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그짝이… 왜 거기서 나와?
허웅석은 불붙지 않은 담배 필터를 질겅질겅 씹으며, 파랗게 빛나는 던전 입구를 보았다.
손목에 찬 측정기도 잠잠한 걸로 보아, 그리 큰 규모의 던전은 아니었다.
“후우.”
일 년이 넘도록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동네가 없을 정도로 일주했지만, 붉은색을 띤 던전은 실수로라도 나타나 준 적이 없었다.
“때깔 한번 시퍼렇기도 허다.”
허웅석은 던전 마력을 담을 수 있는 특수 단말기를 꺼내 찰칵, 사진을 찍었다.
【no.117 충북 제천 구진산 F급 단일 던전. 파란색.】
토톡토톡, 손가락을 재게 놀리며 기록을 남기자 갑자기 등 뒤로 묵직한 무언가가 퍽 하고 달려들었다.
“허미 씨벌, 뭐야!”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런 허웅석의 등을 덮친 건, 귀환 길드 출신 A급 소환술사 백의건이었다.
산삼보다 귀해서 죽기 전까지 얼굴 한번 구경하기도 어렵다는 A급 헌터를 왜 이렇게 자주 만나게 되는지.
허웅석은 어느새 정이 들어 버린 백의건을 슬쩍 밀어 냈다.
“그간 잘 지내셨…냐고 묻기엔 얼굴이 팍 늙어 보이네요?”
허웅석은 장난스레 안부를 묻는 백의건의 질문에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그래. 덕분이다.”
“그쵸? 그런 의미에서 저 사탕 하나만요.”
“…그런 의미가 뭔데.”
“어… 반갑다는 의미?”
“내가 반갑다고 퍽퍽 치면, 어? 사탕을 막 토하고 그러는 자판기냐? 어? 그래?”
허웅석은 제게서 사탕을 강탈해 가려는 백의건의 엉덩이를 발로 퍽퍽 찼다.
그러자 백의건은 아프지도 않으면서 엉덩이를 비비는 시늉을 하곤 입술을 삐쭉였다.
“방금 대규모 소환진 그려서 단 거 당긴단 말이에요.”
“내 알 바야?”
“그러지 말고 딱 한 개만요.”
“없어.”
“아, 없긴요. 저 빚지고 그러는 남자 아니에요. 내일 두 봉지 사다 드릴게요.”
“진짜 없다니까. 이제 안 들고 다니기로 했어.”
“…….”
백의건은 눈을 끔뻑였다.
허웅석은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사탕이 없다고 거짓말을 할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요?”
“그냥 부질없어서.”
“아….”
허웅석은 말은 투박하고 거친 사람이지만, 열 살 남짓한 아이들만 보면 사탕을 못 내밀어서 안달인 남자였다.
그건 마치 사명 같기도 했고, 목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남자가 사탕을 베푸는 걸 포기 할 만큼 어떤 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단박에 수상한 시그널을 읽은 백의건의 눈썹이 추욱 처졌다.
그 모습에 허웅석은 쓰게 웃으며 내려놓았던 배낭을 어깨에 걸쳤다.
“여튼 반가웠고. 아저씨는 공사다망해서 이만 간다?”
허웅석이 손을 휘휘 내젓자, 백의건은 그의 어깨 너머를 흘깃 바라봤다.
선연하게 일렁대는 파란색 던전 입구가 보였다.
백의건의 단말기에 뜨지 않는 걸로 보아 아직 입력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생 던전이라는 뜻이었다.
“던전은 안 들어가시고요?”
“어어. 볼 장 다 봤다. 필요하면 너 쓰든가.”
E급 이하의 랭크 낮은 던전은, 실력 있는 헌터라면 노다지 광산이나 다름없었다.
기껏 해봐야 슬라임 몇 마리 나오는 게 전부이니 위험할 건 하나도 없었고, 가끔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 뜨기도 했다.
그 까닭에 대개 최초 발견자가 곧장 들어가 아이템을 쓸어 나오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그런데 돈을 그렇게나 밝히던 허웅석이 들어갈 생각은 않고, 오히려 돌아갈 채비를 한다?
더구나 아무렇지 않게 입장 우선권을 양보하는 건 전혀 그답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백의건 입장에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뭐 찾으시는 거 있어요? 도와드릴까요?”
“아서라. 비싼 A급 헌터님 이용했다간 길거리에 나앉지. 넌 그짝 몸값이 얼만지 좀 생각해. 폭탄 돌리지 말고.”
“어휴, 돈이 뭐라고. 하루라도 빨리 퇴사해야지, 이놈의 회사.”
허웅석이 손을 내젓자 백의건도 더는 권하기 어려웠다.
귀환 길드가 와해된 뒤, 새로 들어간 서리창 길드는 좋게 말하면 FM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고지식했던 탓이다.
‘하여튼 융통성이 없어. 융통성이.’
백의건도 처음 계약서를 작성할 때만 해도 퇴근도 따박따박 잘 지켜주고 복지가 참 좋은 회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 건지 백의건이 정해진 업무 외에 다른 일을 도우면, 귀신같이 시간과 업무 강도를 책정한 고지서가 상대방에게 날아들었다.
호의로 도왔는데 알고 보니 날벼락이 된 셈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백의건이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었다.
누군가의 편의를 봐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나?
이해는 하지만 가끔 서리창 길드의 규칙이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었다.
‘정보를 더 잘 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사실 백의건 정도 되는 헌터는 길드에 들지 않아도 활동하는 것엔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왁자지껄한 길드에서 지내다 혼자 따로 행동하려니 너무 외로웠던 게 문제였다.
지금도 새로운 길드에 속해 있는 게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닌데 말이다.
‘길드 따위 들지 말 걸 그랬어…. 그랬으면 나도 하수구 던전에 같이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허웅석은 굳은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백의건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등급에 비해, 애가 너무 순해 빠졌다니까. 애가 참 곧고 정직한데 말이야. 어쩜 하는 짓은 이렇게 호구 같을까?’
백의건은 친한 사람에게 가끔 장난을 걸긴 하지만, 그 나이대 남자애들처럼 욕 한번 입에 담는 꼴을 못 봤다.
특히 파벌이나 회사 내 정치에는 조금도 관심 없어 보였다.
최근 헌터 협회 부회장에 오른 우윤혁의 행보와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아저씨. 그럼 산까지만 같이 내려가요.”
“난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온 거야. 그 김에 겸사겸사 던전도 확인해 본 거고.”
“그럼 아쉽게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그래그래 다음에 보면 뜨끈한 국밥이나 한 그릇 하자고.”
“예에. 그때까지 10년은 젊어 보이는 아이템이라도 구해 올게요. 아저씨 주름살 늘어가는 거 맘 아파서 못 보겠다.”
“…넌 인마 평생 안 늙을 것 같지?”
“에이 당연히 늙죠. 다만 제가 늙은 만큼 아저씨도 공평하게 늙으시니까 한결 안심돼요.”
“야, 이! 너 일루와 봐!”
“살펴 가세요. 어르신! 돈 많이 벌면 조금 챙겨 드릴게요!”
백의건은 허웅석을 장난스레 실컷 도발하더니 던전 안으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러자 허웅석은 졸지에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씨. 내가 먼저 떠나려고 했는데.’
처음엔 저 능청스러움이 가식인 줄 알았는데, 막 상 보니 그냥 정 많은 사람이다.
그 정 많은 놈을 삼키는 균열을 보고 있자니 어째 속이 울렁거렸다.
뻔히 살아 돌아올 걸 알면서도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염병.’
솔직히 던전이 너무 무서웠다.
아무리 등급 낮은 곳이어도, 던전 입구를 지날 때 느껴지는 감각이 굉장히 불쾌했다.
하수구 던전에서 빠져나온 뒤 처음 들어갔던 던전에서는 산채로 매장당하는 압박감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점차 괜찮아지겠거니 했지만 웬걸.
상태는 점점 더 악화하고 말았다.
최근은 등급 높은 던전 근처에 가기만 해도 토하고 내장이 뜯기는 기분이 들곤 했다.
‘집보다 던전에서 더 오래 살았던 놈이, 이제는 들어가지조차 못하는 반쪽짜리 신세라고 하면 누가 믿겠어.’
허웅석의 트라우마는 상당히 강렬하게 남았다.
의사도 가급적 던전을 멀리하라며 조언해줬을 정도였다.
그때 상황을 상기시키는 물건도 멀리하라기에, 사탕도 포기한 것이다.
우윤혁과 문규빈, 한울과의 모든 연락도 끊어 버렸다.
“에라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려 했다.
모아둔 돈도 아껴만 쓴다면 평생을 쓸 정도로 알차게 모았고, 매년 기부하기에도 부족함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졌다기보단, 미뤄 놓은 것에 불과한 게 짜증 나는 거라고.’
허웅석은 화풀이하듯 무성한 초목을 거칠게 헤쳤다.
그럼에도 던전 수색을 멈추지 못하고 미련하게 구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빚을 진 것 같은 찝찝함 때문이었다.
어쩌면 영영 갚을 수 없는.
깊고 아득한 빚을.
“어우야. 여기가 어디라냐.”
그렇게 한참을 가고서야 아차 싶어 주변을 휘둘러 보았다.
일반적인 길이 아닌 쪽으로 산을 타는 바람에 조금 헤매고 말았다.
하지만 허웅석은 눈썰미가 참 좋았고, 오래지 않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허이구 도깨비 터가 따로 없네.”
공터 가운데 둥근 봉분이 있고, 잡초가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다.
그 작고 볼록한 무덤을 마주 선 허웅석의 눈이 그리움으로 일렁거렸다.
“허동우. 애비 왔다.”
던전에 휘말려 별자리가 되어 버린 아들의 묘였다.
“아빠 바빠서 못 올 줄 알았지? 어림없다 이눔아.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아들 기일은 맞춰야지.”
허웅석은 그렇게 말하며 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 묘에 술을 뿌릴 수는 없고.
평소 좋아하던 사탕도 어쩐지 내키지 않아 들고 다니지 않은 지 한참 됐다.
그 까닭에 조촐하긴 하지만 케이크에 초를 꽂는 게 전부였다.
“어디 보자. 올해로 우리 아들 나이가 스물일곱이던가?”
허웅석은 긴 초와 작은 초를 번갈아 꽂고는 하나하나 조심스레 불을 붙였다.
손이 자꾸만 떨려서 쉽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스물일곱 개의 초가 모두 빛날 즘.
갑자기 전조도 없이 허공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뭣…!”
하필 아들의 무덤 위였다.
자신이 실수로 케이크 위에 악마 소환진이라도 그린 게 아닌가 당황할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허웅석은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일단 균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균열은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사람만큼 커지더니 울렁이며 무언가를 퉤 하고 뱉어 냈다.
“억!”
생각보다 묵직하고 컸다.
허리가 절로 꺾이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게 무언지도 모르고 무심코 그것을 받아 낸 허웅석의 얼굴 위로 점차 영문 모를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짝이… 왜 거기서 나와?”
아무래도 아들이 반품조차 안 되는 이상한 선물을 쏴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