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여줘,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32)화 (32/80)

32. 믿고 있었지. 네놈의 선택적 정의

‘아, 들켰나?’

허술한 은신으로는 헌터의 예민한 감각을 속이지 못할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걸리고 나니 조금 민망했다.

처음엔 기척에 놀라 몸을 물렸지만, 목소리를 듣자마자 저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재회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고, 무엇보다 내가 보고 있는 게 환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 까닭에 그들 앞에 나타날 적당한 시기를 재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먼저 알아보니 숨어 있던 게 더 수상쩍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일수록 뻔뻔하게 나서야 꿀리지 않지.’

나는 부러 당당한 척, 머쓱한 낯을 지우며 그들 앞에 나서려고 했다.

“전방, 순록형 마물 떼 발견. 문규빈 헌터 마방진 준비하세요.”

“알겠어. 시간 벌어 줘.”

“지채정 헌터와 한울 헌터는 후방 점하고, 허웅석 헌터는 저와 돌격 준비합니다.”

‘이 미친놈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귀에 쏙쏙 박히는 정확한 딕션으로 이름을 부르며 전투 대형을 짜는 꼴에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름 좀 조심하라니까! 내 말은 똥구멍으로 처먹었냐!’

황급하게 주변을 돌아봤다.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을 만한 악마나 마물이 있으면 그야말로 낭패였기 때문이다.

‘아직 악마는 없는 거 같은데…. 지금 확 나가?’

그랬다간 동료의 눈먼 칼에 맞고 태준이는 아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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