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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58화 (5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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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남자는 이 술집을 좀 다녔다는 손님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술집을 자주 방문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그가 특출하게 잘생긴 데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몸이 좋아서 단 한 번만 마주쳐도 인상이 깊게 새겨져서 그런 거지.

이 술집에는 부두에서 막노동하는, 소위 성미가 거칠고 주먹질 좀 한다는 사내들도 자주 들락거렸는데, 만약 남자가 그저 번듯한 외모를 지닌 이였다면 누군가 한 번쯤 그에게 시비를 걸었을 거다.

남자는 몇 안 되는 여자 손님의 눈길을 독차지하는 인물인 데다 그들의 눈까지 높이는 주범이었으니 말이다.

잘난 거라곤 하나 없는 남자일수록 열등감을 치졸한 방식으로 표출하니 아마 사내들은 돈도, 지위도, 지식도 필요 없는 맨주먹으로 그를 깔아뭉개려고 했을 거다.

심지어 남자는 나비인지 늘 앳된 얼굴의 청년과 함께 방문하여 그와 지나치게 가까이 앉은 채 살가운 대화를 나누었으니 남성성을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해 자신의 남자다움을 인정받으려는 어리석은 사내들을 자극하기에 딱 좋았다.

사람들은 동성과 관계를 맺는 이들을 폄하하며 둘 중 주도적인 역할 맡는 이를 나비, 수동적인 역할을 맡는 이를 꽃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곤 했는데, 남자가 늘 옆에 끼고 다니는 청년이 정말 꽃처럼 아리따운 얼굴까지 하고 있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롱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여섯 곳의 술집에서 불 주먹 블람이라고 불리는 라스조차 그 남자에게 시비를 건 적은 없었다.

사내들에게 아쉽게도 남자는 그저 잘생긴 외모를 지닌 이가 아니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암살자거나 사람을 수십 명 토막 내서 죽인 후 아무렇지 않게 그걸 요리해 먹은 정신병자일 거다.

남자는 늘 검은 사제복을 입고 다녔지만, 그가 진짜 신부일 거라고 믿는 사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무척이나 잘생겼으나 아주 살벌하고 위압적인 인상을 풍겼으니까.

침대 밑의 괴물에 일찌감치 졸업한 난폭한 사내들조차 눈이 좀 마주쳤다고 질금 오줌을 지릴 정도로 아주 사나우면서도 흉포한 기운을 말이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는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거나 매섭지 않았다. 오히려 돌가루를 섞어 만든 종이처럼 묵직하면서도 정숙했지.

하지만 사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칼에 베이는 것보다 돌가루를 섞어 만든 종이에 베일 때 더 소름이 끼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고 무해한 여자들은 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까르르 웃으면서 남자가 정말 잘생겼다고 소곤거릴 뿐이었다.

‘여자들은 멍청하고 생존 본능이 부족하니까 겉모습만 보고 속아 넘어가는 거지.’

남자가 두려워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주제에 사내들은 박살 난 자기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애먼 여자들을 공격하며 졸렬한 우월감이라도 주워 먹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여자와 한 번이라도 같이 술을 마셔 보려고 그 주위를 배회하는 꼴이 아주 이중적이었다.

“오늘은 웬일로 데미안 신부님이 혼자 오셨네?”

어릴 때부터 각종 범죄에 노출되며 살아온, 예민하고 생존 본능이 강한 여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데미안 페르페오.

그는 변두리에 있는 작은 신전의 신부님이자, 드물게도 여자에게 위험하지 않은 남자였다.

유리시아를 섬기는 자답게 그는 금욕적이고도 정숙해서 항상 같이 다니는 왕자님 같은 청년에게만 눈길을 허락했다.

그는 폭력적이거나 범죄를 저지른 자에겐 가차가 없었지만, 죄를 짓지 않은 자는 심판자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니 여자들은 술집 안에 데미안이 있을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그가 있는 날이면 사내들이 기분 나쁘게 치근거리지도, 과장된 힘 싸움을 벌이지도, 성기와 관련된 이야기로 큰소리를 치지도, 다 들리게 음담패설을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눈 밑에 점 있는 년. 너 얼마였지?”

데미안이 바 테이블에 앉은 터라 등만 보여서인지 한 사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 중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말인가요?”

“그래, 씨발 년아. 여기에 너 말고 눈 밑에 점 있는 년이 어디 있어.”

아니, 말을 사용한 폭력을 행사했다.

여자들은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약자 앞에서 더 강해지는 사내들과 달리 여자들은 어리고 나약한 것 앞에선 한없이 약해졌지만, 강한 것엔 함께 대항했다.

드르륵.

하지만 오늘은 그들이 싸울 필요까지 없었다.

데미안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서자마자 바로 그를 알아본 사내가 꼬리를 말고 도망가 버렸으니 말이다.

“데미안 신부님.”

여자 중 하나가 작게 이름을 부르며 머리 숙여 인사하자, 데미안은 마주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도로 자리에 앉았다.

여자들은 모두 유리시아의 딸들이었다.

사내들은 사창가에서 일하는 주제에 순애를 소중히 여기는 그들을 지옥에서 천국을 동경하는 년들이라 조롱했지만, 데미안 앞에선 감히 그러지 못했다.

유리시아의 과묵하고 듬직한 경비견은 언제나 여자들을 가족으로서 보호해 주었으니 말이다.

“가서 술이라도 한잔 사 드릴까?”

“싫어하실 거 같은데.”

“그렇지만 오늘은 빈 지갑 전사이신걸.”

한 여자가 진심으로 걱정스레 말하자, 그녀 곁에 있던 다른 여자들이 작게 키득거렸다.

대체 뭘 먹고 사는지 몰라도 데미안은 교구에서 나오는 월급을 모조리 지역 사회에 기부한 뒤 달랑 1밧만 든 지갑을 들고 살았기에 신자들은 애정 어린 농담 삼아 그를 빈 지갑 전사라고 불렀다.

그 전사는 전투에서 패배하는 일이 없어서 그저 눈길만 건네도 사람들이 대가 없이 물건을 내밀어 댔으니 실상 지갑이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괜찮다면 제가 술 한잔 사 드려도 될까요?”

마침내 용기를 낸 한 여자가 데미안의 옆에 서며 조심스레 물었다.

데미안은 유리구슬처럼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어리지 않아서 꼭 사물처럼 느껴지는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말 걸지 말걸.’

여자는 바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덜 맞고, 조금이라도 덜 욕을 먹기 위해 사창가에서 눈치 보고 안색을 살피는 기술을 익혔다. 그렇기에 그녀는 데미안이 언제나 사람들을 피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을 하찮게 여겨서도, 성가시게 여겨서도 아니다.

데미안은 혹여 누군가가 자신에게 푹 빠져들까 봐 혹은 돌려줄 수도 없는 과한 애정을 퍼붓거나 자신에게 집착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가 시선조차 건넨 적이 없는데 꼭 연극배우에게 열광하는 광적인 팬처럼 그를 따라다니던 신도 몇 명을 목격하고 난 뒤엔 그 생각이 추측으로 바뀌었다.

그 신도 중 하나가 끔찍한 연서를 남기고 자살한 뒤엔 그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 저 사람은 자진해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실명보다 가게에서 붙여 준 예명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은 여자는 자신보다 대단하고 인기도 많고 잘생기고 건강한 그를 가엾이 여겼다.

신께서 저보다 잘난 사람을 동정해선 안 된다고 하지 않으셨으니 그래도 괜찮겠지.

여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달래며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아, 같이 마시자는 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네, 네. 지금 왔습니다.”

등 뒤에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죄송하지만, 이분의 지갑은 저라서요.”

밝은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한 선한 인상의 청년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하자, 여자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꽃무늬 지갑이 왔네!’

데미안은 더는 빈 지갑 전사가 아니었다.

화려한 꽃처럼 준수한 외모를 한 남자, 미카엘이 그와 함께 다니며 대신 돈을 내주기 시작하자, 꽃무늬 지갑의 주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갑이라니.”

데미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진한 눈썹 아래에 자리한 차가운 눈매가 부드러이 풀어지자,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이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세상에, 웃었어!’

고아원에 봉사 활동을 다니는 악마를 목격하는 것보다 희로애락이 담긴 데미안의 얼굴을 목격하는 게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4년간 성실하게 신전에 다녔던 그녀에게 있어 데미안은 현실감 없는 조각상과 같았다.

얼굴 근육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는 데다 신도들이 무어라 인사를 건네도 눈동자 한번 움직여 준 적이 없으니 그는 조각상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웃고 말하는 데미안이라니!

참으로 신기했다.

그간 신도들은 데미안이 무언가를 먹는 모습도, 마시는 모습도, 화장실에 가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한숨을 쉬거나 하품하거나 재채기조차 하는 일이 없어 흡사 무기질로 만든 인형 같았다.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영혼은 느껴지지 않아서 어딘가 오싹한 인형 말이다.

그러던 그가 미카엘을 만난 뒤 꼭 사람처럼 변했다.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고 심지어 미카엘을 따라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생선을 싫어하는지 미카엘이 튀긴 생선을 들이밀었을 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뒤로 빼기도 했다.

세상에! 편식하는 데미안이라니!

정말로 신기했다.

정원에 얌전히 놓여 있던 조각상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자기 행복을 찾아 떠나겠다며 집을 나간다면 필시 이런 기분이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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