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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와 악마는 부르지 않아도 된다
“어…… 아뇨. 다치지 않았어요.”
미카엘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느라 뒤늦게 대답했다.
“자네 안색이 좋지 않아서 정말 놀랐다네.”
데미안은 안도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미카엘의 눈가와 뺨에 연신 부드러운 입맞춤을 해 주었다.
자연스럽게 미카엘도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아무 일도 없다니 다행이야.”
따스한 몸을 맞대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데미안에게 공경을 표하듯 자발적으로 머리를 숙인 유렐과 달리 샤르티엘은 그의 권위에 도전하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었다.
목 위로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흰자엔 새빨간 핏줄을, 목 위엔 새파란 핏줄을 세운 채로.
알렌은 짝사랑하는 이가 눈앞에서 다른 사람과 애정 행각을 해 대니 울먹이고 있었고.
‘엉망진창이로군.’
역시 데미안은 대천사였다.
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데미안이 얼마나 상식이 부족하든 미카엘도 그를 놓을 생각은 없으니 그와 매한가지였다.
“아, 그런데 못 보던 손님이 계시는군.”
데미안이 의아한 얼굴로 물으며 어깨 위에 툭 손을 얹자, 비로소 몸이 자유로워진 유렐이 공손한 태도로 고했다.
“대악마 샤르티엘이라고 합니다, 데미안 님.”
데미안 신부를 직장 동료처럼 친근하게 대하던 때와는 판이한 태도였다.
아무래도 그게 유렐에게 맡겨진 역할이었나 보다.
“대악마라니? 하리엘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대악마는…….”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목에 강한 힘을 준 샤르티엘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데미안에게 덤벼들었다.
“하리엘만 있는 게 아니라고!”
퍼억!
샤르티엘이 너무 빨라서인지 그가 지팡이로 강하게 내리치는데도 데미안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선생님!”
미카엘이 그의 앞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짜고짜 남의 머리를 때리다니.”
아니, 이상한 게 아니었다.
미카엘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데미안이 그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있었으니까.
“버릇없는 악마로군.”
심지어 피할 생각을 못한 게 그냥 안 한 것 같았다.
제 머리 위에 놓인 나무 지팡이를 슥 검지로 치워 낸 데미안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미카엘을 뒤로 밀어냈다.
“그래. 대악마라고 자칭할 정도이니 얼마나 강한지 한번 봐 둘까.”
데미안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자, 샤르티엘은 빠르게 지팡이를 치켜든 채 좌우를 경계했다.
“반사 속도는 느리고.”
하지만 데미안은 이미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내구력은…….”
커다란 손으로 샤르티엘의 뒤통수를 움켜쥔 데미안은 그의 오금을 세게 걷어차 바닥에 무릎 꿇게 하고는 그 안면을 바닥에 힘껏 내리찍었다.
쿠웅!
두꺼운 대리석 바닥이 쩌적 갈라지며 널따란 반경이 몇 센티는 주저앉았다.
“응?”
“어머.”
“어.”
“흐아아아악!”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자칭 대악마라는 존재가 망치로 으깨 버린 물렁물렁한 푸딩이 된 뒤에 말이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데미안이었다.
“내구력이랄 게 아예 없는데.”
데미안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채 손을 떼어 내다가 다급히 샤르티엘의 뒤통수를 두 손으로 가렸다.
정확히는 물렁물렁한 찰흙에 찍힌 거대한 손자국 같은 걸 가렸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고, 한 사람은 오웩 오웩 하고 속을 게워 내느라 바빴다.
“세상에, 데미안 님. 정도란 걸 모르시나요?”
슬며시 자리를 옮긴 유렐이 몸으로 알렌의 앞을 가리며 말했다.
미카엘은 그녀처럼 데미안을 비난하진 않았지만, 당분간 페퍼로니 피자는 못 먹을 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 대악마라고 하기에…….”
무서운 살상력을 지닌 커다란 남자가 주눅 든 얼굴로 눈치를 살피는 게 귀여웠다.
적어도 미카엘의 눈에는 그래 보였다.
알렌은 천년의 사랑마저 식어 버린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 정도 힘으로 찍어 누르시면 하리엘이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냥 뇌진탕만 일으키던데.”
유렐은 못된 꼬마를 야단치는 듯한 눈길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 님.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시면 말의 힘(言力 Power word)이 약해져요.”
다른 이의 눈치는 보지 않지만, 어머니에겐 약한 데미안이 두 눈을 내리뜬 채 머뭇머뭇 변명했다.
“……그 뒤에 헛구역질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
“하리엘이 누구죠?”
미카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데미안을 추종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광신자였기에 누군가 그를 칭송하지 않으면 이를 갈았다.
하지만 무척이나 상반되게도 질투가 강한 남자이기도 했다.
데미안의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은 나뭇잎조차 박박 찢으려 들 정도로 말이다.
“그는 어머니의 첫 번째 아들로 최초의 천사이자, 최초의 악마라네. 지금은 대악마 하리엘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데미안은 슬며시 미카엘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한때는 미카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
“그래서, 그 전(前) 미카엘하고 선생님은 무슨 관계죠?”
다행히 자기 이름에 대한 소유욕은 없나 보다.
데미안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친형제 같은 관계이지.”
“어떤 친형제요. 하나의 지위를 두고 다투는 친형제? 아니면 끈적거리는 친형제?”
친형제가 왜 끈적거리지?
데미안은 순간 얼떨떨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리고는 미소 지었다.
“끈적거리는 친형제에 가깝겠군.”
“뭐라고요?”
미카엘은 험악한 얼굴을 했지만, 데미안은 그와의 추억을 곱씹느라 천장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강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만나는 족족 싸워 댔거든. 보통 치아가 대여섯 개는 빠지고 팔다리가 하나씩은 부러지고 나서야 싸움을 그쳤지.”
데미안은 싸움에 정신이 팔려서 지진이나 산사태도 여러 번 일으켰다며 수줍게 웃었다.
‘인간 입장에선 대재앙이었겠군.’
미카엘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 재앙을 일으킨 사람 중 하나가 그가 추앙해마지 않는 데미안이니까.
“그러니 하리엘과는 피로 끈적끈적한 관계이지.”
데미안이 시선을 내려 그를 바라볼 때쯤엔 오해가 풀린 미카엘도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
“아…… 그런 친형제 말이군요.”
요컨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승패가 완전히 갈렸기에 이젠 하리엘도 내 앞에서 개처럼 기지만 말이야.”
데미안이 만면에 뿌듯한 웃음을 짓자, 옆에서 유렐이 목을 가다듬는 척하며 눈치를 줬다.
“으흠! 흠!”
“……그만큼 하리엘은 강한 자라네. 이런 자칭 대악마와는 달리.”
뒤늦게 대천사의 위엄을 되찾은 데미안이 눈부신 황금빛에 둘러싸인 손으로 뭉개진 푸딩을 한 번 쓰다듬었다.
동시에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샤르티엘의 머리가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으헉, 헉……!”
샤르티엘이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퍼뜩 상체를 들어 올리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데미안이 그의 가슴팍을 지그시 구둣발로 짓밟았다.
“이제 이해했나, 샤르티엘? 어째서 다들 대천사나 대악마를 자칭하지 않는지.”
“개 같은 인간 자식! 네놈의 목을 부러뜨려 버리겠어!”
두 손으로 제 종아리를 움켜쥔 샤르티엘이 분노한 얼굴로 고래고래 고함 질러 대자, 데미안이 빙긋 웃었다.
“그래. 아직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나 보군.”
샤르티엘은 사람에 손에 잡힌 벌레처럼 몸을 바르작거리며 꽉 쥔 주먹으로 데미안의 다리를 마구 두드려 댔다.
“조금 전엔 내가 방심했을 뿐이다! 내가 온 힘을 다하면 너 같은건…….”
“그런 이야기는 자기 발로 선 뒤에 해야지.”
하지만 데미안은 오히려 안쓰럽다는 눈길로 그를 내려다볼 따름이었다.
“나약하고 무력한 샤르티엘.”
거짓을 자주 말하지 않는 신실한 이의 말은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되어 샤르티엘의 팔다리를 단단한 바닥에 결박해 버렸다.
“나는 자네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따름이네. 우린 형제 아닌가.”
“혀, 형제라니! 나는 대악마 샤르티엘이다! 너 같은 인간 출신 천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란 말이다!”
“하긴. 난 양아들이지.”
데미안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쁜 숨을 헐떡거리는 샤르티엘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니 귀 기울여 들어 주게, 의붓형제여.”
한 손으로 샤르티엘의 팔을 들어 올린 데미안은 남은 손으로 그의 팔꿈치를 움켜쥔 채 관절을 기괴한 방향으로 우두둑 꺾어 버렸다.
머릿속을 둔탁한 칼날로 저미는 듯한 고통에 샤르티엘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댔다.
“대천사나 대악마에겐 많은 악마와 천사가 찾아 온다네. 다들 그를 꺾었다는 영예를 얻고자 하거든. 한마디로 칭호 자체가 누군가에겐 도발이 된다는 거지.”
데미안은 질긴 나무줄기를 빙빙 돌려서 끊어 버리듯이 그의 팔꿈치를 계속 여러 각도로 짓눌러 대다가 저항할 힘조차 없어진 팔뚝을 우두둑 잡아 뜯어 버렸다.
샤르티엘은 그의 손에 덜렁 들린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진 듯 이번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자네가 내게 찾아온 것처럼 말이야.”
부드러운 저음으로 충고하는 데미안은 여전히 온화한 낯빛이었다.
그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팔뚝을 휙 부엌 입구 쪽으로 던지고는 샤르티엘의 가슴팍 위에서 발을 치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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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어... 리버스는 없습니다!
데미안에게 있어 미카엘은 좆은커녕 꽃으로도 때릴 수 없는 존재거든요.
현재도 데미안은 불면 날아갈라, 쥐면 터질라, ?항상 힘 조절을 하며 그를 조심조심 대하고 있다는 걸 알아 주시길 바랍니다.
.....진짜로 날릴 수도 있고, 진짜로 터트릴 수도 있거든요.
오늘 또 올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뵐 수 있다면 저녁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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