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2월
‘자는 동안 회사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
직장인에게 이 말은 자신의 과실 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휴가를 얻고 싶다는 뜻이다.
‘아니면 차에 치여서 입원이라도 했으면.’
이 말은 죄책감 없이 휴직계를 내고 쉬다가 안전하게 사무실로 돌아오고 싶다는 뜻이고.
‘……다 됐고 그냥 죽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은, 자신을 얽매는 모든 짐과 의무와 세금과 기타 등등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모든 직장인에게 다 해당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서진우에게는 그런 뜻이었다.
“서 대리는 왜 이렇게 못 마셔? 사내새끼가 빠져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김 부장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꿀꿀거렸다. 서진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얌전히 어깨를 움츠렸다. 왜 이렇게 못 마시냐니, 벌써 소주만 열한 잔째였다. 모든 남자가 술을 궤짝으로 마셔야 하는 것도 아닌데, 김 부장은 서진우가 비실비실한 약골이라도 되는 양 혀를 쯧쯧 차 댔다. 서진우는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는 머리를 가누려 애쓰며 입술을 달싹였다.
“서 대리님, 한잔 받으세요.”
옆자리에 앉은 이가 부드럽게 어깨를 부딪치며 서진우의 빈 잔에 맑은 술을 따라 냈다. 서진우는 흔들리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자신보다 머리 반 개는 큰 후임, 하성민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서진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잔 비어 있는 거 못 보시는 거.”
하성민이 나지막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를 귓가에 속삭였다. 서진우는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깜박였다.
“어우, 하 대리님. 사람이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누군가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듯했다. 서진우는 겸양을 떠는 하성민으로부터 눈을 돌려 가득 채워진 술잔을 망연하게 응시했다. 한 잔 한 잔을 겨우 비워 내고 있는데, 눈 깜박할 사이에 다시 차오르는 술이 꼭 자신의 삶 같았다. 간신히 하루를 해치우면 그다음에 더한 과업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
“우욱.”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려 서진우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등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성민의 목소리와 보란 듯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김 부장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음악과 뒤섞여 멀어졌다.
쾅.
너덜거리는 철제문을 숫제 부술 기세로 열어젖히고 낡은 변기를 부여잡았다.
“우욱! 웨엑…….”
고깃집 뒤편, 낡은 빌라 건물 끄트머리에 자리한 화장실에서 힘겨운 구역질 소리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욱, 우으, 하아…….”
애초에 빈속에 억지로 술을 들이부었던 탓에 나오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서진우는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헐떡거리며 숨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위장을 쥐어짜는 통증 탓에 생리적인 눈물이 절로 솟았다.
“……죽고 싶다…….”
중얼거린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생기가 전혀 없었다. 서진우는 명치께를 움켜쥔 채 멀거니 벽 한구석에 붙은 낡은 스티커를 바라보았다.
“……봤어? 하 대리 보는 눈?”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 문이 열린다 싶더니, 낯익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취한 와중에도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윽고 끔찍할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이, 괜히 그런 말씀 마세요. 서 대리님한테 별 뜻 있었겠어요?”
“말도 마, 하 대리 옆모습을 이렇게 곁눈질로 빤히 훑는데, 내가 다 소름이 끼치더라니까. 하 대리야 사람이 착해 빠져서 어떻게든 좋게 포장해 주려고 하는 거지. 나라면 나한테 고백하는 순간 그 더러운 게이 새끼 눈깔 뽑아 버렸을걸?”
“부장님도 참.”
하성민이 난처한 듯 웃었다. 서진우는 변기 뚜껑을 쥔 채 숨을 삼켰다. 하성민과 함께 화장실에 들어온 김 부장이 가래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하기야, 난 처음부터 알았어. 생긴 것도 딱, 기생오라비같이 비실비실하잖아. 그때부터 아 저 새끼, 뭐가 있다 싶었지. 하 대리도 말이야, 사수니 부사수니 이런 것도 이제 따질 시기 지났잖아? 막말로 이제 같은 직급이고. 그러니까 너무 눈치 보고 챙겨 주려고 하지 마. 서진우 그 새끼 솔직히 올해 인사 평가도 말아 먹었을 게 뻔한데, 줄 잘 서야지. 안 그래?”
“하하……, 제가 착한 게 아니라 부장님께 잘 배운 거죠.”
“으이구, 어디서 이렇게 예쁜 말만 배워 와서는. 하 대리, 내가 아끼는 거 알지?”
“물론이죠, 부장님.”
“그나저나 서진우 이 새끼는 진짜 어디 가서 안 돌아와? 그대로 집에 간 건 아니겠지?”
“글쎄요. 길에서 잠들었으면 어쩌나……. 전화라도 해 볼까요?”
서진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정말 전화를 걸 생각은 아니었는지, 다행히 핸드폰은 잠잠했다. 이윽고 볼일을 마쳤는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더러운 게이 새끼라.
서진우가 허탈하게 웃었다.
남의 험담을 하면서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인사 평가를 말아 먹었다지만, 그건 저 두 사람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을 터였다. 반년간 준비한 프로젝트는 말아 먹었고, 회사에 대한 여론의 눈은 여느 때보다 싸늘했다. 심지어 작년 말 새로 들어온 젊은 이사가 칼부림을 해 대는 통에 연말 구조 조정까지 몰아닥쳐 사내는 그야말로 한겨울의 한파가 우스울 정도의 살얼음판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하하 호호 웃으며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술판을 벌인다. 모든 잘못은 다 서진우의 귀책으로 돌려놓고서. 덕분에 당장 서진우는 밀려드는 클레임을 해결하기 위해 주말인 내일도, 모레도 출근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서진우의 상황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
서진우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를 돌리니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서진우는 양손을 칼날 같은 물에 맡긴 채 거울 한구석에 붙어 있는 작은 명함을 노려보았다. 화장실 손잡이 아래에 붙어 있던 스티커와 같은 문장이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콩팥 삽니다.’
<그 정도로 힘들면 퇴사를 하면 되잖습니까.>
그렇게 말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를 어른거렸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서진우는 얼어붙은 손으로 간신히 수도를 잠그고 비틀비틀 화장실을 나섰다.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니 다행히 구겨진 담뱃갑이 손에 잡혔다.
‘학자금, 전세 대출, 부모님께 보낼 생활비…….’
자신의 생활비를 빼고도, 얼추 계산해 본 합산 고정비가 벌써 백만 원을 넘는다. 거기에 전세 대출 만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출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서진우는 이를 악물고 회사에서 버텨야 했다.
게다가 자신 같은 무능한 인물이 이직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도 없다.
“제 밥그릇도 못 지키는 머저리를 누가 뽑겠어…….”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서진우는 담배를 한 대 빼어 물었다. 군대에서도 배우지 않았던 담배를 입사하고 피우게 됐다. 담배나 술처럼 의존할 곳이 없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서진우는 잇새로 담배 끄트머리를 깨문 채 휘청휘청 처마 밑으로 숨어들었다.
‘내일 여덟 시에는 출근해야겠지……. 그럼 지금 집에 돌아간다고 치면, 네 시간 정도 잘 수 있으려나.’
가슴팍을 더듬어 라이터를 찾으며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암담했다.
“……아, 젠장…….”
서진우가 미간을 문지르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어디다 흘린 모양인지 라이터가 없었다.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불도 붙지 않은 담배를 문 채 신발코만 내려다보던 서진우의 머리 위로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불 필요합니까?”
낮고 묵직한 음성이 얼음송곳처럼 시리고 날카로웠다. 시야 끄트머리에 반질반질한 검은 구두가 걸렸다. 서진우는 프로세스가 마비되어 아주 느려진 컴퓨터처럼 눈을 깜박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잘 다려진 붉은색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금사로 문양이 수놓인 고급스러워 보이는 타이였다.
“불, 안 필요해요?”
서진우가 멍하니 넥타이를 구경하고 있노라니 조금 짜증이 섞인 듯한 음성이 재차 돌아왔다. 서진우는 그제야 황급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예에. 감사합니다.”
술에 취한 탓에 혀가 무겁고 둔했다. 아둔하게 풀린 목소리에 쯧, 혀를 찬 눈앞의 사내가 손수 라이터 불을 켜 주었다. 서진우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막 여행자처럼 허겁지겁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싸한 연기를 들이마시니 정신이 좀 드는 것도 같았다. 서진우는 그제야 제게 불을 준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술에 취한 탓인지, 어둠 속에 가라앉은 탓인지 사내의 인상은 어쩐지 뿌옇고 흐렸다.
‘키가 참 크다.’
서진우가 고개를 들어 올린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을 살피는 듯한 시선을 느꼈는지, 나란히 서서 담배를 물던 사내가 서진우를 돌아보았다.
“거절도 제대로 못 하고 주는 족족 다 받아 마셨습니까?”
“……예?”
“나 참, 호구인 줄은 알았지만.”
초면인 것 같은데, 사내의 어투는 차갑고 까칠했다. 서진우는 어쩐지 주눅이 들어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정신 차리고 집에 가요. 저런 머저리 거머리들 수발드는 것 좀 그만하고.”
사내가 몇 모금 태우지도 않은 꽁초를 쓰레기통에 비벼 껐다. 아까운 장초, 서진우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다 다시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사내는 이미 골목 끝까지 멀어져 있었다.
“……나라고 머저리 거머리 수발드는 호구로 살고 싶었던 건 아닌데.”
벽에 어깨를 기댄 채 담배를 태우던 서진우가 불현듯 중얼거리며 맥없이 웃었다. 낯선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정도라니, 인생이 어디까지 막장으로 떨어진 걸까 싶었다.
“아, 살기 싫다.”
화장실에서 했던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한 서진우가 재차 담배를 입가로 가져갔을 때쯤이었다.
톡, 코끝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눈이네.”
서진우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쩐지 달도 안 보이는 까만 하늘이다 했더니, 별만큼이나 많은 하얀 함박눈이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첫눈이 올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누가 그랬었는데.
어릴 때에는 소원을 빌려고 첫눈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더랬다. 서진우는 피식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나이 서른 먹고 이런 미신을 믿는다는 것도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몇 년은 야근에 치여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던 첫눈이 반가웠다.
지금 당장 빌 만한 소원이 뭐가 있을까.
“……내일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놀라 서진우는 눈을 번쩍 떴다. 이건 무슨, 시험 보기 싫어하는 학생도 아니고. 스스로도 어이없을 만큼 유치한 소원에 헛웃음이 터졌다. 서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꽁초를 꺼트렸다. 아무래도 지친 데다 취하기까지 해서 쓸데없이 감상적이 된 모양이었다.
슬슬 돌아가야지. 자리를 오래 비웠으니 자신을 술안주처럼 물고 뜯는 데에도 지쳤을 것이다. 어쩌면 슬슬 회식을 정리하고 있을지도. 희미한 희망을 안은 채 서진우가 막 발걸음을 돌렸을 때였다.
“―어?”
갑자기 발아래가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마 뒤쪽으로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바닥이 패 있던 탓에 일순 발목이 우지끈 꺾였다. 삽시간에 균형을 잃은 서진우의 몸이 불안정하게 휘청였다. 서진우는 넘어지지 않으려 황급히 손을 뻗어 처마를 받친 봉을 붙들었다. 그러나 이윽고,
우직.
괴상한 소리가 나며 철제 봉이 휜 채로 쑥 뽑혔다. 서진우의 몸이 손쓸 틈도 없이 뒤로 기울었다. 당황한 서진우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려 했지만, 뒤통수가 바닥에 닿는 것이 먼저였다.
곧 퍽, 하며 무겁고 단단한 과일이 깨지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윽고 형용하기 어려운 끔찍한 통증이 천둥처럼 서진우를 뒤흔들었다.
시야가 빠르게 어두워졌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서진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이는 죽음이었다.
서진우의 서른 살 인생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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