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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39화 (3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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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 탓도 때론 도움이 된다

“저, 선생님의 외면 무기는 뭔가요?”

얇은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을 위로 든 미카엘이 살짝 주눅 든 얼굴로 물었다.

데미안의 외면 무기는 응징이다.

한때 그는 응징의 천사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그에게 딱 어울리는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너는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으니 선한 인간도 좀 만나서 보상해 주라며 강제로 응보의 대천사로 이직시키셨지만.

아무래도 어머니의 눈엔 데미안이 너무 위험해 보이셨나 보다.

“저하고 달리 제대로 된 무기이죠?”

분노든, 응징이든, 데미안에겐 별다른 차이가 없는 말이지만, 미카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데미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애매한 미소를 흘리며 답했다.

“분노일세.”

그 순간 또 한 번 말의 힘이 약해졌지만, 몽우리를 터트린 화사한 꽃처럼 고운 얼굴에 화색이 돌게 된 미카엘을 바라보며 데미안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와, 우리 둘이 똑같네요! 세상에, 선생님! 이건 우리가 운명의 한 쌍이란 뜻이 아닐까요?”

그래.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다고.

데미안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어린 연인에게 입 맞추고는 그를 따라 미소 지었다.

“검 이리 주게. 언제든 불러낼 수 있도록 자네 영혼에 각인해 주지.”

“어? 그런 것도 하실 수 있나요?”

“잠, 데미안 님. 외형 무기는 유리시아 님께 받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무기는…….”

“너무 많은 피가 묻었다고?”

부드럽게 말을 가로챈 데미안이 안으로 접은 검지로 미카엘의 흰 뺨을 쓸며 말했다.

“그래서 좋은 거지. 미카엘은 지나치게 깨끗해서 좀 더러워질 필요가 있거든.”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반성적인 관찰과 사유할 수 있는 존재를 대자적 존재(對自的 存在)라고 부르는데 미카엘은 거기에서 반성이란 부분만 싹 뺀 존재였다.

“저, 머릿속은 더러운데.”

지나치게 깨끗하지만, 머릿속은 더러운 미카엘이 보기 좋게 굴곡진 데미안의 가슴팍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타이트한 흰 셔츠 덕분에 탄탄한 몸매가 더욱 도드라지면서 작고 동그란 유두의 윤곽까지 보이자, 미카엘은 그걸 노골적으로 관음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그렇겠지.”

가슴 앞으로 쓱 팔짱을 낀 데미안이 매의 눈으로부터 작은 열매를 지켜냈다.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잖아요. 빨리 아니라고 해 주세요.”

자기 입으로 시인한 주제에 미카엘은 애먼 데미안을 괴롭히며 찡찡거렸다.

“거짓말에도 한도가 있는 법이라네.”

자기가 뭘 잘했다고 말없이 데미안을 노려보던 미카엘이 등으로 슬쩍 유렐의 시야를 가린 채 두 손으로 잽싸게 데미안의 유두를 꼬집었다.

데미안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미카엘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열 살이나 어린 놈하고 붙어먹는 내가 죄인이지.’

날이 무뎌진 내면 무기가 오래간만에 데미안의 속을 쿡쿡 찔러 댔다.

자조라고 하기엔 어딘가 우습고, 푸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가벼운 자학은 생각보다 냉정하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만을 눈앞에 들이댔다.

「죄송해요, 선생님…….」

스물두 살의 미카엘은 꼭 바짝 말라 버린 꽃처럼 생기도, 활력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물기를 띨 때는 그저 조용히 눈물을 흘릴 때뿐이었다.

지금의 미카엘은 그때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으니 무의식중에 어리광을 심하게 받아 주었던 것 같다. 혹여나 그가 그때처럼 시들어 버릴까 봐 과하게 물을 주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 발을 뻗어도 되는지 살피는 것처럼 데미안의 눈치를 보면서도 계속 그의 유두를 꼬집어 대는 미카엘을 보면 말이다.

“적당히.”

데미안이 그만 까불라며 팔꿈치로 밀어내자, 미카엘이 바로 알았어요 하고 답했다.

대답만 잘하지.

스승의 그림자를 밟아선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되바라진 제자 같으니.

미카엘이 생전에 시건방진 변태 꼬마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데미안이 잘못 키워서도 아니고 잘못 가르쳐서도 아니다.

그는 원래부터 그런 종자였다.

미카엘은 스물두 살이 되고 나서 무척이나 조용해졌지만, 데미안은 스물두 살 때가 한창 반항기의 절정이었다.

그는 왕자의 찻잔에 몰래 침을 뱉다가 들키고 나서도 당당했다.

왕족이 저열한 성 고문을 할 리는 없으니 죽일 테면 죽이고 고문할 테면 고문해 보라는 심보였다.

만약 상대가 스물두 살의 미카엘이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퉷? 그게 다예요?」

하지만 스물두 살의 데미안 앞에 있는 건 열두 살의 미카엘이었다.

「침을 좀 더 모았다가 걸쭉하게 뱉어 봐요.」

변태 성욕이 한창 절정에 달했던 어린 미카엘 말이다.

「볼이 홀쭉해지도록 입안을 빨아서 침을 내 보시라구요. 하실 수 있잖아요?」

반항아는 두들겨 맞는 것에 익숙했지만, 변태 짓엔 끔찍하게 약했으니 승자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결국 데미안은 그날 바로 성기사 단장에게 달려가 하루만 더 왕자 옆에 있으면 미쳐 버릴 것 같으니 제발 왕궁에서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굴 죽이라면 죽이고, 누굴 고문하라면 고문할 테니, 제발 내 앞에서 저 변태 꼬마를 치워 달라고.

하지만 성기사 단장은 고작 열두 살짜리에게 꼬리를 내리고 돌아온 부단장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볼 뿐이었다.

미카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얌전한 척, 온순한 척, 귀여운 척 내숭을 떨 수 있었기에 왕궁 안의 사람들은 그저 그를 사랑스러운 천사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정액으로 범벅이 된 구두를 발견하자마자 “그 왕자 새끼가 한 짓이에요!” 하고 외친 데미안을 사람들이 싸늘하게 노려본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데미안이 화사한 꽃처럼 방글방글 웃으면서 절 쳐다보는 미카엘에게 주먹을 날리지 않았던 건 그가 말 그대로 한 주먹거리의 꼬마였기 때문이지, 그가 맞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아마 순수한 연심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데미안은 죽은 미카엘에게 무척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가 염원한 일 중 하나는 부서진 미카엘의 영혼을 어르고 달래 무척이나 건강하고 단단한 형태로 되돌린 후 그걸 주먹으로 몇 대 후려치는 거였다.

데미안이 그에게 품은 감정이 그저 따뜻하고 보송보송하고 몽글몽글한 것만은 아니었단 거다. 그렇기에 더욱 애착을 버릴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순정이 아니었으니까.

얄밉고 귀엽고.

짜증나고 불쌍하고.

화가 나고 미안하고.

사랑스럽고 후회되고.

그립고 원망스럽고.

그 모든 걸 한데 뭉치니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게 해 주고 싶다는 염원이 가장 크게 남았다.

“적당히 하라고 했네.”

데미안이 재차 손을 뻗어 오는 미카엘에게 엄하게 한마디 했다.

하지만 스승이 자길 진심으로 혼내지 못한다는 걸 잘 아는 건방진 제자는 반성하기는커녕 칫 하고 혀를 찼다.

“하지 말란 게 아니라.”

생전의 미카엘에겐 아무런 빚이 없지만, 지금의 미카엘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데미안 탓이었다.

그러니 그가 책임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검부터 각인시켜야 하니 나중에 만지란 말일세.”

“알았어요.”

또 젖꼭지가 잔뜩 붓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빨리겠군.

데미안은 생긋 웃으며 입술을 핥는 미카엘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검에 새 이름을 붙이려거든 그렇게 하게.”

“아니에요. 그냥 이대로 쓸래요. 멋있잖아요, 인퀴지터. 세상의 모든 고뇌와 정의감을 짊어진 것만 같아요.”

“……내가 10대 때 붙인 이름이라서.”

미카엘은 슥 고개를 떨구는 데미안을 보고 아하하 웃었다.

처음 인퀴지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땐 무서운 이가 차가운 손으로 뒷덜미를 잡아챈 것처럼 두려웠지만, 이젠 무섭지 않았다.

앞으로 이단심판관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하는 낯으로 한숨을 내쉬던 데미안의 얼굴이 먼저 떠오를 테니.

이제 더는 그 말이 미카엘을 위협하지 못하리라.

‘언젠가 결혼이라는 말도 이런 식으로 변할까.’

그런 날이 온다면 좋겠다.

데미안에게 나와 결혼해 달라고 멋지게 프러포즈할 수 있도록.

상상만 했는데도 괜히 가슴 한구석이 찡해서 미카엘은 응석을 부리듯이 데미안의 어깨에 이마를 비벼 댔다.

“데미안 님, 이 일은 어머니께 보고드릴 수밖에 없어요.”

검 날에 신력을 주입하던 데미안이 흘깃 눈을 들어 유렐을 응시했다.

“좋을 대로 하게. 내가 한 번이라도 자네 입을 막으려 한 적이 있었나?”

두 사람 사이에 싸한 냉기가 감돌자, 미카엘이 눈치를 보는 것처럼 푸른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려 댔다.

“미카엘이 당신 인생의 유일한 오점이 되게 하실 건가요?”

그걸 알아차린 유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

“그건 그에게도 가혹한 일이 될 거예요.”

“그 오점은 내가 허락했기에 남길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게.”

미카엘이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으니 혹여 데미안이 피를 흘리게 되더라도 그건 상호 합의하에 이뤄진 일이란 말이었다.

“미카엘, 두려워졌나?”

“아뇨.”

“그래야지.”

데미안은 아름다운 금빛으로 물드는 검신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자네가 내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건 죄가 될 수 없다는 걸 잊지 말게.”

“흐음.”

데미안의 어깨 위에 꾸욱 턱을 내리누른 미카엘이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금 당장 선생님 자지를 빨고 싶은데요.”

저도 모르게 손끝을 움찔한 데미안이 손등으로 그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두드렸다.

“적당히.”

마냥 받아 주는 데미안도 좋지만, 온도가 뚝 떨어진 목소리로 야단치는 데미안도 좋아서 미카엘은 그저 해사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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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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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힘내서 달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한 편, 한 편 올릴 때마다 의욕이 샘솟도록 열심히 댓글 달아 주시고 추천 눌러 주시는 다른 독자님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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