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1. 죽기 싫으면 선하게 살면 된다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들던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자, 미카엘은 아침이 지나고 정오가 지나 이제 새로운 밤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달칵.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한 미카엘은 눈썹을 간질이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머리칼에 말라붙은 데미안의 정액 탓에 그의 밝은 금발은 약간 버석거렸다.
“후…… 벌써 하루가 지났나.”
오늘만큼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에 감사한 적도 없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욕구를 채워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데미안의 곁을 떠나야만 했을 테니 말이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밥을 먹는 데 많은 시간이 드는 건 아닌 것 같지만―그간 평범한 인간들을 관찰한 결과였다―미카엘은 잠시라도 데미안에게서 살갗을 떼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어젯밤부터 시작된 정사는 미카엘이 온전히 데미안의 몸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데미안은 하룻밤 사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미카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고는 아무 곳도 없게 되었다.
“음. 선생님?”
미약하게나마 반응하던 데미안의 몸이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자, 그의 안을 강하게 한 번 추어올린 미카엘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잠드신 건가요?”
한 손으로 데미안의 어깨 너머를 짚은 미카엘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면서 그의 코앞에 손등을 가져가 댔다.
“설마 죽으신 건 아니죠? 선생님.”
데미안의 몸 안에서 성기는 뽑지 않은 채였기에 삽입 각도가 바뀌면서 조금 전과는 다른 내벽이 찔리자, 데미안이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그제야 몸을 뒤로 젖힌 미카엘이 안심했다는 듯 화사하게 웃었다.
“아하, 아직 살아 계시는군요. 깜짝 놀랐잖아요.”
미카엘은 이미 정액으로 흠뻑 젖은 데미안의 도톰한 가슴팍을 한 손으로 주무르면서 마저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데미안이 더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면서 바르작거리지 않는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상대는 그 데미안이었다.
미카엘은 그라면 시간(屍姦)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선생은 하다가 지쳐서 잠든 거란 말이지?’
미카엘은 자신의 입술 자국으로 울긋불긋해진 데미안의 허리를 양손으로 강하게 틀어쥔 채 내벽에 퍽 성기를 처박았다.
데미안은 아까 그랬던 것처럼 베개에 얼굴을 묻거나 시트를 꽉 그러쥐진 않았지만, 살짝 미간을 일그러뜨리긴 했다.
물론 그 미간은 미카엘의 성기가 여러 번 훑고 지나간 뒤 사정까지 마친 미간이었다.
반듯한 이마에, 시원한 콧날에, 보기 좋은 입매까지 하얀 정액으로 얼룩진 데미안의 얼굴은 썩 보기 좋았다.
[선, 선생님? 혹시 기분이 나쁘셨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젠장. 뭘 해도 된다며.
두 눈을 내리뜬 데미안이 약간 충격받은 듯한 얼굴을 했을 땐 저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흘러 나갔지만.
[아니, 그게…… 이걸 시리얼에 타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나 자신에게 충격을 받은 참일세.]
미카엘은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눈가가 실룩거리는 걸 막지는 못했다.
[……절대로 시리얼에 타 드리지 않을 거예요.]
반듯한 이마를 구긴 데미안은 아쉽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아아’가 아니죠! 얼굴에 자지를 문질러 댔다가 쌌더니 이런 반응이라니! 제가 더 충격이라고요!]
미카엘은 자신의 어깨 위에 손을 턱 얹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 데미안을 신경질적인 손길로 뿌리쳤다.
[아니, 뭘 동지를 만나서 반가운 것 같은 얼굴을 하시는 건데요! 당신 때문에 충격받은 거라고요!]
그 매몰찬 뿌리침에도 데미안은 태연하게 답할 따름이었다.
[나도 나 자신 때문에 충격받았으니 동지는 동지 아닌가.]
제기랄. 데미안이 이런 남자인 걸 다 알면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해 봤자, 데미안에겐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뻔히 아는데도 그의 안색을 살피게 될 때마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고 만다.
그만큼 미카엘에게 있어 데미안은 각별한 남자였다.
그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존재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만나면 항상 식사했는지 물어보고 식당으로 데려가게 되는 남자.
그가 차가운 비를 맞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존재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비에 젖은 그를 보면 혼자 마음이 다급해져서 우산을 챙겨 들고 뛰쳐나가게 되는 남자.
그런 데미안이 바로 미카엘의 몸 아래에 있었다.
그것도 그의 손길을 듬뿍 탄 채로.
‘실컷 하고 나면 갈증이 가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카엘은 두 눈을 감은 채 고른 숨소리를 내는 모습마저 명화 속 남신처럼 경건한 데미안을 탐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의 몸 안에 자신의 성기가 박혀 있는 데도 여전히 모자란 것처럼.
더욱 깊숙이, 더욱 바짝, 더욱 꽉 붙어서 아예 그와 하나가 되고 싶은 것처럼.
‘보통은 섹스할 때 몇 번 정도 사정하지?’
머릿속으로 자신의 사정 횟수를 떠올리면서 손가락을 꼽아 보던 미카엘은 데미안의 가슴팍 여기저기에 난 자신의 잇자국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았다.
‘너무 흥분해서 그런지 초반에 한 기억은 좀 가물가물한데…… 한 17번 정도 한 건가?’
미카엘은 작게 구슬처럼 쪼그라든 데미안의 음낭을 주무르다가 그의 허벅지 여기저기 난 자신의 잇자국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아무것도 나오질 않네.’
발기한 게 수그러들면 그만하려고 했는데 그의 몸 안에 있으면 계속 수그러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미카엘은 물끄러미 데미안의 훌륭한 복근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몸 속에서 아직도 부족하다고 주장하듯 그의 내벽을 꼼질꼼질 쑤셔 대고 있는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환자하고 예약이 있지.’
미카엘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몸짓으로 데미안의 몸 안에서 성기를 뽑아 내고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먼저 샤워했다.
그 뒤엔 따뜻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데미안의 몸을 꼼꼼하게 닦아 주기 시작했다.
하도 여기저기에 사정한 탓에 일어나서 샤워하긴 해야겠지만, 적어도 눈을 떴을 때 찝찝하단 생각은 들지 않도록.
그 데미안이 끈적거린다며 요란을 떠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
“머리카락도 예쁘게 나셨네.”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겨 오는 검은 머리칼을 닦아 준 뒤 그 위에 입을 맞춘 미카엘은 이번엔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미모야, 뭐 말로 할 것도 없고.”
쪽.
이번에도 따뜻한 수건이 지나간 뒤에는 입술이 방문했다.
“이야, 애들 둘은 앉히시겠네.”
첫 번째 수건을 바닥에 내던진 미카엘이 두 번째 수건으로 데미안의 목덜미와 넓은 어깨를 닦아 준 뒤 그 위에 또 입을 맞췄다.
“음란하긴.”
가장 많은 잇자국이 남은 가슴께는 더욱 꼼꼼하게 닦아 주고 입맞춤도 농밀하게 했다.
여전히 뾰족하게 서 있는 유두에는 세 번이나 더.
“선생님, 자고 계신 거 맞죠? 왜 힘이 들어간 것 같지?”
굵은 근육이 자리 잡은 배를 문질러 닦는 손길은 다소 장난스러웠다.
쪽.
그렇다고 해서 입맞춤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어떻게 참 자지도 잘생기셨네.”
음모가 없어서 그런지 더욱 적나라해 보이는 데미안의 성기는 그의 커다란 몸에 걸맞게 적당히 길고 굵어서 아주 보기 좋았다.
너무 길어서 드로어즈를 입을 때마다 고생하는 미카엘과는 달리.
그의 것은 위로 올리면 고무 밴드 위로, 아래로 내리면 드로어즈 아랫단 밑으로 삐져나와서 어설프게 대각선으로 감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으니까.
“음…… 고생하셨어요, 선생님.”
쪽. 쪽. 쪽. 쪽. 쪽.
음낭이 그의 궁둥이에 꽉 맞닿을 정도로 뿌리까지 깊숙이 쑤셔 넣었던 게 새삼 미안해졌는지 아랫배와 엉덩이엔 사과의 의미로 다섯 번이나 입맞춤해 주었다.
허벅지와 종아리, 발등까지 깨끗이 닦아 놓은 뒤 미카엘은 잠시 한곳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아아, 왜 발가락까지 야하고 지랄이신지.”
털이라고는 한 올 없는 희고 뽀얀 발가락은 야릇하게도 관절 부분만 연분홍색이었다.
그 위에 입술을 묻은 채로 가느다란 한숨을 내쉰 미카엘은 언젠가 그의 발가락을 빨면서 혼자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는 크림 수프하고 빵을 드셨으니 오늘은 뭘 드릴까.”
차를 끓일 물을 올린 뒤 채소를 손질해 샐러드를 만들고 과일을 깎아 애피타이저를 만든 미카엘이 물이 끓는 걸 기다리면서 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아, 단추.”
바닥에 널브러진 검은 단추를 모두 주운 뒤 바늘과 검은 실을 가져온 미카엘이 탁자 앞에 앉아 데미안의 수단을 꿰매기 시작했다.
몇 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갑자기 손을 멈춘 미카엘이 고개를 돌려 데미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언가 고민하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미카엘은 마침내 마음을 정한 듯 바느질거리를 손에 들고 데미안의 곁에 가 앉았다.
그냥 곁에 앉은 게 아니라 침대 위에 올라앉아서 데미안의 몸에 바투 붙어 앉았다.
“좋네.”
섹스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딱히 같이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왠지 좋다고.
“이런 것도 좋네요, 선생님.”
데미안의 체온을 느끼면서 그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았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선작해 주시고 추천 눌러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