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죽기 싫으면 선하게 살면 된다
술집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사람들이 시선이 데미안에게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조명을 거의 달아 놓지 않은 탓에 술집 안은 어둑어둑하기 그지없었건만 그의 우월한 이목구비는 어둠마저 꿰뚫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놀랍죠? 이 사람이 남신이 아니라 단순한 천사라는 사실이 말이에요.”
입 밖으로 혀만 굴려도 영혼을 갖다 바치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할 것 같은데 악마가 아니라 천사라는 사실도 참 놀랍긴 하지.
“길을 잘 가던 영혼도 당신을 만나고 나면 바로 길을 잃는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생님?”
데미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미카엘이 슬며시 그의 목을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사탕을 녹인 것 같은 끈적거리는 음성이 귓속으로 흘러들자, 오스스 소름이 돋았는지 데미안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뒷덜미를 한 번 쓸었다.
‘아, 예민하기도 하지. 목덜미가 약한가 봐?’
절로 입안에 침이 고여서 미카엘은 무의식중에 그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민감한 몸과 달리 미카엘에게 되묻는 데미안의 얼굴은 무척이나 정갈하고 신실해 보였다.
이 가증스러운 미남을 홀딱 벗겨서 손바닥 자국이 새겨질 때까지 엉덩이를 세게 후려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미카엘은 겉으론 말끔하게 웃어 보였다.
“순진한 척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겸손한 분이라서 그런 건가요?”
미카엘이 가볍게 조롱하듯이 말하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데미안이 이내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귓가에 마주 속삭였다.
거의 콧등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기에 그가 입술을 떼어 내자, 건조한 숨결이 얼굴을 간질였다.
“그런 주제의 이야기는 성가시니 못 들은 거로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네.”
천사의 숨에선 솜사탕 같은 향이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런 체취도 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인 바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숨이었다.
그게 오히려 더 몸을 달아오르게 했지만.
이 남자를 만난 뒤 완전하게 길을 잃어버린 미카엘은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그저 흥분될 뿐이었지만 말이다.
“와, 정말 어른스러운 대응이네요. 선생님께 또 한 가지를 배웠군요.”
“아니. 이번엔 내가 자네에게 안 좋은 걸 가르친 것 같네.”
자신이 열린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두 팔을 벌린 미카엘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아, 사과하시려거든 마음껏 하세요. 전 언제라도 용서해드리도록 하죠.”
데미안은 그를 따라 웃었다.
젠장. 어둠 속에서도 툭 불거진 듯한, 그야말로 어른스러운 미소의 정석과도 같은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그래. 일은 잘되어 가나? 아, 나는 용의 숨결로 한 잔 주게.”
자리에 앉은 데미안이 멋진 미소까지 곁들여서 점원에게 주문했다.
“아! 저는 푸른 열매로 한 잔 주세요. 물론 체리도 넣어서.”
마음 같아선 어쩔 수 없이 다리가 맞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좁은 자리에 가고 싶었지만, 술집 점원이 지나치게 넓은 소파 자리로 안내해 주었기에 미카엘은 속으로 아쉬워했다.
“아아, 너무 잘되어 가서 걱정이죠. 너무 성실하게 일하고 있으니 자꾸 환자만 늘고 있다니까요?”
“좋은 소식 같네만, 그게 어째서 걱정이지?”
“악마가 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말이죠. 저도 슬슬 누군가를 자살로 내몰거나 남을 상처입히도록 부추겨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내가 왜 천사에게 이런 상담을 하고 있지?
순간 미카엘은 말을 멈칫했지만, 데미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받아 줄 뿐이었다.
“처음부터 악행을 하면 쓰나. 일이 어떻게 돌아가게 되더라도 자네에게 의심의 화살이 돌아오지 않도록 먼저 지지 기반을 잘 다져 놓아야지.”
오히려 그는 진지한 태도로 조언까지 해 주었다.
“신앙심이 깊은 우리 신도들조차 새로 온 신부나 신모의 말을 덥석 믿고 보진 않는다네.”
“흐음. 종교인은 무조건 선구자의 말을 잘 따를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렇지도 않다네. 시간을 들여서 믿음을 쌓고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구축해 놓아야 그의 말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지.”
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야한 몸에,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를 지닌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덥석 믿고 볼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잘하고 있는 것 같군.”
“천사에게 칭찬받으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한걸요?”
데미안은 술집 점원에게도 무료로 제공했던 그 완벽한 미소를 미카엘에게도 아낌없이 내주었다.
“나는 자네를 속이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네.”
아아, 그래. 이런 게 바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지 기반인가.
모든 걸 불신해야 하는 악마이건만 데미안이 저렇게 말했다고 바로 마음이 놓이는 걸 보면 말이다.
“고맙네. 잘 마시겠네.”
첫 번째 말은 점원에게, 두 번째 말은 미카엘에게 한 말이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얻어먹으면서도 뻔뻔해 보인다거나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외모가 끝내준다는 걸 제외하더라도 데미안에겐 무어라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든 매력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녁은 드셨나요, 선생님?”
아니, 어쩌면 마력일지도 모른다.
홀린 것처럼 자꾸 무언가를 갖다 바치고 싶어지니 말이다.
“난 굳이 식사를 챙겨 먹을 필요는 없다네.”
“하지만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싫어하시진 않지요?”
미카엘은 대답도 듣지 않고 점원을 불러 세웠다.
“이분에게 요깃거리 좀 내주시겠습니까?”
“자네는 같이 먹지 않는 건가?”
나까지 식사하게 되면 당신이 뭔가를 먹는 모습을 관찰하기 어려워지잖아.
“아, 저는 저녁을 먹고 나와서요.”
됐으니까 입 벌리고 무언가를 음란하게 삼키는 모습이나 보여 달라고.
미카엘은 생글 웃으면서 주문을 마친 뒤 점원을 돌려보냈다.
“아 참. 아까 그 여성에게 남편 앞으로 생명 보험을 들어 두라고 조언하셨죠, 선생님?”
미카엘은 술잔을 기울이는 데미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천사가 그렇게 인간의 삶에 관여해도 되는 건가요?”
“엘레인이 선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네. 우리도 옛날과 좀 달라졌거든.”
데미안은 빵과 수프를 가져다준 점원에게 다시 한번 “고맙네.” 하고 인사하고는 수프를 숟가락으로 떠 올렸다.
하필이면 크림 수프를 말이다.
‘정액은 하얀색이라고 하던데.’
데미안의 입안에 싸면 저런 모습이 될까?
‘후드득 흘리지 말라고, 선생. 검은 수단에 묻은 하얀 액체를 내려다보며 난처한 듯이 미소 짓지도 말고.’
젠장.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입술 가장자리를 혀로 핥는 데미안은 꼭 좆을 물기 전에 입술을 적시는 것처럼 보였다.
“더는 인간들이 참고 참으면서 선함을 간직하고 죽은 뒤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걸 원하지 않게 되어서 말이야.”
빵을 먹느라 한쪽 볼이 볼록해진 데미안이 꼭 좆을 옆으로 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미카엘은 생긋 웃었다.
물론 그 해사한 표정과 달리 미카엘의 성기는 이미 탁자 아래에서 완전하게 발기한 채 바지 앞섶을 흉포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후의 영광을 아주 조금만 앞당겨서 맛보여 주게 된 거란 말이죠?”
“그 말대로라네.”
“저도 선생님을 맛보고 싶네요. 아! 제 말은, 신의 영광을요.”
데미안은 아주 잠시 멈칫했지만, 자연스럽게 술잔을 들어 올리며 미소 지어 보였다.
“자네도 천사가 되는 건 어떤가? 그럼 아주 조금은 맛보게 해 줄지도 모르잖는가.”
저 입에 한 번이라도 박을 수 있다면 거짓으로나마 회개한 척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정말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니까.’
속으론 기가 막혔지만, 미카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뭉스레 반응했다.
“와, 순간 진심으로 혹했어요. 악마인 저보다 유혹을 잘하시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
“그게 왜 자네만의 업무라고 생각하나? 우리 천사들도 인간이 선행을 저지르도록 열심히 유혹하고 있다네.”
미카엘은 하하 웃었다.
“선행을 저지른다니…… 아! 여기 이분에게 용의 숨결 한 잔만 더 가져다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에겐 푸른 열매를 한 잔 가져다주게. 체리를 넣어서.”
미카엘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웃었다.
‘곧 죽어도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거군. 오늘에야말로 취한 모습을 좀 보고 싶은데.’
데미안과는 이미 여러 차례 술자리를 가져 보았지만, 그는 술을 두어 잔 마시고 나면 바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자리를 파했다.
일전에 술을 다 마시고 일어나면서 약간 비틀거렸던 걸 보면 취하긴 하는 것 같은데.
“인간이었을 때의 이야기 좀 해 주시겠습니까, 선생님?”
무척이나 빠르면서도 우아하게 술잔을 비우고 식사를 마친 데미안이 먼저 자리를 뜰 기세를 보이자, 미카엘이 새로운 화젯거리를 꺼냈다.
“자네는 그 주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군.”
별로 그렇지도 않지만, 내가 술을 마실 동안엔 내 눈요깃거리가 되어 주셔야지, 선생.
“그런 기억이 남아 있는 천사는 드물다고 들어서요.”
물론 미카엘은 입안에 맴도는 말을 내뱉는 대신 화사하게 웃으면서 사근사근하게 답했다.
“자네도 인간이었을 텐데.”
“모든 악마와 천사가 한때는 인간이었다는 이야기인가요?”
“모두는 아니지만, 자네는 확실하게 인간이었지.”
“선생님께선 그런 것도 아시나 보군요. 여기 이분에게…….”
“용의 숨결 한 잔과 체리를 담근 푸른 열매 한 잔 가져다주게.”
미카엘은 저도 모르게 하하 웃어 버렸다.
‘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란 말이야.’
미카엘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 겉으로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저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 전혀 없거든요.”
말을 하다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미카엘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보통은 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생전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되지 않나요?”
“나는 86세가 되어 노화로 사망하기 전까지 신께 쭉 봉사하며 살았네.”
“그래서 선생님은 생전의 기억을 모조리 간직하게 되셨다고요?”
“그렇다네. 신께서 내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첫 번째 소원으로 그걸 빌었지.”
이제야 비로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좀 나온 것 같았다.
미카엘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속삭였다.
“그럼 나머지 두 가지는요?”
“자네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때 말해 주지.”
항상 이런다니까.
이런 남자인 걸 뻔히 알면서도 매번 술자리로 꼬셔 대는 미카엘도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나?”
“전 선생님을 신부님(Father)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거든요. 아마도 전 인간이었을 때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두 눈을 가늘게 뜬 미카엘이 날카로운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구역질이 나는 걸 보면 말이지요.”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어째서 1화 조회수보다 선작수가 높은 걸까요.
혹시 동정공 동정수 키워드만 보고 달려 오신 동지 여러분...?
어쨌든 반갑습니다.
선작해 주시고 추천 눌러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