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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31화 (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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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 탓도 때론 도움이 된다

미카엘은 문득 제브라는 이름을 지닌 어린 천사를 떠올렸다.

그라면 바로 데미안의 명에 따랐겠지. 설령 데미안이 진짜 독약을 건네주었더라도.

“그러죠. 나의 신께서 그걸 원하신다면.”

희미하게 미소 지은 미카엘이 마음을 정한 듯 두 손으로 데미안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가 어린 신도에게 질 수는 없었으니까.

젠장. ‘어린’ 신도라니.

그 망할 수식어가 제게 붙었을 땐 그토록 떼고 싶어서 짜증이 나더니 그게 남에게 붙으니 이상하게 심통이 났다.

고작 열다섯, 열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년과 기 싸움을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 대신 제가 선생님 눈에 가장 어리고 예뻐 보인다고 말해 주셔야 해요.”

싸울 생각은 없지만, 일단 우위는 선점하고 봤다.

나뭇잎에 고양이까지 질투하는 판에 어린 소년 따위가 뭐 예외 사항이라고.

미카엘이 당돌하게 요구하자,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남신은 끝내주게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바다가 파랗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취미는 없는데.”

두말할 것도 없다는 말에 미카엘은 얇은 쌍꺼풀이 진 아름다운 눈매를 휘면서 화사하게 웃었다.

“선생님, 그래도 바다는 그 말이 질리도록 듣고 싶대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입버릇처럼 해 주세요.”

고양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빛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미카엘은 두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다가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미카엘은 역시 악한 존재였다.

데미안의 신력에 기분 좋게 취했던 고양이들과 달리 미카엘은 꼭 커피 수십 잔을 한 번에 마신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손이 떨려 왔으니까.

“자네에겐 자극이 좀 강했나 보군.”

다리 사이를 벌리고 앉은 데미안이 이리 오라고 손짓하며 양팔을 벌리자, 미카엘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에 안겨 들었다.

대천사의 단단한 몸에선 서늘한 겨울바람 같은 냄새가 났다.

한 손을 데미안의 등허리에 감은 미카엘은 그의 두툼한 가슴팍에 뺨을 비벼 대면서 어리광을 부리듯이 속삭였다.

“선생님, 제 곁에 계시나요…….”

냉혹하기 그지없지만, 미카엘에게만은 무척이나 따스한 겨울바람은 그의 혼란한 가슴속을 부드러이 달래 주었다.

“그래. 언제나.”

손끝에 힘을 준 미카엘이 그의 딱딱한 어깨뼈에 손톱을 박으면서 낮게 가라앉은 음성을 냈다.

“그럼 저와 함께…… 지옥에 떨어져 주실래요? 선생님.”

애처로운 눈빛으로 데미안을 바라보던 미카엘은 흡사 같이 죽어 달라고 애원하는 악령처럼 불안한 목소리를 냈다.

“선생님은 절 혼자 두고 가지 않으실 거죠?”

데미안은 제게 까득까득 매달리는 그를 가벼이 추슬러 안고는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최악의 남자로군. 누군가를 유혹할 땐 듣기 좋은 말을 해 줘야지.”

미카엘은 항변하려 했다.

유혹이 아니라 진심을 말한 거라고.

하지만 데미안은 더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미카엘의 입술을 입술로 막아 버렸다.

부드럽게 입술을 가르고 안으로 들어온 말캉말캉한 살덩이가 이를 두드리자, 빠르게 입을 연 미카엘이 그의 혀뿌리를 자극한 뒤 입안에 고인 말간 타액을 허겁지겁 빨아 삼켰다.

달곰한 타액이 목 안으로 넘어가자, 사막을 헤매다 시원한 물을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갔다.

“난 자네와 떨어질 생각이 없으니.”

젖은 입술을 떼어 낸 뒤 낮은 한숨을 내쉰 데미안이 검지와 엄지로 미카엘의 귓불을 농염하게 주무르며 속삭였다.

“우린 둘 다 천국에 가게 되겠군.”

미카엘은 자애롭게 미소 짓는 데미안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그는 유혹의 대천사가 아닌 걸까 하고.

「여긴…… 어디…….」

문득 최초의 기억이 떠올랐다.

거대한 괴물이 퉷 하고 뱉어 낸 것처럼 이 세상에 갑자기 내던져진 때가.

불안과 혼란, 두려움에 흠뻑 젖은 미카엘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비척비척 걷고 있었다.

「미카엘…… 홀리브링어…….」

뼈가 에는 듯한 오한이, 아니, 뼈가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열이 미카엘의 몸을 차갑게 얼리고 지글지글 끓게 했다.

「결코 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텅 빈 머릿속에 유일하게 남은 기억이라고는 이름과 그가 죄인이라는 것뿐.

찐득거리는 절망감에 주저앉기 전 누군가의 강한 음성이 그를 등을 잡아챘다.

「미카엘!」

힘겹게 고개를 돌린 곳엔 미카엘이 부복하며 모시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자태를 갖춘 남신이 서 있었다.

「왜, 어떻…….」

어쩐지 그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미카엘이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자 얼른 다가와 그를 부축해 주었다.

그의 커다란 손은 무척이나 강인해 보였지만, 왜인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깊은 흑안에서도 알 수 없는 고통과 슬픔 따위가 느껴졌다.

「나는…… 대천사 데미안이라고 하네.」

하지만 그 위태로움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그 자리엔 거대한 산처럼 위대한 자만이 남게 되었다.

미카엘처럼 티끌과도 같은 이는 수천 명쯤 매달려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오롯한 자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악마로군.」

그가 툭 뱉듯이 한 말이 그 어떤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해 그저 악령처럼 맴돌던 미카엘의 정체성이 되어 주었다.

악마.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악한 거였어.’

미카엘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천사의 선언은 미카엘은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가 자신 안에 내재된 죄를 알아주었다는 것이 오히려 미카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선생님…… 왜 제 이름을 알고 계셨죠?”

미카엘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데미안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께선 제 이름을 부르셨죠. 꼭 저를 알고 계셨던 것처럼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그럼 뭐가 중요하죠?”

데미안은 가만히 그의 눈가에, 콧날에 입을 맞추고는 답했다.

“자네가 무얼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그러고 보니 데미안은 유독 기억이라는 말에 약했다. 그건 두 사람이 과거에 얽힌 적이 있다는 뜻일까.

하지만 데미안은 그 누구와도 키스해 본 적도, 섹스해 본 적도 없지 않은가.

만일 미카엘이 과거에 그를 알았더라면 강제로라도 입 맞추고 관계를 맺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 이제 응석은 실컷 부렸나?”

미카엘의 탁한 청안에 훅 차가운 숨을 불어 넣은 데미안이 그의 동그란 엉덩이를 커다란 손으로 짜악 후려치고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어린 도련님?”

두 눈을 느릿하게 끔뻑거리던 미카엘이 뒤늦게 인상을 찌푸리면서 품에서 벗어나자, 데미안이 빙긋 웃었다.

“그래. 자네 발로 서야지. 아무리 자네가 내 취향에 딱 맞는 어리고 아름다운 악마라지만…….”

짐짓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미카엘을 위아래로 훑어본 데미안이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걸음마도 하지 못하는 어린애에게 안기는 취미는 없으니 말이야.”

저 얄미운 입에다 콱 자지를 박아 버릴까.

제 입술을 잘근거리던 미카엘이 툭 뱉듯이 한마디 했다.

“선생님은 가끔 개자식 같아요.”

데미안이 충격적인 발언을 듣고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면 좋으련만, 오히려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싱긋 웃어 보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지?”

데미안은 어린 고양이와 놀아 주듯 검지로 미카엘의 앞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말을 이었다.

“자네 같은 씨발 새끼는 아니라서 말이야.”

그 과격하면서도 냉혹한 평가에 오히려 미카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 또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깜냥은 있었기에 무어라 반박하는 대신 입술만 삐죽거렸다.

“그건 그렇지만요.”

하지만 이내 자신의 가슴팍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입꼬리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그러고 보니 더는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지저분한 기름때가 진 것처럼 찐득거리던 머릿속에 독한 약물을 확 뿌린 것처럼 정신이 맑아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비난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정신이 들다니.

“선생님, 어쩌면 저는…….”

심지어 이런 게 처음도 아니었다.

일전에도 데미안은 정신을 놓으려던 미카엘을 도발해서 그가 악에 북받쳐 자기 발로 서게 한 적이 있지 않던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피학적인 성향이 강한지도 모르겠어요.”

미카엘이 그 나름대로 진지한 얼굴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미안은 건성으로 대꾸할 따름이었다.

“그래. 이제 내가 모르는 사실을 이야기해 보게.”

와, 어쩌면 저렇게 비꼬는 것도 잘하실까.

성기사라 그런지 조롱하는 말 또한 품위가 있었다. 그게 성기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카엘이 그의 탄탄한 허벅지 위에 중심부를 은근하게 문질러 대며 말했다.

“선생님이 저열한 욕을 하시는 걸 보고 발기했어요.”

데미안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진 않았지만,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 이마를 짚었다.

“모르는 사실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진 않았는데…….”

마침내 데미안을 좌절시켰다는 기쁨에 미카엘이 한껏 해사하게 웃었다.

“선생님, 제가 이따가 박을 때 꼭 강간당하는 것처럼 욕해 주실래요?”

데미안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나는 이따 박힐 예정이 없는데.”

“선생님, 그건 당신께서 정하시는 게 아니에요.”

미카엘은 단호하게 말을 자르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선생님께서도 저더러 그러셨잖아요. 나만 보면 발기하는 어린 남자라고.”

“그땐 농담이었지.”

지금은 진실을 서술한 말이 되어 버렸지만.

미카엘은 하하 웃고는 눈짓으로 자기 아래를 가리켜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내가 발기 담당도 아닌데 왜 그걸 나에게 묻나.”

“발기 담당은 저고요. 해소 담당이 선생님이니까 그렇죠.”

데미안의 손목을 끌어 그 손바닥을 자신의 툭 불거진 중심부 위에 올린 미카엘이 어여쁜 눈웃음을 흘리면서 속삭였다.

“그런 계약이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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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최근화가 30화에서 31화로 바뀌면 30화에 댓글을 다셨던 분들도 31화에서 중복으로 마나를 받으실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해서 확실하게 안내를 해 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

앗! 찾아보니 1인당 최대 1000M (최대 2회)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이전 화에 다셨던 분들도 31화에 달고 500M를 더 받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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