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흡연 구역은 고깃집 외곽 주차장 인근에 마련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벤치가 벽 가까이에 놓여 있고, 재떨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깨끗한 쓰레기통이 사이사이에 자리해 있었다.
“비싼 가게는 이런 데에서도 티가 나네…….”
서진우는 맥없이 중얼거리며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속을 파고들자 멍한 기분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서진우는 잠시 말없이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을 응시했다.
저벅, 저벅. 멀리서 느릿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잘 먹더니 왜 갑자기 입맛을 잃었어요.”
나른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서진우는 담배를 문 채 눈을 돌렸다. 양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은 채 백의현이 걸어오고 있었다. 걷는 자태도 하나하나 우아한 사내였다. 그 사소한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고 재수 없어 보일 정도로.
서진우는 술기운을 빌려 조금 무례하게 굴기로 결심했다. 그는 제 곁으로 다가오는 백의현에게서 눈을 돌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백 이사님 눈에는 저나 강 과장님이 미련하게 느껴지세요?”
잇새로 담배를 물고 라이터에 불을 올리던 백의현이 멈칫했다. 서진우는 한숨을 쉬듯 길게 담배 연기를 뱉어 냈다.
“저는 일은 못하면서 정치질로 살아남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워요.”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끝냈을 무렵의 일이었다. 삼 년 차면 누구나 다는 대리 직급이라지만, 서진우는 자신이 기대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야 평사원 직급에 이미 대단한 흑자를 냈다고 평가받는 강원채의 프로젝트에서 눈에 보이는 실적을 냈으니, 자의식 과잉이 아닌 사실에 기반을 둔 예감이었다.
그때쯤 김 부장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최 상무가 거래처 접대하는 자리에 서진우를 데려가 주겠다는 거였다. 서진우의 가능성을 보았으니 하는 제안이라며, 자신만 잘 따라다니면 대표 눈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김 부장은 귀띔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의였다. 김 부장의 접대가 더럽기로 소문난 것만 아니었다면.
서진우는 대학 시절 두 번의 짧은 연애를 했고, 그 외에는 모두 공부에만 매진했기에 이성애자 남자들이 얼마나 더럽게 놀 수 있는지 몰랐다. 서진우는 유흥 주점은커녕 흔한 클럽조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이사님은 유흥 주점에서 접대받아 보신 적 있으세요?”
서진우가 반쯤 타들어 간 담뱃재를 털어 내며 백의현을 돌아보았다. 백의현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서진우를 내려다보았다.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건조했다. 하긴, 여자를 밝힐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외견만 봐서는 믿을 수 없다. 당장 하성민만 해도, 겉으로는 얼마나 멀쩡한가. 서진우는 이번 프로젝트를 하기 전까지 하성민이 김 부장의 ‘접대’를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거래처 접대는 검은 소파로 둘러싸인 커다란 룸에서 진행되었다. 서진우는 딱 한 번 그곳을 방문했지만, 이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지하 복도에서 맡았던 비리고 꿉꿉한 냄새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 거래처 임원을 포함한 많은 이가 잔뜩 얼어붙은 채 굳은 서진우를 보며 크게 웃었다. 서진우에게 배정된 짧은 원피스 차림의 여성은 그를 보고 귀엽다고 말하며 안쪽 허벅지를 노골적으로 쓰다듬었다. 서진우는 그 모든 상황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일을 잘한 대가로 받는 포상이 원치 않는 성매매와 희롱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한 번, 김 부장님을 따라간 적이 있는데……. 토할 것 같아서 도중에 도망쳤거든요. 그 이후에 김 부장님한테 찍혔습니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됐다.
김 부장은 그날의 접대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서진우가 내는 모든 기획안을 폄하하거나 반려했다. 사소한 실수를 유도해 크게 부풀리고, 특이성이 적은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별 볼 일 없다며 조롱했다.
“그런 사람들이 잡고 버티고 있는 게 회사 라인인데, 그런 라인에 타고 싶을 리 없잖아요.”
서진우가 뭉툭해진 담배를 꺼트렸다.
그날 그 접대가 싫어도 버틸걸. 괴롭힘을 당하는 일 년 내내 서진우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대단한 대의가 있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섰던 것도 아닌데, 고작 그 거절 한 번으로 제 가치가 거꾸러질 줄 알았다면. 그깟 불의 한 번 눈 딱 감을걸.
그렇게 생각하던 서진우를 붙잡아 준 이가 다름 아닌 강 과장이었다.
‘서 대리는 옳은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불합리한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한테는 거래처에 권력을 과시하려고 성매매 업소에 들락거리는 한심한 족속들보다, 성실하고 일 잘하는 서 대리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인재인걸.’
서진우는 죽기 전 강 과장이 힘들어하던 제게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물론 이제는 없는 일이 되었으니 강 과장 자신도 스스로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터지만.
“이사님 눈에는 강 과장님이 순진하게 이상만 꿈꾸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분이 안 계셨다면 저 같은 사람은 못 버티고 진작 나가떨어졌을 거예요.”
서진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백의현은 서진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라앉은 검은색 눈동자가 밤하늘 아래에서 보석처럼 반들거렸다. 서진우는 감정이 보이지 않아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얼굴을 마주했다.
“제가 한 선택이 잘한 일이었다고 말해 주신 유일한 분을 비웃지 말아 주세요.”
서진우에게 있어 강 과장은 단순한 사수, 상사를 넘어 은사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백의현이 전무이사고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밀어주는 중역이라지만, 강 과장을 무시하는 발언은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서진우는 괜스레 서러운 기분이 들어 백의현을 노려보았다. 김 부장의 텃세에도 밀리지 않고 서진우의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로 해서 살짝 고마운 마음도 분명 있었건만, 조금 전 발언으로 한 줌 호감은 빛이 바래기 직전이었다.
백의현은 서진우의 말이 끝난 후에도 별말이 없었다. 서진우는 보기 좋은 입술을 타고 흰 담배 연기가 허공에 가늘게 피어올라 사라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음…….”
손을 늘어뜨린 백의현이 신중하게 목을 울렸다. 그가 담배를 쥐지 않은 빈손으로 느리게 입가를 매만졌다.
“비웃은 거 아닌데.”
백의현이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 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이 서려 있어 서진우는 조금 놀랐다. 바늘로 찔러도 뻔뻔한 표정을 고수할 것 같던 남자가 이런 음성도 낼 수 있다니?
“나는 일에 있어 순진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강 과장님이나, 서 대리 같은.”
이윽고 재차 눈을 들어 올린 백의현이 눈썹을 아래로 휘며 씩 웃었다. 서진우는 눈을 끔벅였다. 누가 봐도 어리둥절해 보이는 서진우를 곁눈질하던 백의현이 작게 한숨을 쉬며 담뱃불을 꺼트렸다.
“내 말투가 나빴던 건 인정합니다. 성격이 워낙 살갑지를 못해서.”
“…….”
“내가, 그러니까 음. 같은 말도 좀 비뚤게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오해를 사서 만드는 편이죠.”
손가락을 세워 초조하게 앞머리를 쓸어 올린 백의현은 드물게도 난처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진우는 눈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긴 백의현의 모습을 생경한 눈으로 마주 보았다. 할 말을 찾는 듯 음, 하고 목을 울린 그가 양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묵직한 구두가 각도를 바꿔 서진우를 향했다.
“기분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과였다. 서진우는 눈을 끔벅였다. 눈앞의 남자에게서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래서 일순 현실감이 없었다.
“……네?”
“강 과장님에게도 돌아가면 제대로 사과하겠습니다.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 한들,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쾌했다면 하면 안 되는 말이었겠죠.”
백의현이 특유의 나긋한 음성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희미한 조명에 짙은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서진우는 멍하니 백의현을 올려다보았다. 자리를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인정. 서진우가 사회인이 되고서는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진심이었다.
“―용서해 주겠습니까? 나 서진우 대리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서진우가 얼이 빠져 대답하지 못하자, 백의현이 고개를 모로 기울여 시선을 맞춰 왔다.
“……!”
뒤늦게 당혹감이 일었다. 서진우는 반사적으로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뒤로 물러섰다. 지, 지금 뭐 한 거야?
단순히 시선을 맞추려고 한 가벼운 행동임을 모르지 않지만 그 파괴력은 상당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이 자리를 벗어난 양 덜컹거릴 지경이었다. 서진우는 황급히 두어 보 뒷걸음치며 고개를 숙였다. 차마 백의현과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아, 아니. 사과받자고 드린 말씀이 아니라, 그게,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이사님께 드릴 말씀이 아니었는데, 그게…….”
“서진우 대리가 미안할 일 없습니다.”
당혹감에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서진우의 말을 자르며 백의현이 산뜻하게 대꾸했다.
“말했잖아요, 서진우 대리 좋아한다고.”
아. 서진우는 질끈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잔인한 헤테로 남성아.
‘지금 여기서 그렇게 말하면 당당하게 오해한다? 나 게이란 말이다…….’
서진우가 속으로 아무렇게나 협박을 일삼는 사이 백의현의 말이 이어졌다.
“신중한 것 같으면서도 할 말은 참지 않고.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더 지지해 주고. 회사에서 그런 사람 찾기 쉽지 않잖습니까.”
서진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선이 마주친 백의현이 씩 웃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듭니다.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라서.”
“…….”
심장의 두근거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서진우는 일순 망연해졌다. 백의현이 말하는 제 모습이 낯설다 못해 생소했다.
죽기 전 서진우는 전혀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일 잘하는 사람 모두 서진우를 미워하거나 한심해했다. 쟤는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던 기획개발부의 동료들을 기억한다. 있는 밥그릇도 남에게 빼앗기는 보잘것없는 인간.
그게 서진우라는 사람이었는데.
“……제 몫의 일 인분 정도는 제대로 해내고 싶으니까요.”
서진우가 애써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칭찬을 들어서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침잠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새로운 자신이 된 지는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서진우는 여전히 자신을 관찰하듯 물끄러미 응시하는 백의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너무 오래 밖에 나와 있었네요. 다른 사람들이 찾을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작 두 마디를 늘어놓는 목소리가 남의 것 같았다. 서진우는 백의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걸음을 돌렸다. 등 뒤에서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의현은 아무래도 한 대 더 피우고 들어갈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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