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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28화 (2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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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 탓도 때론 도움이 된다

부두 쪽에 있는 자그마한 신전에서 깨진 바닥을 보수해 달라고 의뢰했을 때만 해도 메이븐은 그리 큰 일감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어이쿠, 심하게도 깨졌네요.”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피해가 심각했다.

건물 외벽에 실금조차 가지 않은 걸 보면 건축상의 문제로 인해 균열이 생긴 것 같지 않은데 마치 거인이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부엌 입구를 쿵 내려치기라도 한 것처럼―그런 것치고 문틀엔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부엌을 중심으로 회랑에까지 굵은 금이 가 있었다.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라 망치로 두드려 봤자, 그 부근만 좀 깨지고 말 텐데 대체 뭘 했기에 이런 균열이 생긴 건지.

“부분 보수가 힘들 것 같은데…….”

메이븐은 이마를 긁적거리다가 제 옆에 선 젊은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뭐,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해 드리겠지만, 기존 대리석하고 새로 시공한 대리석 사이엔 차이가 좀 있을 수 있어요. 그건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메이븐은 가장 굵은 금에 끌을 박고 망치질을 하며 말했다.

“일단 이 바닥과 비슷한 대리석을 찾아야만 하니까 먼저 샘플을 얻어간 뒤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그를 만류하며 말했다.

“부분 보수를 하지 않고 바닥 전체를 교체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밝은 금발의 남자는 화려한 꽃 같은 미인이란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귀티가 나는 남자였다.

품격 있는 집안에서 곱게 자란 듯한 인상이 돋보이는 그는 겉모습만큼이나 실제로도 사근사근한 성격인지 메이븐에게도 상냥한 말씨를 사용했다.

생산직에 종사하는 육체 노동자라고 함부로 대하던 졸부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거야 인부를 몇이나 고용하느냐에 달렸는데 그러면 비용이…… 바닥 전체 교체비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나올 텐데요.”

“비용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후미진 곳에 있는 작은 신전에 어마어마한 기부금이 들어올 것 같진 않은데.

설마 성직자가 대금을 떼먹겠느냐마는.

메이븐이 슬쩍 신전 살림살이를 둘러보자, 남자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꼭 섬세한 악기 소리처럼 듣기 좋은 중저음이었다.

“시공비는 제가 대 드릴 겁니다. 워낙 이 신전에 신세를 많이 져서요.”

아, 하고 운을 뗀 남자는 뒤늦게 명함을 건네고는 견적이 나오면 그쪽으로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미카엘 홀리브링어.

화사한 천사 같은 외모에 걸맞게 이름 한번 성스러운 남자였다.

“시공비는 얼마가 나오든 상관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작업해 주세요. 이곳에서 생활하는 성직자분들께서 큰 불편함을 겪지 않으셨으면 좋겠거든요.”

“거 어린놈의 애새끼가 돈 하나는 존나게 많은 모양…… 어윽!”

잡일이나 도우라고 데려온 아들놈이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자, 메이븐이 그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누구더러 애새끼래. 도움도 안 되는 망할 놈의 애새끼가.

돈이 많은 것만으로도 도련님 소리를 들을 자격이 충분한데 인부에게 친절하기까지 하니 귀공자라 불러야 마땅하거늘.

“미카엘, 손님께서 오셨나?”

남자라고 하기엔 얼굴이 너무 앳되고 청년이라고 하기엔 언동이 너무 어른스러운 남자는 어리다는 말이 그리 탐탁지 않은 듯 일순 싸늘한 무표정을 했지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바로 반색하며 뒤로 돌아섰다.

“선생님 나오셨어요?”

선생님이라고 불리기엔 너무 젊어 보이는데. 아니, 기분 탓인가.

흑발의 남자는 금욕적인 군주님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상을 그대로 떼다 박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그는 다정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있는데도 묘한 위압감을 주어서 제 덩치만 믿고 까부는 아들놈조차 지레 길을 터 주기 위해 안쪽으로 바짝 붙어 설 정도였다.

얼굴만 놓고 보면 참으로 젊은 선생인데 그 존재감만큼은 무시무시한 죄의 심판자 같았다.

“메이븐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이쪽은 제 아들놈인 바렉이고요.”

저도 모르게 모자까지 벗어 든 메이븐이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쥔 채 인사했다.

“데미안 페르페오일세.”

메이븐이 뒤통수를 찍어 누르지 않으면 손님에게 먼저 머리를 숙일 줄 모르던 아들놈이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도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면 그의 눈에도 데미안이 압도적인 강자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귓불을 의심스럽게 붉히는 걸 보면 너무 잘생겨서 쳐다본 것 같기도 하고.

“여기 계신 도련님께서 보수 의뢰를 주셔서 방문했습니다.”

메이븐이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미카엘을 가리켜 보이자,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 저는 도련님이죠? 저하고 이분 나이 차이가 크게 나 보이는 것도 아니잖아요?”

미카엘이 20대 초중반, 데미안이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니 그리 틀린 반박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련님은 풋풋한 느낌이 나고, 선생님은 진득한 연륜이 느껴지니 메이븐의 호칭이 아주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미카엘.”

메이븐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했는지 데미안이 가만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리다는 건 좋은 것 아닌가.”

미카엘은 뾰족한 어조로 대꾸했다.

“어린 게 왜 좋죠? 하나도 안 좋아요.”

데미안과 메이븐은 그저 말없이 미소만 짓고 말았다.

어린 게 왜 좋냐니.

그거야말로 어리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견적이 나오면, 음.”

데미안은 잠시 이마를 찌푸렸다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

“견적서를 내게 보내 주게.”

“아, 비용은 이쪽…… 선생님께서 내주기로 하셨습니다만.”

자기가 먼저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 주제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직 낯설고 부끄러운지 미카엘이 입을 꾹 다문 채 얼굴을 붉혔다.

아이고, 귀여워라.

두 진짜 어른은 흐뭇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서로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면 보수 건은 미카엘에게 모두 일임할 테니 그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주게.”

“알겠습니다, 선생님.”

“미카엘, 잠깐 나 좀 보지.”

데미안이 눈짓을 보낸 후 부엌 밖으로 향하자, 미카엘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잠깐이 아니라 오래도 볼 수 있는데요.”

미카엘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답하자, 데미안이 그를 따라 조금 웃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하루에 6시간 동안 노동을 하기로 했었지?”

“그랬죠.”

미카엘이 그의 도톰한 가슴을 슬쩍 손가락으로 꼬집으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의 몸을 대가로 말이에요.”

데미안은 가슴 앞으로 슬쩍 팔짱을 낀 채 팔로 유두를 가리면서 말했다.

“실은 알렌이 이 신전의 재무 담당이었는데 말일세.”

자기가 먼저 가슴을 보여주면서 꼬실 땐 언제고.

살짝 짜증이 난 미카엘이 그의 팔 사이로 손가락을 억지로 비집어 넣으며 되물었다.

“아하. 다른 사람이 부임해 올 동안 저더러 경리사무를 봐 달라는 말씀이시죠?”

“회계도.”

“회계도요.”

“물론 기도도 해야지.”

“기도하는 경리 겸 회계 담당이란 말씀이시죠? 알겠어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집요하게 팔 사이로 손을 밀어 넣은 미카엘이 기어코 옷 위로 유두를 주물러 대자, 데미안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카엘, 그러다 떨어지겠네.”

“선생님 젖꼭지가요? 잘됐네요. 사탕처럼 입에 굴리고 다닐 수 있겠어요.”

데미안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절 바라보자, 미카엘이 당당히 말했다.

“다친 부위는 고치면 되잖아요? 박살 난 머리통도 고치시는 분이.”

아아, 미카엘 앞에서 누군가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었는데.

데미안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저,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선생님들.”

설마 들은 건 아니겠지.

뒤에서 메이븐이 나오자, 데미안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조심해서 들어가게.”

박살 난 머리통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니 그가 그걸 진실로 받아들였을 것 같진 않다.

문제는 데미안의 유두 소유권이 어린 도련님에게 넘어갔다는 걸 그가 알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견적을 낸 후에 예쁜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테니 확인 서류를 보내 주세요. 그럼 바로 인부들을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래요.”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쌍심지를 켤 정도면서 예쁘다는 말은 그도 인정하는지 미카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선생님께서도…….”

힐끔 데미안을 한 번 쳐다본 메이븐이 고개를 꾸벅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 안 떨어지게 관리 잘하시고…….”

젠장. 들었나 보군.

얄밉게도 미카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면서 그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꾸욱 꾹 눌러 대고 있었다.

“세상에, 선생님. 정말로 떨어질 것 같으세요? 제가 안 떨어지게 잘 고정해 드릴게요.”

“……아주 고맙군.”

데미안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착 가라앉은 저음이 흡사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처럼 들렸다.

* * *

데미안이 상황을 전달하자, 유렐은 바로 알렌 부제의 방에 들러 그가 맡았던 일거리를 방으로 가져다주겠노라 말했다.

그 와중에도 미카엘은 유두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한 손으로 극진히 데미안의 유두 아래를 받친 채였다.

유렐은 그 기이한 행각을 어른스럽게 못 본 척해 주었지만, 데미안에게만 슬쩍 윙크하면서 입 모양으로 말했다.

‘결혼하셔야죠?’

직장 동료 하나는 흑심을 품은 자, 다른 하나는 유두 수호대, 마지막 하나는 결혼을 강권하는 자라니.

정말 쾌적한 직장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은 채찍으로 자기 자신을 후려칠 때보다 훨씬 큰 깨달음을 데미안에게 주었다.

나는 생각보다 고행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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