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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 탓도 때론 도움이 된다
“잠시만 기다리게.”
자기 방으로 돌아온 데미안은 유두 수호대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은 뒤 창문을 조금 열고 책상에 걸터앉았다.
살짝 쥔 주먹에 후우 하고 숨을 불어 넣은 데미안이 그 손을 창문 밖으로 내밀자, 꼭 먹음직스러운 간식에 꼬인 것처럼 흰 강아지와 검은 고양이가 하나둘 3층 창가로 몰려들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사신과 신령이었다.
데미안은 흰 강아지는 모두 돌려보낸 후 검은 고양이만 자신의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녕하세요, 장군님.”
“그냥 장군님이 아니라 대장군님이셔.”
“안녕하세요, 대장군님.”
데미안은 쓴웃음을 흘리며 그들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장군도, 대장군도 아닌 대천사일세.”
“아휴, 까다롭게 구시긴.”
“맞아요. 대장군이나 대천사나 그거나 그거나죠.”
“저희에게 힘을 나눠 주실 건가요, 대장군님?”
데미안은 은근슬쩍 대장군 대접을 하려 드는 신령들이 질리는지 절레절레 내저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손을 펼쳤다.
그의 손안에서 금빛 연기가 피어오르자, 고양이들은 감사 인사를 하듯 그의 손등이나 손목에 한 번씩 보송보송한 이마를 비비고는 그 연기를 킁킁 들이마셨다.
“그건 뭔가요?”
흥미를 보인 건 고양이뿐만이 아니었다.
고양이만큼이나 사랑스럽고 까탈스러운 미카엘 또한 그의 손아귀에 모인 금빛 연기에 관심을 보였다.
“신력이라네. 영혼을 지닌 존재에게 힘을 부여해 주지.”
데미안의 신력을 흠뻑 받아들인 신령들이 꼭 개박하에 취한 고양이처럼 몸을 발라당 뒤집자, 데미안이 그들의 복슬복슬한 몸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제 앞에서 뭐 하시는 건가요.”
그 꼴이 눈에 거슬렸는지 금색 고양이는 칫 하고 혀를 차고는 데미안의 손목을 집어 그 손바닥을 자신의 머리 위로 옮겨 버렸다.
“선생님이 예뻐해도 되는 건 저뿐이잖아요?”
사신이었다면 그 같잖은 질투에 팩 코웃음을 쳤겠지만, 신령들은 알아서 두목 고양이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검은 고양이들이 자리를 비워 준 덕분에 데미안 곁에 앉게 된 미카엘이 물끄러미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으로 검은 솜뭉치를 톡 건드렸다.
“사신하고 달리 선생님을 잘 따르네요.”
신령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뾰족한 송곳니를 내보인 채 야옹거렸다.
“사신들은 맨날 대장군님을 구박이나 하는걸요.”
“아주 몹쓸 것들이라니까. 우리 대장군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데.”
“그치들은 개 주제에 성격이 까탈스러우니 말이에요.”
미카엘의 환심을 사 두는 게 좋을 거라 판단했는지 신령 중 하나가 미카엘의 손가락을 말랑말랑한 손바닥으로 잡으며 애교를 떨었다.
“마님께서도 몹쓸 사신 놈들보다 우리 신령이 마음에 드시죠?”
미카엘은 그에 답변하는 대신 데미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마님이 뭐죠?”
“그, 음, 하인이 주인을 높여 부르는 말일세.”
“아하.”
데미안은 그 말이 지체 높은 부인을 일컫는 데에도 쓰인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령들은 그 의미로 마님이란 호칭을 사용한 듯했으니 말이다.
“무례하군. 미카엘을 그리 부르지 말게.”
“왜요? 난 좋은데.”
미카엘은 발라당 몸을 뒤집은 채 통통한 배를 내밀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신령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앞으로도 선생님을 잘 모시도록 하세요. 애교는 부리지 말고.”
“네에, 마님! 성심성의껏 장군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마님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분이시라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네요! 네, 그럼요. 장군님은 사신 놈들이 아닌 우리 신령들이 모셔야죠.”
슬며시 미간을 찌푸린 채 신령들을 내려다보던 데미안이 닭을 내쫓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만 가서 하리엘이나 찾아오게.”
“대악마 하리엘 말입니까? 그치는 저어기 멀리 숨어 있을 텐데.”
“그래. 그 작자 말이네. 되도록 천사들에게 들키지 말고 찾아오게.”
“아항, 그래서 사신이 아니라 저희를 부르셨던 거군요?”
도로 몸을 뒤집은 고양이들이 긴 수염이 난 입가를 옴찔거리며 데미안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대천사 중에는 미친…… 어흠! 대장군님과 달리 정신이 맑지 않은 자들이 많으니까요.”
“근데 하리엘도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않나?”
“뭐어, 워낙 나이를 많이 먹은 천사이니 말이야.”
“이제 천사가 아니라 악마잖아, 이 바보 고양이 같으니!”
“누구더라 바보라는 거야! 이 썩은 생선이나 좋아하는 도둑고양이가!”
데미안은 검은 솜방망이를 날려 대며 아옹다옹하는 고양이들을 강제로 떼어 놓고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정말 자네들을 믿고 일을 맡겨도 되나.”
데미안이 탐탁지 않은 낯빛을 하자, 고양이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두 눈을 빛냈다.
가장 격정적으로 앞발을 날려 댔던 고양이 두 마리는 뒤늦게 우아한 척하며 앞발을 날름날름 핥아 댔다.
“어이쿠, 그럼요! 대장군님께서 저희가 아니면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저희는 대장군님께서 하라는 일이라면 뭐든 하지요!”
“대장군님께선 블람의 대행자이시니까요!”
블람의 대행자가 아니라니까.
데미안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양이들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창문 쪽으로 밀어냈다.
“만약 하리엘에게 들통이 난다면 데미안이 혼자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게.”
“혼자가 아니라 둘이죠.”
“미카엘…….”
데미안이 미간에 힘을 주면서 뒤를 돌아보자, 미카엘이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 안 따라올 거냐고 하셨을 때,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 잊으셨어요?”
데미안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안 되네.”
“왜죠?”
미카엘은 거의 데미안의 무릎 위에 앉다시피 그와 바투 붙어 앉은 채 물었다.
“선생님, 대악마에게서 절 지킬 자신이 없으신 건가요?”
그 도발적인 질문에 데미안은 일순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이내 엄격한 어조로 답했다.
“미카엘, 난 이제 하리엘과 싸우지 않는다네.”
“화해하셔서요?”
“새끼 고양이가 좀 깨물었다고 성인 남성이 주먹으로 후려쳐서는 안 되지 않나.”
“아아…… 그런 이유군요.”
그런데 그가 유일한 대악마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그가 새끼 고양이 수준으로 느껴질 정도라면 선생님은 대체 얼마나 강하신 거지?
미카엘은 짐작조차 가지 않아서 말없이 파란 눈동자를 굴렸다.
“천사나 악마는 육체적으로 쇠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8천 살이 넘는 천사…… 아니, 신의 사자는 이 세계에 단 한 명뿐이지.”
“그게 하리엘인가 보군요. 그럼 나머지 천사나 악마는 어떻게 됐죠?”
“죽었네.”
갑자기 가슴께가 서늘해져서 미카엘은 무의식중에 데미안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천사나 악마도 죽는다고요?”
“신께 죽음을 허락받는다면.”
데미안은 불안한 눈빛으로 절 바라보는 미카엘을 달래 주듯 그의 밝은 금발을 귀 뒤로 다정하게 넘겨 주며 말했다.
“천사나 악마가 죽음을 바라는 이유는 단 하나일세. 정신력의 고갈, 흔히 영혼의 쇠함이라고 불리는 이유 탓이지. 비록 육체는 쇠하지 않는다고 하나 정신적으로 붕괴가 되는 걸 막지는 못한단 이야기네.”
미카엘의 깨끗한 이마 위에 이마를 맞댄 데미안은 그의 뜨겁고 밭은 숨을 들이마신 후 서늘하고 차분한 숨결로 돌려 주었다.
자연스럽게 미카엘의 호흡이 안정되자, 데미안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하리엘은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란 이야기일세. 그러니 나는 그를 되도록 자극하고 싶지 않네.”
두 눈을 내리뜬 데미안은 희미한 우울함이 느껴지는 저음으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리엘이 최초로 악마가 된 이유는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보다 가엾은 죄인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라네.”
데미안은 유의미한 손길로 미카엘의 뺨을 쓸면서 말을 이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내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인간이 결국 어머니께 용서받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네.”
“당시엔 자살이 큰 죄였을 테니까요.”
데미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미카엘의 어깨를 밀어서 거리를 벌렸다.
“약간 미친 구석이 있지만 좋은 자라네. 하지만 그는 자네를 만나면 분명 시비를 걸려 할 테지.”
“제가 악마라서요?”
데미안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와 하리엘은 필요할 때는 서로 찾고 의지하긴 하지만, 아주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친형제 같은 관계이기도 했다.
‘하리엘이 좋게 생각할 리가 없지.’
자기 형제가 천 년 넘게 목을 매게 한 이를, 하리엘이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데미안이 소중히 여기는 걸 아니 미카엘을 죽이려 들진 않겠지만, 그에게 표독스러운 말을 퍼부어서 정신적으로 흔들어 놓으려 할 게 뻔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현재 따스한 보호만이 필요했다.
그의 영혼은 데미안이 잠시만 냉담한 태도를 취해도 바로 휘청거릴 정도로 미약하니까.
“아마도 자네가 너무 귀여워서 시비를…….”
“흐즈믈르그으.”
대악마조차 가볍게 상대할 수 있다던 대천사는 금색 고양이에게 뺨을 물린 뒤 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네.”
나약하기 그지없는 영혼이 먹이 사슬의 정점에 오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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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 또 올 예정입니다! 아마도 오후에!
오꾸를 받아야만 해요...
아, 그리고 최신화에 댓글을 달면 마나 500M 이 지급되는 이벤트도 열리게 될 것 같은데, 이벤트가 열리는 김에 작은 이벤트도 같이 진행할까 합니다.
30화를 올리면서 제 블로그(https://blog.naver.com/zedgarhsia)나 공지 글을 통해 따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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