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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줘,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67화 (67/80)

67. 망가지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무작정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르고 힘껏 끌어안았다.

그러자 익숙한 체향과 기분 좋을 정도의 서늘한 체온이 느껴졌다.

갑작스레 달려들었는데도 녀석이 나를 안아 드는 자세는 제법 안정적이었다.

이런 게 익숙해질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참 많이도 붙어먹었다 싶었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일까.”

녀석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천천히 숨을 들이켜자, 대번에 떨떠름한 의혹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응이 만족스러웠다.

녀석의 질문이 내게는 중요한 힌트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수작. 그래, 맞아 수작이었어. 나는 녀석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었어.’

내 목적은 녀석을 유혹하는 거였다.

정확하게는 어딘가 고장 나서 쓸모가 없어진 서태준이, 녀석을 유혹하다가 버려지는 거였다.

설혹 버려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녀석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충분했다.

“두 번 속을 만큼 내가 만만해 보여?”

‘아직 제대로 속인 적도 없는데 뭘 분해하고 있어.’

놈이 나를 밀어내려 하자, 나는 더욱 들러붙었다.

그러는 동안 몸에는 착실하게 미열 디버프가 작용했다.

열감과 함께 성감이 오르며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감각을 참지 않고 무작정 하스칼의 허벅지에 고간을 비볐다.

순식간에 성감이 머리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굳이 신음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달아 참을 수 없다는 양 엉덩이를 들썩였다.

이 정도로 달려들면 오히려 신나서 벗겨 먹을 줄 알았는데.

녀석은 내 뒷목을 잡고 강하게 떼어냈다.

“너….”

그러고는 흡사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내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이렇게 질색하는 표정이라니. 효과가 좋은데.’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도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얼마 만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 이런 계책을 생각해 냈을 땐 스스로조차 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지 않았는데.

어째, 해 보니 또 할만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입으로 말해.”

입으로 말한들 들어주지도 않을 텐데, 뭣 하러 그런 곳에 시간을 낭비해야 할까.

애초에 악마는 인간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게 이번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차피 녀석과 나는 각자 다른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였다.

녀석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나는 그걸 막으면 되는 거였다.

서로 이해할 것 없이 그저 자신의 것을 쟁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머리 아플 일도 없었다.

그리고 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지 못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몸?’

어차피 버린 몸이다.

이런 것 따위, 고장 나지 않고 멀쩡했던 적도 별로 없었다.

따지고 보면 옷을 벗어 던지고 마왕을 유혹하는 게, 베이고 부러지고 갈려 나갔던 지난날과 뭐가 그리 다를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미약하게 남아 있던 수치심도 모두 밀어내고 나니, 더는 거리낄 게 없었다.

나는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하스칼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도 순순히 떨어져주지 않자 나는 녀석의 손가락에 손가락을 얽었다.

서늘한 손에 깍지를 끼고 손등을 핥았다.

“정신 차려.”

하지만 노예가 주인에게 침질하는 건 별로 취향이 아닌지, 하스칼의 손바닥에 깍지 낀 손이 잡혀 버렸다.

‘이제 손은 쓸모가 없어졌네.’

어차피 신체에 이용할 곳은 많았다.

나는 조금 더 다리를 벌려 녀석에게 긴밀하게 밀착해 앉았다.

그러고는 녀석의 얼굴 위로 입술을 뭉갰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녀석은 묘한 표정으로 내 눈만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에 맞춰 다시금 웃어줬다.

아니, 정확하게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 아플 정도로 틀어쥐고 있던 녀석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뜻밖의 자유였다.

다시금 손을 놀릴 수 있게 되자, 나는 망설임 없이 녀석의 바지춤을 잡았다.

태준아! 안돼! 사는 게 죽는 것보다 고되다고 정신줄 놓으면 안 되는 거야!!

그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동안 보이지 않던 시스템 창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부름에도 반응하지 않고, 하스칼의 성기를 꺼내 양손으로 쥐었다.

‘이걸 용케 배 속에 넣을 생각을 했네.’

이미 몇 번이고 들어가서 싸지르고 나왔던 좆이지만, 손에 꽉 차는 느낌은 가히 흉기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태, 태준아!!

‘이렇게 하는 거였나.’

나는 입을 최대한 벌려 녀석의 귀두를 물었다.

고작 넣기만 했는데도 턱이 아릴 정돈데, 이걸 용케 목구멍까지 쑤셔 넣었다.

“흣….”

다시금 몸속의 성감이 부풀어 오르자 나는 뭉그러진 신음을 토하며 녀석의 귀두 끄트머리를 혀로 문질렀다.

늘 수동적으로 당하다가 적극적으로 뭘 해 보려니 어설프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오닉스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내게 시청각은 물론 촉각까지 모든 자료를 제공한 셈이었으니까.

꿈속에서의 ‘나’는 주인님의 좆을 기꺼운 표정으로 받아먹었다.

그러고는 사탕처럼 양쪽 볼이 패일 정도로 힘껏 빨았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못할 게 없었다.

여보세요? 태준아? 나 안 보여?

나는 하스칼의 귀두가 목젖을 건드릴 때까지 한껏 밀어 넣었다.

생리적인 거부감이 따라오긴 했지만, 몸은 수상쩍을 정도로 후끈 달아올랐다.

우리 태준이가 이상해…!

어느덧 내 상태를 인지했는지 슬라임도 체액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흠뻑 젖어 들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으응, 으…!”

나는 꿈속에서의 ‘나’처럼 정액을 조르듯 흐느꼈다.

그러자 내도록 조용하던 하스칼이 내 양 뺨을 한 손으로 쥐고 잡아 올렸다.

‘아, 거의 다 넣은 건데!’

어렵사리 목구멍까지 밀어 넣었던 귀두가 쑥 빠져나가자 짜증이 일었다.

녀석의 성기를 삼키려면 반 넘게 더 밀어 넣어야 했지만, 가장 힘든 구간을 어찌어찌 넘겼는데 산통이 깨졌으니 불만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런 표정도 남김없이 내보였다.

“어디까지 하나 두고 봤더니.”

“읏…!”

하스칼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턱이 아려왔다.

무른 통각을 뚫고 들어올 정도면 상당한 악력이리라.

살살 다뤄! 그러다 태준이 다치겠어!

“그렇게 몸이 달았나?”

“으응….”

“식사가 부족하진 않았을 테고. 인간에게도 발정기가 있는 모양이야. 응?”

순식간에 하스칼의 시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녀석의 금빛 눈동자가 시야를 가득 채우며 그 너머로 내 얼굴이 비출 정도였다.

열기 때문에 적당히 달아오르고, 적당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특징 없는 얼굴 위로 투미한 눈이 얹혀 있으니, 하스칼 입장에선 별로 동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혀끝에는 아직도 묵직하고 두툼했던 하스칼의 살맛이 남아 있었다.

그 맛을 음미하듯 나는 오닉스처럼 윗입술을 핥았다.

그러자 하스칼의 표정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강하게 일그러졌다.

‘아, 이건 역효관가.’

애초에 누군갈 유혹해 본 적도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곤란했다.

“내가 일전에 경고하지 않았나? 그런 눈으로 반항하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그런 눈이 어떤 눈인데. 아니, 애초에 이건 반항이 아니라 대주고 있는 거라고. 그것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애석하게도 하스칼에겐 내 노력이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만한 마왕이 화를 낼수록 내 웃음이 짙어졌다.

녀석이 이대로 홀라당 넘어와도 좋고, 넘어오지 않고 한껏 성을 내다가 부숴 버리겠다고 난리를 피워도 좋았다.

녀석의 이성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지 않아 다가올 미래를 그리며 녀석의 입술을 덮치려 했다.

하지만 입술 끄트머리가 맞닿기 직전에 하스칼이 내 몸을 밀쳐 냈다.

“쿨럭, 쿨럭! 컥, 크흑헉!”

그다지 강한 힘도 아니었는데, 참을 수 없는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온몸의 근육이 오그라들 정도로 거센 기침을 토한 뒤, 폐에서 끓고 있던 핏물을 뱉어 냈다.

투둑 툭.

하얀 시트가 붉게 변하자 배가 당겼다.

목도 아팠다.

설마 무작정 녀석의 좆을 밀어 넣다가 목구멍이라도 찢었나 싶어 혀를 굴렸지만, 그것만으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들어갔었기에 무용한 짓이었다.

‘하, 씨발. 병약 컨셉은 예상에 없던 건데….’

고작 기침 좀 한 걸로 온몸의 기력이 쇠하는 기분이었다.

시야가 이지러지고 상이 두 개로 갈렸다.

이제는 앉아 있기도 힘들 만큼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더니 눈앞이 핑 돌며 새카맣게 타올랐다.

‘대체…, 망가지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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