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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기 싫으면 선하게 살면 된다
(*이 글에 등장하는 교리 및 종교, 시대 배경 및 직업은 모두 허구이며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공수는 직업윤리를 0.1g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현실에서 성실하게 일하시는 해당 직업군 여러분을 욕하지 맙시다.)
(*그냥 얘네만 욕하세요. 얘네는 허구적인 인물이라 고소도 못 합니다.)
엘레인은 조금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리는 여자였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아왔다.
주말엔 언제나 신전에 나가서 4시간 이상씩 기도했고 평일에도 매일 아침 30분씩 기도했다.
“자, 잘못했어요, 헨리!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 줘요!”
“잘못했다고 비는 걸 보면 진짜로 나 모르게 무슨 짓을 했나 본데? 안 그래, 엉?”
엘레인은 사람 안에 내재한 선함을 믿었기에 욱하는 성미를 참지 못하고 손을 올려 버린 남편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 때마다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 또한 선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창녀 같은 년아. 오늘에야말로 널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 엉? 둘이 나란히 천국으로 가자고!”
“자네는 천국에 가지 못할 텐데.”
누군가의 나직한 저음이 들려오자, 한 손엔 칼을, 다른 손엔 엘레인의 머리채를 쥔 헨리가 시뻘게진 눈으로 창문가를 노려보았다.
“씨발, 어떤 새끼야!”
시커먼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온 건 진한 눈썹과 반듯한 눈매가 눈에 띄는 차분한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신께선 모든 존재 안에서 가능성을 보시지. 그렇기에 그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거라네.”
그의 흉포한 근육을 꽉 감싸고 있는 건 펠름 문양이 새겨진 새카만 수단이었다.
그건 유리시아 교의 성직자가 입는 옷이었다.
“데, 데미안 신부님!”
엘레인이 그를 알아보고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붉은 멍이 든 그녀의 눈가가 눈물로 젖어 들자, 데미안은 흐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나의 어린 영혼.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게.”
“성직자가 왜 우리 집에…….”
헨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리다가 엘레인의 머리채를 다시 한번 거칠게 틀어쥐었다.
“요즘 들어 부쩍 신전에 자주 들락거리는 것 같더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단 말이지?”
“부정은 그녀에게 있는 게 아니라 자네 머릿속에 있는 것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헨리의 눈앞으로 다가온 데미안이 그의 가슴팍을 강하게 퍽 걷어찼다.
“그걸 근거로 남을 탓하다니……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커윽!”
부드러운 질책과 달리 헨리의 얼굴을 단단한 구둣발로 짓밟는 데미안의 발은 가차 없었다.
“자네, 이것이 무엇인지 아나?”
지그시 상체를 기울인 데미안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를 금빛 천칭을 헨리의 눈앞에 들이밀어 보였다.
“이건 자네의 죄를 재는 천칭이라네. 하지만 자넨 아직 심판을 받을 정도로 심한 죄를 짓지는 않았지.”
데미안의 말대로 천칭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바닥에 닿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신께선 모든 존재가 잘못을 뉘우치고 옳은 길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계시기 때문이라네.”
데미안이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천칭 쪽에 굵고 긴 검지를 얹자, 자연스럽게 천칭은 한쪽으로 더욱 기울었다.
“그래. 그분께선 지나치게 많은 기회를 주시지. 설사 그가 누군가를 죽고 싶게 할 정도로 벼랑으로 내몰아도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면서 말이야.”
데미안은 실수라는 단어에 묵직한 울림을 실어 말하고는 가만히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에게 고통받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회복하기까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단 말이야. 안 그래도 인간의 삶은 찰나인데 말일세.”
철그럭.
데미안이 손가락 끝에 힘을 실어 천칭 한쪽을 완전히 바닥에 처박아 버리자, 약을 먹은 벌레처럼 바르작거리던 헨리가 이내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떨궜다.
“그게 바로 당신이 시말서를 자주 쓰는 이유인가 보군요.”
성큼 창문 안으로 들어온 금발의 남자가 정중하면서도 부드러운 말씨로 말했다.
교육을 잘 받은 태가 나는 기품 있는 인상의 미청년이었다.
‘창문……?’
엘레인이 사는 곳은 베란다가 없는 12층 아파트였다.
그런데 어떻게.
아니, 그 전에 헨리는…….
죽은 건가?
“혹시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가 필요해지면 연락해요.”
엘레인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인 남자가 그녀에게 명함을 내밀어 보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미카엘 홀리브링어」
커다란 손을 내밀어서 미카엘의 명함을 옆으로 밀어낸 데미안이 절로 안도감이 들 정도로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부드러운 저음으로 말했다.
“그는 악마이니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면 그가 아니라 날 찾아오도록.”
“아아, 너무하네요. 이건 영업 방해잖아요. 그런데…….”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명함을 거둔 미카엘이 데미안의 손에 들린 천칭을 가볍게 톡 건드리면서 물었다.
“당신 같은 천사가 살인을 저질러도 되나요?”
“아, 아아아…….”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던 의식이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듯 엘레인이 울음을 터트리면서 데미안 앞에 네발로 엎드렸다.
“죄, 흐윽! 죄송해요, 데미안 신부님! 저 때문에 신부님이 살인죄를……”
“쉬, 진정하게. 엘레인.”
깨지기 쉬운 유리를 어루만지듯이 두 손으로 조심스레 엘레인의 뺨을 감싼 데미안이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두려워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하지만…… 흑! 하지만 저 때문에 감옥에 가시게 되면…….”
“지금은 다른 이를 걱정하지 말고 그대 자신만을 생각하도록.”
데미안은 그녀의 마른 등을 가만히 도닥이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상처받은 영혼을 홀로 치유하기 힘들거든 언제든 신전으로 찾아오고. 아, 내가 일전에 생명 보험에 대해 이야기했을 텐데. 혹시 남편의 사망 보험은 들어 두었나?”
데미안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해서 엘레인은 현실적인 감각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눈물을 툭 투욱 떨어뜨리면서도 더듬더듬 대답했다.
“시, 신부님께서 들라고 하셔서…… 일단 들어 놓긴 했는데…….”
“이젠 보험까지 파시는 건가요, 선생님?”
살포시 웃은 터트린 미카엘이 가볍게 조롱하듯이 말했다.
데미안은 그에게 난감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엘레인에게서 멀어졌다.
“아직 이 세계는 남편을 잃은 젊은 여성이 혼자 살아 나가기 힘든 세계이니 말일세.”
“아아, 농담이었어요. 현명한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카엘은 자신의 명함을 엘레인의 화장대 위에 올려 두고는 말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 말이에요.”
“흐아악! 뭐야, 또 당신이었어요?”
창문을 통해 들어온 세 번째 손님이었다.
이번에 등장한 건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하얀 털의 강아지였다.
그녀는 삐죽한 꼬리를 높이 세운 채 데미안을 향해 캥캥 짖어 댔다.
“대체 왜 이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시는 거예요, 데미안 님! 우리 이렇게 자주 볼 거라면 차라리 저를 전담 사신으로 써 주세요! 무슨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네!”
데미안이 쓱 손을 뻗어 강아지―아니, 아마도 사신―의 턱을 간질이면서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정이 들 것 같아서 좋네만.”
“어휴…… 또, 또! 아주 숨 쉬듯이 사람을 꼬셔 대죠!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사신은 더러운 것을 묻는 것처럼 데미안을 향해 대놓고 뒷발질하고는 헨리의 입가로 향했다.
“921년 5월 4일 23시 09분, 헨리 마르틴, 천사 데미안에 의해 심장 마비로 사망. 영혼은 성역으로 송치하겠습니다.”
헨리의 입에서 흘러나온 하얀 연기 같은 것이 구슬 모양으로 뭉쳐지자, 사신이 그것을 와앙 삼키고는 창가로 향했다.
“오늘은 더는 보지 말자고요. 아셨죠, 데미안 님?”
“그러지. 아, 가는 길에 사후 처리반을 보내 주겠나?”
“네. 알았어요. 선한 이에게 축복을.”
사신이 네발로 폴짝 뛰어 창문을 나가자, 데미안이 망연자실한 엘레인의 이마 위에 가만히 손바닥을 얹었다.
“이제 모든 걸 잊고 쉬도록.”
엘레인이 몸을 비틀거리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리자, 데미안이 그녀를 가볍게 안아 침대 위에 눕혀 주었다.
“이제 속죄하기 위해 기도하러 가실 건가요?”
먼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온 데미안이 천천히 하강해 뒷골목 바닥에 내려앉자, 미카엘이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섰다.
“속죄? 어째서 말인가.”
“방금 사람을 죽이셨잖아요?”
“다른 존재가 인간을 죽이면 살인이 되지만, 우리가 인간을 죽이면 정당한 응징이 되지.”
그건 몰랐다는 듯 미카엘이 푸른 바다빛 눈을 크게 떴다.
“천사는 참 좋겠네요.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도 되고.”
“그래. 어떤가.”
슬며시 미카엘 쪽으로 얼굴을 기울인 데미안이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천사가 되고 싶지 않나?”
미카엘은 지나가던 사람 열 중 열은 잘생겼다고 감탄할 만한 그의 정제된 얼굴을 바라보며 순간 호흡을 멈췄다.
진하고 반듯한 눈썹 밑에 쌍꺼풀이 없는 차가운 눈매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는 매혹적인 검은 눈동자가 박혀 있는 데다 그림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높고 남자다운 콧대 아래에 야해 보이면서도 위압적인 입매가 자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명화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몸은 또 어떻고.
굵은 근육으로 꽉 짜인 그의 몸은 환장할 정도로 음란해 보이면서도 금욕적으로 보여서 난폭하게 사제복을 찢어버리고 발기한 좆을 저 탱글탱글한 엉덩이에 쑤셔 박고 싶을 정도였다.
“와, 순간 혹했어요. 선생님은 정말로 유혹을 잘하시는군요.”
정염에 젖은 숨결을 애써 가다듬은 미카엘이 짐짓 태연한 어조로 답했다.
“그래야만 혼탁한 세상에 사는 어린 영혼들을 신의 품으로 잘 인도할 수 있거든.”
“그럼 신전으로 가시는 게 아닌 모양이네요?”
데미안이 먼저 뒷골목을 빠져나가자, 미카엘이 그의 옆을 따라 걸었다.
“자네의 말을 빌리자면 시말서를 쓰기 전에 술 한잔하고 쉴 생각이네.”
“술을 살 돈은 있고요?”
말없이 미카엘을 바라보던 데미안이 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을 들여다보자, 미카엘이 덩달아 그쪽으로 머리를 기울였다.
“1밧으로는 벌꿀 주 한 잔도 살 수 없어요, 선생님.”
미카엘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데미안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제가 사도록 하죠.”
“아, 그래 주겠나? 저번에도 자네가 음식값을 내 줬는데 말이야.”
“네. 그랬죠. 그 뒤에 함께 마신 찻값도 제가 냈고요.”
“자네는 돈이 많은 모양이야.”
반듯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데미안은 전혀 민망하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그래. 이 정도로 끝내주게 잘생긴 남자라면 누가 자신을 위해 돈을 내주는 것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겠지.
단아한 눈매를 부드럽게 휜 미카엘이 싱긋 웃으며 뒤늦게 답했다.
“그야 악마니까요. 악마들은 대부분 부자이죠.”
“선한 이들도 많이 벌 수 있는 시대에 와야 할 텐데 말이야. 그보다 매번 자네에게 시혜를 받고 있으니 미안하군.”
“아아, 이건 시혜라기보다…… 조심해요.”
미카엘은 그가 마차에 치이지 않도록 데미안의 허리를 끌어당겨 제 옆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마차가 지나간 후에도 손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데미안의 허리에 자연스레 팔을 감았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한 투자라고 해 두죠.”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검은 수단 안으로 파고드는 모습은 흡사 뱀이 먹이를 옥죄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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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술먹고 충동적으로 올니느 거라 오타 왕 많을 거 같은데 냉리 늦은 오후에 자괴감을 느끼면서 수정할게요
그냥 올린 거라 2편 언제 쓸지 모름. 안 올릴 수도 있고! 히히...
우리 언니가 BL은 안 쓰냐고 해서 쓴 거 아님 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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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을 느끼면서 수정 완료했습니다. (*"히히"는 뭐여, 미친)
이제 오타를 발견하시면 당당하게 지적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