어야 그나마 좀 흘러나오는 바짝 마른 수맥이었다.
“아.”
씨, 까지 올라온 욕설이 미카엘을 의식한 듯 도로 목 안으로 넘어갔다.
“칭찬해 줘야 하는데 깜빡했군.”
데미안은 거친 손길로 제 머리칼을 엉클어뜨리고는 미카엘에게 여기로 제브를 불러도 되느냐고 먼저 물었다. 미카엘은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게 싫은 눈치였지만, 데미안이 금방 돌려보낼 거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제브.”
데미안은 쓱 팔짱을 낀 채 몇 분을 기다려 보았지만, 충성스러운 은빛 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도 개 취급해서 선생님이 싫어진 거 아니에요?
미카엘이 눈빛으로 말을 전달하는 신기술을 선보이자, 데미안이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했다.
‘잘해 주면 또 잘해 준다고 지랄했을 거면서.’
데미안은 최대한 무심한 낯빛을 유지하려 했지만, 지나치게 눈치 빠른 미카엘이 자기 멋대로 그의 속내를 읽고는 다다다다 잔소리를 퍼부어 댔다.
“제가 질투 좀 하면 안 돼요? 선생님이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주진 않을까 예민하게 굴면 안 되느냐고요. 그러길래 누가 그렇게 완벽하시래요. 그냥 적당히 잘생기기만 할 것이지, 왜 엄청나게 잘생긴 데다 몸도 좋고 목소리도 훌륭하시냐고요. 그게 바로 원죄예요, 원죄. 그럼 죗값을 치러야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어 가며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것을 퍼부어 대는데 그 기세만큼은 기관총에 맞먹을 정도였다.
아니. 차라리 데미안은 기관총에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당신이 얼마나 매혹적인 독인지. 사람들은 그게 한 방울만 마셔도 몇 분 뒤에 죽는 극독이란 걸 알면서도 기꺼이 마실 정도라고요. 우리처럼 매사에 불안해하고 휘청이는 사람들은 뭐라도 붙잡아야 하는데 눈앞에 선생님 같은 단단한 기둥이 있으면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빨판상어로만 가득한 거지 같은 세상에 거대한 진짜 상어가 있으면 다들 그 밑에 달라붙으려고 하지 않겠느냐고요”
“해도 돼.”
낮은 신음을 흘린 데미안이 그만하라는 의미로 손바닥을 내보였다.
“질투해도 된다고.”
“당연하죠. 나는 진짜 순정이랑 자지랑 다 처음으로 바쳤는데.”
또 ‘나는’이란다. 어쩜 저렇게 뻔뻔하면서도 당당할까. 위정자의 자식이라 그런가.
데미안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미카엘을 바라보다가 그의 금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카엘, 착하지. 이제 그만하자.”
“하나도 안 착한 거 뻔히 알면서 왜 자꾸 착하다 그러세요?”
“계속 주입하다 보면 언젠가 세뇌되지 않을까 해서.”
“아하.”
이해가 가는 말이었기에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브.”
데미안은 두어 번 더 제브의 이름을 부르다가 마침내 인상을 쓰면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고압적이면서도 신경질적인 태도가 묘하게 섹시해 보여서 미카엘은 그가 침대 위에서 자신을 저렇게 막 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데미안이 사양해서 아직 뒤를 내준 적은 없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가 차갑게 화내면서 강간하는 상황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인한 목덜미에 핏대를 세운 채 진한 눈썹을 찌푸린 데미안은 정말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겠지.
물론 미카엘은 순순히 당하지 않을 생각이다. 온몸으로 할퀴고 깨물면서 맞서 싸워야지. 그래야 더 자극적이잖아.
한차례 강간하고 난 뒤 데미안이 죽도록 미안해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얼굴을 할 걸 상상하면…… 와, 젠장. 끝내준다.
지난번에 먼저 포지션을 바꿀 걸 제안하긴 했지만, 아직 그에게 엉덩이를 내줄 엄두는 못 냈는데 머릿속으로 떠올린 시나리오가 어찌나 훌륭한지 절로 의욕이 생길 정도였다.
“선생님, 저한테 박고 싶지 않으세요?”
이게 또 왜 이러지?
데미안은 갑자기 교태를 부려 대는 미카엘을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덮어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생전에 하도 많은 남자들이 지저분한 털이 난 더러운 엉덩이를 들이밀면서 박아달라고 애원해 대서 그런 쪽으로는 영 끌리지가 않았다.
물론 미카엘은 자지만 흉측하게 생겼을 뿐 음낭도, 구멍도 아주 예뻤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미카엘이 어떤 구멍이랑 비교하는 거냐는 둥, 다른 남자 구멍을 몇 개나 본 거냐는 둥, 걸레라는 둥, 온갖 말로 매도할 게 뻔했기에 데미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중세 시대 기사단엔 개인 욕실 같은 게 없었어! 단장급이 아니라면 개인 침실도 없었다고!
데미안의 정당한 항변은 미카엘의 지랄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할 게 뻔했다.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서 힘들어. 그러니 한 살이라도 어린 네가 흔들어야지.”
데미안이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해 사양하자, 그 순간 또 무슨 시나리오를 떠올렸는지 미카엘이 수줍게 웃으면서 그의 너른 가슴팍에 뺨을 기댔다.
“선생님, 다음에 유치원 선생님들이 입는 앞치마 달린 옷 입어 주세요.”
씨발. 적당히 좀 하자.
유치원이란 말 한마디로 모든 시나리오를 파악한 데미안 연출가가 마침내 빨간 경고등을 켰다. 하지만 상대는 그가 날카롭게 지적할 수 없는 거물 작가였기에 최대한 순화한 말로 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카엘, 착하지.”
빨리 세뇌나 되라는 깊은 염원이 담긴 말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데미안 님!”
부랴부랴 나타난 제브는 바로 데미안 앞에 양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이마를 댔다.
“설마 이름을 부르실 줄 몰라서 절 부르는 거란 생각을 못 했습니다.”
꼭 대역 죄인이 왕에게 읍소하는 듯한 모양새에 미카엘은 그가 좀 안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체를 앞으로 굽힌 데미안이 멋진 미소를 보여 주자, 그건 좀 싫었다. 비록 제브는 바닥에 이마를 박고 있느라 그걸 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변명이 길군.”
“서, 선생님!”
데미안이 구둣발로 제브의 머리를 꾹 밟자, 미카엘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개는 발로 만져도 별로 안 싫어하던데.”
데미안은 뭐가 문제냐는 듯 의아한 얼굴을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제브는 개가 아니잖아요!”
제브는 여전히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박은 채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개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데미안은 거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다가 아, 하고 발을 치웠다.
“칭찬하려고 부른 거였지.”
그래놓고 냅다 머리부터 밟았다고?
미카엘이 어이가 없었지만, 퍼뜩 등을 곧게 세운 제브는 밥그릇에 사료를 쏟아붓는 주인을 바라보는 개처럼 데미안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요컨대 우리 주인님이 오늘도 날 위해 먹이를 사냥해 오셨어! 정말 멋져! 하고 말하는 듯한 충성스러운 얼굴 말이다.
아, 어째서 데미안이 자신을 개가 아닌 고양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데미안은 끝내주게 멋지고 강하고 매력적이지만…… 개자식이잖아?
미카엘은 도저히 저런 맹목적인 눈으로 데미안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 순정을 바친 건 바친 거고 객관적인 판단은 객관적인 판단인 거니까.
‘저렇게 나오는 데도 좋다니 말도 안 돼.’
거만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은 데미안이 서늘한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머리를 밟아 준다고…… 아니, 좋잖아!
말없이 눈썹을 꿈틀한 데미안은 냉큼 제브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 미카엘 쪽은 일부러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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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후원해 주신 sophiacat 님께 감사드립니다!
으아, 표지 러프 일러에 대해 주접을 떨고 싶은데... 미카엘 못지않게 잘할 자신이 있는데... 보여 주지도 못하면서 말만 하면 더 궁금하실 테니 참겠습니다ㅠㅠ
나중에 공개하게 되면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