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네가 가장 아끼는 것을 부숴 버릴 거야
하스칼을 도발한 직후.
시야가 빙글 돌았다.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벽에 뺨을 맞붙이고 있었다.
놈은 내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왼팔을 뒤로 잡아 고정한 채 몸체를 단단히 붙였다.
뒤이어 직물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려 해도 엉거주춤 앞으로 쏠린 체중 때문에 벽에서 고개를 떼어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직- 찌지직.
연거푸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코트의 무게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어이 이 미친놈이 내 옷을 찢어발긴 모양이었다.
놈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묘한 상실감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망가진 아이템에 슬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하스칼이 옷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나는 어깨를 비틀고 오른손으로 벽을 짚었다.
그대로 상체를 들려고 했지만, 곧장 녀석의 힘에 밀려 다시금 벽에 얼굴을 묻었다.
“썅!”
“식사 시간엔 예의 바르게 굴어야지.”
화가 많이 났으리라 생각했는데, 하스칼의 목소리는 제법 덤덤했다.
다만 별다른 유감이 느껴지지 않는 어투와는 달리 놈은 나를 고정해 둔 채 반쯤 걸쳐 있던 바지를 잡아 내렸다.
휑하게 드러난 둔부로 놈의 하체가 맞붙었다.
고작 그것만인데도 앞뒤로 옴짝달싹할 수 없어 바로 무릎을 구부렸다.
신체를 무너뜨려 주저앉아 빠져나가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놈의 손은 휘청거리는 몸을 잡아주는 양 옆구리를 받치고, 제자리를 찾아가듯 아랫배로 파고들었다.
“이…!”
“자세 바르게 하고. 네가 원했던 주인님 좆이잖아.”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끄덩한 줄기들이 하스칼을 대신해 내 팔과 몸을 고정했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다시금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하스칼이 작정하고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반항은 무의미했다.
놈이 엉덩이를 잡아 벌리자 검지보다는 조금 더 굵고 짧은 감촉이 구멍을 비집어 들어왔다.
갈고리 모양으로 휜 엄지가, 잘 벌어지지 않는 입구를 뭉개듯 잡아 벌렸다.
바르르 떠는 주름 위로 뜨겁고 뭉툭하고 무겁기까지 한 무언가가 얹어지는 순간.
“배불리 먹여줄 테니까, 잘 삼킬 자신 있지?”
“!!”
퍽 소리와 함께 시야가 뭉그러졌다.
* * *
거울 너머.
서태준이 또다시 죽어 가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이 제대로 피어보지 못하고 시든 꽃 같았다.
「하아.」
태준에게서 마지막 숨결이 새어 나가고, 이내 거울이 수십 갈래로 터져 나가며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염병! 이게 벌써 몇 번째야! 거울 개수만큼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
허웅석이 질린 표정으로 거울을 탕탕 내리치자, 우윤혁은 미간께를 문질렀다.
누군가 죽어 나가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는 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사실 미공개 던전치고 이 정도 공격은 솔직히 가벼운 수준이었다.
처음 진입할 때부터 각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뭐든 쉽게 풀려서 방심했던 탓인지, 컨디션이 나빠지자마자 찾아온 서태준의 부재와 갑작스러운 영상 공격은 제법 크리티컬한 데미지를 입혔다.
이토록 상황에 휘둘려 본 것은 오래간만인지라 우윤혁은 눈 앞머리를 꾹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거울이고 뭐고 다 박살 내 버리고 싶은데.’
아까보다 컨디션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검을 멋대로 휘두르거나 할 수도 없었다.
한울의 말처럼 거울 너머로 빨려 들어간 태준이 위험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거울을 부수는 과정에서 동굴이 무너져 내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천장이 주저앉는 걸로 S급 헌터에게 유의미한 피해가 생기겠느냐마는 문제는 숙덕거리며 모여 앉은 헌터들과 패닉에 빠져 쓸모를 잃은 문규빈이었다.
동굴이 무너졌을 때, 저들이 살아날 확률은?
‘글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지.’
실상 동료를 버리는 행위가 될 테다.
상황이 악화하기 전에 빠르게 해결을 보고 다음 플랜으로 넘어가는 게 더 나은 행동이겠지만 그런 우윤혁의 행동을 막는 건, 동료 모두를 데리고 귀환하기로 한 태준과의 약속이었다.
‘이렇게 되리란 걸 알았던 건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 상황이 너무 절묘했다.
“후우.”
눈가를 꾹꾹 누르던 우윤혁의 손이 일순 떨어져 나갔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속내를 읽힌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우윤혁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태준은 우윤혁을 가늠할 만큼의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교적인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모든 사람을 투명 인간 보듯 대하던 사람이었다.
더욱이 중요한 행사에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어 우윤혁이 태준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된 것도 길드에 가입하고 수년이 흐른 뒤였다.
그런 사람이 어떤 수로 우윤혁의 가면 너머를 읽었을까.
헌터가 된 뒤로, 단 한 번도 벗지 않았던 가면이었는데.
‘설마 마음을 읽는 스킬이 있는 건가.’
다소 어이없는 가정이었지만 막상 떠올리고 나니 그럴싸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속내를 읽고 답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현재 그의 마음속 기저에서 가장 거세게 휘몰아치는 감정은 태준을 향하고 있었다.
우윤혁조차 정의 내리지 못했던 그 감정을, 태준이 읽었다면 속 시원하게 대답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결국, 내 말은 들은 체도 않고 결론지었다는 거네.」
그때.
우윤혁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태준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뭐야. 이번엔 하수구 던전이네.”
얼떨떨해하는 허웅석의 말처럼 거울이 새로 토해 낸 영상 속 태준은 무언갈 지키듯 등지고 있었다.
여기 있는 헌터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하수구 던전 입구였다.
그런 태준의 앞으로 수백의 정예 헌터가 그에게 무기를 겨눴다.
하필, 가장 선봉에는 청염의 기운을 검에 두른 우윤혁이 있었다.
「비키세요.」
「여긴 안 돼. 건들 생각 말고 돌아가.」
「이대로라면 강동구 전체가 던전화 될 겁니다. 당신의 이기심으로 서울 절반이 날아가도 좋습니까?」
「그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건데. 아직도 모르겠어?」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비키세요.」
「못 비키겠다면?」
「모든 헌터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겁니다.」
「깔끔하고 좋네.」
태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헌터들이 무지막지하게 공격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준은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맞받아치고 있었다.
일개 헌터가 전국구 정예 헌터들의 공격을 홀로 막아 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환각이라고 상정하면 당연히 믿어서는 안 되는 장면이겠지만.
우윤혁은 태준의 검격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당신이 정말로…?’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실마리를 손에 쥔 기분이었다.
* * *
“커헉…!”
무지막지하게 큰 좆이 메마른 입구를 벌리고 들어왔다.
이미 구멍은 한계 이상으로 벌어져 있었다.
온 점막이 들러붙어 부들부들 떨 만큼 빠듯한데도, 벌겋게 달아오른 좆머리는 정도를 몰랐다.
벌어지지 않으면 찢어서라도 들어올 기세로 바깥 살덩이까지 안으로 밀며 후퇴 없이 그저 직진하기 바빴다.
몸통이 전부 꿰뚫린 것 같은데.
가장 넓은 부분은 아직도 우악스레 점막을 벌리며 안쪽을 쿡쿡 쑤셨다.
그때마다 괴물이 내 몸을 반으로 갈라 놓는 것만 같았다.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자, 말조차도 제대로 토해 낼 수가 없었다.
심리적인 공포감이 밀려와 나는 본능적인 위협에 정말 온 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가만히.”
“……!”
철퍽!
괴물 같은 방망이가 흡착하듯 들러붙은 점막을 떨쳐 내고 깊숙한 어딘가에 꽂혔다.
온 내장이 비명을 질렀다.
엉덩이를 찢고 들어온 게 분명한 놈의 흉기는, 나를 죽이고 있었다.
벽을 박박 긁으며 덜덜 떨었지만, 그럴수록 놈의 몸체가 가깝게 맞붙었다.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토악질이 나올 것처럼 버겁고 숨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놈은 여태까진 봐준 거였다는 양 버르르 떨리는 허벅지를 거칠게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끄흐…!”
종아리에 걸린 바지 때문에 내 몸이 휘청거렸다.
무슨 심보인 건지.
놈은 가장 거추장스러웠던 코트만 찢어 버리고, 남은 옷은 대강 벗겨 둔 채 그대로 좆을 구겨 넣고 있었다.
반쯤 다리에 걸쳐진 바지 위로 뒤늦은 체액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살갗 너머로 밴 땀이 목티에 들러붙었다.
그때마다 인간성이 교묘하게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옷을 반쯤 벗은 채, 벽에 밀쳐져 엉덩이만 쑤셔지고 있는 모습이.
뒈질 것 같은 상황에서 그게 못내 수치스러웠다.
“잘 삼키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도발하면 쓰나. 이렇게 될 걸 정말 몰랐어?”
“아, 욱!”
“내가 베푸는 자비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익히는 게 어렵지는 않을 텐데.”
놈의 귀두가 점막을 북 긁고 지나가자 나는 벽을 내리치며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자 못마땅하다는 듯,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야.”
천장에서 기어 내려온 줄기가 방금 내리쳤던 오른팔을 휘감더니.
하스칼에게 인도하듯 뒤로 당겼다.
“이 몸은 네 것이 아니야. 엄연히 주인이 있지.”
어느새 풀려났는지 모를 왼팔 역시 놈에게 당겨지며 상체가 들렸다.
그 바람에 나는 엉거주춤 까치발을 드는 수밖에 없었다.
“주인이 있는 물건을 망가뜨리는 건 죄야. 죄가 생기면 갚아야지.”
“흐으… 뭐라는 거야.”
“나는. 최근에 생긴 내 것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참이라, 흠집 하나 생길 때마다 그 원흉에게서 값을 받아 낼 예정이거든.”
“으극, 윽!”
“그 원흉에 예외는 없어. 네가 스스로를 망치기 위해서 나를 이용하면, 그 또한 값을 치러야겠지.”
“…!!”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들썩거렸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며 다리가 허공에 붕 떠오르고.
여기서 더 밀고 들어올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 끔찍했다.
“아, 으! 그만!”
나는 마구 도리질을 치며 꺽꺽댔지만, 놈은 몸에 잘 새겨 두라는 듯, 다시금 사타구니를 퍽 하고 쳐올렸다.
“최선을 다해서 너 자신을 보호해. 그게 네 머릿속에 새겨야 할 가장 절대적인 명령이야. 그렇지 않으면.”
놈이 다시 팔을 당기자, 내 상체가 절로 들리며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하스칼이 사납게 웃으며 내 눈꺼풀을 씹었다.
“네가 가장 아끼는 것들을 부숴 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