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아무래도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뭐라는…, 큭!”
“숨겨도 소용없도다. 체액에서 심연의 입자가 느껴지는데 무얼 감추려고.”
체사레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보니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어느 곳 하나 폐하의 마력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도다. 그래. 그래서 내가 착각한 거였구나.”
핏물을 닦아 내지 않은 녀석의 손이 내 아랫배에 닿았다.
“그럼 이것도 폐하께 받은 것이냐?”
놈의 손이 정확하게 슬라임이 있는 곳을 짚자, 눈치 따위 개나 준 푸딩 새끼가 부르르 떨며 존재감 과시했다.
“허억!”
평소보다 격렬한 진동에 나는 목을 옥죈 녀석의 손보다 아랫배에 닿은 손을 떼어 내기 위해 더 격렬히 버둥댔다.
하지만 체사레는 나를 놓지 않은 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이곳을 누르니 기이한 향취를 뿜는구나. 지옥의 기운이 아주 담뿍 담겨 있도다. 인간에게선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인데. 그렇다면 너는 대공 각하께서 개량한 키메라인 것이냐?”
어차피 내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한 모양인지, 말은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 외피는 껍질이고, 내부에 자리 잡은 슬라임이 본체일지도 모르겠구나.”
이대로 배를 뚫고 슬라임만 뽑아내면 곤란했기 때문에 나는 녀석의 허벅지에 발을 얹었다.
그 바람에 목이 뜯길 정도로 죄여서 정신이 어찔해졌다.
※생존에 불리한 나쁜 행동을 하셨습니다. 페널티가 부과되어 ‘현혹’이 개방되었습니다. 상태이상 탭을 확인하세요.
“크흑! 좆이나… 까, 새끼야. 멀쩡한 인간… 허억, 흡! 괴물로 만들지 말고!”
그러고는 녀석의 몸체를 밟고 올라가듯 딛고, 내 목을 쥔 팔에 종아리를 걸었다.
펄럭펄럭-
천이 나부끼는 소리와 함께 몸을 뒤틀었다.
아주 잠깐 녀석의 손이 떨어지며 미세한 유격이 생겼다.
그 사이로 손가락을 끼워 넣어 벌린 뒤, 반탄력으로 녀석을 떨쳐 내듯 훌쩍 거리를 벌렸다.
녀석이 손톱을 세워 나를 공격했는지, 뒤늦은 알싸함과 동시에 광대뼈 부근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왔으면 눈을 베였을 것이다.
하마터면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은 채 녀석과 싸울 뻔했다며 가슴을 남모르게 쓸어내렸다.
“참으로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로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여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폐하께서 아무거나 함부로 주워 담으실 분이 아닌데, 어찌 이런 추한 것을 선택하셨을까?”
‘그걸 아는 놈이 10만 명이나 제물로 바쳤냐?’
나는 녀석을 한껏 비웃어 주려다가, 설마 바친 제물 중 네 취향이 하나쯤은 있겠지 전법인가 싶어 미간을 구겼다.
‘…그게 맞다면, 이 새끼도 보통 또라이가 아닌데?’
그렇게 집요하게 지구를 떠나지 않고 버티던 목적이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함인 것도 사람 입장에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인간들을 박박 긁어모아 하스칼한테 진상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면, 진심으로 끔찍했다.
‘생긴 건 어디 천사 뺨치게 생겨 놓곤 머릿속은 왜 저렇게 썩어 빠졌는데?!’
괜한 소리가 아니라, 체사레는 시커멓던 악마들과는 달리 제법 화사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은은한 주홍 불빛 때문에 색감이 조금 변했지만, 자연광 아래에서 보면 화려하다 싶을 정도로 반짝반짝한 은발에 진주 같은 혈색을 띠고 있었다.
오닉스처럼 뿔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슐츠만처럼 덩치가 위협적인 것도, 발칸처럼 기괴하게 생긴 것도 아니었다.
전체적인 선이 부드럽고 유연했다.
그래서 더 기괴하고 이질적이었다.
‘이것도 상이 일그러지고 있는 건가?’
녀석의 성은 환각과 함정이 가득 도사리는 요새였다.
이성을 흩트리고, 이지를 무너뜨려 거짓된 기억을 심는 것쯤 일도 아닐 것이다.
내가 아무리 천사 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들, 저런 무해한 모습을 띠고 있으면 심미적인 관점에서 아무래도 조금 더 방심하게 되는 면이 있을 테니까.
“생각이 달라졌도다.”
내가 녀석을 관찰하는 사이, 녀석도 생각을 마친듯했다.
무언가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린 듯 해사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자 오르간 소리가 더욱 커지며, 녀석의 등 뒤로 후광 같은 것이 번져 눈이 부셨다.
녀석을 본떠 조각한 뒤 천사상이라고 우겨도 믿을 만한 모습이었다.
“제 발로 나타난 제물이니 미천한 것이라도 바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 옳다.”
“!!”
그 순간 딛고 있던 바닥이 훅하고 꺼졌다.
* * *
“팔을 들어 보아라.”
“…….”
‘이건 또 뭘 하자는 거지.’
잠시 기절했다 깨어난 사이, 내 몸은 반투명한 사슬에 매여 있었다.
악마들에게 붙잡혀 사지를 결박당하는 일이야 이젠 흔했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문제는 그다음 이어진 녀석의 행동이었다.
체사레 녀석은 나를 투명한 욕조인지 연못인지에 집어넣고, 온몸에 물을 끼얹으며 씻겨 주고 있었다.
“옳지.”
‘옳지는 무슨 옳지야.’
체사레는 내 팔을 잡아 올리며 그 위로 물을 끼얹었다.
녀석은 옳지, 잘하는구나 따위의 추임새를 넣으며 마사지하듯 온몸 구석구석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씻기고 있었다.
‘잡아먹기 전에 재료 손질인가 뭔가 하는 거냐?’
흡사 흐르는 물에 씻겨지는 야채가 된 기분이었다.
‘씨발. 추워 죽겠네.’
사람을 씻기면서 수온 맞출 생각은 못 한 건지 뼛속이 시릴 것 같은 차가움에 몸이 절로 벌벌 떨렸다.
어차피 마법 한 번이면 씻기지 않고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이게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자꾸 그렇게 움츠리면 씻어 낼 수가 없구나.”
사람이 추워서 좀 웅크리겠다는데, 녀석은 그것조차 못마땅하다는 듯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잡아 올렸다.
“시간이 자꾸만 늦어지고 있구나. 인제 그만 아래를 씻자꾸나.”
“미쳤냐!”
나는 기겁하며 녀석을 밀어 내기 위해 발을 뻗었다.
동시에 체사레가 상체를 굽히며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었다.
“……읏!”
“……!!”
당혹스러울 정도로 섬뜩한 소름이 등줄기를 가로질러 갔다.
정말 조금도 의도하지 않았다.
그저 반사적으로 내디딘 곳이 하필 녀석의 사타구니였고.
또 하필 녀석의 좆이 있는 위치였던 것은… 정말 조금도 내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적어도 정정당당한 싸움을 바랐다.
녀석의 심장에 검을 꽂거나, 발칸처럼 시원하게 목을 날려 버려서 고통 없이 보내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내가 씨발! 아무리 죽이고 싶은 녀석이 눈앞에 있더라도 남의 좆을 발로 차 버릴 정도로 악독한 새끼는 아니야!’
나는 거의 속으로 반쯤 울부짖으며, 상체를 수그린 체사레의 어깨를 잡았다.
체사레가 떠는 것이 사슬에 전달돼서는 짜르르 울렸다.
‘이, 이 새끼 설마 우는 거 아니겠지? 하스칼 새끼는 이빨로 씹어도 아무렇지 않아 했는데! 악마들은 다 질긴 거 아니었냐고!’
나는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는 체사레의 양 뺨을 잡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
한껏 버티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녀석은 내 손짓을 따라 순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서 한껏 울상을 짓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도 달랐다.
무슨 표정인지 모르겠는데….
무서웠다.
“추한 것아. 너, 제법….”
체사레의 입이 열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치웠다.
아니,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체사레가 조금 더 잽쌌다.
녀석은 제 사타구니를 뭉개는 내 발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그 바람에 몸이 휘청하며 녀석을 밟고 있는 다리에 체중이 실렸다.
“읏…!”
“…….”
“흐으, 응….”
처음 튀어나온 소리가 고통이 섞인 비명인 줄 알았더니, 묘하게 뭉개진 소리 사이로 야릇한 신음이 섞여 있었다.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체사레는 이제 내 허벅지 위로 입술을 뭉개기 시작했다.
물에 젖어 한껏 축축해진 피부 위로 습한 입술이 맞붙었다 떨어지며 차진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녀석을 밀어 내고, 어떻게든 떨쳐 내려 할수록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
발가락과 발바닥 사이로 녀석의 좆이 무섭게 부푸는 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물 속이라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데, 둥그런 것을 밟고 있자니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휘청거리며 본의 아니게 녀석의 성기를 뭉개자 녀석이 아릿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 새끼, 지금 내 다리로 자위하는 거야?’
“이거 놔!”
“과연, 폐하께서 고르신 제물이야.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아잇 씨팔! 나라고 두 번째겠냐!”
“흣. 너도 처음이라니. 제법 달콤한 소리도 할 줄 알고, 보기보다 낭만이 있구나.”
“…!? 미친놈아! 뭐라는 거야!”
“하지만 미천한 자야. 네가 폐하께 즐거움을 드리고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단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 몸을 이루고 있는 그 마력을 설명할 수 없음이니.”
“아니, 내가 하스칼한테 이런 짓 할 것 같냐고!”
나는 억울했다.
당하면 당했지, 내가 녀석의 고간을 짓밟는다니.
상상만으로도 기괴해서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 놔봐! 이거 좀 놔 보라니까!?”
다급한 마음에 녀석의 어깨를 후려쳤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녀석의 머리채를 잡고 내 허벅지에서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흐읏!”
“으아악! 느끼지 말라니까!”
아무래도 역부족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