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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37화 (37/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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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 탓도 때론 도움이 된다

미카엘이 이곳에 오게 된 뒤로 데미안은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비록 다른 뜻이 있어 한 거짓말이라고 해도 신의 심판대는 그 의도까지 헤아려 주진 않았다.

그 덕분에 데미안이 지닌 말의 힘은 1년 사이에 무척이나 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데미안은 가장 강력한 말의 힘을 지닌 천사 중 하나였다.

그는 천 년 동안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진실만을 말해 왔으니까.

유렐은 그러한 그가 연약하기 그지없는 미카엘을 말의 힘으로 찍어 누른 게 탐탁지 않았다.

어쩌면 충격받은 미카엘이 그에게 더는 마음을 열지 않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게 진작 맹약을 맺으시지.’

그와 별개로 미카엘이 생각보다 강한 영혼이라는 데 놀랐다.

여태까지 그 어떤 악마도, 싸움에 미친 천사도 데미안의 속박을 자력으로 푼 적이 없었으니까.

자기만의 신념을 지닌 천사들은 설령 신의 명령이라 해도 그게 그릇된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말씀을 소극적으로 이행했다.

데미안만이 유일했다.

마치 신의 대리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의 수족같이 움직이며 설령 ‘이상한 기준’ 탓에 죄인이 된 자라 할지라도 거침없이 신기(神器)를 휘두른 건.

그 덕분인지 데미안의 말은 그분의 말씀만큼이나 강력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유렐의 눈에 더없이 연약하고 미약해 보이는 그는 자기 힘으로 신의 선고에서 벗어났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도 너무하셨어.’

유렐은 탓하는 듯한 눈길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개자식.”

미카엘은 씹어 뱉듯이 말하면서도 두 팔로는 데미안을 꽈악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이마를 거칠게 비벼 대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날 내치지 말라는 의도가 가득 담긴 몸짓은 안타까울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자네는 악인이니 한 번씩 괴롭혀 줘야지.”

데미안은 무어라 변명하는 대신 미카엘의 등을 가벼이 두드리며 웃음 지었다.

미카엘의 푸른 눈동자엔 여전히 엷은 원망이 차 있었지만, 말 그대로 그건 엷은 원망이었다.

“나는 예외로 해 줄 수도 있었잖아요!”

너무나도 쉽게 미카엘을 용서하고 마는 데미안처럼, 미카엘 또한 너무나도 쉽게 데미안을 용서했다.

그는 이미 불만의 기미가 완전히 사라진 눈으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자네가 자기 두 발로 우뚝 선 걸 볼 때마다 자네의 발기한 성기를 보는 것만큼 흥분되거든.”

그 노골적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건 미카엘뿐이었다.

그는 빠르게 유렐의 눈치를 살폈다가 그녀가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괜히 데미안을 타박하듯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물론 힘이라곤 전혀 들어가지 않은 주먹이었다.

“그런 말씀은 둘이 있을 때나 하세요.”

그 수줍음 어린 불평에 유렐의 미소는 더욱더 진해졌다.

“내가 자넬 시험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네.”

데미안은 달래듯 미카엘의 뺨에, 이마에, 턱에 연신 다정한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때마다 빠르게 위아래로 들썩거리던 미카엘의 가슴팍이 점차 안정감을 찾고 움직임이 느려졌다.

“하나는 자네가 천사나 악마, 혹은…….”

흘깃 유렐을 한 번 바라본 데미안이 잠시 말을 아꼈다가 한층 진중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신의 말에 속박되었을 때 거기에서 벗어나는 감각을 몸에 새겨 주기 위해.”

미카엘은 자신의 팔다리를 바닥에 묶고 머리를 강하게 찍어 누르던 힘을 떠올리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게 말의 힘이라는 건가요?”

“그러하네. 자네가 어떻게 해서 그 속박에서 벗어났는지 기억하나?”

미카엘은 시커먼 절망이 절 바닥에 무릎 꿇게 할 때마다 묘하게 자신을 도발하던 데미안을 떠올리고는 머뭇거렸다.

“그게 바로 자네의 외면 무기라네.”

“데, 데미안 님. 미카엘에게 그런 걸 알려주시면…….”

유렐이 두려움이 서린 얼굴로 미카엘을 힐끔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물러나라는 엄한 눈빛을 보내자, 순순히 머리를 조아렸다.

“외면 무기란 게 뭔가요?”

미카엘이 유렐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레 묻자,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싼 데미안이 의도적으로 몸을 돌려 그를 유렐의 시야에서 빼돌렸다.

“신기의 일부를 말하는 거라네. 모든 신기는 내면 무기와 외면 무기로 이루어져 있지.”

신기는 쉽게 말해 칼잡이가 없는 칼날과도 같다.

그렇기에 칼을 쥔 나를 상처입힐 수도 있고 눈앞에 있는 적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전자가 내면 무기, 후자를 외면 무기였다.

“신기는 모든 천사, 그러니까 신의 창조물이나 그분께서 허용한 존재에게만 주어지지. 그러니 일부 악마들은 신기를 지니고 있지 않네.”

데미안이 손을 펼쳤다가 주먹을 말아 쥐자, 그의 손끝에서부터 팔뚝까지가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악마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라네. 신을 저버린 천사, 그분의 의지를 거부한 천사, 신앙심을 잃은 천사가 변절하여 악마가 되는 방법. 이들은 천사 태생이기에 당연히 신기를 지니고 있다네. 우리 천사들은 그들을 살해할 수 없지. 어머니께선 형제가 형제를 살해하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네.”

미카엘은 2층에서 떨어뜨린 수박처럼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던 머리통이 말끔하게 수복되었던 샤르티엘을 떠올렸다.

“하지만 악행으로 추종자를 얻고 그 신앙심을 쌓아 악마가 된 인간은 신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네.”

“악행으로 어떻게 추종자를 얻죠?”

“독재자라든가, 전쟁 영웅이라든가…….”

데미안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덧붙였다.

“이교도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데 앞장선 성기사라든가.”

“하지 마요.”

두 손으로 데미안의 입을 틀어막은 미카엘이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를 노려보았다.

“내 앞에서 선생님 욕을 하지 말라고.”

아아, 왜 이렇게 귀여운 짓만 골라 하는 걸까. 한입에 꿀꺽 삼키고 싶어지게.

물론 그의 것은 위로든 아래로든 한입에 꿀꺽 삼킬 수 있는 크기가 아니지만.

데미안은 진한 웃음을 흘리고는 미카엘의 손을 잡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천사 태생이 아닌 악마들은 신께 허락받은 존재가 아니기에 죽일 수 있네. 자네가 조심해야 하는 게 바로 이러한 악마들이지.”

“왜죠?”

“천사 태생 악마들이 지나치게 곧고 순수하여 뒤틀려 버린 자들이라면, 인간 태생 악마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비도(非道)를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네.”

수많은 천사나 악마가 데미안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가 인간 태생 대천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중세 시대 인간, 밥 먹듯이 무고한 자를 고문하는 것도 모자라 채찍으로 자기 자신을 후려치며 회개하는,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미치광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간이니 말이다.

그나마 데미안이 단 하나의 존재에만 집착할 뿐 그 외의 것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는데요. 내면 무기라는 게 꼭 필요한 건가요? 자해할 때 외엔 쓸모가 없어 보이는데요.”

“필요하지.

슥 고개를 돌린 데미안이 유렐에게 두 눈을 고정한 채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은 내 말을 잘 들어서 무기를 쥐여 줬는데 이게 감히 내게 고깝게 굴 수도 있지 않은가.”

“나라는 건…….”

“신을 말하는 거라네.”

“데미안 님.”

아니나 다를까 유렐이 굳은 얼굴로 한마디 했다.

“말씀을 삼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해 보게.”

“네?”

“내 입을 틀어막고 싶다면 실력을 행사해 보란 말일세.”

두 눈을 가늘게 뜬 데미안은 흡사 유렐을 도발하듯이 물었다.

“왜 그러지? 미카엘도 했는데, 자넨 못 하나?”

유렐은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명한 그녀는 미친 데다 괴력까지 지닌 자와 말로 논쟁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유렐이 뒤로 물러나자, 그녀에게 향한 검은 칼날을 도로 갈무리한 데미안이 검은 모포로 미카엘을 감싸 주었다.

“신께선 부정적인 감정을 부추겨 신기가 나 자신에게 향하게 할 수 있다네. 그걸 내면 무기라고 부른다네.”

미카엘에게 검은 눈동자를 고정한 채 데미안이 어두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일종의 목줄이라고.

이번엔 미카엘까지 굳은 얼굴이 되었다.

“대천사나 대악마는 강하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내면 무기를 부숴야만, 목줄을 끊어 버려야만 비로소 신께서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시지.”

“그 말씀은 선생님이 이제 내면 무기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인가요?”

“물론이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 겉모습이 멀쩡하지 않았나.”

겉모습이 멀쩡했다는 게 무슨 뜻이지?

데미안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절 바라보는 미카엘을 마주 응시하며 빙긋 웃었다.

“내면 무기는 모두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네.”

데미안이 검지로 가슴팍을 쿡 찌르자, 그가 강한 힘을 실은 것도 아닌데도 미카엘이 크게 몸을 움찔했다.

“자네의 것이 자살 욕구를 동반한 죄악감이라면.”

데미안은 이어 자신의 가슴팍을 찌르며 말을 이었다.

“나의 것은 자해 욕구를 동반한 자학이었지.”

하늘이 깊은 심연을 간직한 바다로 뒤바뀌고 철썩 거리는 파도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데미안 또한 무력한 존재였다.

그의 선생님 또한 고통받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미물이었다.

그 사실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이제 누가 자신을 구원해 준단 말인가.

대체 누가.

“미카엘. 자네는 매번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했네.”

데미안은 흔들거리는 파도에 반쯤 잠긴 미카엘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렸다.

“내면 무기가 자네를 찢어발기려 들 때마다 외면 무기가 무엇으로 자넬 막아섰는지 떠올려 보게.”

“데미안 님!”

결국 보다못한 유렐이 한 손으로 데미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미카엘은 아직 속죄하지도, 유리시아 님께 귀의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그 손을 매섭게 내친 데미안이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묵직한 저음으로 말했다.

“그래서, 나더러 내 제자가 목줄을 달고 다니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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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크흑... 젤리밥밥 님이 때마침 나타나셔서 500M 한 명 분은 독자님께 양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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