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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전 선생님하고 잠깐만 떨어져 있어도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요.”
그 또한 데미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그와 재회한 후 하루도 빠짐없이 미카엘을 지켜본 거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고통을 참는 데 이골이 난 대천사였고, 상대는 엄살이 어마어마하게 심한 새끼 고양이였다.
손바닥에 못이 박혀도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이는 손가락에 자그마한 가시를 박혔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를 그저 가엾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얼마나 오래 떨어져 있었는지 아세요?”
요즘 요리에 재미를 들린 미카엘이 무언가를 들들 볶기 위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기 시작했다.
재료는 신선한 데미안이었다.
달곰한 설탕을 뿌려도, 짜디짠 소금을 뿌려도, 향긋한 향신료를 뿌려도 가만히 숨죽이고 참는 데미안.
그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미워하거나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겨서인지 미카엘은 요새 부쩍 데미안만 보면 바가지를 긁어 댔다.
“9시간 정도였나.”
데미안은 조심성이 많은 조개처럼 조개껍데기 밖으로 가만히 두 눈을 내민 채 답했다.
“네! 그래요! 9시간이나 못 봤어요! 하루의 3분의 1 이상이나 보지 못한 거라고요!”
이갈이도 해야 하고 손톱도 갈아야 하고 애정과 관심도 듬뿍 받아야 하는 새끼 고양이는, 아니, 어린 연인은 데미안의 담담한 대꾸에 더욱 앙탈을 부려 댔다.
“전 진짜 퇴근하면서 눈물이 날 뻔했는데…… 선생님은 괜찮으셨어요?”
데미안은 그를 천 년이나 기다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앞에서 기다림 운운해선 안 된다.
하지만 온갖 유난을 다 떠는 미카엘을 앞에 두고 있자니 데미안은 세상에서 가장 무심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 선생님 없이는 살 수가 없는데…… 선생님은…….”
아니, 무심한 사람이 맞다.
본심이 그러하지 않았더라도 미카엘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는 거다.
생전엔 그러질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데미안이 더 성심성의껏 마음을 보여 줘야 했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는 거야.”
엄지손가락으로 미카엘의 새하얀 뺨을 쓸면서 데미안은 무거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가 없으면 나도 죽는 거라고.”
미카엘은 아주 잠시 기쁜 얼굴을 했지만, 이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왜 절 보자마자 반갑다는 얼굴을 안 하셨어요? 어떻게 절 앞에 두고 다른 사람하고 막 신나게 대화를 나누실 수 있어요?”
미카엘이 일하는 동안 그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고 말할까. 사실 그를 떠난 적이 없다고 이실직고할까.
아니, 관두자.
자신이 늘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미카엘의 경계심이 누그러질지도 모르니까.
데미안은 그가 항상 준비된 상태이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이라는 든든한 방어벽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는 무의식중에 방심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또 득득 긁으려 할 테고.’
미카엘은 어떻게 자기한테 말도 안 하고 그랬냐는 둥, 자기한테도 눈치를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온갖 이유를 들어 가며 또 들들 볶을 게 뻔했다.
데미안에게 있어 미카엘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때때로 미카엘이 성가셨다.
말랑말랑한 앞발로 입술을 두드려 대면서 입안까지 조사하려 드는 새끼 고양이가, 어디 가느냐고 찡찡거리면서 어디든 따라오려는 어린 연인이,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지금 머릿속에 누가 들어 있냐고 닦달하는 제자가 아주 가끔 귀찮았다.
무려 1천 년 동안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고 혼자 살아온 몸이다.
아무리 그가 소중한 이라고 해도 갑자기 누군가를 24시간 등에 매달고 살게 되었으니 바뀐 일과가 낯설 수밖에 없다.
“선생님, 무려 9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구요……”
데미안은 진심으로 억울하고 슬프다는 얼굴로 웅얼거리는 미카엘을 바라보다가 부지불식간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겨우 9시간 만이다.
백 년도, 천 년도 아닌 9시간만.
그것만으로도 힘들었다고 찡찡거리는 미카엘을 보는 게, 절 귀찮게 구는 미카엘을 보는 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상에 깊이 스며든 미카엘을 보는 게 참 행복했다.
잠깐이라도 그에게서 눈을 떼는 두려울 정도로 행복했다.
‘행복이 지나치면 고통이 되는 줄은 몰랐는데.’
데미안은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심장의 통증을 느끼며 제 가슴께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픈 것도 못 견디고 엄살도 심한 이가 자신 때문에 지옥에서 천 년간이나 고통받았을 거라 생각하자, 바짝 마른 가슴이 부스러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아픔이 유리시아가 내린 시련이 아니라 미카엘이 심은 씨앗이라고 생각하자, 그 괴로움조차 기꺼운 열매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참에 두 가지 일을 빨리 해치워 버리려고 한 거야. 안 그러면 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다른 곳에 더 많이 허비해야만 하니까.”
그녀들에겐 생명과 인생이 달린 일이니 감히 허비라는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데미안은 우선순위가 아주 또렷한 이였다.
그는 편애하는 사도를 위해선 언제든 공명정대하다는 평가를 내다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은 그 어떤 변명도 능숙할 수 있었기에 미카엘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의 옷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전 겨우 5분 늦었어요, 5분. 그런데 어떻게……. 제가 오기 전까지 몇 명이나 선생님께 달라붙던가요?”
“한 명.”
“거짓말하지 마세요.”
데미안은 주먹으로도 잘 싸웠지만, 말로는 더 잘 싸웠다.
주먹으로 때리면 미카엘이 찍 하고 죽어 버릴 테니 손을 들지 못하는 것뿐, 말로는 얼마든지 그를 상대해 줄 수 있었다.
“미카엘. 난 마음만 먹으면 인간들이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어.”
“그럼 저 사람은 뭐였던 건데요?”
데미안은 화가 날 정도로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네가 오는 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졌어.”
데미안은 평범한 대꾸도 낭만적으로 들리게 할 수 있었기에 미카엘은 또 한 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제가 안 끼어들었어도 선생님이 알아서 잘 거절하셨겠죠?”
싱긋 웃으며 네? 하고 묻는 미카엘의 얼굴에선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데미안은 그런 게 통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씨발. 내가 거지새끼로 보이느냐고 해야지.”
미카엘도 저 욕설을 해 본 적 있지만, 데미안이 하니까 꼭 망치로 심장이 꿰뚫린 것만 같아서 절로 손이 바르르 떨렸다.
“서, 선생님. 욕하지 마세요…… 무서워…….”
두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올린 미카엘이 진심으로 두려운 얼굴을 하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데미안이 꼭 어린애를 어르듯이 그를 앉힌 무릎을 위아래로 흔들어 주었다. 과실주를 싫어하는 데도 푸른 열매를 입에 머금은 채 미카엘에게 입으로 먹여 주고 등도 부드러이 쓸어 주었다.
“너한테 한 게 아니야.”
“알아요…….”
이제 제법 단단해진 줄 알았는데 욕 한마디 했다고 겁먹다니.
「씨발. 너잖아!」
「뭐가요?」
「내, 내 구두에…… 씨발, 씨발…….」
그러고 보면 열두 살의 미카엘은 얼마나 강철, 아니, 퀘룸처럼 단단했는지.
「선생님, 그거 알아요?」
「당신은 욕할 때 제일 섹시해요.」
아니야. 거기까지 강해질 필요는 없어.
데미안은 핏덩이 같은 애새끼에게 매일 희롱당하며 치를 떨던 때를 떠올리고는 피곤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결국 그 애새끼에게 순애를 바치게 된 내가 제일 미친놈이군.’
미래를 안다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 스물두 살의 데미안에게, 너는 열 살이나 어린 애새끼 때문에 거세당할 거고, 나중엔 그 때문에 죽을 때까지 순결을 지키게 될 거고, 천 년 넘게 좆같이 구르다가 최후엔 그에게 엉덩이까지 내주게 될 거라고 예언했다면, 데미안은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맨몸으로 구렁텅이에 떨어졌기에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한 사람만을 그리며, 슬픔에 시달리며, 외로워하며 사는 것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데미안은 인간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
천 년 동안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악인을 처단하고 사는 삶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데미안에겐 크나큰 꿈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무도 데미안에게 경고해 주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가 생지옥에 떨어지고 나서도 괜찮았던 건 아무도 그에게 미래를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저 오늘 정말 힘들었단 말이에요.”
바 테이블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는 데다 발까지 쳐진 자리로 옮기자, 미카엘은 좀 진정한 듯했다.
물론 여전히 데미안의 무릎 위에 앉은 채였다.
아까는 그냥 한쪽 무릎 위에 앉았다면 이젠 아예 데미안의 양 무릎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채 그의 뒷덜미에 팔까지 감았다.
‘아예 그냥 섹스하자고 하지?’
데미안은 제 중심부를 깔고 앉은 미카엘을 신선도가 심하게 떨어진 생선 같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심장을 맞대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데 그러지 못하니 좆이라도 맞대고 있어야겠다는 둥 별 개소리를 할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무섭기도 했고요. 만나자마자 그 일을 토로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다른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고…….”
어떤 좆같은 새끼가 감히 널 겁줬단 말이지?
데미안은 절로 험악하게 찌푸려지려는 미간을 곧게 펴며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무서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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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일 오후 5시 7분에 다시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