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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기 싫으면 선하게 살면 된다
“아, 그런데요. 좀 뒤늦은 말이라고는 생각하는데…….”
평소 뻔뻔하기 그지없는 미카엘이 그답지 않게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당신 같은 대천사라면…… 남자하고 좀 잤다고 큰 벌을 받지는 않겠죠?”
“아아, 예전엔 동성애가 죄였지.”
두 팔로 버티는 자세가 불편했는지 데미안이 옆으로 누우며 말했다.
“태초에 신께선 남자의 짝으로 여자를, 여자의 짝으로 남자를 안배해 주셨으니 말일세.”
자연스럽게 그 곁으로 다가가 누운 미카엘이 그의 두툼한 가슴팍 위에 뺨을 얹었다.
일전에 귀엽다고 한마디 하니까 바로 정색하면서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고 하더니 미카엘의 몸엔 아주 응석이 배여 있었다.
항상 다리든 어깨든 신체 일부분을 붙이고 있으려 하고, 툭하면 어깨나 팔에 뺨을 얹으려 하고, 손을 뻗으면 은근슬쩍 머리를 비벼 대고.
미카엘이 싫어하니 어린애 취급은 하지 않겠지만, 데미안은 그가 심지어 화를 낼 때조차 귀여웠다.
그야 짜증이 난 예쁜 병아리가 콕콕 쪼는 것처럼 보이는걸.
“신께선 왜 생각이 바뀌신 걸까요?”
대놓고 귀여워해 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데미안은 절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미카엘을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내가 신께 간청을 드렸네.”
“남성끼리 잠자리하는 걸 죄로 삼지 말아 달라고요?”
미카엘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자, 데미안이 마주 웃고는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인간 여성에게 가장 많은 고통을 주는 존재가 바로 인간 남성이라니 그들더러 인간 남성과 짝이 되라고 강요하지 말아 달라 부탁드렸지.”
아아, 이제야 이해가 갔다.
정말 데미안이 할 법한 간청이었다.
“음. 그런데 그러면 인간의 수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요?”
“어째서 말인가?”
“누가 인간 남자 같은 것하고 짝이 되고 싶겠어요. 인간 남자는 폭력적이고 감정을 잘 절제하지 못하는데요.”
미카엘은 빠르게 “저처럼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 객관화 하나는 잘하는 남자였다.
“인간 남성이 짝을 원한다면 자신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면 될 거 아닌가. 자연계에서도 선택의 권한은 암컷에게 있다네.”
평소 온화하던 사람이 엄격한 태도를 보이자, 그 모습이 한층 더 위엄 있어 보여서 미카엘은 그를 황홀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만약 데미안이 남신이라면 미카엘은 그의 첫 번째 추종자임이 틀림없었다.
“우린 인간 여성 덕분에 덤으로 죄가 사해진 셈이지.”
냉엄한 남신이 차가운 낯빛을 거두고 도로 부드러이 미소 짓자, 그를 바라보던 미카엘도 절로 웃음을 머금었다.
“뭐, 저도 우리끼리 사는 게 가장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 설령 싸우게 되더라도 어쨌든 육체적인 기능 차이는 남성과 여성 사이보다 덜할 테니.”
“선생님께서 절 때리시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내가 어떻게 자네를 때리겠나.”
데미안은 꼭 신이 어린 영혼을 대하는 것처럼 자애롭게 미소 짓고는 미카엘의 금발을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난 자네를 기절시켜서 일단 흥분을 가라앉힌 뒤에 차분히 대화로 풀어 나갈 걸세.”
“네. 제가 선생님께 덤비면 안 되는 이유를 지금 하나 알았군요.”
가볍게 웃은 데미안은 두 눈을 내리뜬 채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네. 난 언제든지 자네를 용서할 테니.”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욱신거리면서 목 안이 뻐근해졌다.
미카엘은 자신이 절대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인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죄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저렇게 말 한마디로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데미안의 말이 간절하게 와닿았다.
미카엘에겐 육욕을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닌, 감히 데미안을 사랑해도 될 자격이 필요했으니까.
그를 자기 사람으로 탐내도 된다는 허락이 필요했으니까.
‘신께서…… 용서하실 리가…….’
두 눈을 내리뜬 미카엘이 쓴웃음을 흘리자, 데미안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하얀 뺨을 쓰다듬었다.
“미카엘?”
“아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언제 어두운 낯빛을 했느냐는 듯 미카엘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신이었다면 저는 쉽게 구원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참 야비하죠?”
“미카엘, 신께서도 홀로 영혼을 구원하시진 못 한다네.”
어깨를 조금 일으킨 데미안이 그답지 않게 경직된 얼굴로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실어 말했다.
“죄를 지은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신과 자신이 죄를 지은 자와 그 자신에게 용서받아야만 하네.”
신.
자신이 죄를 지은 자.
그 자신.
“어렵군요.”
“그래. 무척이나 어렵지. 특히 마지막 사항이.”
“응? 마지막이요?”
피해자와 신에게 용서받는 게 더 쉽다고?
“자네도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알지 않나. 죄악감은 정말 무서운 걸세.”
그 말대로였다.
적당한 죄악감은 사람이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울타리 역할을 해 주지만, 과할 경우 그의 사고방식이며 현실을 인지하는 기능 자체를 망가뜨리니까.
“순결하고 올곧은 자일수록 더 하지.”
“용서받는다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게 되니까요.”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고.
뒷말은 미카엘의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꼭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선뜩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죄를 지었고 그건 절대로 용서받아서는 안 될 짓이었다.
그게 바로 미카엘이 악한 존재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미카엘이 홀로 생각에 잠기자,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던 데미안이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를 감싸 안는 듯한.
아주 다정하고 따스한 포옹이었다.
“선생님은 정말 너무 다정하시네요.”
조금 전만 해도 미카엘은 불량한 태도로 그를 대하며 악의적인 조롱까지 했지만, 데미안은 그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미카엘을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아마도 이 사람이 천사라서 그런 거겠지.’
미카엘은 그가 신기한 한편 두려웠다.
자신처럼 못돼 먹은 종자에게 걸려서 영혼까지 탈탈 털릴까 봐.
그래서 더는 다른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할 수 없게 될까 봐.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쁜 놈들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데미안이 진한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며 물었다.
“자네는 선한 사람이 잘 이용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뭐, 보통은 그렇지 않을까요?”
“나는 악한 자들이 이용하는 사람은 선한 이가 아니라 약한 이라고 생각하네. 육체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데미안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누가 봐도 부유해 보이는 사람이 빵을 살 돈을 달라고 부탁한다면 선한 이는 거절하겠지.”
“무작정 도와주는 게 아니라요?”
“선은 수동적이지 않네. 오히려 악을 방관하지 않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그러니 그는 누가 봐도 타인을 기만하려는 자를 도우려 하지 않을 걸세.”
갑자기 철학적인 대화가 오가게 된 것 같은데.
그것도 발가벗은 채로.
“만약 그를 도우려는 자가 있다면 마음이 약한 자일 걸세. 타인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자, 혹여 자신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워하는 자.”
데미안은 절 말똥말똥 쳐다보는 미카엘을 보며 조용히 웃고는 그의 뺨을 가만히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선문답을 하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저 옛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먼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아무튼, 날 걱정할 필요는 없네. 나는 선을 추구하지만, 약하진 않으니.”
“그러니까 누군가에게서 비싸게 물건을 사신 적은 없다는 말이죠?”
미카엘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끝끝내 추궁하자, 데미안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누군가에게서 무료로 받은 적은 많네만.”
“아아, 저 같은 사람에게서요.”
“자네 같은 사람에게서.”
“하지만 악마에게 몸을 마음껏 내주는 계약을 하셨잖아요?”
데미안은 의외라는 듯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것이 자네에게 일방적으로 이로운 계약이라고 생각하다니. 참으로 귀엽…… 재미있군.”
“이미 반 이상 말해 놓고 말을 고치지 마시죠. 더 화가 나니까.”
미카엘은 반듯한 눈매를 휘며 씩 웃었다.
그야말로 신의 광명을 담은 듯한 웃음이었다.
“어리고 아름다운 악마가 일을 도와주는 데다 몸으로 봉사까지 해 주겠다는데 오히려 나만 이득 아닌가?”
하지만 말의 내용까지 신언을 전하는 건 아니었다.
술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카엘의 콧등에 난 점을 혀로 날름 핥은 데미안이 농염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내가 자네 얼굴에 사정한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아아, 젠장.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다 못해 아플 정도로 성기가 쑤셔 와서 미카엘은 그를 침대 위에 뒤집어 눕혀 버렸다.
음란한 천사에 타락한 성직자라.
어느 쪽이든 군침이 도는 말이었다.
“이 어리고 아름다운 악마가 선생님께 몇 번 더 봉사해 드려도 될까요?”
아까와는 반대로 데미안의 몸 위에 올라탄 미카엘이 그의 부푼 가슴을 집요하게 애무하며 물었다.
“제가 원할 땐 언제든 다리를 벌려 주신다는 계약이었죠?”
“그래. 그런 계약이었지.”
“한번 체력이 다할 때까지 즐겨 보자고요.”
데미안의 강인한 목덜미에 얼굴을 묻던 미카엘은 시선이 우연히 어느 한 부위에 닿자, 묘하게 장난기 어린 얼굴을 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데미안의 성기를 한 번 훑고는 혀로 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목이 마르니 일단 우유 한 잔씩 마시고 시작할까요, 선생님?”
# 금지어
[미카엘] 잠깐 네스퀵 딸기 좀 가져올게요.
[데미안] 귀여... (아차) 기어서 오게.
[미카엘] 선생님?! 저한테 화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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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BL만 쓰면 개드립이 생각나. 원인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