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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사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싸늘한 눈초리로 미셸을 응시하던 데미안은 물기를 흠뻑 머금은 음성을 듣고 흠칫 놀라 미카엘을 돌아보았다.
새파란 눈동자를 잔뜩 일그러뜨린 그는 처연한 낯빛으로 데미안의 옷깃을 꼭 틀어쥐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금방이라도 지기 전의 꽃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처음부터 미카엘을 노린 거였나.’
동시에 데미안의 검은 눈동자가 샛노란 분노로 달아올랐다.
천사가 된 후 데미안은 거의 3백 년 동안 악몽이란 악몽은 죄다 꿔 보았고, 그 악몽에서 깨어난 후 할 수 있는 자해란 자해는 모조리 해 보았다.
이로 손목을 물어뜯은 적도 있었고, 칼로 심장을 난도질한 적도 있었고, 두 손으로 눈을 파낸 적도 있었다.
흘릴 수 있는 눈물이란 죄다 붉은색으로 흘려 보았고, 할 수 있는 자책이란 온갖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다 해보았다.
그래도 데미안은 유리시아를 이해했다. 아니, 오직 그만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데미안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를 악물었지만, 그 고통스러운 일그러짐은 아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세상에, 어머니. 미적 감각을 좀 더 기르셔야겠습니다. 예술적 소양이 뛰어난 저의 제자가 차마 눈뜨고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라니. 물론 전 어머니의 취향을 존중해 드리고 싶지만요.”
마치 어린아이를 안아 들듯 미카엘의 가슴팍을 제 한쪽 어깨 위에 걸친 데미안이 한 손으로 그의 무릎 뒤를, 다른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받친 채 말했다.
“당신께서 손수 빚으신 미의 결정체가 무작위에 의한 유전적 요소로 만들어진 미카엘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니. 세상 사람들이 어머니를 우습게 보진 않을까 두렵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은 말투였지만, 실상은 우리 애가 더 예쁜데 어디에서 감히 미의 천사 운운하느냐는 비난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어머니 탓이 아니군요. 질서란 혼돈의 대척점이 아닌 그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니 말입니다. 혼돈은 자연계에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직사각형의 돌조차 만들어 내지요.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들이 일렬로 설 수도, 신께서 최선을 다해 빚으신 피조물보다 더 아름다운 인간이 태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단히 돌려 말했지만, 여전히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스무 살의 미카엘을 쏙 빼닮은 미셸은 그 말을 듣고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얼굴을 보니 데미안은 더욱 속이 편안해졌다. 스무 살의 미카엘은 저딴 사나운 표정을 지을 줄 몰랐으니 말이다.
당시의 미카엘은 물을 흠뻑 머금은 애달픈 백합 같았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고백에도 짙은 물기와 슬픔과 죄악감이 흠뻑 배어 있었다.
“아, 물론 미의 천사가 꼭 아름다움을 대표할 필요는 없지요. 저 또한 응보의 천사이지만, 인간에게 보상을 내려 주는 덴 딱히 관심이 없으니 말입니다.”
데미안이 아기를 어르듯 미카엘을 위아래로 가벼이 흔들자, 그의 목덜미를 껴안은 미카엘의 팔에 꾸욱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불안함에 요동치던 그의 심장 소리는 점차 고요해졌다.
“기껏해야 생명 보험에 가입하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앞으로 저를 생명 보험의 대천사라고 부르시는 건 어떨까요?”
데미안이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자, 미카엘이 그만하라는 듯 그의 어깨를 슬쩍 잡아당겼다.
“아, 말 나온 김에 어머니도 생명 보험에 가입하시지 않겠습니까? 신이라고 안 죽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보험 수혜자를 저로 지목해 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고요.”
미카엘이 더 세게 어깨를 잡아당기자, 비로소 데미안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보기 좋은 입매엔 여전히 살벌한 웃음이 걸려 있었기에 그를 지켜보는 두 대천사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정말…….’
미카엘은 어째서 유렐이 저를 볼 때마다 얼른 결혼해서 저분 고삐를 좀 잡아 보라는 식으로 눈치 줬는지 알 것만 같았다.
데미안이 자기 앞에서만큼은 얼마나 신사적이었는지도!
“아들아, 네가 지금 누구 앞에서 떠들고 있는지는 아느냐.”
미카엘을 바닥에 내려놓은 데미안은 꼭 커튼콜을 받은 연극배우처럼 부드러이 허리를 숙이면서 유려한 말씨로 답했다.
“예. 완전무결하지도, 전지전능하지도, 만고불변하지도 않아, 완전한 것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모순을 스스로 증명해 내시는 위대한 존재를 뵙고 있지요.”
유리시아는 신에게 가장 불경한 충신을 불편한 낯빛으로 바라보았다.
데미안, 데미안…….
신조차 따라 빚기 어려울 정도로 잘생긴 용모에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듣기 좋은 저음을 지닌 그는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는 궤변을 늘어놓아 심지어 유리시아조차 혼란스럽게 했다.
“미카엘.”
“네?”
“더러워질지 모르니 멀리 떨어져 있어라.”
미카엘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절 바라보고만 있자, 아예 그의 가슴팍을 밀어 멀찌감치로 밀어낸 데미안이 슥 고개를 돌려 미셸을 바라보았다.
미셸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데미안이 절 응시하자 화사하게 웃음 지었다. 데미안은 그것에게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리시아가 처음으로 저런 것을 가져와 데미안에게 보여 주었을 때만 해도 데미안은 미친 듯이 오열했었다.
그것이 가짜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잔인하게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다가 이내 피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었다.
데미안이 그리움에 미쳐 갈 때쯤 유리시아는 다시 한번 저런 것을 가져와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때도 데미안은 그것이 잔혹한 방식으로 죽는 걸 바라보며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기도 했고,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자해하기도 했고, 용서해 달라고 빌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7백 년 전의 이야기였다.
“이 비천한 아들은 어머니를 무척이나 존경하니 감히 이 자리에서 효를 행해 볼까 합니다.”
어쩌면 미카엘에겐 너무 충격적인 광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앞으로 두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여 없애야만 할 테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신기를 꺼내지도 않은 맨손으로 미셸의 뒷머리를 움켜쥔 데미안이 나머지 손으로 그의 얼굴 가죽을 잔인하게 잡아 뜯었다. 산 채로 얼굴이 뜯기는 고통에 미셸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
하지만 그 비명은 길게 가지 못했다.
데미안이 바로 이어서 그의 목울대를 엄지와 검지로 간단하게 부숴 버렸으니 말이다.
뻥 뚫린 목에서 피가 왈칵왈칵 쏟아져 나오자, 데미안은 그 피를 손바닥으로 받아 자기 얼굴을 씻어 냈다.
무서울 정도로 뚜렷한 이목구비는 붉은 피에 흠뻑 젖자,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압적으로 보였다.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신처럼.
“얼마나 편하게 지냈으면 이리 약할까요. 그렇지요?”
그대로 미셸을 바닥에 내던진 데미안은 꼭 곤충의 다리를 뜯어내는 잔혹한 어린애처럼 미셸의 한쪽 어깨를 잡은 채 그 팔뚝을 빙빙 돌리다가 와직 뜯어내 버렸다. 미셸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듯했지만, 그는 그저 목에 난 구멍으로 붉은 피만 울컥울컥 토해 낼 따름이었다.
“영체란 자고로 고통받을수록 강해질진대.”
미셸의 팔과 다리를 모조리 뜯어내 버린 데미안은 몸통만 남은 그를 발로 굴리다가 그의 턱을 부숴 버리고는 혀를 손으로 쭉 잡아 빼 버렸다. 그 뒤엔 흡사 호두를 깨듯이 그의 머리통을 구둣발로 콰직 콰직 짓밟아 아주 산산조각 내 버렸다.
“어쩌면 이리 말랑말랑하고 나약해 빠졌는지.”
성력으로 일으킨 금색 화염으로 남은 살덩어리를 모조리 태워 버린 데미안이 피에 젖은 두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어머니를 수치스럽게 하는 실패작은 사라졌습니다.”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해맑게 웃는 데미안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도 무척이나 무해하고 다정해 보였다.
“정말로 다행이지요?”
아마 스물두 살의 데미안은 성전에서 저런 얼굴로 웃었으리라.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말이다.
“아들아.”
데미안 앞으로 걸어 나온 유리시아가 그의 반듯한 이마에 입을 맞춰 주고는 말했다.
“널 정말 사랑한단다.”
“네, 어머니.”
그 탓에 유리시아의 입술에도 붉은 핏자국이 묻어나게 되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리시아는 눈을 흘기면서 가벼이 핀잔하는 말만 건넬 따름이었다.
“너는 빈말로라도 저도 그렇다고 해 주면 안 되니?”
데미안은 그녀가 입을 맞춰 준 이마를 손바닥으로 슥 닦아 내고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거짓말을 하면 말의 힘이 약해져서요.”
유리시아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를 나무라진 않았다. 데미안이 그녀의 잔인한 처사에 슬퍼할지언정 분노하진 않았던 것처럼.
데미안은 그저 그녀가 미카엘을 건드렸을 때만 일순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그마저도 바로 감춰 버렸다.
옛날의 데미안과 달리 그는 이제 휘청거리지도, 오열하지도, 성급하게 달려들지도 않았다.
천년의 세월 동안 잔인하게 담금질해 준 유리시아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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