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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줘,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66화 (66/80)

66. 그게 내 계획이었다

“약속했던 정보는 언제 주실 겁니까.”

분노를 짓씹듯 뱉은 우윤혁의 말에 헌터 협회 건물이 들썩거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서늘한 감각에 협회장은 잠시 찔끔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턱을 치켜들고 뻔뻔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어허! 찾고 있다니까요? 너무 조급해 말고 기다리세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테니까요.”

“벌써 그 얘기만 반년 넘게 하고 있잖습니까.”

“우리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협회장의 뻔뻔한 태도에, 우윤혁은 제가 데려온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작 두 명입니다. 마력조차 감지할 수 없는 비각성자 두 명을 파견하고서는 노력이라니,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건 우리 협회를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정말 어렵사리 모신 던전 추적 전문가분들이에요!”

“요즘은 던전 역사도 다 떼지 못한 2개월짜리 인턴들을 어렵사리 모신 전문가라고 부르나 보군요.”

우윤혁의 말에 협회장이 인턴들을 강하게 쏘아보았다.

적당히 사무실에 나가서 엉덩이만 비비고 있으라고 했건만.

눈치 없는 인턴 둘이 사고를 쳐도 거하게 친 모양이었다.

앞으로 저 둘은 헌터로 각성하지 않는 한, 이 업계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들이밀 수 없으리라.

“아,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니까요.”

“수십억을 쏟아 부었는데도 예산이 부족하다니요. 수색에 필요하다던 아이템 역시 모두 구해다 드린 걸로 아는데요.”

우윤혁의 시선이 협회장의 손가락과 허리춤을 향했다.

협회장이 던전 수색에 필요하다며 들들 볶기에 구해다주었던 아이템들이, 그의 몸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저 아이템만 팔아도 부족하다던 예산은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터였다.

“커험!”

하지만 오히려 협회장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이템에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은밀한 곳에서 따로 주고받은 터라 우윤혁이 자신의 말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를 어항에 처넣었던 그 원한은 아직도 잊지 않았다.

“아, 원래 던전을 발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무엇보다 우윤혁 헌터가 찾는 하수구 던전은 이미 닫힌 구역이에요!”

“그래서요.”

“지금껏 닫힌 던전이 도로 열린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요.”

“흔적조차 나오질 않는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겁니까!”

“그래서, 지금. 찾지도 못할 던전을 미끼로 저를 가지고 놀았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 그럴 리가요! 그만큼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정곡을 찔린 협회장은 입을 우물대다가 허둥지둥 전화기를 들었다.

“커험. 우선 미팅은 여기까지만 하죠. 만남에도 절차가 있고 예의가 있는 법입니다. 다음번엔 이렇게 무작정 찾아오지 말고 미리 연락을 주세요. 그러면 조만간 좋은 정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비서!”

콰직!

우윤혁은 협회장의 손에서 전화기를 뽑아 테이블 위에 박아 넣었다.

“그러면 무작정 찾아오지 말게 하셨어야죠. 계약 직후 전화도 받지 않고, 해외 출장을 갔다며 4개월이 넘도록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사람을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합니까?”

“우, 우윤혁 헌터. 나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협회장님.”

우윤혁은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협회장의 멱살을 잡아 들고 그대로 벽에 몰아붙였다.

에픽급 이상의 방어 아이템으로 둘둘 싸맸는데도 협회장은 우윤혁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 이거 놔!”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협회장을 지키던 헌터들이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무기를 꺼내 쥐었다.

서로를 살피는 눈빛에는 과연 자신들이 S급 헌터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내가 우습습니까?”

“우윤혁 헌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그대로 둔 것은, 내 입장이 더 급박했기 때문이었어요. 난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요.”

“으윽, 크헉!”

“그런데 그런 무능하고, 욕심 많고, 주제도 모르는 놈이 내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내가 그걸 언제까지 눈감아 줘야 할까요?”

“커헉! 이, 이것 좀! 다, 당신 감옥 가고 싶, 윽!”

“그깟 감옥 따위 무서워할 것 같습니까?”

우윤혁의 눈에 살기가 돌자 협회장은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양팔을 마구 휘저었다.

“아, 알겠습니다! 3개월! 3개월 안에 원하는 정보를 물어다 드리죠!”

“3일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유의미한 정보를 가져오세요.”

“무, 뭣?! 그런 말도 안 되는 양아치 셈법은 대체! 죽어도 못 합니다!”

“그럼 지금 죽여드릴까요?”

“?!”

“뭔가 착각하고 있는가 본데. 내가 3일을 부른 건, 잠시 다른 볼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당신의 쓸모없는 목이 몸과 온전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유예 기간이 생긴 거고요.”

“흐, 흐헉……!”

우윤혁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협회장은 목 졸린 소리를 내며 마구 버둥댔다.

어떻게든 저를 구해 달라며 다른 헌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감히 서 있지도 못할 힘에 짓눌린 이들은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이대로 짓눌려 심장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대체 하수구 균열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정의롭고 자애롭다던 우윤혁이 저렇게 변했을까.

일 년 새 살이 내려 턱선이 날카로워지고 눈빛이 형형해진 우윤혁은, 밤중에 잘못 만나면 연쇄살인범으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살기가 넘쳤다.

그제야 협회장은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헌터들이 자신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목을 매느라 숙이고 들어오는 것에 맛 들인 게 문제였다.

컨트롤할 수 없는 고등급의 헌터는 가히 재앙이라 부를 만큼 지독한 녀석인데도, 그런 그들을 쥐락펴락하는 기분에 이성적인 판단조차 흐려진 것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협회장 말대로 닫힌 던전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숨은 사람 하나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죠.”

“끄, 끄윽!”

“그러니 괜히 도망가서 나를 번거롭게 만들지 마세요. 여기서 내 시간을 더 빼앗으면, 협회장은 살려 달라는 말 대신 제발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될 겁니다.”

“3, 3일은 정말로 불가능…!”

“혹시 압니까? 정보가 조금 부족해도, 그럭저럭 쓸만하면 왼팔 하나로 봐주고 싶어질지.”

협회장이 파르르 떨며 말하자 우윤혁이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당신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2일하고 23시간 57분이 남았군요.”

“!!”

“부디 반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조사했기를 바랍니다.”

그 말과 동시에 거대한 압박감이 사라졌다.

“뭐합니까? 움직이지 않고.”

“으으, 으아아아아-!”

협회장은 엉금엉금 네다리로 기며 우윤혁의 눈치를 살피다가, 괴성을 지르며 황급히 뛰쳐나갔다.

그 직후, 협회의 전 직원이 소집되었다.

창립 이래 초유의 사건이었다.

* * *

정신이 뜨문뜨문 사라졌다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감각이 연결되어 소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자마자 목격한 것은, 하스칼이 내 입술을 어루만지며 세상을 멸망시키겠노라고 협박하는 장면이었다.

고작 사람 하나 죽는다고 멸망을 논하다니, 어린아이 떼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싶다가도 가만 생각해보면 저것도 우스운 말이긴 했다.

원래부터 마왕이란 존재가 세계를 무너뜨리는 악당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 동안 세계가 망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멸망하는 이유로 내 죽음 따위를 들먹여 봐야 타격감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악마 주제에 순진한 건지.

아니면 내가 고작 이 정도로 흔들릴 거라 생각된 건지.

‘어지간히 얕보였나 보네.’

나는 놈이 무슨 얼굴로 저런 말을 하나 싶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물결치듯 일렁이는 금빛 눈동자가 나를 찌르듯 직시하고 있었다.

“억울해서 도저히 듣고만 있지 못 하겠던가? 하지만 어쩌겠어. 네가 말한 대로 난 개좆같은 새끼인데.”

잠자코 듣고 있자니, 저놈의 개좆은 참 오래도 우려먹는다 싶었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평생 놀림감을 얻게 된 것 같아서 조금 언짢아졌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 개좆조차 이미 초면은 아닌 것을.

‘가만. 내가 그 개좆이랑 뭘 하려고 했었는데….’

하스칼의 사타구니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무언가 하려 했다는 걸 떠올렸다.

하지만 머릿속에 연기가 가득 낀 것처럼 어쩐지 부옜다.

기억이 가닥가닥 끊어진 탓에 생각도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분명 기발한 계획이 있었단 말이지….’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었던 중 어떤 정보를 들었고, 그것 때문에라도 지구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계획이 떠오르질 않았다.

‘음. 우선 가장 처음에 할 일이 하스칼을 덮치는 거였나?’

괜히 생각이 깊어지면 망설임만 늘어나고, 망설임은 행동을 둔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목적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방법이 떠올랐으니 실천하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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