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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51화 (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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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사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그만 일어나라. 옷 입고.”

자기 몸을 깨끗하게 정화한 데미안이 손수건을 미카엘에게 건네고는 도복 앞섶을 여미며 말했다.

미카엘은 체액으로 더러워진 자기 몸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도 선생님이 깨끗하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데미안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입술을 열자, 미카엘이 당황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아, 아니. 혀로 핥아서 깨끗하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선생님! 대체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데미안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답했다.

“약간 쓰레기 같은 남자?”

“하, 선생님. 제가 당신한테 얼마나…… 아니, 저도 어느 정도 인정은 하는데요. 선생님께서 저한테 그러시면 안 되죠.”

빠르게 제 언동을 뒤돌아본 미카엘이 반성하기는커녕 교묘하게 말을 바꾸며 불평했다. 데미안은 그를 위로하듯 미카엘의 어깨를 부드러이 두드리고는 빙긋 웃었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쓰레기지.”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신 거예요?”

미카엘은 스무 번 넘게 사정하고도 발기한 게 죽지 않아서 늘 뻣뻣하게 선 걸 속옷 안에 욱여넣으며 행위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정력이 좋다는 말로 덮어 버리기엔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자꾸 하다 보면 저 물총도 언젠가 바닥나는 날이 오겠지.’

데미안은 낑낑거리며 속옷을 올려 입는 미카엘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데미안은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걸 잘했다. 잘하다 뿐인가. 기어코 구멍이 난 아래를 물로 막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게 안 되면 내가 정력을 키우면 되고.’

데미안은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북돋웠다.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몸이기에 데미안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그 고독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오롯한 자는 본디 홀로 서야 하는 법이니까.

데미안은 신의 위상에 오르는 걸 오랫동안 거부해 왔지만, 정녕 미카엘을 위한 신이 되어야만 한다면 그 누구보다 완전하고 강력한 신이 되고 싶었다. 그 누구도 감히 그의 사도를 해하거나 괴롭힐 수 없도록, 세상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잔혹하며 불공정한 신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 미카엘에게 한 말은 모두 빈말이 아니었다.

“죄를 모두 씻고 난 후 몸에 신력을 하사받고 나면 그 힘을 이용해서 몸을 정화할 수 있게 될 거다.”

“정말이요?”

“그래.”

갑자기 데미안이 미간을 찌푸리자, 그가 적어도 제 앞에선 인상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잘 아는 미카엘이 화들짝 놀라서 그 안색을 살폈다.

“선생님?”

영혼 하나를 빼돌렸다고 바로 신이 지상에 강림하시다니.

“내 고양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물이었군.”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엔 웃음기는커녕 서늘한 한기만이 흘러서 보는 이를 모두 얼어붙게 할 정도였다.

“거물이요?”

고양이란 애칭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잘 아는 미카엘만이 천진난만한 눈으로 자기 아랫도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구한 자는 심판을 받을 이유가 없으니 그가 잔인무도한 심판자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다.

“이런, 그 거물이 아니야.”

냉혹한 심판자는 바로 따스하게 녹은 눈으로 금색 고양이를 바라보며 그의 턱을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졌다.

“미카엘.”

“네?”

“내가 곧 빛이니 사위가 어두워져도 불안해하지 마라. 내가 널 인도할 것이니.”

데미안이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미카엘은 그를 얼떨떨하게 바라보면서도 마주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선생님. 길치시잖아요?”

“그렇지.”

“그렇지, 가 아니죠! 절 낭떠러지로 인도하시기만 해 봐요.”

데미안은 투덜거리면서 마저 옷을 입는 미카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동시에 그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가 완전히 사그라졌다.

데미안은 홀로 서 있을 땐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나운 짐승이었지만, 이제 그의 품 안엔 연약하기 그지없는 새끼 고양이가 안겨 있었다.

춥게 해서도, 너무 뜨겁게 해서도, 충격을 주어서도, 어둡게 해서도 안 되는 섬세한 영혼이 들려 있었다.

병적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집착하듯이 지켜보고, 그걸로도 모자라 신기를 쥐여 주고 싸우는 법을 가르쳤다.

그 모든 게 속을 뜨겁게 녹여 대는 시커먼 공포와 불안감 때문이었다.

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척했지만, 데미안은 매 순간 휘청거리는 걸음을 바로잡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데미안은 아직 신이 아니었으니까.

‘내 제자는 아직 연약하니 풀잎으로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주 쿡쿡 찔러 대시는군.

하기야 데미안은 유리시아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미카엘은 그 무기의 단 하나뿐인 인질이었으니 그녀로서는 안달이 났으리라.

천 년이나 복종하게 하고 먹이는 전혀 주지 않았으니 데미안의 욕구 불만은 점차 불경과 잔혹함으로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흉흉한 기운은 천사조차 두려워하고 악마조차 불길하다 여길 정도였다.

안 그래도 데미안은 절망에 빠질수록, 고통을 받을수록, 비참함을 느낄수록 더욱 강해지는 마검(魔劍)이었다.

그런 그가 매일같이 어린 연인의 유서를 읽으며 자기 날을 갈아 댔으니 그것이 베지 못하는 것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일개 천사였던 데미안이 점점 무서운 존재감을 키워 나가자, 결국 지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되어 버리자, 신들은 그를 발아래에 둔 유리시아조차 꺼리게 되었다.

저 사나운 짐승을 정녕 제어할 수 있겠는가.

이제 저것은 신의 손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는데 누가 저 목에 목줄을 채워 바위에 묶어 둘 수 있겠는가.

그들의 우려와 달리 유리시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 흉악한 짐승을 얌전한 충견으로 만들 수 있는 먹이가 그녀의 지옥 안에 있었으니까.

「3년 뒤 나의 호수천신(護守天神)이 되어라.」

「전 저 자신이 단기 용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 물론 천 년은 단기라고 부를 수 없는 기간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이제 제게 영원한 충성을 강요하시는 겁니까?」

데미안은 근사하게 웃음 지었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와 하얀 이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돌려주마. 네 새끼를.」

「… … ….」

「그래. 네가 방금 떠올린 그 아이를 말이다. 지옥에서 꺼내 주마.」

아마 유리시아는 생색내듯이 미카엘의 영혼을 건져 데미안의 마른 목을 축일 간식으로 줄 생각이었으리라.

기억을 잃고 백치가 되어 버린 이를 눈앞에 매달고 흔들면 데미안은 비통에 젖어 울부짖으면서도 어린 영혼의 뒤를 따라붙었을 테니 말이다.

유리시아가 따로 명령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거기가 아무리 뜨거운 불 속이든, 차가운 얼음 속이든, 뾰족뾰족한 가시밭길이든, 데미안은 제발 그를 온전히 돌려 달라며 두 손을 내밀고 피눈물을 흘리며 따라올 테니.

한번 맛을 보면 더 집착하게 되겠지. 한번 품에 안겨 주면 더 악착같이 놓지 못하게 되겠지.

아마 유리시아는 무고한 죄인을 그런 용도로 쓸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데미안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죄인의 목에 둘린 굴레를 벗겨 내고, 단 1년 만에 그를 자기 광신도로 만들어 버렸으니, 유리시아로서는 아주 얼얼하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만약 데미안이 딴마음을 먹고 다른 신에게 귀의해 버린다면 죽 쒀서 개를 준 꼴이 되어 버릴 테니까.

아마 그걸 우려해서 먹이가 어떤 상황인가 보러 온 거겠지.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아들이 푹 빠진 연약한 먹이를 말이다.

“그런데 사위가 어두워진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신께서 기껏 멋들어진 계시를 내려 주셨건만, 추상적인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 요즘 사도가 자기 신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어린 사도에게 무척이나 약한 신은 두리뭉실한 계시를 바로 말로 풀어 설명해 주었다.

“신전에 어머니가 와 계신 것 같네.”

“유, 유리시아께서요? 왜죠? 어, 혹시 저 때문인가요?”

“그렇긴 한데…….”

안색이 어두워진 미카엘을 달래듯 데미안이 그의 밝은 금발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심해라.”

아, 하긴. 선생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미카엘은 희미하게나마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천하의 패륜아니까.”

왜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안심해야만 하는 거죠?

이제 미카엘의 머릿속에서 걱정은 사라졌지만, 경악이 그 안을 대신 가득 채우게 되었다.

“선생님은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신가 봐요.”

미카엘이 가벼이 조롱하듯이 말하는데도 데미안은 담담하게 대꾸할 따름이었다.

“하늘이 왜 무섭나. 하늘같이 치솟는 범죄율이 무섭지.”

미카엘이 진지한 눈으로 데미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럼 선생님은 진짜로 무서운 게 없으세요?”

데미안은 이미 몇 번이나 사정하고도 여전히 툭 불거진 미카엘의 중심부를 손으로 툭 건드리고는 장난스레 웃었다.

“한 번 불붙으면 스무 번 이상 싸려고 드는 물총은 무섭네.”

미카엘은 두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화사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선생님이 두려워하시는 건 저밖에 없네요?”

반대로 데미안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스르르 사라졌다.

그래. 데미안은 그가 너무 무서웠다.

설탕보다 달콤하고 독보다 유해하며 천사보다 순결하고 악마보다 매혹적인 미카엘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는 말 한마디로 천지를 정반대로 바꾸고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무서울 게 하나 없는 데미안을 옭아매는 단 하나의 약점. 신앙심도 없는 데미안이 유리시아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단 하나의 목줄. 만사에 무심한 데미안이 휘청거리며 울부짖게 하는 유일한 독약.

미카엘에게 있어 데미안이 유일무이한 신인 것처럼, 데미안에게 있어 미카엘도 유일무이한 신앙심이었다.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

애초에 미카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데미안 또한 성립하지 않으니까.

“그래. 내가 무서워하는 건 너뿐이야.”

데미안이 나직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웃음을 되찾기까지 데미안은 수많은 나날을 배회해야 했고, 방황해야 했지만, 그걸 굳이 미카엘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지옥에서 대체 어떤 식으로 고통을 받았기에 미카엘의 영혼이 이토록 강해진 건지, 데미안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리 와라.”

두 팔로 꼭 미카엘을 안은 데미안이 이곳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위로 안아 든 채 어린아이를 어르듯 둥개둥개 흔들었다.

“하지 말라고 했지.”

미카엘이 바로 험악한 얼굴로 턱을 콱 깨물었지만, 데미안은 그저 기분 좋게 웃기만 했다.

곪아 터진 종기를 굳이 칼로 헤쳐 그 안을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품 안에 미카엘이 있단 거니까.

데미안은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 말 그대로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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