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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15화 (1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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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와 악마는 부르지 않아도 된다

    “저녁엔 평화 기도 예배가 있으니 그전에 짐 정리를 하고 할 일을 알려 주는 게 좋겠군.”

    알렌은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두 눈은 자꾸만 그들에게로 향했고, 두 귀는 자꾸만 예민하게 쫑긋 섰다.

    “평화 기도 예배…… 그걸 선생님께서 하신다고요?”

    흡사 꽃이 피는 것처럼 화사한 웃음을 터트린 미카엘이 가볍게 조롱하면서 데미안의 앞머리를 꾹 잡아당겼다.

    “아아, 하긴. 선생님께선 평화를 추구하긴 하시죠. 그 안에 약간 무력이 들어가서 그렇지.”

    데미안은 안으로 접은 검지로 그의 콧등을 마주 건드리며 맥없이 웃었다.

    “놀리지 말게.”

    또다. 또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알렌이 아는 데미안은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남자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제아무리 친밀한 사이라 할지라도 스스럼없이 손을 뻗어 상대를 만지지 않는 데미안이다.

    혹여 어린것을 현혹하게 될까 봐 어린아이에겐 더욱더 눈길조차 잘 주지 않는 데미안이다.

    그런 그가, 어째서, 저렇게.

    “그런데 이 안에 든 건 무엇인가?”

    “아, 퀘룸 주괴예요. 가방 안을 현금으로 채워 넣자니 얼마 안 들어갈 것 같아서요.”

    “퀘룸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금속 말인가?”

    “네. 그 주괴 하나가 25테트 정도 하거든요.”

    25테트?

    휙 하고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화려한 외모 탓에 얼핏 거창하게 차려입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 미카엘이라는 남자는 꽤나 간소한 옷차림이다.

    하지만 그가 걸친 옷이며 구두며 시계며 하나하나가 무척 비쌀 거라는 걸 의심한 적은 없다.

    그는 척 봐도 부유한 가문의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저 정도로 부자였을 줄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스레 충격적이다.

    끽해야 스물셋, 넷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25테트라는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다니.

    아니, 개당 25테트라는 주괴를 가방 안에 꽉 채워 왔다고 했으니 저 안에 든 금액만 해도 몇십 테트람이 넘을 것 같았다.

    “음. 그렇군.”

    깜짝 놀란 알렌과 달리 데미안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는데, 미카엘이 부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놀라지 않았다기보다 25테트라는 게 얼마나 큰 금액인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선생님은 25테트가 얼마인지도 감이 잘 안 오시죠?”

    그걸 알아차린 듯 미카엘이 작게 키득거리며 말했다.

    “1바트 정도 하는 정찬을 25억 명에게 사 줄 수 있는 금액이에요.”

    “아.”

    데미안이 뒤늦게 놀란 얼굴을 하자, 미카엘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타박했다.

    “아무리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신다지만, 그 지역의 화폐 단위 정도는 알아 두시는 게 어떠세요?”

    “큰 금액을 쓸 일이 없다 보니…….”

    입장이 곤궁해진 데미안이 어설픈 변명을 하자, 미카엘이 묘한 눈길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하지만 입맛은 고급이잖아요? 선생님은.”

    그를 따라 자신의 몸을 한 번 내려다본 데미안이 뾰족한 말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어색하게 답했다.

    “옷이나 구두 같은 건 모두 교황에게 받은 거라네.”

    “앞으로는 제가 사 드릴 테니까 그걸 쓰세요. 선물 받은 건 모두 버리시고요.”

    야릇한 손길로 데미안의 어깨를 쓸던 미카엘이 손끝에 지그시 힘을 주면서 데미안의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아셨죠, 선생님?”

    자기가 뭔데 사 준다 만다야?

    데미안 신부님은 개인적인 선물은 일절 받지도 않는…….

    “그리하지.”

    그러시겠다고요!

    알렌의 고개가 다시 한번 홱 돌아갔다. 아무래도 오늘 밤엔 뒷목에 담이 올 것 같았다.

    “자네는 정말로 돈이 많은 모양이야.”

    수상쩍게 구는 미카엘이 의심스럽지도 않은지 데미안은 부드럽게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옷 속에 깊숙이 파고든 손가락을 보면 꽤나 힘을 줘서 강압적으로 굴고 있는 것 같은데.

    “알렌, 미카엘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 옆방을 정리해 주겠나.”

    사제복이 구겨질까 염려되었는지 가만히 미카엘의 손목을 쥔 데미안이 그의 손을 가볍게 떼어 내며 말했다.

    “네? 하지만 저분은 관계자도 아니신데 사제관에 머물게 하는 건…….”

    사제관은 신부와 신모, 부제와 복사들이 머무는 곳으로 가끔 외지에서 온 관계자들이 머물기도 한다.

    특히 3층 방은 성하나 추기경이 방문했을 때나 내주는 특별실로 이 신전에선 오로지 데미안만이 그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자네는 여기에 온 지 세 달밖에 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는 예전에도 내 옆 방을 썼었네.”

    알렌은 무어라 항변하려 했지만, 아무런 반박도 듣지 않겠다는 듯 데미안이 단호한 어조로 말을 잘랐다.

    “교황에게 허가도 받아 두었으니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걸세.”

    성하까지 거론되면 부제인 알렌으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무는 알렌이 눈에 거슬렸는지 미카엘이 짐짓 그를 배려하는 척 데미안의 소매를 붙들었다.

    “저분이 불편해하신다면 선생님 방에서 함께 지내도 괜찮아요.”

    저 사람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알렌은 기가 막혔지만, 데미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돌아볼 뿐이었다.

    “나도 거의 내 방에만 있어서 자네가 불편할 텐데.”

    “선생님하고 딱 붙어서 일할 수 있다니 오히려 좋은데요?”

    사근사근한 웃음을 흘리면서 꼬리를 치던 미카엘은 알렌이 매섭게 노려보는 걸 눈치챘는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농담이에요. 방이 아주 좁은 것도 아니던데요, 뭘.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자네 아파트에 있는 짐이 다 들어가진 않을 텐데.”

    “아파트는 그냥 그대로 두려구요. 그쪽에서 출근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알렌이 어어 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데미안의 방에서 함께 지내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책상 하나만 안에다 옮겨 놓죠. 어차피 책상하고 침대 정도만 빌릴 생각이었으니까요.”

    거의 허리가 맞닿을 정도로 데미안 앞으로 바짝 다가선 미카엘이 그의 등 뒤에 슬그머니 팔을 감으면서 장난스레 웃었다.

    “하지만 싱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선생님을 꼭 안고 자야겠는데요?”

    데미안이 그의 품속에 갇힌 팔을 슬쩍 빼내면서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잠을 잘 필요가 없으니 침대는 자네 혼자 써도 괜찮네.”

    “또 그러신다.”

    미카엘은 젖은 보석 같은 푸른 눈동자로 애처롭게 데미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이 같이 있는데 혼자 침대에서 자는 건 너무 쓸쓸해요…….”

    데미안은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상체를 뒤로 빼고 있었지만, 미카엘이 아름다운 눈동자로 절 간절히 바라보자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 두 손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방을, 으흠! 방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의 두 손이 미카엘의 어깨 위에 내려앉기 전, 알렌이 그를 구조했다.

    “데미안 신부님 옆 방으로 말이죠?”

    처억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빗자루로 세게 바닥을 두드린 알렌이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는 듯이 일부러 둘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며 신전 입구로 향했다.

    “네, 바로 정리해 드릴게요. 바로요.”

    씨근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기는 알렌을 지그시 바라보던 미카엘이 대놓고 데미안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물었다.

    “왜 호응해 주신 거죠?”

    데미안이 의미를 묻는 듯한 눈길로 옆을 바라보았지만,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미카엘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제가 대놓고 여우짓을 했는데도 제 편을 들어 주셨잖아요?”

    여우짓이라니. 그것도 진지한 얼굴로.

    순간 입가에 웃음이 번질 것만 같았기에 데미안은 세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새로운 형태의 고행이로군.’

    미카엘은 흡사 배를 내보인 채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와 같다.

    그는 그저 예쁜 짓 하는 걸 좋아할 뿐, 그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배를 어루만지려 하면 이빨과 네발로 손등을 잔뜩 긁어 놓으려 할 게 뻔했다.

    그저 눈으로만, 그리고 속으로만 귀여워해야 했다.

    “그렇게 귀여워 죽겠다는 눈으로 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 눈으로도 안 된다.

    그저 속으로만.

    “안 그래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견제?”

    “저자가 내게 음심을 품은 게 눈이 훤히 보여서 말이네.”

    “아하.”

    한마디로 이용해 먹었다는 뜻이네. 이런 식으로 이용당하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데미안의 허리에 둘렀던 손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린 미카엘이 이번엔 그의 탄탄한 엉덩이를 손바닥 전체로 주무르며 물었다.

    “다른 곳으로 못 보내요?”

    “상부에 이동 제안을 하긴 했는데, 이렇다 할 이유가 없다 보니 금방 처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야.”

    “이렇다 할 이유라면 있잖아요. 선생님께 흑심을 품고 있는 것.”

    데미안은 쓴웃음을 흘리면서 지그시 미카엘을 돌아보았다.

    “그런 이유로 배제하면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나.”

    일견 자기 자랑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비극적이게도 불편한 진실이었다.

    ‘사람이 너무 잘생겨도 탈이로군.’

    미카엘은 다소 지친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데미안을 가벼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도 용케 절 고용할 생각을 하셨네요.”

    데미안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을 아래로 더 내린 미카엘이 중지로 슬쩍 그의 엉덩이 골을 쓸면서 싱긋 웃었다.

    “전 당신만 보면 발기하는 어린 남자인데 말이에요.”

    “자네는…….”

    쉬이 말을 잇지 못하던 데미안은 결국 애매한 미소와 함께 모호한 말만을 남겼다.

    “예외라고 해 두지.”

    “제가 순결한 악마라서요?”

    데미안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선 미카엘이 그와 중심부가 맞닿을 정도로 허리를 꾸욱 밀어붙인 채 입꼬리를 올렸다.

    “새벽 일찍 출근한 이유가 당신하고 섹스하기 위해서인데도 순결한 악마란 말이지요?”

    데미안만 보면 발기하는 어린 남자라고 하더니. 그의 말마따나 미카엘의 성기는 이미 단단하게 서 있었다.

    눈을 들어 사제관 3층을 흘깃 올려다본 데미안이 잠시 고민하다가 미카엘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가 옆방을 치우고 있을 테니 소리 죽여서 해야 할 텐데.”

    데미안이 할 수 있겠느냐는 눈길을 보내자, 미카엘이 혀로 입술을 핥고는 도발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선생님 하기에 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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