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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와 악마는 부르지 않아도 된다
“하리엘은 자기 사람에게 약한 데다 정도 많은 자이니, 자네가 버릇없이 굴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겠지.”
데미안은 꼭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천사 중엔 미친 자들이 많다네. 아니, 대부분이 광란자라고 할 수 있지. 어디에 미쳐 있는지는 각자 다 다르지만.”
누군가는 신에게, 누군가는 약자에게, 누군가는 정의에, 누군가는 악을 응징하는 데 미친 듯이 몰두한다.
아마 그게 대천사가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일 거다.
시간이 그의 인내심을 얼마나 갉아먹든, 상황이 그를 얼마나 궁지로 몰아넣든, 타인이 그를 얼마나 비난하고 폄하하든, 오로지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
마치 데미안이 지옥에 떨어진 어린 연인에게 천 년 넘게 매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께선 그 변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순수한 애정(純愛)이라고 하셨다.
“자네가 대악마라고 자칭하면 허겁지겁 달려올 대천사가…… 지금 내 머릿속에만 다섯 명 넘게 떠오르는데 말이야.”
그것도 죄다 정신이 이상한 녀석으로.
데미안은 피와 알 수 없는 피부 조각 따위가 묻은 손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말을 이었다.
“감히 단언하건대 대천사 중에선 내가 가장 온화한 성미일 거라네.”
데미안은 동의를 구하려는 듯 유렐을 돌아보았지만, 그 옆에서 먼저 폭발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그럼요.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관대하고 온화하며 다정한 분이시죠. 아마 신들께서도 그리 생각하실 겁니다.”
미카엘이었다.
새파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하는 그는 독재자에게 목숨을 바치기로 한 고위 관료보다 더 충성스러워 보였다.
“……그 정도는 아니라네.”
후안무치한 독재자와 달리 어느 정도 객관성은 지닌 데미안은 열렬한 추종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조금 떨궜다.
“어쨌든 난 치유를 해 주지 않았나. 적어도 머리는 말이야.”
데미안은 아직도 피가 뿜어져 나오는 팔에 흘깃 시선을 던지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대천사들은 자네의 자연 치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해 보려고 이런저런 고문…… 아니, 실험도 해 볼 거라 생각하는데.”
고문이라고 했다.
분명 고문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어.
미카엘과 유렐은 성숙한 어른이었기에 애써 못 들은 척했지만, 알렌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천사 무서워 하고 중얼거렸다.
“대악마 하리엘이 괜히 숨어 다니는 게 아니라네.”
그나마 하리엘이 연락하고 지내는 천사라곤 데미안뿐이다. 적어도 그는 말이 통하는 상대이니 말이다.
물론 그것도 우열을 확실하게 가린 뒤의 이야기지만.
“대천사들은 무척 순수하고 아주 성실하지.”
데미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건 곧 묘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 말은 심각하게 극단적인 데다 변태적일 정도로 집요하단 뜻이라네. 그러니 그들을 괜히 자극하지 말게.”
유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데미안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미카엘은 만나 본 적도 없는 그들에게 괜히 두려움을 느꼈다.
“그 광란자들을 제외하더라도 대천사나 대악마를 쓰러뜨렸다는 위업을 노리고 도전하는 이들은 많네.”
샤르티엘의 멱살을 움켜쥔 데미안이 그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준 뒤 옷깃을 대충 털어 주었다.
난폭한 손길이면서 동시에 다정한 보살핌이었다.
“자네가 응징의 대천사를 꺾기 위해 찾아온 것처럼 말이야.”
한쪽 팔이 잘려서 균형이 잡기가 어려운지 샤르티엘은 잠시 몸을 비틀거렸지만, 이내 자신의 두 발로 섰다.
“그러니 웬만큼 준비되지 않은 이상 대악마를 자칭하지 말게. 의붓형제여.”
샤르티엘은 하얀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팔꿈치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움켜쥔 채 이를 악물었다.
그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차렸는지 데미안이 부드러이 말했다.
“하리엘에게 가서 도와 달라고 말하게. 그라면 팔도 도로 붙여 줄 수 있을 걸세.”
샤르티엘은 여전히 분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데미안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깨달았는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샤르티엘.”
샤르티엘이 비틀거리며 뒤로 돌아서자, 데미안이 문가에 떨어진 팔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미소 지어 보였다.
“팔은 주워 가야지.”
저러다 울겠네.
미카엘은 입을 꾹 다문 채 떨리는 손으로 자기 팔을 주워 드는 샤르티엘을 아주 조금 동정했다.
뭐 그것도 데미안이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럼 이제 자네와 이야기할 차례로군.”
악마인 샤르티엘을 상대할 때조차 부드러운 낯빛을 유지하던 데미안이 싸늘한 무표정으로 이름을 불렀다.
“알렌.”
그 착 가라앉은 저음이 흡사 지옥행을 선언하는 심판의 신을 떠올리게 했다.
“대악마의 비호를 받다니. 자네가 그토록 거물인지 몰랐는데 말이야.”
데미안이 서늘한 비웃음을 흘리며 비꼬자, 알렌이 수치심에 얼굴을 확 붉혔다.
‘우와, 내가 다 창피하네.’
미카엘은 입술을 꾹 깨문 알렌을 힐끔거리다가 제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하기야 부제라고는 해도 성직자가 악마에게 홀려 악을 써 댔으니 부끄러울 만도 했다.
“저, 선생님. 제가 먼저 저분을 도발했어요.”
그 빌미를 제공한 것도 있기에 미카엘이 슬며시 그를 두둔하듯이 말을 꺼냈다.
“도발?”
“네. 제 목에 난 잇자국을 보여 주면서 선생님의 입버릇이 나쁘다고 말했거든요.”
세상에, 어린애도 아니고.
유렐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려서 입안에 맴도는 말이 밖으로 새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네?”
“그것 외에 또 무슨 말을 했지?”
미카엘은 머뭇거리다가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만…… 말했지만요.”
그대로 미카엘의 어깨를 한 손으로 쥔 데미안은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이를 세웠다.
“읏…… 잠, 선생님!”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살결을 깨문 데미안이 도톰한 입술로 피부를 츄웁, 츄웁 하고 빨아 대자, 미카엘이 얼굴을 확 붉혔다.
단순한 수치심이라고 하기엔 성기에 피가 몰리며 아랫배가 욱신거렸고, 그저 성적 흥분감이라고 하기엔 당황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아아, 젠장. 데미안은 정말…….
“하아, 그래서?”
한참 만에 젖은 입술을 떼어 낸 데미안이 뜨거운 숨을 내쉬며 물었다.
“저자가 자네에게 성질을 낼 이유가 뭐가 있지?”
저자.
이젠 알렌의 이름조차 부르기 싫은 모양이었다.
“내가 내 걸 물고 빨든, 입버릇이 더럽든, 그와 무슨 상관이 있느냔 말일세.”
“물고 빨…….”
미카엘은 뒷덜미에 화악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아니, 뭐 그런 계약이기도 하고, 사실이기도 하지만, 데미안이 워낙 어린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듯한 듣기 좋은 목소리로 노골적인 말을 하자, 이상하게 부끄러우면서도 미치도록 꼴렸다.
상황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데미안의 손을 붙잡고 3층으로 올라가고 싶을 정도였다.
“날 연모하는 이가 한둘인 줄 아나? 자기감정은 자기가 알아서 추스를 줄 알아야지.”
데미안은 제 입술에 묻은 핏방울을 혀로 핥아 삼키고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은 조용히 외사랑을 하는데 왜 자네만 유난을 떠느냔 말일세.”
욕먹고 있는 건 알렌인데 괜히 미카엘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가 조금 전에 세상에서 가장 관대하고 온화하고 다정한 분이라고 칭송했던 데미안이 너무 무섭도록 신랄했다.
“자기 혼자 마음을 품어 놓고 다른 이더러 책임지라고 하다니.”
무어라 반박할 수 없는 옳은 말이 얼음 칼날이 되어 심장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았다.
“지랄도 적당히 해야지.”
우, 우와. 무서워라. 난 선생님한테 절대로 미움받지 않게 조심해야지.
미카엘은 온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데미안의 냉담한 낯빛을 힐끔거리면서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서, 자네는 미카엘에게 뭐라고 했나.”
여기에서 남창 이야기를 꺼내면 선생이 완전히 돌아 버릴 것 같은데.
말없이 눈동자를 굴리던 미카엘이 어색하게 웃으며 에두른 말을 꺼냈다.
“아, 저분이 저한테 시비를 거셔서…….”
“남창 같은 새끼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보세요, 당신. 그렇게 솔직할 필요가 정말 있는 거냐고요.
미카엘은 답답하단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만일 그가 데미안을 비난했다면 미카엘도 참지 않았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데미안처럼 끝내주게 잘생긴 데다 매력적인 남자를 누군가 한 명이 독차지한다고?
당연히 심술이 나겠지.
설령 미카엘이 알렌이었더라도 저 씨발 새끼는 뭐냐면서 저주의 말을 퍼부었을 거다.
“커윽, 큭, 끄윽…….”
하지만 데미안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손으로 알렌의 목을 움켜쥔 데미안은 그를 어딘가에 내던지기 위함인지 점점 팔을 높이 치켜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바닥에서 발바닥이 떨어지게 된 알렌은 숨통을 조여 오는 팔을 두 손으로 긁어 대며 발버둥을 쳤다.
“저기, 선생님? 인간은 약하니까 그대로 힘주시면서 저 사람의 턱이 부서져 버려요.”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데미안을 처음 보았을 때 미카엘은 그가 천사거나 악마일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가 어느 쪽이든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만일 데미안이 천사라면 인생을 구원해 주는 신성한 미남이겠지.
만일 그가 악마라면 인생을 조져 버리는 매혹적인 미남일 테고.
“죽는다니까요? 저 사람, 성직자잖아요!”
미카엘은 그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데미안은 양쪽 다였으니까.
차분한 얼굴로 알렌의 목을 조르는 데미안은 정의를 몸소 구현하는 천사같아 보이기도 했고, 인간을 짓밟으려 드는 잔인무도한 악마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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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녁에는 못 왔습니다... 크흑. 그래도 최대한 빨리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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