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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30화 (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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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 탓도 때론 도움이 된다

“용서해 드리도록 하죠.”

두 눈을 가늘게 뜬 미카엘이 오만한 태도로 고개를 까딱이자, 데미안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고맙군.”

펜을 집어 든 미카엘이 책상 한구석에 놓여 있던 탁상 달력을 끌어오며 말했다.

“제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하는 날짜를 적어 드릴게요. 어차피 그날은 저도 신전에 없을 테니 그때 다녀오세요. 늦어도 저녁 10시까지는 돌아오시고요.”

“흐음.”

데미안이 탐탁지 않은 숨소리를 내자, 미카엘이 달력에 글자를 끄적이다 말고 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왜요?”

“고용주는 난데, 자네가 주인님 행세를 하는군.”

데미안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의 듣기 좋은 저음은 약간 까끌까끌하게 들렸다.

눈치 빠른 미카엘이 미묘한 기 싸움의 개전을 알아차리고는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소유권을 상호 보유하고 있으니 서로가 주인님인 셈이죠.”

미카엘은 그와 마찬가지로 맑게 웃었지만, 섬세한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그럼 나 역시 자네의 주인님인가?”

“그럼요.”

웃는 얼굴로 미카엘을 바라보던 데미안이 손가락을 딱, 딱, 튕기자, 아무도 없던 공간에서 까무잡잡한 피부의 은발 소년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데미안 대천사 님.”

소년이 경의를 표하듯 머리를 숙여 인사하자, 데미안이 탁상 달력을 집어 그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여기 표시된 날짜에 나의 객을 따라다녀 주면 좋겠는데.”

“지금 뭐하시는 거죠?”

스르르 웃음기가 사라진 미카엘이 경직된 목소리로 묻자, 데미안이 뭘 그런 당연할 걸 묻느냐는 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네가 내 목에 목줄을 달았으니, 나도 자네 목에 리본을 달아 볼까 하는데.”

“하.”

미카엘이 기가 차단 얼굴을 하자, 데미안이 그를 달래듯 근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열받게도 미카엘에겐 무척이나 잘 통하는 미남계였다.

“그냥 마음 편하게 경호원 같은 거라고 생각하게.”

“이런 어린애를 경호원으로 쓰라고요?”

“그는 응징의 천사라서 전투력이 훌륭하다네. 다대일 전투에도 능하니 여러 악마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지.”

데미안이 대답을 요구하듯 눈길을 건네자, 열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네가 영 내키지 않는다면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자유방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만.”

미카엘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제 목덜미를 갉작이다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요. 감시든 뭐든 해요.”

자유를 침해당하는 쪽과 소유권을 포기하는 쪽 중에서 결국 전자를 놓아 버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대신에 선생님께서도 당신 행적을 제게 낱낱이 보고하셔야만 할 거예요.”

새파란 눈을 힘주어 뜬 미카엘이 정색하며 말하자, 데미안이 하하 웃었다.

“아, 정말 숨 막히는데? 어머니께서도 날 이리 압박하신 적은 없는데 말이야. 자네가 사람을 목을 제대로 조를 줄 아는군.”

데미안의 양 손목을 잡은 미카엘이 그의 커다란 손을 제 목에 두르며 싱긋 웃었다.

“저는 목 조르는 것도 좋아하고, 목 졸리는 것도 좋아하니까, 선생님.”

데미안의 손가락 끝을 꾹 누른 미카엘이 그의 단정한 손톱이 자기 목덜미에 깊숙이 박히게 하면서 살살 녹아내릴 듯한 눈웃음을 흘렸다.

“절 놓으시면 안 돼요.”

“자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그리할 생각이네.”

데미안은 살짝 숨이 막힐 정도로 미카엘을 꽉 끌어안은 채 그의 섬세한 눈썹과 하얀 뺨 위에 다정히 입을 맞춰 주었다.

그의 단단한 두 팔 사이에 안긴 미카엘은 마주 족쇄를 채우듯이 데미안의 등허리를 두 팔로 꽉 감싸 안았다.

안락한 새장 속에서 부리를 비벼 대는 한 쌍의 새처럼 높은 콧대를 마주 비비대던 두 사람은 합의된 내용에 상호 만족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거의 제 뺨이나 콧등에만 입 맞춰 주시네요.”

“그야 자네가 성적으로 흥분할까 봐 그러지.”

데미안이 짓궂게 웃으며 농을 건네자, 미카엘이 나긋나긋한 어조로 마주 대거리했다.

“선생님, 뺨에 입 맞춰도 발기는 해요.”

데미안은 한참 뒤에야 그렇군, 하고 그의 말을 받아 주었다.

그렇게 길고 무거운 게 자주 일어난다니 참으로 노고가 많은…… 아니, 데미안은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구죠?”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대천사에게 몸통과 꼬리를 비벼 대며 그와의 관계를 한껏 과시한 금색 고양이가 뒤늦게 어린 천사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눈앞에서 진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데도 어린 천사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둘을 멀뚱멀뚱 쳐다볼 따름이었다.

“저는 미카엘 홀리브링어라고 합니다.”

그 무덤덤한 반응 때문에 오히려 머쓱해진 미카엘이 쓱 손을 내밀며 짐짓 친근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허리를 굽힌 그가 제 손등에 얼굴을 가져다 대려고 하자, 기겁하면서 어깨를 뒤로 뺐다.

“지금 뭘 하려고 한 겁니까.”

미카엘이 싸늘한 낯빛으로 으르대자, 데미안이 그의 손목을 잡아 어린 천사 앞으로 이끌었다.

“그냥 냄새 맡게 해 주지 않겠나.”

“냄, 네에? 냄새를 맡는다고요? 왜, 왜죠?”

데미안은 기겁하는 미카엘을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으며 진정시켜 주었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천사 태생이 아닌 천사라네.”

“그게 무슨 상관…….”

“생전에 그는 개였네. 19세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아주 많은 선행을 한 개였지.”

미카엘이 황당하단 얼굴로 개라고요, 하고 그의 말을 곱씹었다.

어린 천사는 유순한 흑안을 끔뻑거리며 그저 말없이 미카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미카엘이 조심스럽게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데미안에게 물었다.

어린 천사는 허리를 숙인 채 그의 손등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으니 그를 대신해 데미안에게 물은 거였다.

그런데 어쩐지 데미안이 곤란한 듯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그게, 음…… 자네 이름이 뭐였지?”

“세상에, 선생님. 수족처럼 부리면서 이름도 모르신다고요?”

미카엘의 냄새를 모두 맡았는지 어린 천사가 쓱 허리를 세우면서 답했다.

“그냥 평소처럼 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미카엘은 그가 추앙하는 자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선생님. 저 사람을 개라고 부르셨어요?”

열렬한 추종자에게 드물게도 비난의 시선을 산 데미안이 두 눈을 내리깔고 입을 꾹 다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라고요?”

“제브입니다.”

“제브래요, 선생님.”

미카엘이 웃으면서 눈치를 주자, 데미안이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두겠네, 제브.”

“그냥 개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아니, 이제부터라도 이름으로 부르겠네.”

“아니면 손가락만 튕기셔도 됩니다.”

제브가 충성스레 답할수록 미카엘의 시선은 점점 더 따가워져서 결국 데미안은 고양이들을 내쫓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돌려보내 버렸다.

“그만 돌아가게, 제브.”

제브는 마지막까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대천사 님의 부름에 언제고 응하겠노라고 말하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선생님은 가끔 참…….”

미카엘에게 있어 데미안은 언제나 관대하고 친절하며 배려심이 깊은 존재였기에 그가 다른 이를 냉담하게 혹은 무심하게 대할 때마다 미카엘은 희미한 충격에 휩싸였다.

“개자식 같다고?”

“무심…….”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동시에 말을 잃었다.

역시 스승은 미카엘보다 한 수 위였다. 아니, 위인지 아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미카엘과는 다른 수준이었다.

“……미안하네.”

미카엘은 아니에요, 하고 대꾸하다가 뒤늦게 유렐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그에게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유렐 신모께서 샤르티엘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제 영혼이 더러워질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데미안은 아주 잠시 난처한 듯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가 그런 말을 했나 보군.”

“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저도 그 사람과 같은 악마인데 어째서 제 영혼이 더러워지죠?”

데미안이 경호원을 붙인 이유는 이해가 간다.

악마 주제에 대천사와 배를 맞추고 있는 데다 그가 머무는 신전에까지 기어들어 살고 있으니 다른 악마들의 눈에 거슬리겠지.

하지만 유렐은 꼭 미카엘이 악마와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말했다.

“자네는 자기 자신이 악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어, 뭐…… 죄인이니까요.”

데미안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미카엘은 선선히 답했다.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진지한 얼굴로 미카엘을 바라보던 데미안이 돌연 제안한 것도 그때였다.

“한번 내 신력을 취해 보겠나?”

“네?”

“말했다시피 신력은 영혼을 지닌 존재에게 힘을 부여해 준다네. 하지만 천사의 신력은 악한 자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지.”

살짝 쥔 주먹 안에 훅 숨을 불어 넣은 데미안이 금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손을 눈앞으로 내밀어 보이자, 미카엘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번 마셔 보게.”

“어, 선생님? 조금 전에 독이 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절 죽일 생각이세요?”

미카엘이 어설피 웃으며 대꾸했지만, 데미안은 깊은 흑안으로 지그시 그의 눈을 들여다볼 따름이었다.

“나를 믿나, 미카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한 위압적인 눈빛에 미카엘은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데미안은 대답이 없는 그를 검지로 쿡, 쿡 찌르며 채근했다.

“주인님이 물으시면 대답을 해야지.”

“믿, 믿어요. 아, 잠깐. 선생님이 꼭 일방적인 주인님인 것처럼…….”

데미안은 그가 어설픈 농담으로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시게.”

미카엘의 푸른 눈동자 앞으로 금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손을 들이밀면서 데미안은 추종자의 충직함을 시험하려 드는 엄격한 신처럼, 죽으라고 계시를 내리는 냉혹한 신처럼 고했다.

“나를 믿는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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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30화! 이벤트가 열리려나요?!

앗, 바로 열리진 않는구나. ...........칫.

아니, 바로 쪽지가 왔잖아? (실시간 수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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